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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사람으로 세상이 바뀌는가?…노무현과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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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사람으로 세상이 바뀌는가?…노무현과 예수

[노무현을 기억하며] '역사의 진보'를 담지해야 '제2의 노무현'

"발인 행사 때문에 장내를 정비해야 되기 때문에 죄송하지만 이제는 300명 씩 한꺼번에 조문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김영배 전 행사기획비서관의 안내 방송이 반복되던 29일 0시께 기자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정 앞에 국화 꽃 한송이를 바쳤다.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정치인들 마냥, 영정 앞에 고개 한 번 숙이기 위해 몇 시간을 기다리고 있는 조문객들을 못 본 채 하고 앞줄에 끼어들었음을 고백한다.

그 순간 비보를 듣고 급히 봉하로 내려온 23일부터 그 순간까지의 기억이, 지난 해 2월 25일 노 전 대통령이 귀향하던 날 동행했던 기억이, 참여정부 후반기 2년 간 청와대를 출입했던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하지만 서거 당일부터 노 전 대통령의 유골이 정토원에 안치된 30일 새벽까지 꼬박 1주일간 봉하 현지 취재를 마치고 만 하루가 지난 지금까지 머릿속이 정리가 안 된다. 이미지와 생각과 말의 편린들만 어지럽게 부유하고 있다.

신동엽의 싯귀 같던 봉하생활

▲ 손녀 손을 잡고 사저 앞을 걷던 노 전 대통령ⓒ고 노무현 대통령 장의위원회

지난 해 2월 25일 퇴임하는 노 전 대통령 내외와 함께 KTX를 같이 타고 봉하로 내려왔다. 청와대 출입기자로선 마지막 업무였다. 노 전 대통령은 물론, 노무현의 사람들 표정이 그렇게 밝고 가벼워보였던 적은 없었다.

정권재창출은 실패했고 말기 지지율도 그리 높지 않았지만 '대과는 없었다. 부끄러울 것도 없다'는 자부심만은 충만했다. 한미FTA 문제로 갈라섰던 이정우 전 정책실장도 "고향에 내려가는 첫 대통령이라 흐뭇하다"면서 'FTA문제가 깔끔하게 정리되지 못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 "그건 그렇지만 다 잘할 수 있냐. 크게 보면 잘 하신 것"이라고 답하며 활짝 웃었다.

봉하마을 환영 인파 앞에서 노 전 대통령은 "혁신과 개방, 분권, 교육과 평화체제를 구축했으나 국민들의 신뢰는 얻지 못한 것 같다"고 자책하면서도 "분명히 노무현식 정치를 한 것 같다. 감사하다"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은 "정치 이전에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제가 가장 좋은 정치인이라고는 말 못하지만 대한민국에 저 같은 정치인이 좀 많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너털 웃음을 지었고 박수가 쏟아졌다.

귀향 길 기차에서 출입기자들과 마지막 간담회를 가졌을 때 노 전 대통령은 귀향 계획에 대해 "큰 일을 하고 싶단 생각보다 같이 일하던 사람이 보고 싶기도 하고 보러 오는 사람들도 많이 있을 듯해서 그런 사람들과 시간 보내는 일이 가장 바쁜 일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해 말까지만 해도 노 전 대통령의 생각대로 지냈다. 손녀에게 자전거를 가르쳐주며 할아버지 노릇을 했고, 화포천과 오리쌀 재배에 전념하며 귀농의 모범을 보였고, 관광버스 대절해 구경오는 촌로들 앞에 하루 몇 차례씩 나가 "내가 그리 좋아요. 일할 때는 욕하더니 그만두고 나니까 이렇게 좋데요"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길가엔 황토빛 노을 물든 석양 대통령이라고 하는 직함을 가진 신사가 자전거 꽁무니에 막걸리병을 싣고 삼십리 시골길 시인의 집을 놀러 가더란다"라는 신동엽의 싯귀에 나오는 스칸다나비아 어느 나라 대통령의 모습과 흡사했다.

그런데 도대체 왜?

그가 정말 아파했었을 것은 무엇일까?

