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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카 바이러스가 보여주는 불평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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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카 바이러스가 보여주는 불평등

[의료와 사회] 국제적인 전염병 감시 체계가 필요하다

한 달 전, 파라과이 PAHO(Pan America Health Organization)에서 내 프로젝트의 담당자로부터 전화 연락이 왔다. 시간이 되면 주중으로 한번 만났으면 좋겠다는 내용이었다. 프로젝트 관련해서 이미 몇 번 만난 적이 있어 흔쾌히 승낙했다. 그리고 이틀 후 그와 미팅을 했는데, 지카(Zika) 바이러스의 유행에 관한 이야기였다. 요약하면 현재 파라과이에서 지카 바이러스가 유행인데, 발병 현황을 전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PAHO에서 이환율 및 현황을 조사하고 싶은데 재원이 부족하다며, 가능하면 KOICA(Korea International Cooperation Agency, 한국국제협력단)도 참여해 보는 것이 어떠냐는 제안을 남기고 회의를 마무리했다.

2주 후 프로젝트 관련 워크숍이 있어서 프로젝트 담당 국장과 점심을 먹을 일이 생겼다. 역시 지카 바이러스에 대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담당 국장의 이야기로는 지카 바이러스 검사 기계가 너무 비싸서 구입하기도, 운용하기도 어렵다고 한다. 검사 기계는 어떻게 외부의 도움을 받아 구했는데, 시약을 보관할 냉장고가 너무 고가라 당장 사용하는 데 문제가 있다고 했다.

최근 의학저널지 <란셋(Lancet)>에서 발간한 논문에 따르면, 지카 바이러스에 감염된 초기 임산부의 경우 1%의 확률로 태아가 소두증(microcephaly)을 가지고 태어날 수 있다고 한다. 바이러스 유행의 사회적·경제적·문화적 차이가 없다면, 이는 파라과이에도 그대로 적용될 것이다. 하지만 1년 후 파라과이에 얼마나 많은 아이가 소두증을 가지고 태어날지 전혀 알 수 없다. 단지 국민에게 모기에 물리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당부하거나, 주위의 웅덩이를 막고, 모기약을 뿌릴 뿐이다1). 이건 뎅기(Dengue), 치쿤군야(Chikungunya)의 대응과 전혀 다르지 않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현재 파라과이에서는 지카 바이러스의 유행 양상, 발병률 및 이환율 등을 전혀 알 수 없다. 파라과이 보건부 예산 부족으로 진단검사 시스템이 제대로 갖추어 있지 않고, 의료전달 및 보고 시스템이 취약해 지역에서 발생하더라도 이를 중앙부서에 제대로 전달하기 어렵다. 특히 파라과이는 전산시스템이 부족하여 아직도 대부분의 병원이 수기로 환자기록을 보관하는데, 데이터 베이스(DB)로 구성되어 있지 않아 공유가 안 될 뿐 아니라 분실의 위험도 크다. 여기에 전염병 감시 체계도 구축되어 있지 않고, 전문적인 역학 조사관도 거의 없는 실정이다. 우여곡절 끝에 진단 검사 기계가 들어온다고 해도 지카 바이러스가 파라과이에서 잘 관리될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 5월 13일 현재, 한국인 지카 바이러스 감염자는 5명이다. ⓒ연합뉴스

이것은 비단 파라과이만의 문제는 아니다. 2015년 에볼라(Ebola) 바이러스 유행 이후 국제적인 전염병 감시체계가 중요하다는 의제가 국제보건분야에서 대두했다. 선진국의 경우에는 재원·인력 및 기술이 충분하여 충분한 대응이 가능하나, 저개발국이나 개도국의 경우 신종 전염병의 유행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교통·통신의 발달로 인구의 이동2)이 많은 요즘 한 국가의 튼튼한 방역체계로 전염병의 유행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이 주요 이슈로 부상했고, 국제적인 전염병 감시 체계 강화가 '지속가능한 개발목표(SDG)'3)의 주요 과제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이번 지카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국제보건 분야에는 풀어야 할 두 가지의 큰 격차가 존재한다.

