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가 베트남을 식민 통치하던 시절이다. 베트남에 유독 쥐가 많았고, 프랑스 사람들은 쥐를 끔찍이 싫어했다. 그래서 내놓은 대책. '쥐를 잡아오면, 상금을 준다.'
많은 돈을 썼지만, 쥐는 오히려 늘었다. 상금을 노린 업자들이 쥐를 사육했던 게다. <죽은 경제학자의 망할 아이디어 : 경제학은 어떻게 우리를 배신하는가?>(마티아스 빈스방거 지음, 김해생 옮김, 비즈니스맵 펴냄)에 소개된 일화다.
'인센티브' 제도에 대한 이야기다. 비슷한 사례는 역사에서 차고 넘친다. 적의 목을 많이 베어온 장수에게 포상한다고 했다. 그랬더니 우리 쪽 백성의 목을 잔뜩 베어왔다. 임금이 항복을 앞둔 순간에도 이런 일이 있었다. 병자호란 당시 남한산성에서 농성하던 상황을 기록한 <산성일기>에도 나온다.
'인센티브' 제도가 기대한 효과를 거두기란, 예나 지금이나 아주 어려운 일이다.
창의성을 관리한다?
정보 기술(IT) 업체 경영진 역시 '인센티브' 고민이 많다. 소프트웨어 개발은 대표적인 정신 노동이다. 일을 열심히 하는지, 아닌지를 외부에서 알기는 힘들다. 컴퓨터 앞에 오래 앉아 있지만, 실제로는 연예 뉴스만 보는 경우도 많다. 반면 자리에 잠깐 머무르면서도, 바짝 집중해서 일하기도 한다. 사람마다 역량 차이도 크다. 그런데 그걸 정확히 파악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근육의 힘은 얼마나 무거운 역기를 들어 올리는지로 측정할 수 있다. 하지만 정신 능력은 평가가 어렵다.
그러니까 경영진은 머리를 쥐어짠다. 유능한 직원을 어떻게 알아볼 건가. 직원들이 업무에 최선을 다하게끔 하려면, 어떤 당근과 채찍을 써야 하나.
'재미'를 팔아 돈을 버는 게임 업계는 이런 고민이 더 깊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기업은 동아리가 아니니까. 창의성을 관리하는, 형용모순의 과제에 도전해야 한다.
실패와 성공은 함께 싹이 잘린다
넥슨은 게임 업계 1위인만큼 직원 인센티브를 둘러싼 고민도 깊었다. 이는 공정한 성과 측정과 맞물린 문제다. 성과가 나쁜 직원에게 더 많은 인센티브를 주면, 아예 안 주느니만 못하다.
게임은 개발자가 만들지만, 성과는 경영진이 측정한다. 개발자와 경영진은 아예 다른 세계에 산다. 인센티브 제도를 도입하려면, 먼저 둘 사이의 거리를 좁혀야 한다. 그게 쉽지 않았다.
2000년대 중반께, 넥슨은 '허들 회의'라는 걸 도입했다. 그전까지 게임 개발은 오로지 개발자의 몫이었다. '허들 회의' 도입과 함께 재무, 마케팅 등 개발이 아닌 부문이 의사 결정에 참여했다. 실패도 줄었지만, 성공도 싹이 잘렸다. 누구나 한마디씩 하는 구조에선 '확실히 망할 게임'을 걸러내기 쉽다. 하지만 '잘 키우면 크게 자랄 싹'을 찾기도 어려워졌다. 가능성을 놓고 설득해야 할 사람이 많아지니까. 결국 '허들 회의'는 폐지됐다.
인센티브가 창의적인 시도를 막았다
누가 열심히 일하는 개발자인가, 누가 뛰어난 개발자인가. 경영진은 늘 이런 궁금증을 품고 산다. 그 답을 찾으려는 시도도 있었다. 넥슨은 이른바 'KPI(Key Performance Index)'라는 지표를 만들어서 성과 측정을 하려고 했다. 하지만 지표를 만드는 단계에서 좌절했다.
2005~2006년께, 유독 이런 시도가 잦았던 건 넥슨 내부 사정과 관계가 있다. 경력이 긴 개발자들이 대거 이탈했다. IT 벤처 기업은 창업 초기 고생한 직원들에게 주식으로 보상하는 경우가 많았다. 주식 시장에 상장하면, 목돈을 챙긴다. 넥슨 개발자도 이런 기대를 품었다. 하지만 창업자인 김정주 NXC 회장은 상장을 거부했다. 상장은 훨씬 뒤인 2011년에 일본 증권 시장에서 이뤄졌다.
