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크로드(Silk Road)는 고대 중국과 서역, 더 나아가 유럽간에 비단을 비롯한 여러가지 상품 무역과 문화교류가 이뤄진 '교통로'를 말한다. 당시 중국의 비단이 로마제국 귀족의 고급 패션이 되었는데 독일지리학자 리히트 호펜이 이를 '비단길'로 명명했다.
실크로드가 처음 열린 것은 전한(前汉 : BC 206 ~ AD 25) 시대이다. 한나라 무제(武帝)는 대월씨(大月氏), 오손(乌孙)과 같은 나라와 연합하여 중국 북방 변경 지대를 위협하고 있던 흉노를 제압하고 서아시아로 통하는 교통로 확보를 원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한 무제의 명에 따라 장건(张骞)이 서역을 개척한 이래 중국의 역대 왕조는 서아시아와 중앙아시아 여러 나라와 빈번히 교류했다. 실크로드는 상업적인 면뿐만 아니라 동서 문화 교류라는 면에서 역사적으로 큰 의의를 지니게 됐다.
실크로드가 가장 활발했었던 시기는 당대(唐代 : 618 ~ 907)였는데, 현재는 파키스탄과 중국 신장위구르자치구(新疆维吾尔自治区)를 잇는 포장도로에 일부 남아있다고 한다. 실크로드는 중국 역사상 가장 빛나고 강했던 시기에 만들어지고 활발했었다.
현재 중국이 실크로드라는 단어를 차용한 것 역시 이처럼 고대 실크로드가 가지고 있는 평화적인 협력, 개방적인 포용, 상호 학습과 상호 이익 및 윈윈의 정신을 더욱 확대 발전시키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실크로드의 부활과 중국의 부흥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2013년 9월 카자흐스탄 대학 방문 중에 '실크로드 경제벨트' 구상을 제시하고, 10월 인도네시아 국회 연설에서 '21세기 해상실크로드' 건설을 제의했다. 그리고 2014년 4월 양제츠(杨洁篪) 외교담당 국무위원은 보아오 포럼에서 상기 두 개념 각각의 중국어 명칭('丝绸之路经济带'와 '21世纪海上丝绸之路')을 결합하여 '일대일로(一带一路)'라 언급했다.
이는 중앙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육상 실크로드(일대)와 동남아시아와 중동, 아프리카를 연결하는 해상 실크로드(일로)를 개발해 중국을 중심으로 유라시아를 하나의 경제권으로 묶겠다는 대담한 국가대전략이다. 역사서 안에서 존재했었던 실크로드를 부활시켜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꾀하겠다는 것이다.
일대일로는 유럽‧아시아‧아프리카 대륙에 걸쳐 65개국이 관련돼있다. 총인구는 44억 명으로 전세계 인구의 62.5%, 경제규모는 21조 달러로 전 세계 경제의 28.6%을 차지한다. 동쪽은 역동적인 동아시아경제권이고 서쪽은 유럽경제권이며 가운데는 경제발전 잠재력을 가진 국가들이다.
2012년 중국 국제정치학자 왕지스(王缉思) 교수는 중국은 연해지역이 전통적 경쟁과 협력의 대상에 한정되었던 과거의 시각으로부터 벗어나 서진(西进) 전략을 꾀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에 따르면 중국은 고대부터 그 중심이 내륙에 있었으며 영토가 바다 너머로 확장된 경우는 드물었다. 유라시아 서부로 통하는 실크로드는 일찍부터 동서 문명과 상업 활동의 중요한 교량이었고, 현재의 불균형 발전은 근대의 굴욕적 역사와 개혁개방 정책의 전략적 필요에 의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왕지스 교수는 왜 서진 전략이 필요한가라는 질문에 다음과 같은 설명을 덧붙인다. 서부지역 국가들은 유라시아 대륙의 핵심으로 인류문명의 발원지이며 천연자원이 풍부하다. 그러나 국내 정세가 불안하고 지역 협력이나 경쟁의 기제가 확립되지 않았기에 다양한 세력이 혼재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서진전략은 자원과 상품의 교역로 확보, 관련 국가와의 경제협력 확대, 중국 서부지역 안정, 중국의 정치력 및 소프트 파워와 전략 공간 확대에 큰 도움이 될 것이란 주장이다.
그러나 2011년 10월 미국 국무장관 힐러리 클린턴이 아프가니스탄을 중심으로 하는 '뉴 실크로드 구상'을 선언하며 관련한 이슈를 선점하였다. 또한 러시아는 오래 전부터 중앙아시아, 카스피해를 자신의 전략적 영역으로 간주한다. 뿐만 아니라 이 지역은 유럽의 주요한 에너지 공급원이며, 나아가 정치안보 문제로 서방과 장기간 협력을 유지해왔고, 근래에 경제, 안보, 에너지를 이유로 인도와 일본도 관심을 보이는 상황이다.