발빠른 한 신문사가 이미 전문을 게재하다시피 했지만 노 전 대통령은 2007년 12월 26일 출입기자들과 만찬간담회를 가졌다.

지난 28일 공개된, "수고 많으셨습니다. 이제 당신에게 석방을 허락합니다. 일로부터, 구속으로부터, 책임으로부터, 그리고 비판으로부터"라는 자막이 깔린 청와대 출입기자단 제작 동영상이 헌정된 그 비공개 행사였다.

전면 비보도를 전제했지만, 노 전 대통령 특유의 달변은 그날도 예외는 아니었다. 때로는 홀가분한 표정으로 때로는 비감한 표정으로 한 시간 여 동안 소회를 털어놓았다. 돌이켜보면 그날 노 전 대통령 발언에서 비극의 단초가 엿보였다.

"나는 옛날부터 '지사'를 존경해왔다. 어떤 경우도 굴하지 않고 굽히지 않으면서 결국은 마지막에 홀로 목숨을 놓는 지사의 삶이 고귀하다고 봤다. 정치는 그리해서도, 그리 할 수도 없다. 정치는 지사가 못한다. 그러나 지사 없는 정치인만 있어도 무슨 희망으로 사는가. 지사도 더러는 있어야 한다 정치인은 지사적 기개가 있어야 한다. 이상이 없는 정치가 지배하는 사회가 희망이 있는가. 정치는 현실이지만 지사가 있어야 하고 이상이 있는 정치가 돼야 한다"

검찰 소환을 앞두고, 자신도 모르게 박연차 회장의 100만 달러가 정상문 전 비서관을 통해 들어온 사실을 확인한 노 전 대통령은 "저를 버리십시오"라는 글을 인터넷에 올렸다.

"전두환과 노태우는 얼마나 해먹었는데, 이명박의 도덕성은 어느 수준인데, 겨우 그걸 가지고 노무현을 괴롭히냐"는 지지자들의 응원이나 "생계형 범죄다"는 전 청와대 인사의 항변이 오히려 노 전 대통령을 더 힘들게 했을지도 모른다.

"스스로 부끄럽지 않은 대통령이 될 수 있는, 자부심 떳떳한 대통령 하기로 했다. 내 기준으로는 그것이 가장 성공한 대통령이다. 내가 도리 없이 스스로 설정한 성공한 대통령이다. 국민들이 오만하다 말할지 모른다."

이 역시 그날 만찬에서 나온 이야기다. 이렇게 오만할 정도로, 결벽적일 정도로 자존심이 강한 노 전 대통령이기에 더 아팠을테다.

"짐만 될 뿐이다"는 말의 의미

봉하에 머무른 1주일 동안 많은 사람들과 많은 대화를 나눴다. 삼십 여개 가까운 기사를 쏟아내는 동안 담지 않은, 담지 못한 말도 많았다.

한 달 쯤 전에 "27일 저녁에 한잔 하자"는 개인적 약속을 잡았었다. 그 때쯤이면 노 전 대통령이 불구속 기소가 되고 사건은 법조의 영역으로 넘어가리라는 요량이었다. 참여정부 청와대를 출입했던 몇몇 기자들과 천호선 전 대변인, 유민영 전 춘추관장 등이 약속의 멤버였다. 추모객이 폭발하던 그 날 밤, 그 약속을 화제에 올리며 "이렇게라도 모이긴 모이네"라며 쓴웃음을 나눴다.

이화영 전 의원이 "이제는 겁나는 것 없다. MB정부가 가한, 쉬쉬했던 고통을 다 밝히겠다"고 말했다던가?

본인은 물론이고 가족, 지인들의 계좌까지 털린 인사가 한 둘이 아니다. 통화내역 조사, 출국 금지 정도는 화제 거리도 아니다. 행정관급 인사들의 취직 자리도 막힐 정도였다.

"짐만 될 뿐이다. 남은 여생도 마찬가지다"는 유언이 나온 까닭이다. 뇌종양으로 투병 중인 강금원 회장의 1차 보석 신청 거부는 직격탄이었다.

