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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주인은 여전히 '시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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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주인은 여전히 '시민'이 아니다

[프레시안 books] <도시의 발견>

아침에 눈 비비며 일어나 후다닥 씻고 대충 머리를 손질한 후, 우리는 출근길에 나선다. 이제 내 스트레스 지수를 마구 높여줄 시간이다. 지하철은 언제나 만원, 꽉 막힌 도로에서 급정거와 급출발을 반복하는 버스는 내 근력을 시험한다. 정신없이 일하다 보면 어느새 퇴근 시간. 다시 러시아워가 기다린다. 한 시간 정도 걸려 집에 돌아오면 몸은 천근만근이라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다. 그나마 일찍 들어오면 다행. 회식 후 늦은 밤 집으로 걸어가다 보면, 인적이 끊긴 아파트로 들어가는 길이 무서워 괜스레 뒤를 돌아본다. 다시 번개처럼 씻은 후, 맥주 한 캔에 오늘도 괜찮았다고 자위하며 몇 시간 후 반복할 고행을 위해 잠자리에 든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대도시에 거주하는 직장인의 일상이란 대체로 이와 비슷할 것이다. 음, 정말 괜찮은 삶 맞나?

우리 삶의 질에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가 몇 있다. '거리'를 곧바로 떠올릴 사람이 얼마나 될까? 길거리가 내 삶의 행복도에 영향을 미친다니? 조금 뜬금없는 소리 아닌가 싶다.

북촌 한옥 마을과 인사동 보전 등 다양한 프로젝트에 참여한 정석 서울시립대학교 도시공학과 교수는 신간 <도시의 발견>(메디치미디어 펴냄)에서 외국 도시의 혁신 사례, 서울시정사, 건축에 관한 생각, 마을 공동체 복원 프로젝트 등 실로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 도시가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설명하고, 도시를 어떻게 바꿔야 우리의 행복이 커지는가에 관한 생각을 풀어놓는다.

이 책의 주제를 한 문장으로 정리하자면 '시민이 참여해야 행복한 도시가 가능하다' 정도일 것이다. 정석 교수는 여러 장에 나눠 실은 도시 개발 사례를 통해, 시민이 주인 된 권리를 행사하지 않는다면, 도시의 주인은 자본이 된다고 강조한다.

▲ 삶의 활력이 묻어나는 도시, 옛 기억을 모조리 부수고 비싼 아파트로 치장한 도시. 우리는 어떤 길을 가야할까? ⓒ프레시안(최형락)

대표적 사례로 정석 교수는 한국의 재개발 풍경을 그린다. 오래된 아파트 단지 입구에 '경축 안전 진단 통과'라는 현수막이 걸리곤 한다. 여기서 '안전 진단 통과'는 안전 진단 불합격을 의미한다. 내가 사는 아파트가 안전하지 못하다고 판정되었으니, 이제 재개발로 집값이 더 오르게 되었으니 축하하자는 뜻이다. 이 현수막에 따뜻한 보금자리로서 집에 관한 가치, 이웃과 공동체를 형성하는 타운으로서 아파트 단지에 관한 가치는 없다. 오직 돈에 관한 욕망뿐이다.

이 규모를 더 키우면, 이명박 전임 서울시장 당시 부동산 광풍을 몰아왔고, 정치적으로도 큰 파문을 낳았던 뉴타운 사업이 된다. 여기서 돈을 버는 건 오직 땅주인과 대형 건설업자뿐이다. 재개발 완료 후, 첨탑처럼 솟아오른 아파트 숲에서 원주민은 길을 잃고 터전에서 쫓겨났다. 이 대목에서 도시의 주인은 결코 시민이 아니다. 자본이다.

이런 삭막함이 우리 삶의 행복도를 떨어뜨린다. 우리의 출퇴근길이 피곤한 것도 따지고 보면 자본이 지배하는 도시의 현 상태와 관련 있다. 일산 등 서울 외곽의 도시에서 사람에 치여 서울 시내로 출근하고, 다시 긴 시간에 걸쳐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다수 중산층 삶을 생각해 보라.

이처럼 자본이 지휘하는 도시 계획을 모더니즘 도시 계획이라고 정석 교수는 설명한다. 이어 우리보다 서구에서 먼저 시행된 모더니즘 도시 계획의 역사를 훑어 우리에게 보여준다. 대략 일맥상통하는 논리가 있다. 구도심을 부수고, 아름다운 도시로 새로 만들자. 도시 외곽에 멋진 전원 도시를 지어 도시로 출퇴근하자. 한국의 도시 개발과 꼭 닮았다. 우리는 종로1가의 역사적 구도심을 없애버리고, 그곳에 황망한 대형 빌딩을 세웠다. 원주민의 골목을 송두리째 파괴하고 대형 아파트 단지를 올렸다. 정석 교수는 한국의 도시 개발이 여전히 모더니즘 도시 계획에 갇혔다고 개탄한다.

