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조정, 우리 사회에 익숙해진 말이 됐다.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한국에는 구조조정을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확산해 있다.
특히 기업 경영자들은 자신들의 과오와 책임은 묻어두고 오직 '경영상 불가피'를 내세우며 구조조정을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도구로 아주 쉽게 또 자주 사용해왔다.
그러나 구조조정이라는 이름하에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노동자들이 하루아침에 거리로 내몰려 노숙자로 전락했고, 쌍용자동차 사태처럼 여러 사람을 죽음으로 내몰기도 했다.
구조조정이 사회 또는 조직을 '효율적'으로 재편하기 위해 불가피한 선택일 수밖에 없다면, 구조조정을 하는 쪽과 당하는 쪽 모두가 수긍할 만한 명분과 원칙, 방법에 의해서 이루어져야 한다.
모든 분야가 그런 것처럼 대학에도 구조조정의 칼바람이 불고 있다. IMF 이후 망할 것 같지 않았던 기업, 심지어 은행과 같은 곳이 하루아침에 문을 닫는 상황 속에서도 그동안 대학은 건재해 왔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학력인구의 급속한 감소와 정부의 무분별한 대학 인가, 대학의 무분별한 백화점식 확장 등으로 더 이상은 현재의 대학을 유지하기 어렵게 됐다. 무슨 일이 있어도 대학이 문을 닫는 일이 없을 것이라는 말은 이젠 옛말이 됐다. 대학불사(大學不死)의 시대가 종말을 맞은 것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교육부도 자신들의 책임과 과오는 묻어두고 대학 구조조정을 압박하고 있다. 국민 혈세를 가지고 정부재정지원 사업이란 이름으로 대학을 흔들어대고 있다. 돈줄을 쥐고, 대학가를 옥죄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대학과 교수들은 교육과 연구에 쏟아야할 역량을 정부의 재정지원을 위해 받기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다.
최근 이화여자대학교에서 벌어진 사태들도 돈줄을 쥔 교육부 사업에 선정되기 위한 것일 뿐, 이화여대 발전을 위한 그 어떤 명분도 비전도 찾기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교육에서 조차 효율화 논리를 내세운 구조조정이란 칼을 들이댈 수밖에 없는 사태를 만든 장본인인 국가와 정책집행자들의 책임과 반성은, 기업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찾아볼 수 없다.
강원대학교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태도 마찬가지다. 최근 강원대는 '구조혁신 추진(안)'을 발표했다. 학과구조 조정을 하지 않으면 최대 30%까지 정원을 감축하겠다는 것이 주요 골자다.
강원대의 '구조혁신 추진(안)'을 뜯어보면, 어떤 명분도, 방향도, 비전도 제시되지 않았다. 오로지 구조개혁의 불가피성만 역설하고 있을 뿐, 누구를 위해 강원대를 어떻게 어떤 과정을 거쳐 발전시키겠다는 구체적인 방안이 담기질 않았다.
김헌영 총장은 '구성원 여러분께 드리는 글'을 학교 홈페이지에 게시해 구조조정의 불가피성만 강조하고 있다. '2주기 대학 구조개혁 평가'를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니 동참해달라는 논리만 있을 뿐이다. 한마디로 교육부의 재정지원을 받아야 하니까 어쩔 수 없다는 식이다.
지난달 23일 열린 공청회에서는 어느 한 교수가 '먼저 비전을 제시하라'는 요구를 했다. 하지만 이런 요구에 대해 강원대 대학본부 측은 추후에 제시하겠다는 입장만 밝혔다. 순서가 바뀌어도 한참 바뀌었다.
'구조조정이 다른 지표의 개선보다 얼마나 더 좋은 점수를 받는데 유리한지 구체적으로 제시해보라'는 질문에는 명쾌하게 답변하지 못한 채 '2주기 대학 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는 불확실하고도 모호한 답변만 되풀이했다. 명분과 비전, 학문보호, 학생을 위한 배려 등은 찾아볼 수 없었다.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면, 먼저 비전을 제시하고, 그 대전제 아래에서 여러 구성원과의 소통을 통해 모두가 수긍할 만한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 대학본부의 역할이다.
거점국립대 조차 이럴 수밖에 없게 만든 교육부도 문제지만, 강원대도 구조조정의 최대 피해자는 교수가 아닌 힘없는 '학생'임을 결코 간과해선 안 된다. 자율을 위장한 원칙 없는 강압적 구조조정은 미래를 담보할 수 없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강원대가 추진하는 '구조혁신 추진(안)'은 교무회의를 막 통과해 이제 시작일 뿐이다. 지금이라도 구조조정의 필요성과 방향, 비전제시 등 원점부터 차분히 점검하고 구성원과의 소통에 나서야 한다.
정부 돈을 지원받겠다고 하는 구조조정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강원대는 거점국립대의 체면과 위상에 맞는 원칙과 명분을 갖고 구조조정에 나서야 한다. 특히 구성원들로부터 구조조정의 필요성부터 동의를 받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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