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보기 : 토목의 공공성)
대규모 토목 사업의 변질
고대 로마 시대에 공학은 크게 각종 병장기를 만드는 군사 공학(military engineering)과 문명의 기반이 되는 토목 공학(civil engineering)으로 나뉘었다. 도로, 수로(水路), 도시 건설과 같은 토목 사업은 1000년 로마 문명을 지탱하는 근간이 되었다. 하드리아누스 황제(재위 기간 117∼138년)의 티볼리 별장은 '티부르티나 가도'라는 간선 도로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데, 황제는 사비를 들여 별장과 간선 도로를 연결하는 개인 도로를 별도로 만들어 시민들에게 개방했다. 로마 시대를 통틀어 권력자들의 별장 근처에 도로나 교량을 만든 사례는 찾을 수 없다. 로마인에게는 공(公)과 사(私)가 엄격히 구분되었고, 토목 공사는 공적인 사업의 대표적인 예였다. 이러한 로마인들의 정신이 천년 제국을 뒷받침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우리나라는 1960년대부터 산업화를 압축적으로 이루었다. 당시에는 도로 등과 같은 사회적 인프라가 거의 구축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일부 사업에는 상당한 부작용이 있었지만 대체적으로 어떤 사업을 하더라도 나름대로 타당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러나 22조 원이 낭비된 대국민 사기극 4대강 사업, 돈 먹는 하마가 된 시화호 사업, 17일 동안의 잔치 후 흉물로 남을 게 분명한 평창 동계 올림픽 경기장들, 유령 공항이 되거나 개장도 하지 못한 지방 공항, 지역 공동체를 파괴하는 댐 사업, 극한의 갈등을 겪은 송전탑 사업, 가치의 대결이 된 제주 강정 마을 항만 사업 등과 같은 수많은 토목 사업은 예산 낭비, 환경 파괴, 사회 갈등을 일으켰다. 우리 사회는 잘못된 국책 사업을 하느라 막대한 국민 세금이라는 수업료를 납부했음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전혀 교훈을 얻지 못하고 있다. 토목 사업은 산업 발전을 뒷받침함과 동시에 국민 생활의 편리함을 도모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대규모 토목 사업이 오히려 사회적 갈등을 증폭시키고 토목 본연의 갈 길을 못 찾는 이유를 살펴보자.
토목 사업의 변질의 원인
사회 기반 시설은 공적인 가치에 바탕을 두고 만들어져야 한다는 당위성은 불행히도 우리 사회에서는 사라졌다. 공공을 위한다는 허명으로 포장한 각종 토목 사업은 가치 판단을 유보한 채 돈벌이에 혈안이 된 건설 업계와 탐욕스런 정치권의 합작품이다. 많은 기초단체장과 지방의회 의원들이 개인 건설 회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시·군·구 내에서 발생하는 각종 토목/건축 사업에 깊숙이 관여하여 이권을 챙길 개연성이 있고, 건설 회사를 가지지 않더라도 건설 공사에서 각종 공법을 선정하는데 관여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어느 기초지자체 하천 정비 사업의 사례를 살펴본다. 1킬로미터(km) 하천 공사라면 400미터(m)는 군수, 200미터는 건설국장, 200미터는 담당 과장, 200미터는 담당자가 (비공식적으로) 추천한 공법으로 설계하여 공사를 하였다(편의상 길이는 임의로 설정함). 만약 특허 공법을 선정하였다면 최대 30%까지 공사 이익을 얻을 수 있다.
매년 연말만 되면 국회의원들은 예산 부서에 소위 '쪽지 예산'을 전달하는데, 대부분의 경우 토목 공사를 청탁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지역구에서 국회의원의 능력은 얼마나 많은 예산을 확보하는가에 달려 있고, 국회의원은 예산 확보를 자신의 치적으로 여긴다. 유권자들은 그 토목 사업 예산이 타당하고 지역에 꼭 필요한가는 논외로 여긴다. 19대 순천·곡성 보궐 선거에서 이정현 후보는 '세금 폭탄'을 선물하겠다고 공약했고, 그리고 당선되었다. 정치인들이 토목 사업이란 미끼로 교묘하게 유권자를 유혹하고 유권자들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상황에서 정부 정책은 왜곡될 수밖에 없다.
