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은 출근길에 나섰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지하철 안의 승객은 몇 명 없었다. 스마트폰을 들어 잠깐 오늘 할 일을 살폈다. 청년들은 가슴을 짓누르는 실업이라는 돌덩이를 안고 살아야 하는 세상이다. 이런 세상에서 번듯한 직장에 출근할 수 있는 것은 행운이었다.
출근길, 청년이 고개를 들었을 때 얼굴빛이 변했다. 내려야 할 김포공항역에서 지하철 출입문이 닫혔기 때문이다. 오전 7시 14분, 19분에 도착하는 인천공항행 열차로 갈아타기 위해서 반드시 내려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김포공항에서 인천공항까지 걸리는 시간은 39분, 만약 19분 에 도착하는 열차를 놓치면 35분 열차를 타야 한다. 그렇게 되면 8시 30분인 출근 시간을 맞출 수 없다.
청년은 인터폰을 눌러 기관사와 통화했다. 간절한 목소리로 출입문을 열어달라고 말했을 것이다. 열차가 움직인 건 36센티미터(㎝), 긴급 정차한 열차의 출입문이 열렸다. 청년은 안도의 숨을 쉬며 열차 문을 나섰지만, 스크린도어가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청년은 스크린도어가 열리길 기다렸다. 열차 출입문이 열리면 당연히 스크린도어가 열릴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 시간이 27초였다. 그러나 스크린도어는 꼼짝하지 않았고, 열차의 출입문이 닫혔다. 공포에 질린 청년은 스크린도어를 열려고 애썼다.
그 순간, 열차는 출발했다. 열차와 스크린도어 공간에 서 있던 청년은 열차가 출발하면서 스크린도어를 뚫고 승강장 밖으로 튕겨 나왔다. 온몸에 상처를 입은 청년이 걱정한 것은 오로지 '출근'이었다. 청년을 향해 달려온 사람들에게 청년은 '회사에 늦는다'는 사실을 알려야 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결국 "늦는다고 연락해야 한다"는 청년의 마지막 말이 됐다.
지난 5월 구의역 승강장에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청년 노동자가 열차에 치여 죽었다. 청년의 가방 속에는 미처 먹지 못한 컵라면이 들어 있었다. 고장 난 스크린도어를 당장 고쳐야 하기 때문에, 열차 운행 중 위험을 무릅써야했다. 하루쯤 지각해도 된다는 생각은 한가한 발상이다. 바로 인사고과에 적용되고 저성과자로 낙인찍히는 현실은 목숨을 건 작업과 출근을 감행하게 만들었다. 한 치의 여유도 없는 빈틈없는 사회가 되어버린 대한민국의 자화상이다.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담론은 '효율'과 '성과'다. 정부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며, 공공기관에 먼저 성과연봉제를 도입한 뒤 민간으로 확대하겠다고 압박하고 있다. '성과연봉제를 철회하라'는 철도노조를 비롯한 공공기관 노동조합의 파업은 기득권 세력의 불순한 저항으로 간주되고 있다. 한국 사회가 지상과제로 '성과'를 추종할 때 사람들은 과연 행복한 사회를 만날 수 있을까?
많은 나라에서 스크린도어는 국제안전무결성 기준을 준수하게 되어 있다. 원자력발전소, 화학약품 처리공장, 열차운행 관련 구조물들은 안전 시스템으로 분류돼 'SIL(Safety Integrity Level) 인증'을 통과해야만 한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스크린도어를 건축기계구조물로 분류했다. 따라서 일반구조물이 된 스크린도어는 안전에 대한 국제 규격을 준수할 필요가 없다.
