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인민은행이 공격적으로 위안화 가치를 절하에 나선 이후 각국 중앙은행들이 경쟁적으로 자국의 통화가치를 절하시키는 환율전쟁이 갈수록 격화되고 있다.
세계 경제가 휘청거리는 가운데 살아남으려면 각국은 어떻게든 경기부양과 수출에 유리한 여건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도 기준금리 인하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너도나도 '돈 풀기'를 통한 통화가치 절하에 나서다 보니 막상 수출증가 등을 통한 경기부양에는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 등의 한계도 나타나고 있다.
원래 의도와 다르게 실질실효환율을 기준으로 따졌을 때 상대적으로 통화가 절상된 국가도 주요국 중 4분의 1에 달했다.
◇ 전 세계 전방위 환율전쟁 격화
5일 블룸버그 등에 따르면 작년 8월에 중국 인민은행은 사흘만에 위안화가치를 4.7% 절하해 전 세계를 충격 속으로 몰아넣은 데 이어 올해 1월 6일 다시 위안화 가치를 0.22% 절하시키며 환율전쟁의 포문을 열었다.
일본은 이에 대응해 지난 29일 사상 최초로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하면서 충격파를 불러일으켰다. 2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한 대만은 바로 다음날인 30일 초단기자금 이율을 0.23%에서 0.20%로 내렸다.
이보다 앞서 유럽중앙은행(ECB)이 2014년 6월에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하고 두 번에 걸쳐 금리를 -0.3%까지 낮췄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국가 이외에도 스웨덴은 2009년 7월, 덴마크는 2012년 7월, 스위스는 작년 12월부터 마이너스 기준금리를 도입했다.
작년 2차례 금리인하를 통해 기준금리를 0.5%까지 내린 캐나다도 마이너스 금리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인도와 호주 등도 금리인하 카드를 만지작 거리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각국 중앙은행은 기준금리 인하를 통한 통화가치 하락 효 과를 또 하나의 경기 방어 수단으로 활용하는 경향이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더구나 환율에는 장기금리보다는 단기금리가 더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미국은 금리인상 속도를 늦출 가능성이 커졌다. 경제상황에 따라서는 다시 '돈 풀기'에 적극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 주요국 중 4분의 1은 실질통화가치 절상돼
각국이 중앙은행의 경쟁적으로 금리인하를 통해 통화가치 절하에 나서다 보니 막상 경기부양에는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 등의 한계도 나타나고 있다.
경쟁이 격화되면서 실질실효환율로 따졌을 때 상대적으로 통화가치가 절상된 국가도 주요국 중 4분의 1에 달했다.
실질실효환율은 물가변동까지 반영된 외국돈에 대한 각국 돈의 상대가치로 각국 상품의 가격경쟁력이 어떤지 파악하는 지표다. 수출여건을 가늠하는 지표이기도 하다.
국제결제은행(BIS)이 집계하는 전 세계 61개 주요국의 실질실효환율 지수를 보면 4분의 3에 해당하는 46개국은 작년말 통화가치가 2014년말에 비해 절하됐다.
같은 기간에 통화가치가 절상된 국가도 4분의 1인 15개국에 달했다.
2014년 말 대비 통화가치 절상 수준이 가장 높았던 국가는 베네수엘라로 절상률이 77%에 달했다. 베네수엘라의 국내총생산(GDP)은 2014년 4% 축소된 데 이어 2015년에는 10% 감소했다.
같은 기간에 물가상승률은 200%를 넘어섰다. 베네수엘라는 위기 상황이 수년째 지속되면서 상대적으로 절상률이 높았던 것으로 분석된다.
이어 미국이 9.6%, 달러 페그제 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가 9.4%, 아랍에미리트(UAE)는 9.2% 통화가치가 절상된 것으로 집계됐다.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하면서 통화가치 방어에 나섰던 스위스는 통화가치가 5.5%나 절상됐다. 인도(5.4%), 영국(4.4%), 일본(4.1%), 중국(3.9%), 대만(0.2%)도 같은 처지다.
반면에, 통화가치가 가장 많이 절하된 국가는 브라질(-19.5%), 콜롬비아(-18.6%), 남아프리카공화국(-14.3%), 캐나다(-12.3%), 말레이시아(-12.1%), 멕시코(-10.1%) 순이다.
작년 12월 기준금리를 마이너스로 인하한 유로존은 통화가치가 5.8% 절하됐다.
중국의 성장둔화로 세계교역이 극도로 위축된 최근처럼 세계 수요 부진으로 경쟁이 치열해지는 시기에는 수출이 환율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이에 따라 각국은 수출경쟁국 대비 자국 통화가치의 절상과 절하에 극도로 민감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통화가치 절하 경쟁이 격화되다 보니 특정국의 환율이 상승해도, 상대적 통화가치는 절상되는 현상이 흔해진 셈이다.
이에 따라 통화가치가 절하돼도 기대하던 경기부양 효과는 누릴 수 없게 되는 경우도 많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씨티그룹 스티브 잉글랜더와 조쉬 오브라이언은 고객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달러화나 엔화, 유로화 가치 절하에 따른 경제적 효과는 크지 않을 수 있다"면서 "환율을 통화정책 수단으로 보기에는 효율적이지 않고 통화가치 절하의 부작용은 예상보다 클 수 있다"고 지적했다.
◇ 韓 원/달러 환율 올랐는데 원화 실질가치는 절상
양대 수출 경쟁국인 중국과 일본이 경쟁적 통화가치 절하에 나서면서 한국에도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중국의 공격적 위안화 가치 절하에 일본이 마이너스 금리를 통한 엔화가치 절하라는 초강수로 대응하면서, 한국은행도 금리인하 카드를 고려해야 할 때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BIS의 실질실효환율 지수를 보면 한국 원화가치는 2014년 말부터 작년말까지 0.7% 평가절상됐다.
같은 기간에 원/달러 환율은 2014년 말 달러당 1,099원에서 2015년 말 1천173원으로 6.7% 상승했다.
투자은행(IB)들 사이에는 중국과 일본 사이에 샌드위치 신세가 된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인하할 것이라는 전망이 확대되고 있다.
당장 SEB와 바클레이즈, ANZ은행, 모건스탠리, 하이투자증권, BNP파리바 등은 한은이 1분기에 기준금리를 내릴 것으로 보고 있다.
LG경제연구원 배민근 책임연구원은 "주요 수출 경쟁국들간의 통화가치 절하 경쟁이 격해지면서, 실질실효환율 기준 원화절상과 여타 경쟁국 통화의 절하에 따른 한국의 수출경쟁력 약화는 이미 철강과 석유화학, 자동차산업을 중심으로 가시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