이렇게 정치권에서 비롯된 잘못된 의사 결정을 뒷받침하는 것은 영혼 없는 공무원, 곡학아세하는 전문가, 그리고 정치에 휘둘리는 사법부다. 첫째, 영혼 없이 조직의 이익만 추구하는 공무원이 문제다. 예를 들면 경인운하는 그동안 수차례 관에 들어갔던 사업이었는데, 어느 한순간 관에서 벌떡 일어나 걸어 나왔다. 공무원들의 서랍에 수많은 사업 목록이 있고 정치 상황에 따라 그에 적합한 사업을 식탁에 음식을 차리듯이 내놓는다. 이때 내놓은 사업의 경제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환경 파괴적인 사업을 '친환경 댐 건설', '가장 안전한 원자력 발전소'와 같은 말장난으로 오히려 친환경으로 포장하며 사회적 갈등이 예견되어도 개의치 않는다. 조직 유지를 위해서는 어떤 사업이든 지속적으로 해야겠다는 관료들이 만드는 비극이다.
둘째, 전문가들의 곡학아세다. 황당한 사업에 대해 왜곡된 이론을 제공한 전문가들이 각종 위원회에 참여하여 공무원들에게 면죄부를 준다. 그 대가로 전문가들은 훈·포장을 받고 정부 연구 용역을 수행한다. 이런 사례는 이미 4대강 사업에서 수없이 확인했다. 실패한 사업으로 판명 난 4대강 사업에 대하여 그 전문가들은 이왕 만들어진 토목 시설물에 대한 평가는 소모적이므로 유지 관리를 어떻게 잘하느냐에 집중해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참으로 편리한 변신이다. 우리 사회가 이런 전문가들에 대하여 책임을 묻지 않는다면, 공무원들은 전문가들이 제공하는 억지춘향 논리를 바탕으로 제2의, 제3의 4대강 사업을 준비하고 추진할 것이다.
셋째, 사법부의 정치적 판단이다. 사회적 논란이 되었던 토목 사업에 대해 사법부는 언제나 정부의 재량권 일탈남용이 아니라는 기조를 유지해왔다. 정치적으로 시작한 잘못된 사업에 문제가 발생해도 사법부로부터 면죄부를 받을 것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는 공무원들은 거리낌이 없다. 부산고등법원에서 낙동강 보를 건설할 때 예비 타당성 조사를 하지 않은 것은 국가재정법 위반이라는 판결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대법원에서는 "예비 타당성 조사 미실시는 예산 편성의 하자이지 4대강 사업의 절차상 하자가 아니다"라는 논리로 고등법원의 판결을 뒤집었다. 이것은 사법부가 스스로 위신을 실추시킨 것에서 멈추지 않고 토목 관료 사회를 더 공고히 하는 부작용을 낳게 된다.
건설 산업의 비정상적 관행
건설 산업은 민간 영역에서 건설 회사(건설업)와 설계 회사(건설 용역업)으로 대별할 수 있고, 공사 감리 분야는 설계 회사가 담당하고 있다. 이들 회사들은 건설산업기본법에 따라 정부, 지방자치단체, 공공 기관으로부터 건설 공사를 수급하여 적정 이윤을 남긴다. 정상적인 회사 운영을 통한 이윤 창출은 보장해야 하지만, 각종 불법과 탈법으로 얼룩진 현실을 진단하면 우리 사회의 지속 가능성은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불법 재하도, 유령 회사 운영, 단가 후려치기, 공사 금액 부풀리기 등과 같은 비정상적인 시스템이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건설 산업에 팽배해 있다. 이러한 잘못된 관행은 한번 대기업은 영원한 대기업이고 실력 있는 중소기업이 대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원천적으로 막고 있다. 건설 산업에도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고착화되고 따라서 건설 업계에 역동성이 사라지고 현실에 안주하게 되면 건설 산업은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지 못하고 침체해질 것이다.
