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립 1년도 안 된 벤처기업이 업계 선두 대기업을 제치고 정부 사업 총괄 책임기관이 됐다. 바이오에탄올 관련 기업인데, 대표이사는 이 분야 경력이 전혀 없다.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했고, <한국경제신문> 기자로 오래 일했다. 이 회사는 정부로부터 66억7000만 원을 지원받았다. 그런데 정부의 사업 지원 내용엔 이 회사의 업종인 바이오에탄올이 없었다. 게다가 이 회사는 대우조선해양으로부터도 54억 원대 특혜를 받았다.
기자 출신인 회사 대표이사는 최근 사기죄로 구속됐다. 기술 수준을 터무니없이 부풀려서 투자를 받았다는 이유 때문이다.
2009년 1월 설립된 이 회사 이름은 바이올시스템즈다. 초대 대표이사는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출신이 맡았었다. 이듬해인 2010년 10월, 부사장이 영입됐다. 그리고 다음달인 2010년 11월, 그는 새로운 대표이사가 됐다. <한국경제신문> 기자로 14년 이상 일했던 김인식 대표이사다.
<한국경제신문> 기자 출신 벤처기업인, 최경환, 강만수…수상한 관계
바이올시스템즈가 정부와 대기업으로부터 지원을 받을 수 있었던 배경에 김인식 대표이사의 인맥이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정재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8일 보도자료에서 김 대표이사와 최경환 새누리당 의원, 그리고 강만수 전 산업은행장 사이의 관계에 대해 거론했다. 이날 국회에서 열린 조선·해운 산업 구조 조정 연석 청문회(서별관 회의 청문회)를 앞두고 뿌린 자료다.
최 의원은 지난 1999년부터 2004년까지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및 편집부국장 등을 지냈다. 김 대표이사와 같은 직장에서 근무한 인연이 있다.
또 강 전 산업은행장은 이명박 정부 인수위원회 간사를 맡았었고, 이후 기획재정부 장관을 지냈다. 당시 김 대표이사는 인수위 및 기획재정부 출입 기자였다. 또 강 전 산업은행장은 <한국경제신문> 필자로 활동한 적이 있다.
참여 자체가 불가능한 사업, 대기업 제치고 따내…당시 장관은 <한경> 출신 최경환
바이올시스템즈가 지식경제부(현 산업통상자원부)로부터 지원받았던 배경에는 최 의원이 있다는 게 정 의원의 주장이다. 바이올시스템즈는 설립 10개월째인 2009년 10월 지식경제부가 발주한 '신재생 에너지 기술 개발 사업'의 총괄 과제 및 세부 1과제의 총괄 주관기관으로 선정됐다. 이 분야 선두 기업인 SK에너지를 제쳤다. 그 결과, 2011년까지 66억7000만 원을 지원받았다.
그런데 이 사업은 태양광, 풍력, 수소 연료전지 전략 기술 개발 사업과 전력 생산 실증 연구 사업을 지원한다고 돼 있다. 바이올시스템즈의 사업 분야인 바이오에탄올과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 정 의원은 "바이올시스템즈의 참여 자체가 불가능한 사업"이라고 지적했다.
최 의원은 지난 2009년 9월부터 2011년 1월까지 지식경제부 장관을 지냈다. 사업자 선정이 장관 재직 시절 이뤄졌던 셈. 게다가 바이올시스템즈을 주도한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역시 당시 지식경제부 산하 기관이었다. 김 대표이사와 최 의원의 관계에 주목하는 이유다.
정 의원은 "결국 이 사업은 2012년 11월, '자료 미흡 및 상용화 어려울 것으로 판단' 등의 최종 평가 결과 보고서를 제출하고는 아무런 성과 없이 종료"됐다고 밝혔다. 바이올시스템즈는 지난해 바이오에탄올 제조업에서 건강 기능 식품인 크릴 오일 제조업으로 업종을 바꿨다.
정 의원은 "(바이올시스템즈 관련 의혹에 대해) 최경환 의원이 떳떳하다면 청문회에 나와 국민 앞에 진실을 밝혀야"한다고 주장했다.
대우조선해양의 특혜, 배후엔 강만수?
바이올시스템즈는 대우조선해양으로부터도 특혜를 받았다. 용역 비용 44억 원, 지분 투자 약 5억 원, 대우조선해양의 자회사인 BIDC가 한 지분 투자 약 5억 원 등이다. 합치면, 54억 원쯤 된다.
이런 특혜의 배경에는 강 전 산업은행장이 있다는 게 정 의원의 주장이다. 강 전 산업은행장 재직 시절 내려진 결정이라는 게다. 산업은행은 대우조선해양의 대주주다. 따라서 강 전 산업은행장은 대우조선해양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였다. 그리고 바이올시스템즈 대표이사와 강 전 산업은행장은 취재 과정에서 형성된 인맥이 있었다.
김인식 바이올시스템즈 대표이사는 현재 구속된 상태다. 이 회사는 해조류에서 바이오에탄올을 뽑아내는 기술이 있다며 투자를 받았지만, 상업용 양산 기술은 없었다. 사업화가 언제 이뤄질지 모르는데, 투자를 받았던 게다. 또 이 회사는 필리핀에 10만㏊의 우뭇가사리 양식장을 확보했다고 했다. 그러나 실제로 확보된 면적은 55㏊에 불과했다. 이런 거짓말 때문에 사기죄가 적용됐다.
<한경> 주필의 옹호 칼럼
한편, 정규재 <한국경제신문> 주필은 지난달 29일 "구속된 벤처인 김인식의 경우"라는 칼럼을 게재했다. 김 대표이사를 옹호하고, 그를 구속한 검찰을 비판하는 내용이다. 검찰은 대우해양조선 비리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김 대표이사를 구속했다. 남상태 전 대우조선해양 사장의 증언을 근거로 삼았다. 이에 대해 정 주필은 "남상태가 강만수의 강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투자했다고 주장한다면 김인식의 사기죄는 무죄"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런 논리는 허점이 있다. 김 대표이사가 회사의 기술 수준을 허위로 홍보했다는 점은 외면했다. 그리고 "강만수의 강압"이 가능했던 이유에 대해서도 입을 다물었다. 정 주필이 속한 <한국경제신문>에서 김 대표이사가 근무하며 만든 인맥이 없었다면, "강만수의 강압"은 아예 없었을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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