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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을 하려면 상하이 사람과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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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을 하려면 상하이 사람과 해라!

[김윤태의 중국은 하나?] 베이징인(北京人)과 상하이인(上海人)의 특성 비교

상하이 사람들은 베이징에서 친구가 내려오면 북방 촌놈 내려왔냐고 놀린다. 중국의 수도이자 동아시아 문명의 중심이라는 자부심이 강한 베이징 사람들은 결코 이를 인정할 수 없다. 약삭빠른 상하이 놈들이라고 맞받아친다. 베이징과 상하이는 중국의 양대 도시답게 서로 다른 색깔을 갖고 있고 두 도시 간의 라이벌 의식도 강하다. 니우샤오옌(牛曉彥)이 엮은 <중국 도시의 성격(中國都市性格)>에는 선명하게 대조되는 양대 도시 사람들의 성격 특징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베이징 사람들은 열정적으로 남을 도와주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러한 열정에는 내외 구분이 분명하다. 자기 울타리의 사람에게는 매우 친절하고 열정적이지만, 낯선 사람들에게는 쉽사리 정을 주지 않는다. 퉁명스럽기까지 하다. 베이징 상점에서 흔히 목격할 수 있는 광경이다.

상하이 사람들은 이와는 정반대이다. 특별히 열정적이지도 않고 특별히 무뚝뚝하지도 않게 사람을 대한다. 내외 구분과 친소 구분 없이 모든 이들을 거의 동등하게 대한다. 아무리 친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주동적으로 간섭하려 들지 않고, 아무리 낯선 사람이라 할지라도 특별히 냉랭하게 대하지도 않는다.

이치는 매우 간단하다. 베이징 사람들의 '울타리 의식'은 일종의 집단주의 의식이다. 집단 내의 사람들은 서로가 돕고 나누고 보살피는데 결코 인색하지 않다. 하지만 일단 울타리를 벗어나면 이러한 관심과 애정은 찾아보기 힘들다.

▲ 거리에서 마작을 하고 있는 베이징 사람들. ⓒwikimedia.org

상하이 사람들은 이와는 다른 '개인 의식'을 갖고 있다. 개인의 독립된 공간을 존중한다. 타인의 자신에 대한 간섭뿐만 아니라 타인에 대한 지나친 간섭을 터부시 한다. 타인의 사생활을 존중할 줄 알며 자신만의 공간도 스스로 지킬 줄 안다. 그래서 "상하이 사람들은 어떤 옷이든 가리지 않고 입을 수 있다"는 말이 있는지도 모른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아도 되니까 말이다.

꺼얼먼(哥兒們) vs. 펑여우(朋友)

베이징과 상하이, 이 두 지역의 사람들이 갖고 있는 생활 태도와 의식은 누가 열등하고 누가 우수하다고 판단할 수 없다. 그저 다를 뿐이다. 베이징 사람들과 친구가 되어 그 울타리 안에 들어갔을 경우에는 그들의 '꺼얼먼(哥兒們)'이 된다. 말 그대로 친구를 넘어 형제와 같은 사이가 되는 것이다. 간과 쓸개를 내어놓을 정도로 서로의 마음을 터놓고 친밀하게 교제한다.

그러나 상하이 사람들과 '형제와 같은 친구'가 되기란 쉽지 않다. 이들은 겸손하지만 열정적이지 않다. 예의를 지키지만 지극히 친절하지도 않다. 마음을 터놓고 속내를 드러내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상하이 사람들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남을 간섭하지도 남의 간섭을 허용하지도 않는 철저한 개인주의 원칙을 고수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하이에서는 베이징에서와 같은 '꺼얼먼'이 있을 수 없다. 단지 '펑여우(朋友)'만이 있을 뿐이다. '꺼얼먼'은 서로가 의존적이지만 '펑여우'는 서로가 독립적이다. '꺼얼먼'은 격없이 친밀하지만 '펑여우'는 물과 같이 담담하다. 심지어 상하이 사람들에게 있어서의 '펑여우'는 무늬만 친구일 수도 있다. 최소한 베이징 사람들의 시각에서는 말이다.

