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떠났지만 수천수만에 이르는 동물들은 그곳에 남겨졌다. 반려동물들은 잠긴 집 안에, 농장동물들은 축사에 묶여 있거나 케이지 안에 갇힌 채 대재앙 이후 살아남은 동물들은 고립된 곳에서 수개월 동안 배고픔과 죽음의 사투를 벌여야 했다. 피난 가지 못한 동물들에게 방사능을 피하는 것보다 중요한 건 생존이었다.
방사능 오염지대에 남겨진 동물들
후쿠시마 원전 반경 20킬로미터 이내는 사고 이후 사람들이 들어가지 못하는 곳이 되어버렸다. 2010년 말 기준 그 안에는 소 4000마리, 말 100마리, 돼지 3만 마리, 닭 63만 마리가 사육되고 있었다. 사고 후 2개월여 남짓 된 2011년 5월 24일 일본 정부는 원전 반경 20킬로미터 안에 있던 가축의 살처분 방침을 발표했다. 어쩌다 살아남은 가축들은 살처분되고 말았고 떠돌아다니는 동물들의 생사는 알 수가 없었다. 개와 고양이의 신세도 마찬가지였다.
'JEARS'(Japan Earthquake Animal Rescue and Support)는 일본에서 'No kill' 동물구조 활동을 펼쳐온 비영리민간단체들이 결성한 단체다. 2011년 12월 그간 어찌어찌 생존해 왔던 동물들에게도 힘든 겨울이 닥치기 직전 'JEARS'는 간신히 일본 정부로부터 동물 구조를 위해 출입금지 구역에 들어가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다. 진입 허가를 요청한 지 수개월 만에 떨어진 특별하고 한시적인 허락이었다.
이들은 "(동물구조 작업 없이) 이대로 그냥 내버려뒀다가는 앞으로도 계속 매일같이 수십여 마리가 죽게 될 것"이라며 "동물구조가 허락되지 않는다면 최소한 우리를 안으로 들여보내 살아남은 동물들에 대한 먹이 공급을 허락해 주어야 한다"고 요청해왔다.
진입 허락이 떨어지자, 'JEARS'는 한시적 기간 동안 방사능 위험을 무릅쓴 동물구조 활동을 벌였으며 개과 고양이뿐만 아니라 도로를 배회하던 소들도 함께 구조했다. 민간 차원에서 이뤄진 최선의 노력이었지만 모든 동물들을 구할 순 없었다.
미국, '동물 대피법' 제정
대형 재난이 닥쳤을 때 동물도 사람과 함께 대피하거나 애꿎은 생명의 희생을 최소화시킬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걸까?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를 겪은 미국의 기억은 특별하다.
2005년 8월 29일 미국에 상륙한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인해 2000여 명이 목숨을 잃었고 수천 마리 반려동물들도 생명을 부지하지 못했다. 많은 사람들이 홍수 속에 동물들을 남겨둔 채 뉴올리언즈를 떠났다. 아니, 그래야만 했다. 대부분의 대피소에서 '비인간동물'은 '인간동물'과 함께 있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구급대원들은 긴급상황에서도 동물구조를 거부했다. 특별한 대치가 없던 상황에서도 인명 우선의 원리가 작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룻밤 사이 길 위의 피난민이 되어버린 동물들의 구조와 수의적 처지 및 돌봄은 민간차원에서 주도되었다. 미국의 동물단체 'HSUS'(Humane Society of the United States)는 루이지애나의 라마르 딕슨 엑스포 센터를 뉴올리언스 동물 대응 거점으로 이용하기 위해 임대했다. 뉴올리언즈에서 북서쪽으로 60마일 정도 되는 루이지애나 곤잘레스에 있는 라마르 딕슨 센터에서 뉴올리언즈 재난 현장에서 구조되어 온 2000여 마리의 개들을 보살폈던 것이다.