이런 마음의 고통은 육신도 갉아먹었다. 노 전 대통령 본인도 "몸이 아파 책도 읽을 수 없다"고 토로했듯 생전에 그를 진료했던 부산대 병원의 한 의료진은 "마지막에 정말 건강이 안 좋았다. 개인적으로는 당신의 고통이 자살 결심에 한 몫하지 않았냐 싶을 정도"라고 전했다.

왜 이렇게 됐을까? '전직 대통령의 예우를 다하고 무리한 수사도 하지 않았'다는 게 검찰 이야기 아니던가? 이백만 전 청와대 홍보수석은 "겁이 많아서"라고 풀이했다. 노 전 대통령이 겁이 많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명박 정권의 겁이 많다는 이야기다.

복기해보면 촛불이 사그라들고 나서 봉하에 대한 압박이 시작됐다. 이명박 정권은, 자신들에 대한 원성이 높아지는 것과 비례해 전직 대통령의 인기가 높아지는 것을 두고 보지 못했다. "그까짓 거 뭐"라고 넘기기에는 간이 작았다.

노무현의 죄

역모를 도모해야만 역적이 되는 것은 아니다. 분노한 백성들의 정신적 구심점만 되도 역적이다. 삼족을 멸할 죄다. 노산군이라는 이름으로 영월에 유배됐던, 힘이라곤 없었던 단종도 그래서 죽임을 당했던 것 아닌가?

이명박 대통령이 '명박산성' 뒤에서 아침이슬을 들을 때 노 전 대통령은 봉하마을을 자전거로 휘젓고 다녔다. 인터넷에선 '쥐박이'와 '노간지'를 편집해놓은 UCC가 폭발적 인기를 끌었다. 죽을 죄다.

둘째로 "내 말 안들었던 검찰은 남 말도 안 듣겠지", "권위주의와 정치보복의 종결은 비가역적이겠지", "정권이 바뀐다고 세상이 바뀌나"라는 '노무현의 착각'도 죽을 죄다.

셋째로,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하고 나자 "제왕적 대통령 문화가 이 비극의 원인이다. 그것이야말로 고쳐야 한다"는 해묵은 주장이 고개를 들고 있다. 개헌론까지 나올 조짐이다. 그렇다.제왕적 대통령이 이 비극의 원인이다. 하지만 검찰을 틀어쥐는 대신에 놓아줘버렸고, 언론을 통제하는 대신에 논쟁했던 노무현은 '제왕적 대통령'이 아니었다. 그것이 죽을 죄였다. 제왕적 대통령은 지금 청와대에 있다.

노무현과 예수


▲ 이 열기의 근원은 무엇인가ⓒ프레시안

대변인과 정무비서관을 지내며 대연정, 개헌 등 노 전 대통령의 승부수에 함께했던 정태호 전 비서관과 '노무현과 예수의 유사성'을 화두로 한참 이야기를 나눴다. 새벽녘 끊일 줄 모르는 추모행렬을 보면서 정 전 비서관은 "이 열기의 이유가 뭘까"라고 물었고 기자는 "미안함, 지켜주지 못한 미안함과 나도 그에게 돌을 던졌다는 미안함이 가장 클 것"이라고 답했다.

레위기에 사로잡혀 있는 유대 사회에 갈릴리에서부터 일대 혁신을 불러일으킨 예수가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 사람들은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나와 "우리의 왕이 오신다"고 열렬히 환영했다. 하지만 그가 그들이 원하는 왕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지자 그들은 빌라도에게 "도둑을 풀어주고 예수를 십자가에 매달라"고 강요했다.

원래 노무현을 잡아먹지 못해 이를 갈았던 세력들은 제쳐놓자. 지금 가슴을 치고 우는 국민들의 마음은 십자가에 달린 예수를 보고서야, 다시 눈물을 흘리며 "가롯 유다를 찾아라"고 나 아닌 다른 죄인을 색출하던 군중들과 유사하다.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린 것은 예정된 역사다. 그 역사로 인해 민중들이 각성했다. 노무현의 죽음도 예비 된 역사일 수 있을까? 민병두 전 의원은 "노 전 대통령은 마지막 전쟁에 혼자 나가서 영원한 승리를 거뒀다"고 평가했다.

