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리대 구입 비용을 감당하기 힘들었던 저소득층 청소녀들의 이야기가 이슈가 되었다. 이를 계기로 생리, 월경경험, 생리대 가격 등의 논의들이 가득하다. 9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매해 열리던 '월경페스티벌' 이후 정말 오랜만이라 반갑다.
예전에는 생리대에 부가가치세가 포함되어 있었다. 2002년 여성민우회에서는 '생리대 사용 현황 및 사용자 의식에 관한 조사'와 캠페인을 통해 실상을 알리고, 생리대를 생활필수품으로 볼 것을 제기했다. 그리고 이에 붙는 부가가치세의 면세, 특히 영세율을 요구했다. 그러나 국내 소비재의 완전 영세는 없다는 이유로, 부분 면세가 결정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리대 가격은 내려가기보다 더욱 높아졌다. 한국의 생리대 시장은 LG, P&G와 같은 거대 기업의 독과점 상태이다. 종류는 분명 예전보다는 많아졌지만, 생리대의 전반적 가격은 끊임없이 상승했다. 나만 해도 한 달에 약 1만3000원 정도 지불한다. 이삼일 누워 있느라 삶의 질이 엉망이 되는 것과 진통제 값과 얼룩진 이불을 빠느라 추가된 수도세와 전기세는 치사해 보이니 계산하지 않겠다.
여러 곳에서 생리 경험이 말해지고 있고, 해결책을 찾기 위한 시도가 이어졌다. 더불어민주당 설훈 의원 등은 각 학교에 생리대 비치 의무화를 위한 학교보건법의 개정안을 내놓기도 했다. 각 지자체에서도 저소득층 미성년자에게 생리대를 지원하기 위한 방안들을 내놓기 시작했다.
반발들도 있다. 사적인 일에 세금을 낭비한다, 기업은 자선 사업가가 아니다, 개인의 생리 현상은 각자가 해결하라 등 여자들 생리대까지 나라가 해 주길 원하는 건 과하다는 주장들 말이다. 이들의 주장 기저에는 '여자들에겐 돈이 든다'는 사고가 있다. 사실 이런 생각은 흔하다. 더치페이(각자 부담) 하지 않는 여성 때문에 데이트 비용이 부담된다는 말부터 여성을 채용하면 기업 부담이 가중된다는 논리까지. 이들은 '낭비'라는 개념과 '여성'을 함께 배치한다.
잠시 2000년대 초반을 생각한다. 그때만큼 노골적으로 '과비용', '세금 낭비', '기업 부담'이라는 말이 넘치던 때가 없다. 당시는 모성보호법 논의와 근로기준법 개정의 논의가 뜨겁던 때다. 모성보호법 논의 중에 한쪽에서는 출산휴가를 90일로 늘리려면 생리휴가를 폐지하라 주장했다. 두 가지 '혜택'을 모두 주면 여성근로자를 고용하는 데 너무 큰 비용이 든다는 요지였다. '이중 혜택'이라고 했다. 임신 시기와 수유기에는 생리를 하지도 않는데, 어떻게 이중 혜택인지 모르겠다만 말이다. 여성계의 노력 끝에 2001년 모성보호법은 입법됐다. 여러 의미가 있지만, 단연 출산휴가 60일에서 90일로의 확대다.
그 이후 근로기준법의 개정 이슈가 불거졌다. 생리휴가제 조항은 근로기준법 제71조(현재 73조)이다. 모성보호 입법 이후 생리휴가제 폐지에 대한 주장은 더욱 강렬해진다. 이미 출산휴가 확대를 이루었는데 유급 생리휴가까지 유지하면 기업에 지나친 비용 부담을 준다는 주장이 반복되었다.
여성 관련 조항들과 관련한 비용은 대체 얼마나 될까? 출산휴가 등의 확대가 기업 부담을 초래한다고 주장하던 의원들은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에서 제공한 계산에 근거해 모성보호법으로 인한 기업 부담이 육아휴직의 경우만도 3조4000억 원이 든다고 주장했다. 이 계산은 휴가 사용대상 남녀 모두, 즉 100%가 사용할 때를 상정하고 있다. 의도적인 과다 추산의 전형이다.