건설 회사의 잘못된 관행 중 대표적인 것들로는 △ 불법 하도급(재하도, 공사비 부풀리기/후려치기), △ 공동 도급 지분 포기, △ 유령 회사 운영 및 외국 회사 공사비 과지급 등을 들 수 있다. 낮은 공사비로 인한 부실 공사 방지와 공사장 안전 확보를 담보하기 위하여 건설산업기본법은 원칙적으로 재하도급을 금지하고 있다. 원도급자는 관리비와 이윤을 제한 나머지 금액을 하도급자에게 지불하게 된다. 원도급자→하도급자→재하도급자로 건설공사가 넘어가는 과정에서 통상적으로 관리비와 이윤 명목으로 약 10∼20%(지분 포기 금액)를 책정하고 있는데, 재하도급자는 당초 공사비의 약 65∼80%로 공사를 하게 된다. 물론 이러한 비율은 상황에 따라 달라지지만, 재하도하는 과정에서 하도 공사비의 20∼40%까지 지분 포기 금액을 책정하는 사례도 있다.
건설 공사를 공동 도급할 경우 각 회사마다 지분율이 있는데, 공동 도급에 포함된 어떤 회사가 그 지분을 포기할 경우 통상적으로 지분율에 해당하는 공사비의 약 10∼20%를 지분 포기 금액으로 책정한다. 특히 지방 경제를 살린다는 취지로 지방의 건설 공사일 경우 중앙의 큰 회사와 지방의 작은 회사들이 공동 도급을 한다. 대부분의 경우 지방 회사들은 지분 포기 금액을 받고 큰 건설 회사에 공사를 일임하는데, 4대강 사업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지방 회사에 누가 힘을 실어주느냐에 따라 지본 포기 금액은 달라진다.
또한 원도급자가 유령 회사(paper company)를 하도급자로 선정했음에도 별도로 작업반장을 고용하여 하도급자가 해야 할 일을 하게 하는 재하도급 관행이 널리 퍼져 있다. 하도급 회사는 통장을 통해 공사비 출납만 담당하고, 원도급사가 작업반장을 직접 관리하는 직영 체제를 운영하는 불법 재하도급 관행은 지방에서는 공공연한 비밀이다.
사례1. 농어촌공사 오봉댐 여수로 사업
2002년 태풍 루사가 한반도를 덮쳤을 때 가장 피해를 많이 입은 지역 중의 하나가 강릉이다. 하루 860밀리미터라는 기록적인 강우가 발생하여 오봉댐이 붕괴 위험까지 가는 등 강릉 전역이 극심한 홍수 피해를 입었다. 오봉댐 관리 주체인 농어촌공사는 2008년부터 치수능력 증대 사업으로 댐마루 높이를 약 5미터 증고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농어촌공사는 최초 공사비 461억원에서 95억 원(당초 공사비의 20%)이 증액되어 현재 556억 원으로 설계 변경하였다. 국가재정법 제38조(예비 타당성 조사)에 의하면 공사비가 500억 원 이상이면 예비 타당성 조사를 받아야 하는데, 당초 공사비가 500억 원 이하였기 때문에 예비 타당성 조사를 받지 않았다. 그러나 현 시점에서 볼 때 공사비가 556억 원이라면 예비 타당성 조사 대상 사업이다. 당초 공사비 기준으로 20%가 증액된 사업이기 때문에 사업을 구상할 때 예비 타당성 조사를 받지 않기 위하여 공사비를 줄여 사업을 시작하고, 사업이 진행될 때 사업비를 증액시켰다는 의혹이 있고, 이러한 점은 국가재정법을 무력화시킨 사례라 판단된다.
