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맞춤형 국민연금?'
서울고등법원이 지난달 31일 내린 판결을 보고 든 생각이다. 지난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 과정에서 국민연금기금이 취한 행보가 철저히 삼성 총수 일가의 이익에만 맞춰져 있었기 때문이다. 서울고등법원은 이날 합병에 반대하며 주식 매수를 청구한 일성신약에게 적용되는 삼성물산 주식 매수 가격을 5만7234원이 아닌 6만6602원으로 올리라고 결정했다. 이런 결정의 근거를 설명하면서, 재판부는 삼성물산이 고의로 실적을 숨기거나 일감을 회피해서 주가를 낮췄다고 지적했다. 또 국민연금 역시 이런 시도에 협조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했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합병 비율 산정 시점까지는 꾸준히 삼성물산 주식을 팔았다. 삼성물산 주가를 떨어뜨리는 쪽으로 움직인 셈. 삼성물산 주가가 제일모직에 비해 낮아질수록, 두 회사의 합병 비율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총수 일가에게 유리해진다.
합병 비율 산정 뒤에는 국민연금이 반대로 움직였다. 삼성물산 주식을 사들였다. 국민연금은 합병에 찬성하는 입장이었다. 따라서 국민연금의 지분 비율이 높아지는 게 이 부회장 등에게 이롭다.
문제는, 국민연금의 이런 움직임이 국민연금에게조차 손해라는 점이다. '내가만드는복지국가'는 2일 논평에서 이 문제를 지적했다.
지난해 합병 이전 이 부회장 일가의 제일모직 지분 비율은 42.17%, 삼성물산의 지분 비율은 1.41%였다. 당시 산정된 삼성물산 대 제일모직의 합병 비율은 1대 0.35였다. 이 비율에 따라, 이 부회장 일가는 통합 삼성물산 지분 가운데 30.42%를 확보했다.
그런데 지난달 31일 법원이 결정한 삼성물산 주가를 적용하면, 다른 결과가 나온다. 삼성물산 대 제일모직의 합병 비율은 1대 0.418이 된다. 따라서 이 부회장 일가가 차지하는 통합 삼성물산 지분 비율은 28.88%가 된다. 1.54% 지분 비율이 부당하게 오른 셈이다. 합병 후 재상장한 2015년 9월 15일 종가를 기준으로 1.54% 지분 가치는 4758억 원이다.
의도적인 주가 낮추기로, 이 부회장 일가가 챙긴 부당 이익인 셈이다. 이는 결국 국민연금 등 다른 주주의 몫을 빼앗은 것이다.
법원의 이번 결정대로, 국민연금의 지분 가치를 계산하면 788억 원이 증가한다. 국민연금은 스스로 이 돈을 이 부회장 일가에게 넘긴 셈이다. 결국 국민의 노후 자금이 줄어든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 이후, 통합 삼성물산 주가가 떨어지면서 국민연금은 수천억 원대 손해를 봤다. 이와 별도로 계산한 기회 비용이 788억 원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합병을 앞두고, 국민연금 기금본부장이 이 부회장을 사적으로 만난 사실이 뒤늦게 공개됐었다. 합병 찬반 입장을 정하는 과정에서도, 국민연금은 절차를 무시했다.
'내가만드는복지국가'는 이에 대해 "국회 청문회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이 단체는 "부적절한 처신으로 소중한 국민연금에 손실을 끼친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에 대해서도 철저히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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