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정보 씨(54세)는 부산에서 7년째 택시를 하고 있다. 젊은 시절에는 신발 공장에서 일을 했다. 공장에서 해고된 후에는 트럭에 생선을 실어 부산 시내를 다니며 장사를 했다. 그래도 돈벌이가 시원찮아 세 살배기 딸을 어린이집에 맡기고 아내와 이것저것 장사를 했다. 그렇게 모은 돈으로 작은 고깃집을 차렸다. 그런데 1년도 채 안 돼 쫄딱 망했다. 당장 입에 풀칠을 하기 위해선 뭐라도 해야 했다. 그래서 뛰어든 것이 택시 운전이다.
박무열 씨(60세)는 회사원 생활이 적성에 맞지 않아 그만두고, 1984년부터 부산 '제일교통'에서 13년간 택시를 했다. 택시를 운전한 지 3년 동안은 벌이가 좋았다. 한 달에 200만 원~400만 원까지 벌었다. 1986년도에 정부가 택시 노동자에게 월급제를 적용시키자 더없이 좋았다. 그러다 1987년 7월 정부는 월급제를 없앴다. 현장은 다시 사납금 제도로 돌아갔다. 박 씨는 월급제를 지키기 위해 노조위원장을 맡아 앞장서서 택시 노동운동에 뛰어들었다. 7년간 해마다 파업을 했다. 사업주는 노조가 싫어서 위장폐업을 했다. 투쟁하는 과정에서 아내와 헤어지는 아픔도 겪었다. 박 씨는 이후 화물 트럭을 하다 다리를 다쳤다. 하는 수 없이 2014년부터 다시 해동택시에서 법인 택시를 시작했다.
"12시간 넘게 뼈 빠지게 일했는데 사업주는 4시간 40분 일한 것만 돈을 주고, 사납금 부족분이 40만 원 넘어가면 또 4만5000원을 떼입니더."
이런 경우가 있나. 12시간 일했으면 12시간 일한 만큼 돈을 줘야 한다. 그런데 사업주들은 기사가 밖에 나가면 일을 하는지 안 하는지 알 수 없다는 핑계로, 소정 근로시간을 적게 책정했다. 하지만 디지털 운송 기록 장치에 승객 수·요금·이동 거리부터 실시간 위치·연료 사용량·브레이크 밟은 횟수까지 저장된다. 시청 상황실에까지 실시간 위치가 표시되므로 노동 시간만큼 최저임금 이상으로 산정하는 것이 맞다.
사납금 제도는 기사가 회사에 내야 하는 최소 금액이다. 24시간 택시를 끌고 나가는 '일차(日車)'의 경우 사납금은 사업장에 따라 13만1000원~13만4000원이다. 승객이 없어 벌이가 적어도 무조건 내야 한다. 이 금액을 못 채우면 미수금으로 남는데, 임금을 정산할 때 못 채운 돈만큼 사업주가 뗀다. 그리고 미수금이 40만 원 이상 되면, 성실수당 18만 원에서 25퍼센트를 공제한다.
"고리대금 업자보다도 더합니다. 택시로는 도저히 살 수가 없어요."
한 달 최소 납입액인 308만2000원을 맞추기 위해 노동자들은 심야 노동을 포함 12시간 이상을 일해야 한다. 술 취한 손님에게 반말, 욕설을 듣고 '귀퉁이'도 여러 번 맞았다. 이렇게 온갖 모욕을 감수해서 손에 쥐어지는 돈은 월 110만 원이다.
회사가 사납금을 고집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사납금으로만 매출을 잡으니 세금을 덜 내고, 기사에게 지급해야 할 퇴직금이나 휴업 급여는 줄어든다. 사업주는 하나도 손해 볼 게 없다. 그래서 박 씨 같은 의식 있는 택시 노동자들이 오랜 시간 입법 투쟁을 해 1997년 기사 월급제인 '전액관리제'가 도입됐다. 전액관리제는 택시기사가 당일 운송 수입금 전액을 회사에 입금하면 회사가 다달이 기사에게 월급을 주는 방식이다.
또 2009년에는 택시 노동자에게도 최저임금법을 적용하라는 '택시최저임금법'이 발효됐다. 그리고 오는 10월 1일부터는 '운송경비 전가행위 금지법'이 시행될 예정이다. 운송경비로는 신차 구입비·연료비·콜비·카드 사용 수수료·사고 수리비 등이 해당되는데, 이런 모든 비용은 사업주가 내야 한다. 제도로만 보면 별 문제 없어 보인다. 그런데 현실은 대부분 사업장에서 버젓이 사납금 제도를 운영하면서 운송경비도 노동자들이 부담하고 있다. 게다가 사납금을 못 채웠다는 이유로 최저임금도 못 받고 있다.
가장 큰 원인은 사업주와 어용노조가 이 같은 임금 체계에 합의했기 때문이다. 현재 민주노조라고 할 수 있는 곳은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조 택시지부(택시지부)뿐이다. 심 씨가 일하는 '한남교통'에는 4개의 노조가 있는데, 전체 150명 노동자 중 택시지부에는 24명만 가입해 있다. '한남교통분회'는 부산지역 민주 택시 운동의 중심 사업장이다.
그다음 원인으로는 주무 부처인 국토교통부와 관할 관청, 고용노동부의 허술한 관리다. 버젓이 불법 사납금제가 판을 치고 있는데도 전액관리제가 시행된 지 무려 16년이 지나서야 처음으로 단속이 이루어졌다. 법령에는 분기별 1회 이상 단속하도록 명시되어 있는데도 말이다. 또 적발이 되더라도 실제로 처벌을 받은 사업장은 거의 없고, 1차 적발 시 과태료도 500만 원이지만 200만 원으로 경감 받았으니, 말 그대로 솜방망이 처벌일 뿐이다.
