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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성장, 박정희의 공은 10%뿐이다"

[유종성 칼럼] 박정희 신화를 깨기

학생 운동, 시민 운동 경력을 뒤로 하고 40대에 만학의 길에 올랐을 때 받은 가장 큰 충격 가운데 하나는 한국 경제와 박정희 찬양론이 서구 학계의 정설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었다. 제3세계 여러 나라는 지도자를 잘못 만나서 "약탈 국가"가 된 반면, 한국은 박정희가 "발전 국가"를 수립했다는 것이다.

물론 박정희의 재벌 중심 산업화 전략이 한국의 급속한 경제 성장에 공헌했다고 해도 이것이 양극화와 정경 유착의 폐해 등 부정적인 효과를 덮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나는 좀 더 근본적인 의문 즉, 과거 한국의 경제 성장이 과연 박정희 덕분인지에 대해서도 의문을 떨치기가 어려웠다.

그러던 가운데 하버드 대학교의 경제학자 대니 로드릭이 한국과 대만(타이완)의 경제 발전 성공 요인을 분석한 논문을 보았다. 그는 초기 조건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이를 국가 간 양적 비교 분석을 통해 보여줬다. (☞관련 자료 : Getting Interventions Right: How South Korea and Taiwan Grew Rich)

로드릭은 소득 불평등 또는 토지 소유 불평등과 교육 수준과 같은 초기 조건이 개발도상국의 장기적인 경제 성장률과 매우 높은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1960년을 기준으로 한국과 대만은 개도국 가운데 이례적으로 토지 소유와 소득 분배의 불평등 정도가 낮았고, 당시 소득 수준에 비교해서 볼 때 상대적으로 높은 교육 수준을 가지고 있었다.

이 두 초기 조건이 1960년에서 1985년까지 이후 25년간의 경제 성장률을 예측하는 능력이 매우 컸다. 가령, 한국과 대만의 경우는 이 두 초기 조건이 향후의 높은 경제 성장률의 90% 가까이를 설명한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박정희의 공로는 고작 10%밖에 안 되는 셈이다. 로드릭의 표현을 빌면, "기적이라고 할 만한 것은 전혀 없다"는 것이다.

한국과 대만 모두에 이러한 초기 조건이 형성된 데에는 농지 개혁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농지 개혁이 지주 계급을 해체시키고 불평등을 완화함으로써 국가가 지배적인 세력으로부터 포획되는 위험을 피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다는 데에는 이미 많은 학자들이 동의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기존 문헌은 발전 국가 수립에 있어서 박정희의 결정적인 공로를 인정하였다. 국가의 자율성과 능력을 향상시키는데 있어서 능력주의에 입각한 전문 관료제의 확립이 중요한데, 박정희가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는 것이다. 단적인 증거로, 이승만 정권 하에는 엽관제가 횡행하여 가령 중앙 부처 사무관급(현재의 5급) 공무원의 신규 채용 중 대다수가 특채였고 행정 고시를 통해 투명하고 공개적으로 뽑은 인원은 소수에 불과했는데, 박정희 시대에는 행정 고시를 통한 임용 비율이 5배나 늘어나고 특채는 소수로 줄었다는 것이다. 이를 근거로 이승만 시대 엽관주의에 짓눌렸던 관료제를 박정희가 획기적으로 개혁하여 능력주의 관료제를 확립했고, 이것이 발전 국가의 핵심적인 세력이 되었다는 설이 확립된 것이다.

그런데, 여러 문헌에 반복적으로 인용된 이승만과 박정희 시대의 사무관 채용 방식에 대한 비교 통계를 들여다보면서 의문이 들었다. 이승만 시대는 1948년부터 1960년까지 12년간의 평균치이고, 박정희 시대는 1977년부터 1979년까지 3년간에 대한 평균치였기 때문이다. 이건 공정한 비교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승만 시대의 초기와 후기, 박정희 시대의 초기와 후기를 나눠서 보면 어떤 추세가 나올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원자료를 찾아보기로 했다. 우선 정부(당시 총무처)에서 1977년부터 매년 낸 연감에 각급 공무원 임용 통계가 나와 있어 1977년부터 1979년까지의 자료는 쉽게 구할 수가 있었다. 1948년부터 1960년까지 대해서는 다행히도 연세대학교 행정학과를 은퇴한 안용식 교수가 과거 박사 학위 논문을 쓸 때 관보에 기재된 공무원 임용 자료를 모아 방대한 자료를 구축하였던 것을 알게 되어 안 교수를 직접 만나 이를 건네받았다.

