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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아기들이 유난히 기저귀 자주 갈았다?"

[소셜커머스 치킨게임·上] 파국 향하는 최저가 경쟁

국내 소셜커머스 업계에서 벌어지는 치킨게임이 무시무시하다. 쿠팡, 위메프, 티몬이 지난해 기록한 손실액은 약 8346억 원이다. 손해 보는 장사를, 일부러 하고 있다. 그 끝에 뭐가 있을까.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 하나는 승자독식이다. 치킨게임에 참가한 업체들이 꿈꾸는 바다. 출혈경쟁을 이어가서 경쟁자를 도태시키는 전략이다. 두 번째 가능성은 업계 자체가 공중 분해되는 것이다.

"220-> 15-> 4-> 3"…최후의 승자는?

유통업은 정보통신 기술 변화에 민감하다. 당연하다. 유통업은 어찌 보면 정보산업이다. 싸게 사서 비싸게 팔아야 한다. 누가 싸게 팔고 누가 비싸게 사는지, 이런 정보를 빨리 알아내는 게 경쟁력이다. 2000년대 초 인터넷 혁명과 함께 아마존이 등장했다. 한국에서도 인터넷 쇼핑몰 이용이 보편화됐다. 이런 학습 효과는 스마트폰 혁명 이후에도 작동했다. 인터넷이 쇼핑을 바꾸는 걸 이미 봤다. 그렇다면, 너도나도 손에 들고 다니는 스마트폰, 그리고 사회관계망 서비스(SNS)는 쇼핑을 어떻게 바꿀 건가. 2010년께, 한국 IT(정보기술) 기업인들의 화두였다.

공동 구매 방식으로 가격을 낮추는 소셜커머스가 정답처럼 보였다. 실제로 미국에선 성공 사례가 나왔다. 2008년 창업한 소셜커머스 업체 그루폰이다. 한국에 아이폰이 도입된 2010년 5월, 국내 첫 소셜커머스 업체 티켓몬스터(현 티몬)가 생겼다. 이듬해인 2011년, 국내 소셜커머스 업체는 220개로 우후죽순처럼 늘었다. 하지만 1년 뒤인 지난 2012년에는 15개가 됐다. 2014년에는 쿠팡, 위메프, 티몬, 그루폰 등 4곳만 남았고, 곧 미국 그루폰이 한국 시장을 떠났다. 그 뒤로는 쿠팡, 위메프, 티몬의 삼파전이다.


청년 실업 시대의 소셜커머스

업체 수는 줄었지만 시장은 급팽창했다. 1위 업체 쿠팡을 운영하는 포워드벤처스가 지난해 기록한 매출은 1조1337억5000만 원이다.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 본점이 지난해 올린 매출이 약 1조8000억 원이다. 백화점 업계 1위에는 아직 못미치지만 성장세가 눈부시다.

단지 숫자 문제가 아니다. 유통업 관계자들은 큰 흐름을 보라고 한다. 저성장, 청년 실업, 늦은 결혼, 저출산 등의 추세다. 백화점은 고도성장기의 상징이다. 일본 역시 거품경제가 무너지면서 백화점 산업이 주저앉았다. 일본은 한때 백화점 천국이었다.

대형마트의 성장은 맞벌이 가정 증가와 맞물려 있다. 자동차를 보유한 중산층 맞벌이 가정이 주요 고객이다. 1인 가구가 늘어나는 지금 추세는, 대형마트 입장에서 위기 징후다. 앞으로 유통 산업은 싫든 좋든 모바일에 의존해야 한다. 소셜커머스 업체들은 이런 시장을 개척했다. 모바일 기기를 채널로 삼은 소셜커머스가 장기적으로 유리하리는 점은, 누구나 인정한다.

마진율 0.1%, 산 가격 그대로 판다

문제는 "장기적으로"라는 구절 안에 있다. 지금 남아 있는 소셜커머스 업체들이 빛을 볼 날이 언제냐는 게다. 그날이 너무 멀면, 업계 1위 해봐야 희망이 없다.

1위 업체인 쿠팡의 평균 마진율(매출총이익률)은 0.1%대다. 산 가격 그대로 파는 셈이다. 여기에 광고비, 물류비 등이 붙는다. 그러니까 시간이 갈수록 손해가 쌓인다.

소셜커머스 업체가 밑지는 장사를 하는 동안, 대형마트 역시 최저가 경쟁을 했다. 대형마트는 새로운 도전에 맞서 반격할 힘이 있다. 결국 먼저 문을 닫는 건 동네 슈퍼마켓들이다. 신흥 강자와 기존 강자가 싸우는 통에 기존 약자가 먼저 다쳤다. 그건 예상된 일이다. 다음에는 누가 다칠까. 신흥 강자인 소셜커머스 업체? 기존 강자인 대형마트?


"버틸 수 있는 기간은 1~2년, 그 안에 상대를 죽여야 한다"

신흥 강자 쪽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그간 물밑으로만 흐르던 불안감이 고개를 든 건 지난 14일이다. 이날 소셜커머스 3사가 일제히 감사보고서를 냈다. 당초 증권가에선 이들 업체의 손실 액수가 7000억 원대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래도 아주 큰일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날 발표된 손실액은 약 8346억 원이다. 예상보다 더 심각하다.


