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오전 10시. 제주해군기지가 들어선 서귀포시 강정마을 주민 4명이 '강정마을회관'이라고 적힌 3평 남짓 임시 천막에 앉아있었다. 그 위로는 벚꽃이 흩날리고 있었다.
천막은 지난 10일 오후 7시30분 강정마을 주민들이 임시총회에 '해군의 구상권 청구 대응의 건'을 안건으로 상정해 대응 방안을 의결함에 따라 오후 10시쯤 주민들이 직접 설치했다. 해군의 구상권 청구에 대한 무언의 투쟁이다.
천막을 설치하자 당초 경찰은 불법 도로 점용 이라고 판단, 천막 철거를 요구했다.
주민들은 "어차피 해군의 구상권 청구로 그나마 남은 마을 재산 마을회관이 뺏길 것 아니냐"며 "그래서 천막을 설치하고, 마을회관을 옮긴 것"이라고 항변했다. 더이상 뺏길 게 없다며 '배수의 진'을 친 것이다.
이후 주민들은 경찰의 요구를 감안, 천막 위치를 조금 뒤로 옮겼다. 천막은 성인 남성 허리춤 높이의 담벼락 위에 설치됐다.
그 결과 도로를 차지하지 않게 됐다. 그러자 경찰은 오후 11시40분 현장에서 철수했다.
강정 주민 약 5명은 이곳 천막에서 밤을 지새웠다.
천막 안에는 휴대용 가스버너와 빈 컵라면 용기 몇 개가 널브러져 있었다. 반대편은 해군기지 입구다. 입구는 노란 바리케이트로 막혀있었다. 마을과는 단절된 상태로.
11일 오전 천막에는 고권일 강정마을회 부회장 등 4명이 앉아있었다.
기자가 다가가 "여기서 밤을 지샌 것이냐" 물었다.
이들은 "아주 잠 잘 잤습니다. 새로운 마을회관이 너무 편하다"라고 말했다. 일종의 반어법이었다. 수풀 위에 천막을 설치하고, 돗자리를 깔아서 하룻밤이 편했단다.
하물며 캠핑장에서 숙박용 텐트를 치고 담요와 돗자리, 깔판, 침낭 등을 다 동원해도 다음날 뻐근함이 가시지 않을텐데….
뒤이어 주민은 담배를 입에 물고 하소연을 시작했다.
"해군이, 아니 정부가 강정마을 주민들을 병탄하는 것 같다."
병탄(竝呑). 남의 재물이나 다른 나라의 영토를 자기 것으로 만든다는 뜻이다. 자주 쓰이는 단어는 아니지만, 일제 강점기 일본이 우리나라를 식민지화했을 때 등장한 단어가 바로 병탄이다. 주민들에게 제주해군기지는 마을을 병탄하는 존재로 인식되고 있는 셈이다.
주민들에게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물었다.
"뭘 어떻게 해. 여기가 마을회관인데, 어차피 구상권 청구 돈 다 갚으려면 마을회관부터 노인회관 등 다 팔아야되니까 천막이 5개는 더 생길거야. 부녀회관, 노인회관 등 마을 자생단체가 총 6개니까."
20여분이 흘렀을까.
한 남성(A씨)이 차를 타고 천막으로 다가왔다. 그는 해군기지 찬성 측 주민이었다.
A씨는 천막을 훑어 보더니 "거지같은"이라는 말을 내뱉었다. 천막 안에서 잠을 잘 잤다고 했던 주민이 갑자기 목소리를 높였다.
"우리가 왜 거지야. 그것이 할 말이냐. 우린 잘 살거야. 잘 살거라고."
몇 차례 고성이 오간 끝에 A씨가 "알았다"며 자리를 떠났고, 천막에는 침묵이 흘렀다. 그 침묵을 뿌연 담배 연기가 채웠다.
오전 10시40분쯤 한 노인이 상복을 입고 천막 앞을 지나기 시작했다. 세 걸음 뒤 무릎을 꿇고, 절을 했다.
제주해군기지까지 그 동작을 계속했다. 노인은 강정마을이 해군기지로 갈등에 휩싸인 이후 매일같이 삼보일배를 해왔다.
제주해군기지 앞에서 노랫소리가 흘러나왔다. 종교단체에서 매일 진행하는 미사가 시작된 것.
주민들이 천막을 설치해 임시강정마을회관으로 선언한 지 반나절이 흐른 강정마을의 모습이다.
프레시안=제주의소리 교류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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