그런데 정 전 비서관은 "(우리에겐)사람도 없고 세력도 없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예수 사후엔 사도 바울과 베드로가 있었고 그들이 예수의 뜻을 전파했다"고 답해줬다. 그런데 베드로는 초대교황으로, 바울은 '기독교'를 사실상 정립한 사람으로 성경과 역사에 이름을 남겼지만 자신이 뜻을 이룬 인물은 아니다. 게다가 두 사람 다 순교했다.

봉하에 머무르는 친분이 있는 추모객 몇 명으로부터 동일한 질문을 받았다. 한 방송작가는 간절한 눈빛으로 "유시민이 가능성이 있을까?"라고 물었다. "글쎄"라고 답했다.

역사의 진보를 담지하는자 만이…

기자들과 청와대 마지막 만찬에서 노 전 대통령은 정권재창출 실패와 열린우리당의 해체에 대해 "1차적으로 내 책임이다. 지지율이 떨어지고 보궐선거 (연이어) 깨지면서 이렇게 됐다"고 자책하면서 앞날을 비관했다.

"(총선에서 연달아) 떨어지고 해도 저는 청문회에서 얻은 이름도 있고, 지지율이 올라갈 밑천은 있었다. 이제 통합정치인은 나올 수 없게 됐다. 국민을 감동시키는 정치인이 나올 수 없다. 정치는 실패가능성 높은 과정 중에 행운을 잡는 과정이다. 이루 말못할 좌절감 가지고 떠난다."

"대통령이 되고 나니 그 사람들, 내게 열광적 박수를 보내던 노동자들, 자다가도 일어나 몸으로 부대낌을 감수하던 노동자들과 멀리 서 있는 자신을 봤다. 노동자를 구속하면서 대통령직을 수행했다. 보기에 변절 같겠죠. 황당했겠죠. 그 노동자들 스스로 멀어지고 떨어지는 것을 봤다."

이런 자책도 있었지만 그는 "패자가 예속되지 않는 비천한 지배 없도록 하는 것이 정치다"고 말했다.

양정철 전 비서관이 공개한 유고에는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는 진보의 정권이었는가? 제3의 길, 유럽의 진보주의 기준으로 평가해 보자. 그래도 한계는 분명하다. 본시 그들의 좌표는 어디에 있었을까? 과거의 말과 이력을 살펴보자. 무엇이 발목을 잡았을까?"라는 구절이 있다.

"어디를 보아도 우리가 열세입니다. 그냥 열세가 아니라 형편없는 열세입니다. 이런 열세를 딛고 세상을 바꾼다는 것은 역사의 진운이 함께할 때에만 가능할 것입니다. 우리는 역사가 돈의 편이 아니라 사람의 편으로 가고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이 길을 가는 것입니다. 다만, 그 막강한 돈의 지배력을 이기기 위해서는 우리가 가진 모든 힘을 다 짜내고 이를 지혜롭게 조직해야 할 것입니다." 이런 내용도 있다.

유시민이 됐든 누가 됐든, 아니 꼭 '노무현의 사람'일 필요도 없다. 그를 권좌로 밀어 올렸던, 하지만 막상 그 권좌에서 다하지 못했던 역사의 진보를 담지하는 사람이 노무현을 넘어서는 노무현의 후계자가 될 수 있다.

대통령 노무현은 '한 사람으로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줬다. 물론 이명박 대통령은 거꾸로 '한 사람만으로도 세상은 바뀐다'는 것을 웅변하고 있다. 그렇다고 다시 '한 사람'만을 찾아나설 것인가?

부재로서 존재를 증명한 노무현은, 흡사 '이명박 정부에 맞서는 노무현의 국민' 구도를 만들어 놓고 갔다. 남은 것은 산자의 몫이다.


▲ 격무 중 이같이 휴식을 취하던 노 전 대통령은 영원한 휴식에 들었다ⓒ고 노무현 대통령 장의준비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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