또한 농어촌공사는 불법 재하도급을 묵인하고 공사장 관리를 부실하게 하여 2011년 1월 거푸집 붕괴 사고가 발생하여 4명이 숨졌다. 2011년 사고 당시 공사 현장을 부적절하게 운영한 농어촌공사는 2016년 현 시점에서도 역시 공사장 운영에 불법성이 있고 투명성이 매우 부족하다고 할 수 있다. 지난 9월 오봉댐 공사 현장의 불법성을 밝힌 기자 회견문을 바탕으로 다음과 같이 요약 정리한다.
농어촌공사는 오봉댐 치수 능력 증대 사업을 하기 위하여 S건설과 도급 계약을 했고 S건설은 T건설과 하도급 계약을 했다. 여수로방수로 구조물 공사(여수로 벽체, 바닥 등)를 한다는 명목으로 2015년 5월경 L 작업반장은 원도급사인 S건설과 이행 각서를 작성하였다. 이행 각서의 내용을 살펴보면 주요 공정은 "철근 조립과 콘크리트 타설"로 이루어져 있고 공정별 단가가 명시되어 있다. 일종의 계약서로 볼 수 있다. 또한 이행 각서에는 "공사 대금과 관련한 적자나 손실이 발생하는 경우라도 귀사에는 공사 대금 보전 및 일체의 책임을 묻지 않을 것을 서약합니다"라는 문구도 포함하고 있다.
공사를 진행하면서 필요한 자재를 구매하기 위하여 작업반장이 직접 필요한 자재의 견적서와 세금 계산서를 작성하여 S건설에 제출하면 하도급 업체인 T건설이 구매 대금을 지급하였다. 또한 작업반장이 고용한 일용직에 대한 임금을 지불하기 위해서 T건설이 '일용 노무비 지급 명세서(2015년 7월분)'라는 서류를 만드는데, 이 서류에 대한 결재는 담당과 소장이 하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 담당은 S건설 안전 관리자였고, 소장은 역시 S건설 현장 소장이었다. 현장 근로자에 대한 노무비를 지급하기 위해 하도급 업체인 T건설이 노무비 지급 명세서를 작성하였지만 의사 결정권은 S건설에 있었고, T건설은 단지 공사비를 기계적으로 지출하는 역할만 하고 있었다. 또한 T건설은 공사 현장에 현장 소장을 포함한 어떠한 직원도 파견하지 않았다. 이런 논란이 발생하자, 지난 8월 S건설 소속 직원(P 공사과장)을 T건설 현장 소장으로 부임시켰다.
건설산업기본법 제29조에 의하면 "하수급인은 하도급 받은 건설 공사를 다른 사람에게 다시 하도급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와 같이 재하도급을 금지하는 법적 취지는 다음과 같다. 재하도급을 할 경우 하도급 업체는 관리비(통상 공사비의 10∼18%)를 제한 금액을 재하도하기 때문에 재하도급 업체는 그만큼 공사비가 줄어들게 된다. 결국 재하도급 업체는 인건비를 줄일 수밖에 없고 공사장의 안전에 소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다. 이런 관행이 결국 공사 부실로 이어지고 인명 사고로 직접 연결되었다고 할 수 있다. 2011년 4명의 인명 사고가 발생한 주요 원인은 불법 재하도급과 그로 인한 품질저하와 안전 불감증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농어촌공사는 잘못된 관행을 고치지 않고 불법 재하도를 묵인하고 있다.
