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의 '갤럭시 노트 7'이 출시 2개월 만에 단종 됐다. 겹쳐 보이는 장면이 있다.
'서든 어택 2'와 '갤럭시 노트 7'
넥슨이 내놓은 온라인 게임 '서든 어택 2'가 비슷한 경로를 밟았다. 지난 7월 서비스 시작 직후부터 선정성 논란에 휩싸였다. 넥슨은 '서든 어택 2' 여성 캐릭터 일부를 삭제하는 걸로 넘어가려 했다. 그렇게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여기에 총수 비리까지 겹쳤다. 결국 넥슨 측은 출시 3개월 만에 '서든 어택 2' 서비스를 종료했다.
'갤럭시 노트 7' 역시 출시 직후부터 배터리 발화 논란이 있었다. 삼성전자의 초기 대응은 엉거주춤했다. 제품 결함 의혹에 대해 정면 반박하지도, 인정하지도 않았다. 사태가 걷잡을 수 없게 된 뒤에야 '갤럭시 노트 7' 교체 발표를 했다. '배터리에서 불이 났다. 그러니까 배터리가 문제다. 그걸 교체하면 된다.' 너무 단순한 논리다.
집에 화재가 나면, 그게 꼭 가스레인지를 끄지 않은 탓인 건가. 아닐 수도 있다. 누군가 외부에서 불을 질렀을 가능성도 조사해야 한다. 배터리에서 불이 난 게 꼭 배터리 내부 문제 탓이라는 법은 없다. 이런 목소리 역시 사태 초기부터 나왔었다. 원인이 복잡할 수 있다는 게다. 하지만 삼성전자 측은 이에 대해 반박하지도, 인정하지도 않았다.
결과는 다들 아는 대로다. 배터리를 교체했지만, '갤럭시 노트 7'에선 계속 불이 났다. 결국 생산과 판매를 모두 중단해야 했다.
'성공한 브랜드' 후광에 기대면 망한다
'갤럭시 노트 7'과 '서든 어택 2'가 닮은 점은 또 있다. 둘 다 전작(前作)의 성공에 지나치게 기댔다. 브랜드의 후광에 안주했다. 삼성전자의 갤럭시 노트 시리즈는 나올 때마다 호평을 받았었다. '서든 어택 2'의 전작인 '서든 어택' 역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영화 팬들은 다들 안다. 전작보다 나은 후속 작, 흔치 않다. 스마트폰, 게임이라고 얼마나 다를까.
<손자병법>에도 나온다. "戰勝不復(전승불복)" 전쟁의 승리는 반복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가장 나쁜 전술은 예전에 써서 성공했던 전술이다.
고대 병법의 교훈은 현대의 기업에도 적용된다. 성공 경험이 쌓일수록, 경영진이 독선에 빠질 위험이 커진다. '다른 의견'은 설 자리가 사라진다. 성공한 브랜드는 그렇게 실패의 플래카드가 된다.
인건비가 꼭 매몰 비용인가?
닮은 점은 계속 나온다. 시장 철수를 앞두고, 모두 '매몰 비용' 이야기가 나왔다. 개발 및 출시 과정에서 생긴 비용을 날리게 됐다는 게다. 숫자가 천문학적이다. 고생 끝에 제품을 만들었는데, 팔 수 없게 됐다. 아까운 게 당연하다.
식당에서 파는 음식이라면, 이런 논리가 맞다. 기껏 조리했는데, 아무도 먹지 않는다면 버려야 한다. 확실히 낭비다.
하지만 공산품, 소프트웨어 등은 경우가 다르다. 개발 과정에서 발생한 비용 가운데 상당 부분은 인건비다. 온라인 게임처럼 소프트웨어를 만든 경우는 거의 전부가 인건비다. 그걸 꼭 낭비로만 봐야 하나. 개발 과정에서 다양한 신기술을 확보했다. 개발자들은 역량을 키웠다. 이는 새로운 제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큰 도움이 된다. 소프트웨어의 소스 코드 역시 재활용할 수 있는 자산이다.