여기에 '비즈니스 프랜들리'를 표방한 이명박 정권이 등장하면서 규제를 '악'으로 규정하는 풍조가 확산됐다. 2004년 신설된 도시철도 건설규칙을 보면, 열차 출입문과 스크린도어 간격은 예외적 상황이 아닌 한 10cm 이하로 설치하도록 규정했다. 그러나 규제는 기업 활동의 발목을 잡는다는 분위기 속에, 수많은 안전기준이 무너졌다. 2010년 10월 도시철도 건설규칙의 스크린도어 간격 관련 조항은 "열차 출입문과 스크린도어 사이의 간격은 최소화한다"로 바뀌었다. 명확한 규정 없이 "최소화한다"는 것은 누구도 사고의 책임을 질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관사 한 명에게 수백 명의 안전을 책임지라고 하는 사회
이번엔 지하철 5호선 기관사의 시점으로 가보자. 아직 본격적인 출근시간이 되기 전이었다. 시발역에서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승객도 많지 않았다. 김포공항 역에서 20초의 정차시간을 갖고, CCTV 모니터로 확인한 승강장의 모습은 아무 이상이 없었다.
열차를 출발시키는 순간, 인터폰이 울렸다. 누군가의 목소리가 작게 들렸다. '출입문을 열어 달라'는 소리였다. 기관사는 승객이나 물건이 출입문에 끼였다고 생각하고 문을 열었다. 그 시간이 27초였다. 승강장 상황은 이상이 없었다. 출입문에 끼인 승객이나 물건이 충분히 빠져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한 기관사는 열차 출입문을 닫았다. 출입문 상태를 알리는 모니터 화면도 정상이었다. 기관사의 입장에서는 수시로 발생하는 일이었다. 승객들이 몰리는 시간이라면 이런 일은 더 많이 일어났다.
지하철 5호선은 여덟량이 연결된 열차가 운행된다. 일반적으로 열차 한량의 길이는 20미터(m)이니, 8량은 160m의 길이를 가진다. 이런 조건에서 기관사 한 명이 모든 것을 책임지는 구조다. 승객이 몰릴 시간에는 운전석에서 일일이 상황을 파악하거나 대처할 수 없는 조건이다. 승강장이 곡선일 경우에는 후방에 대한 감시는 cctv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이런 조건에서 승강장에는 안전을 책임지는 역무원조차 없다. '경영효율화'를 명분으로 지속된 인력감축으로, 사람이 사라진 것이다.
한국 사회가 지금까지 여러 분야에서 달려온 길은 '사고'를 만드는 과정이었다. 더 어처구니없는 일은 김포공항역의 스크린도어가 잦은 고장으로 악명이 높았고, 전면교체 대상이었다는 사실이다. 이런 상황이면 김포공항역에는 열차 운행시간 내내 만약의 사태에 대비한 안전요원이 있어야 한다.
만약 5호선이 맨 앞 운전실의 기관사와 뒤편 운전실의 차장이 서로 협조하고 보완하는 2인 승무체제였다면, 승강장에 역무원이 있었다면, 특별히 문제가 있는 스크린도어를 감시하는 안전요원이 배치되어 있었다면, 스크린도어가 진즉 교체되었다면, 스크린도어에 대한 국제안전규격을 따랐다면, 도시철도 건설규칙 규정이 개정되지 않았다면, 안타까운 사고를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이 중 단 한 가지만 이뤄졌어도 끔찍한 사고를 막을 수 있었다. 그리고 한두 번의 지각쯤은 너그럽게 용인해주는 문화였다면, 목숨을 걸고 지하철에서 내리려 하거나 숨이 넘어가는 순간까지 회사에 전화하는 일은 없지 않았을까?
전국의 주요 도시에서 하루에도 수백만 명의 시민이 지하철에 몸을 싣는다. 집을 나선 시민들이 안전하게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사회시스템을 만드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그러나 한국 사회가 지금까지 전력으로 질주해 얻은 가치를 보면, 현재 일어나고 있는 사고는 불가피한 희생이다. 지금이라도 '성과와 효율 숭상문화'에 브레이크를 걸지 않으면, 평범한 사람들은 아침에 웃으며 헤어졌던 이를 밤에는 영정 사진으로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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