공무원의 그릇된 영향력
다음으로 각종 공제조합, 협회 등에 공무원의 영향력을 살펴본다. 먼저 건설공제조합이 법률적으로 어떻게 국토부에 종속되어 있고, 공무원의 입김이 강할 수밖에 없는지를 살펴본다. 건설 산업기본법에 의해 설립된 건설공제조합의 운영위원회는 이사장 후보자를 총회에 추천하는 등 실질적인 최고 의결 기관인데, 운영위원장은 국토부장관이 임명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2015년 10월 29일 건설공제조합은 임시총회에서 박승준 이사장을 선임하는 안건을 통과시키자, 건설공제조합 노동조합은 "이번 선임은 민주적인 절차를 무시한 밀실, 낙하산 인사"라고 반발했다. 노조는 "운영위원회에서 이사장 후보자를 추천하면 조합원 총회에서 선임하는 절차를 거치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운영위원회는 국토부가 내정한 사람을 총회에 추천하는 거수기 역할만 해왔다"고 주장했다.
건설공제조합은 건설 산업기본법에 의해 설립된 특수 법인으로 건설 산업에 필요한 보증, 융자, 공제(보험)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건설공제조합은 종합 건설사 약 1만1000개사(社)가 조합원으로 자본금은 약 5조2000억 원이며 정부의 출자금은 0(zero)원이다. 건설공제조합에 출자금이 한 푼도 없는 국토부는 퇴직 공무원 또는 정치권 인사들을 이사장을 비롯한 임원으로 내정하고, 형식적 절차를 거쳐 내정자들은 이사장과 임원에 임명된다.
또한 국토부는 수많은 협회를 관련 법에 의한 법정 단체로 인가하고 협회의 운영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한다. 한 사례로 한국하천협회는 하천법에 근거하여 설립되었고, 하천법은 한국하천협회의 정관의 기재 사항과 협회의 감독에 필요한 사항 등은 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협회가 필요한 예산을 확보하기 위하여 하천법은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그 업무를 협회에 위탁하는 경우에는 위탁 업무의 수행에 드는 경비의 전부 또는 일부를 예산의 범위 안에서 지원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협회가 수의 계약 형태로 각종 위탁 업무를 지원받을 수 있기 때문에 공무원들의 협조 없이는 예산 확보가 어려운 구조로 되어 있다. 따라서 협회는 국토부의 낙하산 인사 대상이 될 수밖에 없고 국토부의 잘못된 정책을 홍보하는 기관으로 전락할 위험이 상존하고 있다.
사례 2. 1조1200억 원의 농업용 저수지 도수로 사업 : 제2의 4대강 사업
4대강 사업으로 확보한 물을 활용하지 못하고 오히려 녹조가 발생하여 식수원에 심각한 악영향이 생긴다는 비난의 여론이 드세다. 이에 국토부는 또 하나의 꼼수를 고안했다. 4급수에 미치지도 못하는 금강의 물을 펌핑하여 도수로를 통해 보령댐으로 보내는 사업이다. 2015년 말 사업을 시작할 때 국토부는 2016년 3월이면 보령댐 물이 말라버리는 긴급 상황이 발생한다는 논리로 국가재정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예비 타당성 조사를 받지 않고 공사를 강행했다. 100년 빈도 가뭄이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도수로 공사를 완료한 2016년 3월 보령댐은 마르지 않았고 24% 저수율을 기록했다. 약 800억 원의 국민 세금을 낭비한 '만들어진 가뭄'이었다.
한편, 농림부는 2016년 5월 <하천수 활용 농촌 용수 공급 사업 사전 예비 타당성 검토 전체 사업 보고서>를 작성하였는데, 4대강 사업으로 만든 보에 저장한 물을 이용하기 위하여 농경지 20개 지구를 선정하였고 각 지구마다 도수로를 만들어 보의 물을 농업용댐에 공급하는 계획을 담고 있다. 필요한 예산이 무려 1조1200억 원이고, 현재 충남 예당저수지 도수로 사업을 포함한 3개 지구에서는 예비 타당성 조사를 하지도 않고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런 사업을 추진하기 위하여 농림부가 개발한 논리는 황당하기 이를 때 없다.