왜 이걸 모조리 '매몰 비용'으로 잡아야 하나?
'매몰 비용' 과장 관행, 잘못 인정하는 용기 꺾는다
'매몰 비용'을 너무 크게 잡는 관행은, 그릇된 의사 결정을 계속 밀어붙이게 한다. 이런 식이라면, '갤럭시 노트 7 사태'가 또 일어나도 '매몰 비용'이 두려워진다. 엉거주춤한 자세를 유지하다 문제를 키운다.
개발 과정에서 발생한 인건비 전부를 '매몰 비용'으로 잡는 관행은 바뀌어야 한다. 인건비 지출은 사람에 대한 투자라고 봐야 한다. 그래야 '매몰 비용'을 덜 무서워하게 된다. 잘못을 인정하는 용기를 내기도 쉬워진다.
한국 기업 문화가 권위적이라는 지적이 자주 나온다. 그래서 창조성이 없다고 한다. 선진국 기업을 따라잡을 때는 그래도 괜찮았지만, 삼성전자처럼 세계 1, 2위를 다투는 기업은 이제 그러면 안 된다는 말도 흔히 나온다. 그러니까 복장 및 출퇴근 시간 등을 유연하게 하자고 한다. 그게 과연 대책일까. 아니라고 본다.
'갤럭시 노트 7', '서든 어택 2'…개발 과정에서 문제 알아챈 직원이 전혀 없었을까
권위적인 문화가 나쁜 이유는 다른 의견을 막기 때문이다. '갤럭시 노트 7', '서든 어택 2' 등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이건 문제가 있는데'라고 느낀 개발자가 전혀 없었을까.
넥슨에는 여성 개발자들도 꽤 있다. 여성 캐릭터의 가슴과 엉덩이만 부각시키는 게임이 만들어지는 걸 보면서, 그들은 아무런 생각이 없었을까. 그럴 리는 없다. 이의 제기 통로가 막혀 있었거나, 이의 제기가 소용이 없었거나. 둘 중 하나다.
'갤럭시 노트 7'는 배터리 케이스의 모서리가 너무 둥글게 만들어졌다. 그게 사고 원인일 가능성이 거론된다. 이런 설계가 지닌 위험을 알아차린 개발자가 한 명도 없었을까. 그럴 리는 없다.
이의 제기 못하는데, 반바지에 슬리퍼가 무슨 소용인가
진짜 문제는 복장이 아니다. 문제를 알아차린 조직 구성원이 끝까지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 일리 있는 지적이라면, 의사 결정에 반영돼야 한다. 반바지에 슬리퍼 신고 일한다 한들, 이의 제기가 불가능한 문화라면 의미가 없다.
'매몰 비용'을 과장하는 태도는, 다른 의견의 씨를 말린다. '개발 방향이 틀렸다'라는 목소리를 내는 부담이 커지기 때문이다. '매몰 비용'보다 무서운 건, 잘못된 길이라는 걸 알면서 묵묵히 걸어가는 조직 구성원이다. 그들을 그렇게 만든 책임은 경영진에게 있다.
한 가지 더.
<뉴욕타임스>는 '갤럭시 노트 7 사태'의 원인으로 "삼성전자 고위층의 군대 문화와 닮은 하향식 접근 방식"을 꼽았다.
옳은 지적이다. 갤럭시 노트 7 교체 발표를 하면서, 고동진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사장은 배터리 결함을 원인으로 지목했다. 이는 고위층이 지목한 원인일 뿐이다. 과학적인 조사 결과는 나오지 않은 상태였다. 과학보다 권력이 앞선다.
이런 모습을 다른 곳에서도 본다. 고(故) 백남기 씨의 사망 원인 논란도 그랬다. 법의학 전문가의 발표보다 권력자가 지목한 원인에 더 높은 가중치가 붙었다. '갤럭시 노트 7 사태'가 답답했다면, 이런 관행에 대해서도 제동을 걸어야 한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