이 자료를 보니 정부 수립 초창기 몇 년간은 공무원 신규 채용 인원이 매우 많았지만 아직 행정 고시 등 공채로 뽑은 인원수는 많지가 않았는데(일제 및 미군정 관료 출신 특채가 대다수였다), 이승만 정부 중후반으로 가면 전체 신규 채용 인원은 급격히 줄어든 반면 고시를 통해 뽑은 인원수는 완만히 상승한 것을 알 수가 있었다. 또 1964년, 1965년, 1966~73년의 기간에 대해서는 공무원 임용 방식에 대한 비교 통계를 보여주는 2차 자료들을 찾을 수가 있었다.

이렇게 해서 사무관급 신규 채용 인원 중 행정 고시 채용 비율이 변화한 추세를 정리해보니, 과거 알려졌던 것과는 전혀 다른 양상이 나타났다. 정부 수립 초기(1948~52년) 4.7%에 불과했으나 이승만 정부 중후반(1953~59년)에는 48.3%로 급증했다가, 박정희 정권 초기에는 군 출신 대거 특채로 인해 38.3%(1964년), 35.6%(1965년)로 다소 하락했다가 이후 다시 점진적인 증가 추세를 보여 55.0%(1966~73년), 65.2%(1977~79년), 64.6%(1980~87년), 70.4%(1988~95년)로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공무원 시험에는 행시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의 7급과 9급 공채에 해당하는 시험도 중요한데, 이승만 시대의 가장 큰 문제는 가장 인원수가 많은 9급에 대해 공채가 시행되지 않은 것이었다. 이것이 엽관제와 정실 인사의 폐해를 낳는 중요한 원인이 된 것이다. 그런데, 9급 공채를 처음 시작한 것은 4.19 혁명 후 장면 정권이었다.

의무 교육 제도의 도입과 아울러 농지 개혁의 시행이 교육의 급격한 팽창을 가져왔는데, 당시 대학생 숫자가 급격히 늘었지만 졸업 후 일자리가 없어서 대학생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었다. 4.19 혁명으로 탄생한 민주 정부는 고학력 청년 실업에 대한 학생들의 불만에 민감할 수밖에 없었고, 이를 해소하기 위해 대규모의 9급 공채 시험을 처음 실시한 것이었다. 이는 능력주의 관료제 확립에 4.19 혁명과 장면 정권이 공헌한 바를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국 경제 발전에 박정희의 공헌이 전혀 없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기존 문헌들이 박정희의 공로를 지나치게 과장한 것은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고 본다. (☞관련 자료 : Demystifying the Park Chung-hee Myth: The Critical Role of Land Reform in the Evolution of Korea's Developmental State)

또 농지 개혁이 지주 계급 해체로 국가 자율성을 제고했을 뿐 아니라 급격한 교육의 확대를 가져와 이것이 4.19 학생 혁명은 물론 능력주의 관료제를 확대, 발전시키는 강한 압력으로 작용했다는 점에서 한국의 발전 국가 형성의 초석을 쌓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농지 개혁으로 이룬 평준화의 성과가 사라지고 부와 소득 분배의 양극화가 다시금 심각해지고 있는 오늘날 농지 개혁의 의미를 되새기는 것은 단순한 과거의 회고를 넘어서 현재와 미래에 대해 중요한 정책적 함의를 가진다고 본다.

(농지 개혁의 성패가 이후 엽관주의와 능력주의 관료제에 미친 영향을 놓고서 한국, 대만, 필리핀의 3개국 사례에 대한 비교 분석과 더 폭넓은 국가 간 양적 비교는 필자가 펴낸 [Democracy, Inequality and Corruption: Korea, Taiwan and the Philippines Compared](Cambridge University Press 펴냄)에서 이뤄졌다. 이 책은 9월 말에 <동아시아 부패의 기원 : 문제는 불평등이다>(김재중 옮김, 동아시아 펴냄)로 번역 출판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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