첫 번째는 국가 간의 격차이다. 선진국과 저개발국 혹은 개도국의 보건관련 예산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2015년 한국의 보건복지분야 예산은 53조 원이다. 파라과이의 경우 2015년 기준으로 1조 원이다. 인구차이4)를 고려해도 파라과이 보건부5)의 예산은 한국 예산의 7분의 1에 불과하다. 이 중 절반은 보건부에 소속된 의사 및 행정직원의 인건비다. 이런 이유로 파라과이의 경우 2008년 무상의료를 표방했지만, 실제로 제공되는 의료 수준은 전반적으로 높지 않다.

두 번째는 국가 내의 불평등이다. 서구 선진국, 특히 유럽의 경우에는 의료의 보장성 및 접근성이 높고 양질의 공공의료를 국민에게 제공한다. 하지만 저개발국의 경우 국가 내에서의 의료 접근성및 제공되는 의료의 질적 차이는 아주 크며, 이건 심각한 건강불평등을 야기한다.

파라과이의 경우 전체 인구의 70%는 파라과이 보건부가 제공하는 공공의료를 이용한다. 상위 10%의 경우 민간보험에 소속된 민간병원을 이용하며, 나머지 20%는 IPS라는 사회보험(기업과 공무원만 가입)을 이용한다. 하지만 국민 대부분이 이용하는 보건부 주도 공공의료의 경우, 재원의 부족으로 시설은 낙후됐고 인력도 불충분하다. 이런 이유로 평균 대기시간은 3-4시간이며, 대부분의 환자가 아침 6시 이전에 대기표를 받기 위해서 병원으로 향한다. 동시에 충분한 약품을 공급하지 못해 실제로 환자들은 주머니를 털어 약을 구입해야 한다. 최근 한 사업지역6)에서 1000가구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환자들은 병원 1회 방문 시 교통비를 포함해서 8~9만 Gs(13~15달러)를 지불한다고 한다. 참고로 이 지역의 가구 평균 월소득은 250달러 정도다. 의료비가 결코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며, 실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65%가 병원 가는 것이 부담된다고 답했다.

이런 의료시스템은 전염병 질환의 대처에도 문제를 야기하지만, 최근 주요한 화두로 떠오른 비전염성질환 관리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더욱 심각한 상황을 만들어낸다. 파라과이의 경우만성질환에 의한 사망률이 높고7), 파라과이 보건부가 최근 발간한 최근비전염성질환 (Non- Communicable Disease, NCD) 현황에 따르면 고혈압의 경우 유병률이 29.7%이며, 당뇨의 경우 9.7%이다. 결국 성인 3명 중 1명은 고혈압이며, 10명 중 1명은 당뇨인 셈이다. 하지만 관리율은 지역에 따라 다르고, 정확한 통계가 없어서 확언할 수는 없지만 50%를 넘지 못할 것이다. 이는 부실한 공공의료전달시스템, 불충분한 정부 예산에서 근본적으로 기인한다. 결국 사회경제적 수준에 따라 제공되는 의료의 혜택이 다르고, 이로 인해 건강불평등이 야기되는 것이다.

실제로 국제보건 분야에서 국가 간 격차를 일정 정도 해소해야 하는 것에는 별다른 이견이 없고, 인류애적인 관점에서 보더라도 선진국이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저개발국가 및 개도국의 국가 내 불평등을 원조를 통해 해결하는 것이 옳은가에 대해서는 많은 다양한 의견들이 있다. 여전히 논란은 있지만, 중위소득국가(Middle Income Countries, MIC)를 배제하고 하위소득국가(Low Income Countries, LIC)를 중심으로 원조를 제공해야 한다는 주장도 상당하다.