남은 개발자들을 다독이려면 파격적인 보상이 필요했다. 성과 측정과 인센티브를 둘러싼 다양한 시도는 그래서 나왔다. 절정은 게임 개발 팀 단위의 보상 제도 도입이었다. 팀이 낸 수익에 비례해서 인센티브를 주는 것이다. 이 제도가 '허들 회의'와 맞물리자, 화학적 변화가 생겼다. 개발자들이 훨씬 보수화됐다.
게임 기획 안이 채택되기란 더 어려워졌다. 재무, 마케팅 담당자까지 참가하는 '허들 회의'를 통과해야 하니까.
이런 피곤함을 감수할 바엔, 지금 서비스하는 게임에서 수익을 극대화하는 게 낫다. 수익이 많이 나는 팀일수록 이런 경향이 두드러졌다. 결국 넥슨이 서비스하는 게임은 이용자의 주머니를 바닥까지 터는 쪽으로 진화했다. 회사 입장에서 당장은 좋은 일이지만, 장기적으론 해롭다. 넥슨은 돈만 밝힌다는 뜻의 '돈슨'이라는 조롱이 쌓이면, 아무리 좋은 게임을 내놓아도 외면당할 게다. 결국 팀 단위 인센티브 제도 역시 '허들 회의'와 함께 폐지됐다.
갑자기 뛴 접대비
인센티브 도입을 둘러싼 실험이 그 뒤로는 잠잠해졌다. 넥슨이 인수합병을 통해 성장하는 노선을 택한 것과 관계가 있다. 보유한 현금을 내부 직원 대신, 다른 기업을 사들이는데 쓰기로 한 것이다.
이와 함께 늘어난 예산이 접대비다. <재벌닷컴>에 따르면, 넥슨의 지난 2004년 접대비는 약 9200만 원이었다. 그런데 2005년에는, 2억 원으로 확 뛰었다. 2006년에는 8억8700만 원이었다. 2년 사이 9배 넘게 오른 것이다. 2012년 이후엔 매년 20억 원이 넘는 접대비를 썼다.
이는 경쟁 기업인 엔씨소프트와 비교해도 확연히 높은 수치다. 2006년부터 2008년 사이, 넥슨의 접대비는 매출 대비 0.4%대였다. 반면 같은 시기, 엔씨소프트의 접대비는 매출 대비 0.13∼0.15%였다.
정작 이 시기, 김정주 회장의 관심사는 다른 데 있었다.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 전문사 과정 진학을 준비 중이었다. 김 회장은 2007년 한예종에 입학했다. 원래 회사에 잘 안 나오는 편이지만, 회사 출입이 더 뜸해졌다고 한다. 김 회장은 이 무렵 연극 공부에 몰입했다. 직접 무대에 서기도 했다. 접대비는, 누가 왜 썼을까.
2005년 이후, 대체 무슨 일이 있었나
넥슨의 접대비가 뛰기 시작한 2005년은, 이 회사의 비상장 주식이 진경준 검사장과 김상헌 네이버 대표이사(당시 LG 법무팀 부사장) 등 법조인에게 넘어간 때였다.
밤을 새며 게임을 개발한 이들은 접근조차 할 수 없었던 주식이 공짜로 넘어갔다. 주식 시장 상장을 둘러싼 갈등 때문에 개발자들이 떠나고, 이를 다독이느라 온갖 인센티브 실험을 해야 했던 시기였다.
2005년 이후 넥슨에서 어떤 일이 있었나? 그 뒤, 활발하게 진행한 기업 인수합병의 배후에 권력의 입김이 작용했나? '은둔형'이라던 김 회장은 왜 그토록 법조인과 가깝게 지내려 했나? 김 회장의 아버지인 김교창 변호사는 어떤 역할을 했나?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의 처가 부동산을 넥슨이 사들인 것과 진경준 검사장의 승진은 관계가 있나? 아직 밝혀지지 않은 게 많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건 인센티브 구조의 변화다. 넥슨은 한때 내부 개발자들에게 인센티브를 주려고 했다. 하지만 여의치 않았다. 결국 진짜 인센티브를 챙긴 건, 게임 개발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법조인이었다. 그들이 접대를 받았고, 그들이 공짜 주식으로 대박을 쳤다.
'넥슨 게이트', 당신의 회사에서도…
지금도 많은 기업이 '인센티브' 제도를 운영한다. 하지만 진짜 열심히 일한 직원이 '인센티브'를 챙기는 경우는 오히려 드물다. '인센티브'란 원래 그런 것이다. 전쟁터에서 목을 많이 베어온 장수가 꼭 명장은 아니다. '진짜 인센티브'를 챙기는 이들은 종종 회사 밖에 있다. 넥슨에 빨대를 꽂았던 법조인들처럼.
직장인들이 '넥슨 게이트'를 '남의 일'로만 여길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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