라마르 딕슨 센터에서는 비록 기초 수준이지만 수의 검사 및 응급 처지, 목욕, 24시간 케어가 제공되었다. 가장 많은 동물들은 개였는데 이들은 매일 먹이, 물, 깨끗한 켄넬(머무는 공간) 등을 공급 받았고 매우 드문 일이었지만 산책도 했다. 각 개집에는 동물들의 구조 장소가 적혀 있었다.
허리케인 카트리나의 안타까운 경험은 더 근본적으로 동물들을 재난 대응 계획의 일환으로 법적 편입시키는 전환점이 되었다. 2006년 가을 미국 하원은 마침내 'PETS Act'(Pets Evacuation and Transportation Standards Act)라 불리는 법을 통과시켰다. 이 법은 각 주 및 지방 비상 대비 운영 계획에 동물을 포함시켜 주요한 재난 및 비상사태에 대비토록 했다.
미국 본토국방부(DHS) 및 그 기관은 미국 연방비상재난처(FEMA)가 ‘PETS Act’를 효과적으로 이행하도록 관리 감독한다. 이에 따라 주요 지자체는 비상대응 계획을 세우고, 이행하고, 실행해야 하는데 여기에 동물들의 구조, 돌봄, 대피소 등이 들어가게 된 것이다. 동물 대피 방법에 대한 교육이라든지 동물대피소 설치 역시 비상대응 계획의 일환이 됐다.
국제 동물보호 단체들은 재난 발생 시 반려동물 피난 방법을 홈페이지에 상세히 소개하고 있는데, 반려동물 등록 정보 및 예방접종 이력 정보 등을 갖고 있을 것, 최소 5일분의 물과 음식, 배변 봉투, 이동 가방, 반려동물 및 반려인과 함께 찍은 사진 등을 넣은 재난키트를 미리 준비해 둘 것 등이 권장된다. 만약 반려동물을 남겨두고 대피해야 할 경우에는 먹이와 물 등을 넉넉히 챙겨준 뒤 추후 구조를 위해 집을 잠그지 말고 반려동물 정보가 담긴 스티커를 집 앞에 붙여두면 좋다.
성숙한 시민들의 책임감 있는 돌봄이란
동물이 재난 대응 계획 속에 편입된 것은 의미 있는 한걸음이다. 하지만 대형 재난 앞에서 동물들은 결코 안전할 수 없으며 특히 사육 자체가 산업적으로 이뤄지는 농장동물들의 수난은 여전히 답보 상태에 있다. 농장동물들 역시 재난 대응 계획 속에 포함되어 있긴 하나 이것이 실제 농장동물들에 대한 구명 활동으로 이어지긴 어렵기 때문이다.
지난 10월 7일 초강력 허리케인 '매슈'가 카리브해 국가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미국 동남부로 북상했다. 무시무시한 매슈가 당도했을 때 300만 명이 대피하는 초비상 사태 속에 노스캐롤라이나 농장에 있던 수천 마리 동물들은 익사 당하고 말았다. 노스캐롤라이나에는 돼지 농장이 많았던 것으로 알려졌는데 축사 지붕 꼭대기 수위에 다다른 홍수 속에서 생존한 돼지들은 최후의 사투를 벌이다 비참하게 죽어갔다.
종(種) 차별주의적 관점에서 인간 중심으로만 이뤄지곤 했던 기존의 재난 대응은 천천히 동물들을 편입시키는 방식으로 변화되고 있다. 아울러 동물을 돌보는 사람들에게 '좋은 돌봄'이란 재난과 같은 위기 상황을 시뮬레이션해 본 뒤 여기에 미리 대비할 것이 요구되고 있다. 예를 들어 기르는 반려동물의 숫자도 재난 시 동물들에게 노출될 수 있는 위험 요소를 고려하여 판단될 수 있는 것. 우리들은 지금까지 동물들을 위험에 방치해 왔을 뿐이며 재난 대응에 있어 어떤 식으로 동물을 보호할 수 있는지 서서히 눈을 뜨고 있는 중이다. 공존의 사회에서 책임감 있는 돌봄을 펼치는 성숙한 시민의 일보 전진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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