일대일로 구상의 배경
일대일로 구상의 배경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가 있다. 무엇보다 이는 종합적인 대외전략 구상의 일부로서 지구적인 차원에서 전략적 공간의 확대를 도모하려 한다는 의견이다. 또한 중미 간 전략 경쟁 구도 하에서 미국의 아시아로의 회귀와 재균형 전략에 대응하려 한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미국의 중앙아시아 진출과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Trans-Pacific Partnership)' 추진에 대한 아세안 국가의 지지 그리고 해양 영유권 문제로 동남아 국가와 갈등이 빈번한 상황에 대해 대책이 필요하기 때문이란 주장이다.
한편으로 국내적인 차원에서 일대일로 구상이 시진핑 지도부의 권력기반 공고화에 기여할 수 있다는 의견을 제기한다. 그들의 목표는 주요한 대외 전략을 중국이 당면한 균형발전, 변경지역 안정 등의 국내 문제와 연계시켜 신창타이(新常態) 시대에 새로운 발전 동력을 창출하고 이로써 국내 여론의 지지를 확보하려 한다는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에너지 안보, 산업 구조조정, 생산력 과잉 해소, 경제성장 둔화에 따른 돌파구 마련 등등 각계의 의견이 분분한 상황이다.
왕지스 교수의 서진 전략이 실제로 중국의 일대일로 구상에 어느 정도의 영향을 주었는지 구체적으로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서진 전략이 일대일로 구상과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수립으로 구현되고 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일대일로 구상은 최소 30년 길게는 50년이 필요한 국가적 차원의 대전략이다. 그리고 성공할 경우에 중국을 세계적인 그리고 명실상부한 강대국으로 발돋움 하게 만드는 전략이다.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라는 '중국의 꿈'이 이로서 현실이 되는 것이다.
한국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한국은 지리적으로 중국의 동편에 위치하고 있기에 서진과 일대일로 추진에 소외될 수 있다는 우려가 존재한다. 이러한 우려를 불식하기 위해 한국은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를 일대일로에 접목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한국이 제시한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는 유라시아 국가와의 경제협력을 통해 한국의 대외 무역을 확대한다는 구상이다. 일대일로와 유라시아 이니셔티브가 지향하는 방향이 일치하며, 실제로 일대일로 구상에 참여하기 위해 중국이 주도하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에 가입했고, 이를 통해 양국 관계를 다지는 동시에 정체된 한국 경제에 새로운 돌파구 마련을 위해서 노력했다. 작년 9월에 이루어진 박근혜 대통령의 중국 열병식 참석, 한중 자유무역협정 발효와 함께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 가입으로 한중 관계는 역사상 최고라 일컬어질 정도로 발전했다.
그러나 2016년 북한의 핵실험 강행과 이어진 국제 사회의 제재 특히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한국 배치 결정 이후 한중 관계가 크게 냉각됐다.
한국은 북핵을 포함한 한반도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 그리고 경제 위기상황을 벗어나기 위한 돌파구로 중국이 반드시 필요하다. 마찬가지로 중국은 동북아 지역의 안정과 미국, 일본의 압박을 줄이기 위해 중국에 가까운 한국을 필요로 하고 있다.
중국이 서부로 진출할 수는 있지만 한반도 지역의 중요성이 바로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일대일로 전략의 안정적인 추진을 위해서는 동부의 안정이 담보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국의 '동온서진(东稳西进)' 전략은 지속될 것이다.
한국과 중국은 1992년 수교 이래 갖가지 도전을 극복하면서 전략적 협력동반자관계를 발전시켜왔다. 이러한 도전들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양국관계는 성숙되어왔다. 그런데 사드 배치 결정 이후 한중관계는 얼어붙었고, 중국은 여러 보복 조치를 취하면서 한국을 압박하고 있다. 중국의 지나친 압박으로 국내에서는 혐중정서가 점점 만연되고 있다. 중국 내에서도 혐한 정서가 태동하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역지사지의 입장에서 상호 이해의 폭을 넓히면서 갈등 해소 방안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 중미 간 전략적 경쟁은 향후 더욱 치열해질 것이며, 이에 따라 한국이 선택을 강요 받게 되는 경우도 더욱 많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한중관계에는 항상 명암이 교차하고 있다. 현재 한중관계에 비바람이 몰아치고 있지만 새로운 리더쉽이 출범할 내년에는 한중관계에도 햇볕이 들게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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