하지만 대개의 저개발국 및 개도국의 경우 거버넌스가 떨어지고 부정부패가 심한 경우가 많다. 국가재정 배분을 포함해 국가의 정책개발 및 수행능력을 고려하면, 국민의 요구를 충족해준다고 보기 어렵다. 따라서 원조의 범위에서 제외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해당 국가의 책임성을 담보로, 어느 정도 기술자문을 해주거나 취약지역 및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보건관련 인프라 및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것도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전체를 감당해줄 수는 없지만, 하나의 좋은 예시를 보여주는 것도 나름 상당한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지카 바이러스를 통해 들여다본 파라과이의 의료 및 질병 방역시스템은 너무 취약했고, 그 안에는 다수의 국민이 양질의 의료를 이용할 수 없다는 엄연한 현실, 즉 국가 내 격차가 존재했다. 그리고 지카 바이러스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는 국가들이 여전히 있다는 점은 아직도 많은 국가 간 불평등이 있다는 사실을 오롯이 보여준다. 특정 전염병의 유행은 표면적으로 신종 질환의 출현이라는 질병의 관점에서도 볼 수 있지만, 다른 함의 또한 담고 있다. 즉 지카 바이러스는 임상적으로 신종 전염병의 출현인 동시에 국가 간, 국가 내 건강불평등을 보여주는 시그널이자, 리트머스 시험지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내년에 태어날 모든 파라과이 아이들의 건강을 빌면서 글을 끝낸다. Salud!!8)

각주

1) 이마저도 원활하지 않은 것이 현실이며, 실제로 지카 바이러스에 대한 공익광고를 신문이나 방송에 내려고 해도 비싼 광고료 때문에 어려운 실정임.

2) 특히 취업, 난민 등의 이유로 저개발국에서 선진국으로 인구 이동이 빈번함.

3) Sustainable Development Goal(지속 가능한 개발목표) : 지속가능한발전개발목표(SDGs)는 전 세계가 빈곤퇴치를 위해 2000년부터 2015년까지 달성하기로 설정한 8가지의 새천년개발목표(MDGs)의 후속 의제임. 개발도상국을 중심으로 '사회발전'에 중점을 두었던 MDGs 와 달리 SDGs는 모든 형태의 빈곤과 불평등 감소에 대한 의제로서 '사회발전'뿐만 아니라 '경제개발'과 '환경'에 대해서도 비중을 두고 있음.

4) 파라과이의 인구는 2015년 기준으로 700만 명으로 한국의 8QNSDML 1 수준임.

5) 통상적으로 축약하여 보건부라고 부르지만 실제로 파라과이의 경우에는 정확하게 보건복지부(Ministerio de SaludPublica y Bienestar Social, Ministry of Public Health and Social Welfare)임.

6) 파라과이 수도 아순시온 인근 도시(차량 40분 소요)로 인구 25만 명의 중소도시임.

7) WHO Paraguay health profile에 따르면, 심혈관질환에 의한 사망률이 32%로 가장 높으며, 당뇨에 의한 사망률도 7%에 이름.

8) 파라과이에서는 기침을 하거나 열이 나면 염려의 말로 "Salud"라고 한다. 이 말은 "건강"이라는 뜻이다.

Endnotes

- Simon Caucehmez etc. Association between Zika virus and microcephaly in French Polynesia, 2013-15: a retrospective study, Lancet online published, 2016 (http://www.thelancet.com/journals/lancet/article/PIIS0140-6736(16)00651-6/abstract)

- Boletin de Vigilancia: Enefermedades No Transmisibles y Factores de Riesgo 2015


<의료와 사회>는 건강권과 보건의료운동의 쟁점을 정리하고 담아내는 대중 이론 매체입니다. 한국의 건강 문제는 사회와 의료, 이 두 가지 문제를 동시에 볼 때만 풀어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의료와 사회>는 보건의료·건강권 운동 활동가 및 전문가를 포함한 모든 이들이 건강을 위한 사회 변화를 논의하는 장이 되고자 합니다.(☞ 바로 가기 : 보건의료단체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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