전액관리제를 시행하면 정말로 택시 회사들이 망할까? 논란이 있을 때마다 택시 사업주들은 경영난에 허덕인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택시지부 이삼형 정책국장은 이렇게 말한다.
"택시 회사들이 적자라고 하면서 내세우는 3대 거짓말이 있어요. 첫째, 승객이 없다. 둘째, 연료비가 올랐다. 셋째, 기사가 부족해서 노는 차가 많다."
이어서 이 정책국장은 이렇게 반박했다.
"첫째, 승객이 없어도 택시 노동자가 힘들지 사업주는 하나도 안 힘들어요. 둘째, 연료비가 오를 때마다 사납금을 해마다 1000원~2000원 인상했지만, 이후 연료비가 하락해도 사납금은 그대로죠. '해동택시' 관리자 말이 한 달에 6000만 원씩 수입이 생긴다고 했다니까요. 셋째, 사업주가 스스로 노는 차를 만드는 겁니다. 왜? 국토교통부가 공급 과잉을 해결하기 위해 법인 택시를 대당 2500만 원에 매입해 폐차하는 사업을 하고 있어요. 노는 차가 있어야 국토부에서 매입을 하죠. 하지만 노는 차를 없애도 영업하는 차는 그대로예요."
사업주가 거저 먹는 돈도 있다. 일부 택시 회사에는 노름방이 있는데, 사업주는 이를 알고도 묵인한다.
"도박에 빠져서 일을 안 나간 기사는 사납금은 사납금대로 내고, 회사는 연료비 지출이 없으니 따따불이죠."
사고가 발생해도 마찬가지다. 상대 보험회사로부터 수리비를 받은 사업주는 자기 정비소에서 자기 직원을 시켜 수리한다.
"사장들이 '택시 힘들다 힘들다' 하는데, 그럼 때려치우면 될 거 아니에요. 그런데 안 때려치우는 이유가 이런 눈먼 돈이 있어서 그래요."
사업주와 어용노조의 빗나간 욕망 때문에 택시 사고 발생률도 높아진다. 사납금에 쫓긴 택시 기사가 승객을 한 명이라도 더 태우려고 급정거는 물론 무리하게 차선 변경을 하는 광경은 이제 익숙하다. 사업주야 사고가 나도 손해를 보지 않으니 상관없다.
이런 상황에서 소수의 택시지부 조합원들이 현장을 바꾸기란 무척 힘든 일이다. 사업주와 어용노조의 탄압을 각오해야 하기 때문이다.
"민주노조 하려면 세 가지를 포기해야 해요. 3포(抛), 즉 새 차·무사고 근속제도·정년 보장. 우리 조합원들 차 보세요. 전부 똥차지."
손님들은 새 차를 선호하니, 똥차를 모는 지부 조합원들에겐 불이익이다. 한남교통 차고지에 들어선 차들을 보니 한눈에 조합원 차들을 알 수 있었다. 빛바랜 구형 차들에 세월호 스티커와 택시 지붕의 파란색 등.
"파란색 등은 콜 업체를 이용하지 않는 차들이에요. 한 달 콜비가 5만4000원이거든요. 그래서 조합원들은 콜비 수수료가 없는 카카오택시를 이용하고 있어요."
한남교통 심정호 조합원은 2015년 4월 16일부터 253일간 '생탁' 해고자 송복남 씨와 부산시청 앞에서 고공농성을 했다. 그 투쟁을 계기로 택시 노동자들이 뭉치기 시작했다. 지난 6월 28일 투쟁선포기자회견을 마친 뒤 한남교통 천막 농성장에 사람들이 모였다. '천광운수' 김병기 씨, '해동택시' 박무열 씨도 참석했다. 이들은 전액관리제를 기사들에게 어떻게 이해시킬 것인지, 또 구체적으로 회사와 어떻게 협상할 것인지를 심도 있게 논의했다.
전액관리제와 사납금을 비교한 자료를 보면, 사납금을 없애고 소정근로시간을 월 8시간, 기본 월급 122만 원으로 정해도 사업주는 걱정할 것이 없다. 기본 월급만 갖고는 택시 기사들이 생계를 유지하기 어렵다. 기사들은 추가 수입을 벌려고 일을 더하니까 부산시 운송비 총 수입은 그대로일 것이다.
"공차율도 줄어듭니다. 지금은 손님 하나를 태우려고 세 대가 경쟁하니까 한 대만 가동되고 두 대는 빈 차로 돌아다닙니다. 하지만 전액관리제에서는 다른 기사가 번 운송료도 모두에게 돌아가니 그럴 일이 없죠."
사납금 압박에서 해방된 기사들은 손님에게 더 친절하게 대할 수 있을 것이고 사고 발생률도 줄어들 것이다. 그러면서 하루 8시간만을 일하고도 가져가는 월급은 사납금 제도하에서보다 70만 원~80만 원은 더 많아질 것이다. 운송수입금은 투명하게 관리되고 부정한 돈들은 사라지게 될 것이다.
이들은 부당한 택시 구조를 바꾸기 위해 많은 손해를 감수하고 있다. 하지만 당장 현장이 바뀔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이들이 투쟁을 계속하는 이유가 있다. 심정보 씨는 간결하게 말했다.
"이게 옳은 일인데 포기할 수는 없지요."
박무열 씨는 바라는 점을 말했다.
"택시 현장 개선되는 거, 그리고 예전 마누라하고 다시 같이 사는 거, 요 두 가지만 이루어지면 좋겠네요. 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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