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고기 붉은 살점을
붉고 매운 꼬춧가루와
또 꼬추장과 마늘과
혀가 얼얼하도록
더 매운 청고추를 썰어 넣고 볶아 먹는
조선 년, 조선 놈이다!
아랫배에 그것들을 그득 가두고 죽어라 하고
땅을 걷고
바닥을 걷는다
이런 우리를 야만이라 한다
그렇다, 야만이다!
야만이라는 목소리를 열심히 들으며
또, 돼지고기를 붉고 맵게 무쳐
그것을 목구멍으로 뜨겁게 넘기기 위해
미치도록 마른침을 억제할 수밖에는 없는
도로의 한복판을 종일 구부리고 일하는
조선 년, 조선 놈이다!
잊을 수는 없다
이 길밖에는 길이 없다
이것이 현실,
까마득한 이것이 조선 사람들의 말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부드러운 밥과 함께!
우리들 모두의 곁에 달디 단 맛으로 있다
이것이 오늘의 이름이고
이것이 개와 돼지와 야만의 오늘이다.
시작 노트
살아가는 캄캄한 얘기들이 도처에 있고 내 시는 아픔 깊숙한 곳에 가지 못하고 안방에서 옹알이를 하는가…. 내 머리맡의 시는 스스로 말라 있다. 거기에 가 있지 않고 쓴 시들은 활기가 없고 마음 아프다.
하여, 시인은 '2016 강정생명평화대행진' 제주섬 한 바퀴를 걷는 행진 대열의 폭염 속으로 기꺼이 걸어들어 갔다. 밀양 송전탑 건설을 반대 했던 어머니들과 슬프고 분한 표정의 세월호 유가족들, 쌍용자동차 노동자들, 용산 참사 대책위, 미국재향군인회 관계자 등을 만나 함께한 것은 나에겐 행운(?)이었다.
제주는 더 이상 낭만과 로맨틱의 이름이 아니었다. '평화야 고치글라(같이 가자)!' '구상권을 철회하라!'를 목청껏 외치며 5박6일을 걷고 또 걸었다. 마음이 처절하고 비장해졌다.
곧 추석이 다가 온다.
"미국에도 보내줄게
땅콩강정 깨강정
청와대에도 보내줄게
땅콩강정 깨강정
제주에도 하나 밖에 없는 강정 달라고
아이들의 강정은 뺏지마" (상식이밴드의 '땅콩강정 깨강정' 중)
얼마나 절망적이고 비통한 여름이었던가!
시인에게 사무친 제주의 슬픔에 이어 한반도는 위기다.
시대정신이 담긴 시 쓰기의 절실함을 담아
정다산 선생이 강진 유배지에서 고향의 두 아들에게 보낸 편지글을 빌려 옮긴다.
"不憂國非詩也"
나라를 걱정하지 않는 것은 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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