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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함백광업소 화약폭발사고는 100% 인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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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함백광업소 화약폭발사고는 100% 인재”

추모공원서 만난 유족 김승하씨 증언

“화약 폭발사고 현장에 도착하니 역한 피비린내가 진동하고 미리 도착한 유족들이 울부짖는 등 아비규환이었다”

지난 1979년 4월 14일 오전 7시50분께 강원 정선군 신동읍 대한석탄공사 함백광업소 자미항 입구에서 다이너마이트 폭발사고로 친형인 김달하(당시 42세)씨의 시신을 수습한 김승하(75)씨의 회고담이다.

그는 당시 형인 달하씨와 함께 함백광업소 이목항에서 채탄선반부로 근무했고 폭발사고로 순직한 형 달하씨는 같은 광업소의 다른 현장인 자미항에서 광차 운전공으로 근무했다.

▲1979년 4월 14일 함백광업소 자미항 화약폭발사고로 친형을 잃은 김승하씨가 사고현장을 설명하고 있다. ⓒ프레시안(홍춘봉)

그는 “사고 당일 형과 함께 출근해 채탄막장에서 발파작업을 하고 쉬는데 작업반장이 달려와 사고가 났다고 해서 현장에 달려갔다. 폭발사고로 형체를 알아 볼 수 없는 시체가 나뒹구는 현장 한쪽에 형은 의식을 완전히 잃고 있었다. 양쪽 대퇴부에서 피를 너무 많이 흘려 병원으로 후송되기 전 현장에서 사망했다. 당시 현장은 지옥같은 상황이었다.”

정확하게 37년 전 그날을 기억하는 그는 “그날은 아침 출근 길에 비바람이 심하게 쳤던 기억이 생생하다. 정말로 평생 잊을 수 없는 날이 되었다. 당시 함백광업소 폭발사고는 광부들이 탑승하는 인차와 다이너마이트를 별도로 취급해야 하는 기본적인 안전수칙을 위반해 발생했다. 폭발사고가 발생한 뒤 사람들은 형체를 알아 볼 수 없을 정도였다. 특히 광업소 측은 사망자 숫자나 출근한 광부들의 이름도 몰랐을 정도로 모든 것이 엉망으로 관리되었다.”고 말했다.

또 그는 “사고를 마무하면서 석탄공사는 1인당 합의금을 500만 원으로 유족과 합의를 종용했다”며 “유족들에게 제대로 사과도 하지 않고 재발방지를 위한 대책도 제대로 강구하지 않은 채 사건을 마무리하려했던 당시 석탄공사 관리자들은 무책임했다. 이 때문에 여의도 본사를 찾아가 당시 고광도 석탄공사 사장방문을 걷어차고 들어가 소란을 피우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국방의무를 마친 뒤 1966년 함백광업소에 입사했다는 김씨는 형이 폭발사고로 사망한 지 꼭 10년째 되던 1989년 붕락사고로 채탄막장에 매몰됐다가 이틀 만에 극적으로 구조됐다.

그는 “막장 붕락사고로 구조된 뒤 4년 간 병원생활을 하다 폐광과 함께 31년의 탄광생황을 정리했다”며 “오늘 추모공원 준공을 계기로 함백광업소 폭발사고의 한 서린 역사를 영구히 기리게 되어 다행”이라고 말했다.

이날 추모공원 준공식에 함백광업소 희생자 유족으로는 김씨부부가 유일하게 참석했다.

▲함백광업소 추모공원 준공식에 참석한 전정환 정선군수, 김옥희 군의장, 권혁수 대한석탄공사 사장, 조남찬 석우회장, 김승하 유족대표 등이 테이프 커팅식을 진행하고 있다.ⓒ프레시안(홍춘봉)

한편 정선군은 지역주민과 대한석탄공사 출신 임직원 친목단체인 석우회(회장 조남찬)의 건의에 따라 함백광업소 자미갱 부지 6331㎡에 1억 원의 예산을 들여 추모비와 추모기념공원을 조성했다.

지난 1950년 함백탄광이란 이름으로 탄광이 개발된 함백광업소는 1993년 폐광 될 때까지 175명이 발파사고와 붕락사고 등으로 순직했다.

이날 권혁수 석탄공사 사장은 “지난 1975년 석탄공사에 입사한 뒤 1978년 함백광업소에 근무했던 곳이라 오늘 추모공원 준공식이 각별하다”며 “함백광업소 추모공원이 역사적인 장소로 기억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추모공원 준공식에는 전정환 정선군수와 김옥희 군의장, 이명선 전 함백광업소장, 진일두 장성광업소장을 비롯한 석우회원, 주민 등 100여 명이 참석했다.

▲함백광업소 추모비에는 1950~1993년까지 순직한 175명의 순직자 명단이 새겨져 있다. ⓒ프레시안(홍춘봉)

특히 1979414일 함백광업소에서 끔찍한 화약폭발사고가 발생한 6개월 뒤 ‘10·26사태’가 터졌다. 또 바로 다음날인 1027일 경북 문경시 석탄공사 은성광업소에서는 갱내 화재사고로 한꺼번에 44명의 귀중한 광부들이 때죽음을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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