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고(故) 백남기 농민에 대한 부검 영장을 다시금 신청한 데 대해 비판이 제기됐다. 백 씨 유족은 부검 반대 입장을 담은 자필 탄원서를 제출했으며, 변호사 또한 백 씨의 부검이 불필요한 이유를 밝히는 의견서를 법원에 제출했다.
27일 오전 백 씨 시신이 안치된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입구에서 백 씨의 유족과 의료진, 법조인들이 모여 기자 회견을 열고 경찰의 부검 영장 재청구에 대한 소견을 밝혔다.
경찰은 첫 번째 영장이 기각된 지 21시간 만인 26일 오후 11시 백 씨 부검을 위한 부검 영장을 검찰에 재신청했다. 검찰은 신청받은 영장을 곧장 법원에 재청구했다.
앞서 26일 첫 번째 영장 청구에 대해 법원은 "부검 필요성과 상당성이 없다"고 기각했다. 2차 청구에 대해선 백 씨 부검의 필요성과 상당성에 대한 추가 소명 자료를 요구하며 "경찰이 제출한 자료를 보고 부검 영장 발부 여부를 판단할 방침"이라고 27일 밝혔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소속 의사인 김경일 서울시립동부병원 전 원장은 지난해 11월 14일 백남기 씨가 응급실에 실려왔을 당시 찍은 CT 사진을 보며 "급성 경막하 출혈이라는 진단명보다 백 선생의 당시 상황은 100배, 1000배 심했다. 명백히 그 상황으로 즉사할 수 있었다"며 "진단명에 대한 논란이 필요가 없고 따라서 부검은 필요 없다"고 했다.
우석균 인의협 공동대표 또한 백 씨 사인(死因)은 의학적 논쟁의 대상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우 대표는 "암 환자가 폐렴으로 죽으면 사망 원인이 암이고, 교통사고 환자가 장기 부전 상태가 되어도 사망 원인은 교통 사고"며 "의협 사망 지침에 의해서도 원 사인, 즉 외상성 뇌출혈이라고 해야 맞다. 이게 대한민국 정부와 의협의 명확한 지침"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경찰이 쏜 물대포에 맞아서 건강했던 분이 쓰러져서 뇌출혈이 발생했고, 그 자리에서 돌아가실 수도 있는데 현대 의학의 힘을 빌어 연명 치료를 해왔다"며 "의학적 논쟁의 대상이 아닌데도 마치 논쟁거리가 있는 듯 부검을 하려고 몰고 가는 경찰 행태에 대해 의사로서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화가 난다"고 했다.
백 씨의 딸 백도라지 씨 또한 "11월 14일 아버지가 응급실에 도착했는데 응급의학과 선생님이, '이런 정도의 부상이라면 수술 자체가 의미가 없다. 살아나시긴 어려울 것 같다'고 했다"고 했다. 이어 "대뇌가 50% 이상 손상됐기 때문에 의식이 돌아오는 것을 기대하기 어렵고 신체 대사 활동을 약물에 의존해야 하는데, 아버지는 신장이 워낙 튼튼해 약물을 제한 없이 써서 치료할 수 있다고 했을 정도였다. 질병(급성신부전) 때문이라는 경찰의 우기기는 말이 안 된다"고 했다.
조영선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사무총장은 "물대포를 쏘는 것은 고층빌딩에서 넘어뜨리는 것이나 같은데, 결국 법적 인과 관계는 밀어서 사망했다는 것이다. 의학적 인과 관계는 부차적인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마치 가해 행위를 한 사람이 무죄를 주장하며 부검을 요청하는 것은 상황"이라며 "경찰의 영장 청구가 남용되고 했다"고 비판했다.
백 씨 사건 관련 변호인단 단장을 맡은 민변 소속 이정일 변호사는 경찰이 법원이 요구한 필요성과 상당성을 입증하지 못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변호사는 "여기서 '필요성'이란 사인 밝히는 데 있어 반드시 부검만으로 해야 하느냐는 의미이며, 상당성은, 고인의 존엄한 장례를 치를 권리를 넘어설 정도로 부검을 해야 할 공익이 있느냐는 것인데 사고 후 317일이 지난 시점에 부검을 통해 의료 기록을 넘어서는 독자적 판단이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새벽 두 시에 법원이 자료 요청을 했는데 경찰에서 지금까지도 제출하지 않는다면 과연 제출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법원도 영장을 기각할 거라는 게 변호인단의 판단"이라고 했다.
민변은 이날 이같은 소견을 정리한 의견서를 법원에 제출했다. 아울러 백 씨의 유족은 재판부에 "경찰의 손에 돌아가신 고인의 시신에 다시 경찰의 손이 닿게 하고 싶지 않다"며 부검을 반대하는 탄원서를 보냈다.
다음은 백도라지 씨가 공개한 탄원서 전문
존경하는 판사님께
판사님, 저희는 작년 11월 14일 시위 도중 경찰의 물대포에 맞고 나서 병원 중환자실에서 317일간 투병 생활을 이어가다 돌아가신 농민 백남기의 가족입니다.가해자로 저희에게 형사 고발을 당한 경찰이 저희 아버지, 남편의 시신에 대한 부검 영장을 거듭 신청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저희는 아버지, 남편을 고이 보내드릴 시간도 갖지 못한 채 경찰 때문에 하루하루 마음을 졸이고 있습니다. 돌아가시기 전부터 경찰이 서울대병원을 에워쌌고, 돌아가신 후에도 경찰의 방해 하에 시신을 중환자실에서 영안실로 옮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영장이 발부되기도 전에 그리고 서울대병원에서 공식적으로 시설 보호 요청을 하지 않았음을 밝혔는데도 병원 주변에 경찰차 수십 대와 경찰 수백 명을 배치해 유족들과 대책위, 소식을 듣고 찾아오신 시민들에게 불필요한 긴장을 일으켰고, 무력으로 시신을 탈취하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병원에서 부검 영장 기각을 했는데도 재신청한 것을 보면 저희의 의심이 사실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영안실로 옮기고 나서는 사건 담당 검사님이 오셔서 가족의 뜻에 반하는 부검 같은 건 없다 하시며 국과수 법의학자들과 함께 검시를 하고 가셨습니다. 또한, 10개월간의 의료 가족이 이미 있고, 이는 법원의 명령에 따라 이미 경찰이 확보하고 있습니다. 그거라면 충분히 고인의 사인을 규명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도 경찰은 왜 거듭 부검 영장을 신청하는지 유족으로서는 이해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습니다. 그리고 경찰의 손에 돌아가신 고인의 시신에 다시 경찰의 손이 절대로 닿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유족으로서의 도리도 아니라고 생각하고, 그런 패륜, 불효를 저지르고 싶지 않습니다.
부디 존경하는 판사님께서 유족들의 뜻을 받아주시고, 부검 영장 발부를 반려해주시길 눈물로 호소드립니다.
2016년 9월 27일 유가족 일동 드립니다.
처 박순례 딸 백도라지 아들 백두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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