보고서를 살펴보면 2012년 서해안 지방에 104년 빈도에 해당하는 최악의 가뭄이 발생했고, 2014년 중부 지방에 80∼200년 빈도 가뭄이 발생했다. 지하수 관정을 파는 등 긴급 가뭄 대책을 추진한 결과, 가뭄 피해액은 없었다. 한발 빈도 10년 가뭄에 대비하여 농업 용수를 개발한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말 그대로 극심한 가뭄이 발생했음에도 가뭄 피해가 없었다는 사실은 경이적이다. 그만큼 우리나라는 농업 용수가 충분히 개발되어 있는 상태라는 뜻이다. 그럼에도 농림부는 4대강 수계에 있는 전체 답면적(48만 ha)의 42%, 전체 수리 시설(40,819개소)의 62%가 10년 미만의 가뭄이 발생하면 농업 용수를 공급하기 어려운 상태에 있다고 분석했다.
100년 빈도 이상의 가뭄이 발생하더라도 국부적으로 긴급 대책을 시행한 결과 가뭄피해가 없었는데, 고작 10년 빈도 가뭄이 발생하면 우리나라 농토의 절반 가까이 가뭄 피해를 입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4대강 보 건설로 확보한 물을 활용하는 방안으로 4대강 물을 펑핑하여 도수로를 통해 산 중턱에 있는 농업용 댐에 공급하겠다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러한 사업을 20개 지구에서 추진할 계획이고(3개 지구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음) 필요한 예산은 1조1200억 원에 이르는데, 그 기대 효과는 기괴하다.
이 사업을 하면 10년 빈도 가뭄에 농업 용수가 부족한 농경지(42만2296헥타아르(ha))의 2.8%, 4대강 수계에 있는 물 부족 농경지(20만2239헥타르)의 6.1% 정도가 10년 빈도 가뭄을 극복할 수 있다. 만약 그렇다면 우리나라 물 부족 농경지 모두를 10년 빈도 가뭄에 견딜 수 있게 하려면 산술적으로 약 40조 원의 예산이 필요하다. 지난 70여 년간 농업 용수를 확보하기 위한 정부의 노력은 무용지물이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4대강 사업으로 추진했던 110여 개의 농업용 저수지 증고 사업(예산 약 3조 원)은 효과가 없었다는 뜻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국토부가 2015년 작성한 <전국 수리권 일제 조사 및 하천수 관리 방안>이라는 보고서가 현재 농림부가 진행하는 도수로 사업의 이론적 기반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영혼 없는 공무원이라 하지만 자기 조직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악마와의 거래'도 마다하지 않는 그 집요함이 보인다. 또 다른 사기극에 '억지 춘향 논리'를 제공한 전문가 집단의 뻔뻔함에 전율을 느낀다. 만들어진 가뭄을 해결하는 것이 국가 긴급 상황이기 때문에 예비 타당성 조사를 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던 정치인들의 무식함에 더 이상 실망할 마음의 여유가 없다. 22조 원의 국민 세금을 낭비한 4대강 사업은 잘못된 것이라는 것이 명명백백하게 밝혀졌음에도 "4대강 사업 좀 더 두고 봐야"하고 "역사가 평가해 줄 것"라는 괴변을 늘어놓는 4대강 사업 추진 세력들에 대하여 우리 사회는 어떠한 책임도 묻지 못했다. 그러한 대국민 사기극을 펼친 공로로 정부 훈·포장을 받았던 1157명이 아직도 우리 사회 각 분야에서 중추적 역할을 한다.
해방됐을 때 일제에 부역한 잔재를 청산하지 못한 어두운 그림자가 21세기에도 사회 곳곳에 드리우고 있다는 사실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4대강 사업에 대한 단죄를 하지 못한 결과, 4대강 추진 세력들은 1조1200억 원이 낭비되는 제2의 4대강 사업을 진행한다. 우리 사회가 무관심하면 그들은 제3의 4대강 사업을 은밀하게 준비할 것이고, 머지 않는 장래에 그 황당한 모습을 보일 것이다.
