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이 미국과 필리핀의 합동 군사훈련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필리핀의 '마약과의 유혈전쟁'과 관련, 인권 문제로 갈등을 빚는 양국 관계에 균열이 커지며 동남아시아 외교·안보 지형의 변화를 예고했다.
베트남을 방문 중인 두테르테 대통령은 28일 밤 필리핀 교민들과의 간담회에서 "중국이 원하지 않는 전쟁 게임이 예정돼 있다"며 "이것이 미국과 필리핀의 마지막 합동 군사훈련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필리핀 GMA 방송 등이 29일 전했다.
이 훈련은 내달 4∼12일 필리핀에서 열리는 미·필리핀 연례 합동 상륙훈련(PHIBLEX)이다. 일본 오키나와 주둔 미 해병대 등 미군 1천400여 명과 필리핀군 500여 명이 참가해 합동 상륙과 실탄 포격, 구조 훈련 등을 한다.
상륙훈련의 경우 중국과 필리핀이 영유권 다툼을 벌이는 남중국해 스카보러 암초(중국명 황옌다오<黃巖島>, 필리핀명 바조데마신록)에서 250㎞가량 떨어진 필리핀 산안토니오 지역에서 실시된다.
미국과 필리핀은 지난 4월 남중국해를 마주 보는 필리핀 지역에서 총 9천여 명의 병력이 참가한 정례 합동 군사훈련인 '발리카탄'(어깨를 나란히)을 실시한 데 이어 내년 훈련 준비에 최근 착수했다.
두테르테 대통령이 지난 13일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 해역에서 미국과 더는 합동순찰을 하지 않겠다고 말한 데 이어 합동 군사훈련 중단 계획도 발표함에 따라 중국을 견제하는 양국의 '남중국해 군사행동'은 사라지게 됐다.
다만 두테르테 대통령은 미국과 맺은 조약들은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최근 미국과 필리핀이 1951년 체결한 상호방위조약과 관련, "필리핀이 공격받을 때 미 대통령이 참전을 선언하려면 미 의회 승인을 받아야 하는 데 만일 승인을 얻지 못하면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이냐"며 미국 군사지원의 한계를 지적했다.
페르펙토 야사이 필리핀 외무장관은 두테르테 대통령의 합동 군사훈련 중단 선언 파장이 커지자 "대통령의 해당 발언을 듣지 못했다"며 남중국해 합동순찰 중단을 의미할 것이라고 진화에 나섰다.
두테르테 대통령의 발언이 과장됐더라도 미국에 대한 반감을 드러내며 전임 정부까지 수십 년간 지속한 친미 외교노선의 수정을 다시 한 번 명확히 한 것으로 풀이된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지난 26일 대미 관계와 관련, "루비콘 강을 건너려 한다"면서 중국과 러시아에 대해서는 "교역·통상의 모든 길을 열 것"이라고 밝혔다.
그 다음 날에는 7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한 필리핀 통화 페소화의 가치 급락과 관련, "미국이 필리핀을 손상하고 있다"며 "페소화 가치가 떨어지도록 조작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앞서 두테르테 대통령은 9월 초 라오스에서 열린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 정상회의 전후에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과 필리핀의 마약소탕전을 둘러싼 인권 문제로 충돌했고 그를 '개XX'를 불러 논란을 일으켰다.
미국과 소원해진 두테르테 대통령은 10월 중순 중국을 방문해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 해법과 경제협력 확대 방안을 논의할 계획이다. 연내 러시아도 방문해 교역·투자 협력 확대를 추진한다는 구상이다.
미국으로서는 동남아 최대 우방인 필리핀과의 관계가 틀어지면서 필리핀을 거점으로 남중국해에서 중국의 군사적 패권 확장을 저지하려는 '아시아 중시' 전략이 차질을 빚게 됐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