대안으로 정석 교수는 도시학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거대한 이름인 제인 제이콥스의 이론을 소개한다. 제인 제이콥스는 건축 잡지 기자 출신으로 1950년대 유행처럼 번지던 구도심 재개발 정책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도심은 사람의 것'이라는 주장을 펼쳐 도시학의 물꼬를 돌린 인물이다. 실상 이 책은 제인 제이콥스의 주장에 따라 새롭게 살아난 도시의 사례를 소개하고, 그와 같은 길을 걷자는 이야기로 가득하다고 봐도 된다.

어떤 주장일까. 우리의 아파트 풍광이 흉물스럽다고, 외부인의 출입을 제한하며 홀로 고고히 솟아오르는 대형 빌딩으로 뒤덮인 서울의 풍광이 삭막하다고 느끼는 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법한 이야기다. 길거리에 사람이 많아야 도심은 안전하다. 오래된 상점을 통해 사람이 소통하고 교류해야 공동체가 살아난다. 주거지 따로, 상업지 따로 만들어진 도시는 좋지 않다. 다양성이 한데 어우러진 도시가 좋다. 대형 빌딩이 큰 자리를 차지해 사람의 길을 막는 도시는 좋지 않다. 작은 블록, 즉 골목길이 생생히 살아 있어야 좋은 도시다. 강남대로보단 북촌이 좋은 도시이고, 마을 공동체 복원에 나서는 성북이 더 좋은 도시라는 얘기다. 정석 교수는 책에서 길거리를 모세혈관으로, 그리고 시민을 피로 비유한다. 모세혈관이 살아 있어야 피가 돈다. 피가 잘 돌지 않으면 그 부위는 괴사하고 만다. 도시도 마찬가지라는 뜻이다.

따지고 보면 우리의 옛 도시는 이랬다. 노포가 좁은 길에 다닥다닥 붙어 밤새 손님을 맞았다. 동네 가게가 길거리에 문을 열고 항시 지나는 사람을 반겼기에, 우리가 집으로 가는 길은 오히려 안전했다. 어디나 보는 눈이 있었기 때문이다. 성과 같은 아파트에 둘러싸이지 않았던 우리는 이웃과 자연스럽게 교류했다. 당시 우리의 미디어는 걸핏하면 '한국인의 정'을 이야기했다. 지금은 어떤가? 공동체가 사라지고, 한국인에게 정은 없다.

정석 교수는 책 중반을 넘어서며 도시를 활기 넘치도록 되살린 그야말로 풍부한 사례를 독자에게 선보인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시민이 도시의 주인이 되어야 이와 같은 복원이 가능함을 독자에게 일깨운다. 여러 사례가 큰 울림을 주지만, 이중 '시애틀의 작은 시청 운동' 챕터는 그야말로 모범 사례로 꼽기에 손색 없다.

▲ <도시의 발견>(정석 지음, 메디치미디어 펴냄). ⓒ메디치미디어
정석 교수는 폐교된 여자고등학교 건물을 개조해 사람이 살아가는 아파트의 모습을 독자에게 그려 보인다. 아파트에는 옛 교실의 풍광이 고스란히 간직되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 아파트는 역사 유적으로서, 그리고 개성있는 주거단지로서 빛을 발할 것이다. 반면 우리라면 진작에 부수고, 개성 없는 브랜드 아파트를 올렸을 것이다.

시민에게 다가서고자 시애틀의 웨슬리 울만 시장이 취한 작은 시청 운동 역시 손꼽아 칭찬할 만하다. 시민에게 크기만 하고 먼 시청을 없애고, 시장은 시청을 6개로 쪼개 도심 곳곳에 흩어놓았다. 자연스럽게 공무원과 시민의 거리가 가까워지자, 시민은 주인의식을 적극적으로 행사하고, 공무원은 퇴근 후에도 주민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이웃에 감사하는 날' 제정이 대표적 성과일 것이다. 시민이 서로 감사를 나누고 이웃과 소통할 날을 만들자고 시청에 제안하고, 시는 이를 받아 매년 밸런타인데이 바로 전 토요일에 여러 이벤트를 벌인다. 자연스럽게 시민은 이웃과 교류할 기회를 얻는다.

정석 교수의 이 책은 도시학에 익숙하지 않은 일반인이 인문학적 시각으로 내 삶의 터전을 되돌아보게 한다. 책에 소개된 외국 여러 도시의 풍경에서 사람이 돈, 자동차보다 우선인 모습을 읽으며 부러움이 샘솟는다. 더 행복한 삶을 위해 정석 교수는 우리 자신이 도시의 주인이 되자고 강조한다. 풍부한 사례가 읽는 재미를 더하는 책이며, 자연스럽게 우리의 터전뿐만 아니라 우리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힘을 지닌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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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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