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께서는 국회에서 추천한 특별감찰관 후보자 가운데 이석수 변호사를 오늘 특별감찰관으로 지명하셨습니다.
이석수 변호사는 약 22년 동안 검사로 재직하면서 대검찰청 감찰1, 2과장과 춘천 전주지검 차장검사 등을 거쳐 감찰업무의 전문성과 수사경험을 두루 갖췄고, 변호사 개업 후에는 내곡동 사저 부지 매입 의혹 사건 특검 특별검사보를 역임하는 등 풍부한 법조경험을 갖고 있어 이번에 최초로 시행되는 특별감찰관의 적임으로 판단했습니다.
특별감찰관 도입은 대선공약 사항으로 집무상 독립성이 보장되는 특별감찰관이 대통령의 친인척과 수석비서관 이상 공무원들의 비위행위를 상시적으로 감찰하는 제도입니다. 앞으로 국회의 인사 청문을 거쳐 특별감찰관이 임명되면 대상자들의 비위를 사전에 예방하고, 공직사회에 청렴성을 확보하는 전기가 마련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새누리당 민경욱 의원이 청와대 대변인 시절이던 2015년 3월 6일 나온 브리핑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석수 특별감찰관을 "적임"으로 판단하고 국회 추천을 받아 임명했다. 국회 추천이긴 해도, 대통령이 임명하는 인사라 기본적 검증은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했을 것이다. 우 수석은 이석수 특별감찰관 인사가 나기 직전인 지난해 2월 민정비서관에서 민정수석으로 '승진'했다.
특별감찰관제 도입은 박근혜 대통령의 18대 대선 공약이었다. 박 대통령이 당선된 후 1년 반 만에 법이 통과됐고, 고르고 고른 인물인 이석수 특별감찰관이 감격의 첫 임명장 수여 대상이 됐다. 수석급 이상 측근들, 대통령의 친인척들의 비리가 근절될 것으로 봤다. 그런데, 그게 잘 안 되고 있는 것 같다.
그 특별감찰관을 박 대통령이 불신임했다. "보도된 것이 사실이라면"이라는 전제를 깔았지만, 청와대는 19일 오전 공식 입장을 내고 이 특별감찰관이 특정 언론 기자와 주고받은 말이 보도된 데 대해 "이것은 명백히 현행법을 위반하는 중대 사안이고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규정했다. 마침 한 보수단체가 이 특별감찰관을 고발했다. 청와대가 특별감찰관의 "명백히 현행법 위반"이라니, 그를 수사할 검찰의 입장은 '안 봐도 비디오'다.
<MBC>의 녹취록 보도는 왜 특별감찰관을 겨냥했을까? 사실 이 보도로 제기된 의문은 세 가지다. 일단 특정 언론사 내부 정보가 <MBC>에 어떻게 흘러 들어갔는지, 유입 경로가 의문이다. 그리고 보도된 대화 내용에서 언급되고 있는 박 대통령과 우 수석의 '감찰 방해' 의혹, 이것이 두번째 의문이다. 마지막으로 특별감찰관과 모 기자의 대화가 과연 '감찰 내용 누출'인지 아닌지, 세 번째 의문이다. 청와대는 다른 것 다 차치하고 세번째 의문을 문제삼았는데, 이미 '감찰 내용 누출'로 판단을 내려버렸다.
문제는 세번째 의문에 대한 청와대의 판단이 제대로 된 것인가 여부다. 논란이 있다. 이 특별감찰관의 녹취록을 봤을 때, 특별한 감찰 결과 누설로 여겨지는 부분은 없다는 것이 법조계의 대체적 의견이다. 오히려 우병우 수석과 박근혜 대통령이 이 특별감찰관을 꽁꽁 묶어 놓은 듯한 정황이 여기 저기에서 보인다.
이 특별감찰관은 "민정에서 (경찰) 목을 비틀어놨는지 꼼짝도 못한다"며 "(민정이) 벌써 여러 군데 손썼다는 걸 느낀다"고 했다. 그는 "우(병우)가 아직도 힘이 있다. 검찰이든 경찰이든 째려보면 '까라면 까니까'"라고도 했다. 또한 이 특별감찰관은 "감찰은 원래 기관장 힘을 입고 진행하는 것이며, 나 또한 검찰에서 감찰과장 할 때 총장 '빽'(힘)으로 했다"며 "그런데 감찰을 받는 쪽에서 그러고 있으니…"라고 했다. 대통령이 자신의 직속 기관인 특별감찰관과, 그 기관의 감찰 대상인 우 수석 사이에서, 오히려 우 수석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다는 것처럼 들린다.
종합하면 특별감찰관에게는 분명 '성역'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누구든 감찰 대상이 될 수 있지만, 대통령 측근은 감찰 대상이 될 수 없다. 자신이 임명한 감찰관을 자신이 비난하는 이런 경우라면, 앞으로 누가 특별감찰관이 되더라도 상황은 뻔할 것이다. 아니, 제대로 된 인사가 특별감찰관이 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까울 것이다.
박 대통령 대선 공약집 383페이지에는 특별감찰관제 도입 필요성으로 "대통령과 관련한 감찰에 있어 독립권이 보장되지 않아 적절한 수사가 이루어지기 어렵다"는 점이 적시돼 있다. 이같은 상황 때문에 "국회가 추천하는 특별감찰관제를 도입하고 조사권을 부여해서 대통령의 친인척 및 측근들의 비리와 부패 근절"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너무나 좋은 취지다.
우 수석의 문제는 분명 '비리' 의혹이다. 박 대통령의 대선 공약 취지에 꼭 들어맞는다. 특히 우 수석 가족 기업인 '정강'을 둘러싼 의혹이 그렇다. 전형적인 조세 포탈 방식이라는 법조계의 지적은 그냥 나오는 것은 아니다. 직원도, 사무실도 없는 이 회사는 통신비와 접대비 등으로 1억3993만 원을 비용처리했다. 일반인이 이런 일을 벌였다면 당장 검찰이 수사에 돌입했을 것이다. 의경으로 근무하고 있는 아들의 보직 변경 의혹도 그렇다. 우 수석이 관여했든, 경찰이 '알아서 기었'든 규정을 무시한 채 특정인에게 특혜성 인사를 진행했다. 이처럼 "대통령 측근"을 둘러싼 "비리와 부패" 정황이 있는데도, 박 대통령은 우 수석을 감싸고 있다.
박 대통령은 이 특별감찰관의 우 수석 검찰 수사 의뢰를 '대통령 흔들기'로 보고 있는 듯하다. 감찰 내용을 떠나, 대통령을 흔드는 것 자체를 용납할 수 없다는 의지가 느껴진다. 자신의 대선공약으로 생긴 제도가 정작 자신을 겨냥하니, 기가 막힐 것이다.
본인의 대선 공약을 이렇게 무력화시키는 대통령이 또 있을까? 참으로 아이러니한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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