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42년이 흘렀습니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1974년 10월 24일 아침 동아일보사 편집국의 풍경이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그때 제 나이 서른한 살, 입사 7년째의 젊은 기자였습니다.
당시 상황을 간략하게 설명하겠습니다. 그보다 2년 앞선 1972년 10월 17일 비상계엄령이 선포됐습니다. 국회가 해산됐고, 정당의 정치활동이 전면 금지됐습니다. 3선이었던 박정희 대통령은 그 해 12월 영구집권을 위한 유신헌법을 선포하고 독재를 시작했습니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그렇게 무너졌습니다.
독재의 칼바람은 매서웠습니다. 아니, 공포 그 자체였습니다. 바른 소리, 바른 글을 쓰면 바로 인신이 구속됐습니다. 그런 시절, 동아일보사의 젊은 언론인들이 더 이상 독재를 용납할 수 없다며 '자유언론실천선언'을 발표했습니다.
선언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우리는 오늘날 우리 사회가 처한 미증유의 난국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이 언론의 자유로운 활동에 있음을 선언한다. 민주사회를 유지하고 자유국가를 발전시키기 위한 기본적인 사회 기능인 자유언론은 어떠한 구실로도 억압될 수 없으며 어느 누구도 간섭할 수 없는 것임을 선언한다."
'10·24 자유언론실천선언' 뒤 동아일보사 기자, 동아방송 PD와 아나운서들은 유신독재정권의 실상을 알려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민청학련·인혁당 사건의 진상을 비롯해서 재야 민주화운동 진영의 목소리를 적극 보도했습니다.
자유언론실천운동이 시민들의 뜨거운 호응을 얻자 박정희 정권은 곧바로 중앙정보부를 동원해 동아일보와 동아방송에 광고탄압을 가했습니다. 이듬해인 1975년 3월 초 박정희 정권은 동아일보사 경영진과 짜고 폭력배를 동원해 운동의 주역 113명을 편집국에서 끌어냈습니다. 그렇게 해서 결성된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동아투위) 사람들은 41년째 해직언론인 상태입니다.
'10·24 자유언론실천선언' 이후 42년이 흘렀습니다. 개탄스럽게도 2016년 오늘의 현실은 그때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공정언론'을 실천하려다가 해고 또는 징계를 당한 언론인은 모두 444명에 이릅니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도 MBC 언론인 6명이 여전히 해직 상태이고, YTN 해직 언론인 3명은 지난 10월 6일로 만 8년째 현업에 복귀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는 공영방송의 인사와 제작에 관여하지 않겠다고 공약했습니다. 그러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공영방송에 '낙하산 사장'을 임명했습니다. 나아가 2014년 세월호 참사 때에는 당시 청와대 홍보수석이었던 이정현 현 새누리당 대표가 대통령의 '속내'라며 공영방송 KBS에 '보도지침'을 내려 언론보도를 통제했습니다.
보수정권 9년. '국경 없는 기자회'가 발표한 한국의 언론자유지수는 지난 2007년 37위에서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바로 그 해 47위로 급락하더니, 박근혜 정부 4년 만에 70위로 곤두박질했습니다.
해마다 10월 24일이 되면, 그날 동아일보사 편집국에 울려 퍼졌던 '자유언론'의 외침이 귓가를 맴돕니다. 그때 우리는 젊었고, 정의롭게 살고 싶었고, 무엇보다 언론인의 책무를 다하고 싶었습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국기자협회, 한국PD연합회 등 언론 현업단체들과 자유언론실천재단, 새언론포럼, 민주언론시민연합, 언론개혁시민연대, 언론소비자주권행동 등 언론시민단체들이 '10·24 자유언론실천선언' 42주년이 되는 오는 10월 24일, 다시 '2016. 자유언론실천 시민선언'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42년 전 그때처럼 언론인들과 시민들이 함께 이 말을 외쳐주기 바랍니다.
"자유언론은 어떠한 구실로도 억압될 수 없으며, 어느 누구도 간섭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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