곧장 반응이 왔다. KTB투자증권은 지난 15일 보고서에서 "새로운 수익 모델을 선보이지 않는다면, 쿠팡이 지속 가능한 기간은 길어야 1~2년"이라고 밝혔다. 위메프, 티몬 등은 이미 자본 잠식 상태다. 앞서 언급한 두 가지 가능성, 시장 독식이냐 아니면 공멸이냐, 그 중에서 후자에 무게가 실린다. 불과 며칠 사이에 분위기가 달라졌다.

하지만 퇴로는 없다. 일본 소프트뱅크, 넥슨 지주회사인 NXC, NHN엔터테인먼트 등이 각각 쿠팡, 위메프, 티몬에 거액을 투자했다. 약 1조1000억 원, 약 1000억 원, 약 475억 원의 순이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벤처캐피탈 알토스벤처스도 쿠팡에 투자했다. 이익을 낼 때까지 버티라고 대준 돈이다. 돈 넣고 속 편한 투자자는 없다. 일본과 미국의 자본이 매의 눈으로 감시하고 닦달한다. 하지만 뜨거운 경쟁 속에서 투자금은 금세 말라버린다.


버틸 수 있는 시간이 짧다는 건, 그만큼 빨리 경쟁 업체를 죽여야 한다는 뜻이다. 과연 성공할까.

한국 아기들이 올해 들어 유난히 기저귀 자주 갈았을까?

이제는 기존 유통업체 전체가 경쟁자다. 대형마트 업계 매출 1위인 이마트와 소셜커머스 업계 1위인 쿠팡이 정면으로 붙었다. 이마트가 먼저 포문을 열었다. 지난 2월 "가격의 끝" 캠페인을 시작했다. 소셜커머스 업체보다 싸게 팔겠다는 것이다.

기저귀, 분유, 커피믹스 등이 대상이다. 소셜커머스 매출에서 비중이 컸던 품목이다. 이들 품목은 가격민감도가 높다. 어디서 사건 품질이 같고, 오래 보관할 수 있다. 따라서 조금이라도 더 싼 곳에서 많이 사두는 게 좋다.


이마트는 올해 기저귀 판매량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81.7%, 분유는 131.8% 늘었다고 밝혔다. 커피믹스는 161.8%, 캔햄 판매량은 300%나 증가했다. 또 샴푸 판매량은 지난해보다 5809.7% 늘었다.

쿠팡도 맞받아쳤다. 가격을 더 낮췄다. 최저가 경쟁이 한창 뜨거웠던 지난달에는 기저귀 가격이 실시간으로 달라졌다. 그 결과, 쿠팡 역시 기저귀 판매량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52% 늘어났다. 같은 기간 분유는 71%, 생리대는 100% 증가했다.

지난해 말까지 자본 잠식였던 티몬은 '생필품 최저가'를 외쳤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즉석밥 판매가 239%, 라면이 227%, 칫솔이 169%, 참치캔이 150% 늘었다고 밝혔다.

얼핏 보면, 모든 유통업체가 매출이 늘어난 것 같다. 그렇다면, 한국 아기들이 올해 들어 유난히 기저귀를 자주 갈고, 분유를 많이 먹었을 걸까. 그럴 리는 없다. 집집마다 기저귀와 분유를 더 많이 쌓아뒀을 따름이다. 그걸 다 써야 새로 소비를 한다. 최저가 경쟁이 끝난 뒤엔 매출 감소가 필연이다. 자금 사정이 나쁜 쪽에게 더 치명적이다. 버틸 수 있는 기간이 짧은 소셜커머스 업체가 불리하다.

결국 맷집 싸움동네 슈퍼마켓은 어쩌나

물론, 반전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이마트의 공격 역시 손해를 무릅쓴 결정이었다. 똑같이 가격을 내린다면, 대형마트가 온라인 업체보다 출혈이 더 크다. 매장 유지비 및 인건비 지출이 크기 때문. 다만 출혈을 견디는 맷집은 대형마트가 압도적이다.


이마트가 부담을 감수한 건, 1인 가구 시대에 소셜커머스 업체가 지닌 잠재력이 그만큼 크다고 봤기 때문일 게다. 이마트 입장에선 지금 소셜커머스의 싹을 잘라야 한다. 기존 유통재벌은 최저가 경쟁을 견딜 맷집이 있고, 소셜커머스 업체는 투자금이 말라가는 지금이 적기다.


결국 소셜커머스의 성공 여부는 그 잠재력을 얼마나 끌어내는지에 달려 있다. IT업계에선 빅데이터의 적극적인 활용, 추가 투자 유치 등이 대안으로 거론된다. 모바일 기기 기반 상거래에 관한 한, 소셜커머스 업체는 독보적인 경험을 갖고 있다. 이 과정에서 쌓인 데이터를 활용하는 사업 모델을 만들어낸다면, 추가 투자 유치 가능성이 있다. 그러면 치킨게임을 견뎌낼 맷집이 생긴다. 오래 버티면 이기는 게임이다.


다만 유통 분야 신흥 강자와 기존 강자가 싸우는 사이, 조용히 죽어간 동네 슈퍼마켓을 위한 대책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그걸 마련하는 건, 정부와 정치권의 몫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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