토목의 공공성 회복을 위하여
이제 새로운 토목의 방향을 고민할 시점이다. 4대강 사업 이후 토목/건축에 대한 신뢰가 심각하게 손상되었다. 내가 주장하는 '좋은 토목', '착한 토목'은 다음과 같다. 우리나라는 토목이나 건설 인프라는 이미 충분히 구축돼 있다. 여기에 타당성이 부족한 대규모로 사업을 자꾸 벌이는 것은 '나쁜 토목'이다. 이제는 필요한 부분만 늘리는 '작은 토목', '좋은 토목'을 지향해야 한다. 농촌에 가면 적게는 20가구 많게는 100가구가 모여 산다. 한 300명이 모여 산다고 가정하자. 지금 정부가 하려는 것은 이 작은 마을을 한 단위로 묶어서 큰 댐을 건설해 물을 공급하겠다는 방식이다. 그 자체가 무리한 계획인 데다 사업의 타당성을 뒷받침하기 위해 보고서 내용을 왜곡하고 갖가지 자료나 근거를 고무줄처럼 잡았다 늘리기도 한다. 그렇게 ‘나쁜 토목’만 지향하다 토목 분야 전체가 공멸할 수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우리나라 내년 예산은 사상 처음으로 400조 원을 돌파할 계획인데, 사회 기반 시설(SOC) 예산은 8% 줄어든 22%를 점하고 있다. 지난해 4.5% 감축에 이어 올해도 SOC 예산이 2년 연속 대폭 줄어들어 사실상 토목/건설 중심의 예산 편성은 종언을 고했고, 이러한 추세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예측된다. 문제는 한꺼번에 줄이느냐 아니면 서서히 줄이느냐 하는 것인데, 규모를 줄이면 어차피 기존 인력은 남아돌게 되고 기왕이면 '작은 토목', '좋은 토목'을 통해 연착륙할 수 있는 사회적 합의를 만드는 게 필요하다. '작은 토목'은 일자리를 보다 많이 만들어낼 수 있다. 지금 정치인들이 내놓는 토목 사업 계획은 너무 거대하고 황당한 게 많다. 그건 토목이 경착륙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면, 1000억 원짜리 사업을 하나 하면 관리하기는 쉽다. 그러나 대개 기계를 동원해 일을 해버리니까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자리는 적을 수밖에 없다. 반면 100억 원짜리 사업 10개를 하면 같은 돈으로도 보다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 낼 수 있다. 같은 효과를 내면 금상첨화다. 좋은 토목과 나쁜 토목의 차이는 그것이다. 또한 같은 예산으로 토목 사업을 하더라도 다목적 효과를 낼 수 있는 사업을 발굴해야 한다. 예를 들면 지하차도를 30년 빈도 홍수 때 일시 저장하는 홍수 방어 시설로 활용하는 다목적 토목을 도입하기 위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 나아가 토목 시설은 지속 가능성을 담보할 수 있도록 설계해야 한다. 지속 가능성의 요체는 유지 관리가 쉬워야 하고 유지 관리 비용은 적어야 한다.
결국 문제는 정치이다. 토목 사업을 하면 땅값이 오른다는 인식이 전 국토를 공사판으로 만들고 있다. 그 결과는 이미 우리가 목도한 대로 환경 파괴와 국민 세금 낭비로 이어졌다. 토목 사업을 유치하면 지역이 발전하고, 그것은 정치인의 능력이고 표로 직접 연결된다는 소아적 발상은 이제 버려야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한정된 국가 예산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토목 정책이다. 하지만 토목 정책으로 경쟁하는 선거가 아니라, '묻지 마' 토목 사업을 쏟아내는 선거가 우리 사회를 더 암울하게 만들어 왔다. 토목 사업은 공공 사업이며 말 그대로 공(公)을 최우선으로 삼아야 한다는 기본 원칙을 지금 다시 되새길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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