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열람 후 파기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왔던 지난해 11월 14일 고(故) 백남기 농민 부상 당시 상황 보고서가 실제로는 존재하는 것으로 확인돼 파장이 예상된다.
경찰은 국회와 법원에 제출하지 않은 상황 보고서에서는 백 씨의 부상을 '물대포' 때문인 것으로 분명하게 적시했다.
이에 따라 국회 국정 감사에서 경찰청장이 한 위증과 법원에 관련 자료를 제출하지 않으면서 한 거짓 답변 등을 둘러싸고 거센 논란이 불거지게 됐다.
당장 '국회에서의 증언 감정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이 청장 등 '거짓 답변'을 한 이들에 대한 고발 조치가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18일 오후 <민중의 소리>는 지난해 11월 14일 민중총궐기 당시 경찰이 대략 30분 단위로 꾸준히 작성한 '상황 보고서'를 공개했다.
상황 보고서란 각종 집회 시위 시 현장 상황을 시간대별로 전파하기 위해 만든 경찰 내부 보고서로, 서울지방경찰청 정보과가 현장 정보관들로부터 정보를 수집해 작성된다.
이 보고서를 보면 경찰은 저녁 8시에 전파한 상황 보고서 18보에서 백 씨의 부상을 거론하고 있다.
18보 보고서에는 '19:10 SK 빌딩 앞 버스정류장에서 70대 노인 뇌진탕으로 바닥에 쓰러져 있어 구급차 요청. 호송조치(송파6-7)'이란 대목이 등장한다.
이에 따라 강신명 전 경찰청장이 지난 6월 29일 국회 안전행정위원회에서 백 씨의 부상 사실을 "9시쯤 뉴스를 보다 자막으로 나가는 내용을 통해 알았다"고 했던 것부터 '거짓 답변'이었을 가능성이 매우 커졌다.
경찰 상황 보고서는 경찰청장에게도 전파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강 전 청장은 당시 안행위에서 즉시 보고가 되지 않을 것을 두고 '경찰 보고 체계에 문제가 있다'고 야당 의원이 질의 하자 "극심한 공격이 이뤄지는 상황에서 경찰이 들어가 상황을 파악하기 힘들었다"고까지 답변했었다. (☞ 관련 기사 : 강신명 경찰청장 "백남기 농민 부상 TV 보고 알아")
가장 주요한 거짓말은 '열람 후 파기되어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던 이 청장 등 고위 관계자의 거듭된 주장이다.
경찰은 더불어민주당 김정우 의원이 지난 6일 국회 안행위 국정 감사에서 법원에는 상황 속보를 제출한 사실을 공개하자 그때야 10보(15시 25분), 11보(15시 55분), 12보(16시 20분), 13보(16시 45분), 19보(20시 30분), 20보(21시) 등 6개의 상황 속보만 국회에 제출했다.
이에 김 의원이 "14~18보 작성 시점이 백 씨 사고 전후"라며 해당 속보 또한 제출할 것을 요구하자 이철성 청장은 "현재 갖고 있는 것은 없다. 그 자료는 법원에도 내지 않았다"고 했다.
이철성 청장은 14일 안행위에서 이 문제가 다시 논란이 됐을 때에는 누락된 상황 보고서들은 "열람 후 파기됐다"고 했으며, 김 의원이 "일부러 숨기는 것 아니냐"고 추궁하자 "그렇지 않다. 20보에서 처음 백 씨 상황이 기술됐다"고 거짓말을 했다.
아울러 경찰은 백 씨 가족이 제기한 민사 손해배상 소송을 다루는 법원에도 "일반적으로 30분 단위로 작성되는 상황속보(20:30 기준으로 작성된 19보까지)에서도 (원고 백남기의 부상 사실에 대한) 언급이 없었고, 21:00 기준으로 작성된 상황속보 20보에서 비로소 언급되기 시작했다"고 거짓 답변서를 냈다.
위증 책임이 불거질 이는 이철성 청장뿐이 아니다.
구은수 당시 서울청장은 지난 9월 12일 국회에서 열렸던 청문회에서 백 씨 사고를 언제 인지했느냐는 질문에 "제 기억으로는 한 21시(오후 9시) 넘어서 병원에 후송되고 난 다음에 일차적으로 응급실에서 수술이 어렵다는 것까지는 그때 보고를 받았다"고 말했다.
신윤균 당시 4기동단장도 증인으로 출석해 "저는 20시 40분 경에 (백 씨 부상 사실을) 알았다. 저희 4기동단 경무계에서 SNS하고 언론에 보도된 내용을 캡처해서 기동장비 계장한테 쏘아준 것을 제가 보고 받았다"고 주장했다.
경찰이 '파기했다'고 거짓말을 했던 상황 보고서 다른 부분에서는 백 씨 부상이 '물대포' 때문이라는 것을 경찰 자신도 파악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대목들이 등장한다.
상황 속보 25보(오후 11시 20분)를 보면 경찰은 '백남기 농민이 19시 10분경 서린R에서 물(대)포에 맞아 부상을 당했고, 뇌출혈 증세로 산소호흡기 부착하고 치료 중'이라고 썼다.
국회에서 선서한 증인의 허위 진술은 징역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중형에 처할 만한 일이다.
국회에서의 증언 감정 등에 관한 법률을 보면 이 같은 허위 진술은 고발 대상이 되며, 청문회 증인의 허위 진술일 경우 재적 위원 3분의 1 이상의 연서로 고발될 수 있다.
상황 보고서 제출을 계속해서 요구해왔던 김 의원은 "경찰이 상황 속보가 존재하는데도 제출하지 않았다면 국회와 국민에게 거짓말을 하고 증거를 은폐한 것"이라며 "전·현직 경찰청장이 국회에서 위증을 한 것에 대해 철저히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밝혔다.
김 의원은 또 "경찰이 자신들의 잘못을 숨기기 위해 있는 증거도 없다고 발을 빼는 사실이 확인된 만큼 하루라도 빨리 백남기 특검이 도입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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