하지만 당시 흥미로운 발언이 있었다. 민주당 한명숙 의원은 2000년 12월 제215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자체적으로 산출한 모성보호비용을 제시했다. 한 의원은 경총의 주장과는 달리 출산휴가 비용은 928억 원, 유급태아검진휴가 비용은 248억 원이 예상되며, 육아휴직 유급 전환 시(지난해 육아휴직을 신청한 1970명보다 신청자가 10배 증가해도) 경총의 3조 원이라는 계산은 나올 수 없다고 반박했다.
하물며 모성보호 조항 중 기업의 전액 부담 비중은 적을 뿐 아니라, 비용 대부분이 사회 분담으로 이뤄진다. 한 의원은 해당 근로자 기본 10만 명에 사회 분담 비용을 고려할 때 "기업주에게 직접적으로 가는 부담은 몇백억 원"이라고 말했다. 당시 남성이 육아휴직 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현재도 획기적으로 늘지는 않았다. 하물며 생각해야 할 것은 엄청난 저출산 현상이다. 그런데 여성근로자 100%가 육아휴직을 사용할 것이라고? 반대로 경총이나 이를 대변하는 의원들은 생리휴가에 드는 비용이 과다하다면서도 도리어 그 비용의 정확한 수치는 제공하지 않는다.
상식적 수준에서 추측하자. 저출산일수록 여성들의 생애사(生涯史)에서 임신 출산 기간보다 생리 기간이 더 많다. 길 가는 여성 중 임산부가 많나, 생리 중인 여성이 많겠나. 출산율이 높은 시대와 달리 지금 같은 시대의 여성들은 출산휴가보다 생리휴가를 사용할 가능성이 훨씬 높다. 게다가 출산휴가는 아무리 여성 우호적인 회사라 하더라도 두 번 이상 사용할 가능성이 현저히 낮다. 일단 모든 여성이 애를 낳는 것이 아니다. 둘째, 애를 낳아도 둘 이상 안 낳는다. 셋째, 둘 이상이라면 애 봐 줄 사람이 없어서 대개 여성이 직장을 그만둔다. 이게 현실이다.
물론 유급 생리휴가는 매월 갱신되는 휴가이므로, 그 합산은 만만치 않다. 생리하는 여성이 매월 사야 하는 생리대 부담만 생각해도 추측 가능하다. 눈에 띄지 않게 거대한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비용임을…. 즉, 엄청난 저출산 시대, 여성들의 경력 단절이 거의 일반화된 사회에서 출산휴가 90일을 확대하는 것과 유급 생리휴가를 무급화하는 것 중 기업 비용은 어느 쪽이 높을까? 물론 후자였을 것이라 판단한다. 출산휴가에 드는 비용은 과다 추산하여 제시하고, 유급 생리휴가는 과비용이라 주장하면서도 명백한 증거는 제시하지 않던 이들은, 속내로는 가장 정확한 계산을 마쳤는지도 모르다. '여자에겐 돈이 드네'라면서. 그리고 2003년 근로기준법의 개정으로 유급 생리휴가는 무급화되었다.
여성에겐 돈이 든다? 그래 든다. 질문을 다시 한다. 그럼 왜 여성에게는 돈이 드는가? 돈이 든다고 말하는 사람, 바로 그를 중심으로 사회가 구성되고 운용되기 때문은 아닌가. 게다가 비용을 벌고 쓰는 주체는 그 자신뿐이라고 생각하는 것 아닌가. 이들은 여성에게만 돈이 든다고 말하지 않는다. 장애인, 노동자, 빈자, 외국인 노동자에게도 돈이 든다고 말한다. 자신에게 드는 비용이 아닌 모든 비용은 그저 '낭비' 취급한다. 그러나 언제든, 어떤 이유로든 우리 모두는 그런 비용을 요구해야 하는 삶을 살게 된다. 애초에 그것은 아까운 비용이 아니다. 이토록 다른 신체의, 다양한 상황의 '우리들'이 함께 산다는 것만 인정하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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