상하이 사람들의 처세 철학은 따지고 보면 그다지 나쁘지도 않다. "제 집 앞의 눈은 제가 치운다"는 식의 생활 철학은 오히려 타인에게 남의 집 앞의 눈을 치워야 하는 부담을 덜어준다. 각자가 자기 일만 열심히 하면 천하가 태평해진다는 생각이다. 크게 틀리지 않다. 외지인의 입장에서 보면 상하이 사람들은 친구로 사귀기는 어렵지만 같이 일하기는 편한 사람들이다.

상하이 사람들은 비교적 계산적이지만 합리적이다. 자신의 이익을 지키는 동시에 타인의 권익도 보장한다. 자신의 독립적인 인격을 존중하는 동시에 타인에게도 동일한 잣대를 적용한다. 그래서 최소한 이들과 거래할 때 이것저것 쓸데없는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단순함과 편리함이 있다. 사실 현대 사회에서 베이징식의 '꺼얼먼'보다는 상하이식의 '평범한 교제'가 보편적이다. 사업 파트너를 찾는다면 상하이 사람들이 더욱 적당하다는 것이다.

베이징 문화는 포용적이어서 여러 계층의 문화가 공생하는 형태를 갖고 있다. 관료 문화, 지식인 문화, 평민의 문화가 각각 나름의 공간을 갖고 공생하고 있을 뿐 동일한 지역 정체성으로 묶여있지 않다. 그러나 상하이 문화는 이와는 대조적으로 융합적이다. 여러 계층의 사람들이 자유롭게 발전하고 공평하게 경쟁한다. 그러나 최종적으로는 '상하이'라는 지역 정체성으로 통일된다.

상하이의 지식인이 갖고 있는 '상하이풍의 격조'는 일반 평민에게도 상당 부분 영향을 미쳤다. 직업과 계층, 사회적 역할을 막론하고 상하이 사람들은 '상하이풍의 격조'를 갖추고 있다. 이들의 생활방식과 가치관 역시 대체적으로 일치한다. 심지어 상하이의 길 이름조차도 베이징처럼 복잡하지 않다. 동서로 난 길에는 난징, 베이징과 같은 도시 이름을 사용했고, 남북으로 난 길에는 푸젠, 쓰촨과 같은 성 이름을 사용했다. 질서정연하고 통일적인 상하이풍이 아닐 수 없다.

베이징 사람들의 집단 의식, 무엇을 위함인가?


양대 도시의 문화적 특징은 여러 계층의 문화가 공생하는 형태의 포용적 문화 환경과 하나의 통일된 지역 정체성으로 융합된 문화 환경으로 서로 다르게 나타난다. 베이징 사람들은 신분을 지역보다 우선한다. 관료인가, 학자인가, 평민인가의 신분이 베이징 사람인가의 지역 정체성보다 더욱 중요하다.

반면 상하이 사람들은 이와 반대다. 지역 정체성을 신분 정체성보다 훨씬 중요시한다. 우선 상하이 사람인가를 따지고 난 후에 비로소 상인인가, 학자인가를 살핀다. 상하이 말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은 유명 학자나 유명 정치인을 막론하고 환영받지 못한다. 상하이 사람들에게 있어서 상하이 사람인가 아닌가는 확실히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정체성의 차이는 외지에서 더욱 확연하게 드러난다. 베이징 사람들은 외지에 나가서 계층과 신분별로 생활권을 형성한다. 베이징 사람인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상하이 사람들은 어딜 가든 작은 상하이 커뮤니티를 만든다. 중국의 각지에 '소상하이(小上海)'라는 명칭은 자주 목격되지만 '소베이징(小北京)'은 찾아볼 수 없는 이치가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측면을 생각해 보면, 집단주의 의식이 강한 베이징 사람들이 강조하는 '집단'이란 것이 결국은 지역이 아닌 신분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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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태

동덕여자대학교 중어중국학과에서 중국 사회를 강의하고 있다. 외교부 재외동포정책 실무위원이며, 동덕여대 한중미래연구소에서 수행하는 재중한인연구사업단 단장을 맡고 있다. 국립대만대에서 사회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중국 사회에 관한 다양한 이슈뿐만 아니라 조선족 및 재중 한국인에 대한 연구를 수행해 왔다. <재중 한국인 사회 조사 연구>, <臺灣社會學想像> 등 다수의 저서와 역서, 연구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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