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전예강 양의 유가족, 고(故) 신해철 씨의 유가족, 환자단체연합회가 일명 '예강이법·신해철 법'의 도입을 위해 뜻을 모았다. 12월 16일, 국회 정문 앞에서 '의료 분쟁 조정 절차 자동 개시 제도' 도입을 위한 국회 법안 심의 촉구 기자 회견이 열렸다.
2011년 4월 8일부터 의료 사고 피해 구제 및 의료 분쟁 등에 관한 법률(의료분쟁조정법)이 제정되어 의료 사고가 발생하면 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 조정 또는 중재 신청을 할 수 있다.
문제는 의료 사고 피해자가 조정 또는 중재 신청을 하더라도 상대방(병원 등)이 거부하거나 14일 동안 무응답하면 각하되는 조항(제27조)이 있다는 것이다. 이 조항 때문에 '2014년도 의료 분쟁 조정·중재 통계 연보'에 따르면 신청자의 약 54.3%가 의료 분쟁 조정 제도를 이용하지 못하고 있다.
의료분쟁조정법상의 이러한 독소 조항을 개정하기 위해 새정치민주연합 오제세 의원과 새누리당 김정록 의원이 '의료 분쟁 조정 절차 자동 개시 제도'를 내용으로 하는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그러나 아직 소관 상임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서 한 번도 심의되지 않았다. 제19대 국회가 폐회되면 의료분쟁조정법 개정안도 자동 폐기된다.
"의료 사고 판단할 수 있는 기회 마련돼야"
이날 신해철 씨의 지인이자 드러머 남궁연 씨는 기자 회견에서 "많은 분들이 오해하시는 것처럼 환자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개정안을 추진하는 것이 아니다. 의료 분쟁이 발생하면 우리나라는 피해자인 환자들이 의료 사고라는 입증을 해야 한다. 자료를 보유하고 있는 건 병원 측인데 어떻게 비전문가인 환자 개인이 입증을 할 수 있겠냐"고 말했다.
또 그는 "의료 분쟁에서 환자의 편만 들어달라는 것이 아니다. 의료 사고인지 아닌지 '판단'을 할 수 있도록 기회를 마련해 달라는 거다. 그러기 위해선 반드시 조정 및 중재 절차가 자동적으로 개시되도록 하는 개정안이 통과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환자단체연합회 안기종 대표는 "대한의사협회에서는 '의료 분쟁 조정 절차 자동 개시 제도'를 도입하면 조정 또는 중재 신청이 남용될 수 있고 이로 인해 의료기관이 과도한 행정적 부담에 시달릴 수 있다는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그렇다면 법률적 판단이 가능한 '사망'이나 '중상해'의 경우로 그 범위를 제한해 도입하면 된다"고 밝혔다.
피신청인이 거부했다고 구제 신청 각하, 의료 분쟁 제도가 유일해
의료 과실 가능성이 커도 고액의 소송 비용을 감당할 능력이 되지 않는 의료 사고 피해자나 유족 가운데 상당수는 1심만 평균 2년 6개월이 걸리는 민사 소송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 때문에 수수료가 저렴한 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 조정 신청을 하지만 의료기관이 협조하지 않으면 신청은 자동 각하된다. 피해자 구제 제도 가운데 상대방이 거부하거나 14일 동안 무응답했다고 구제 신청을 각하하는 제도는 의료분쟁조정제도가 유일하다.
새정치민주연합 오제세 의원실에서는 "대부분의 조정 제도를 둔 조정 관련 법들이 적어도 조정 절차 개시를 의무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 개시 여부가 누군가에게 불이익을 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며 "누군가에게 불이익을 주는 것이 아니라 합의와 상호 양보의 정신이 발현될 수 있는 조정 절차가 개시되길 진심으로 바란다"고 말했다.
새누리당 김정록 의원실에서는 "의료분쟁조정법은 저소득층의 의료 분쟁 피해자들에게 매우 유용한 제도다. 문제는 피신청인이 절차에 참여하지 않으면 조정이 각하되는 독소 조항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제19대 국회 회기가 얼마 남지 않았지만 의료 분쟁 조정 절차 자동 개시를 담은 개정안, 일명 예강이 법, 신해철법이 통과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작년 1월 23일, 대학병원 응급실에 도착한지 7시간 만에 사망한 전예강 양의 유족들은 사망 원인을 알기 위해 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 조정 신청을 했지만 병원의 거부로 각하되었다. 이때부터 '의료 분쟁 조정 절차 자동 개시 제도'를 내용으로 하는 의료분쟁조정법 개정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작년 10월 27일, 가수 신해철 씨가 의료 사고로 불행하게 사망한 후 부인인 윤원희 씨와 지인들은 '의료 분쟁 조정 절차 자동 개시 제도' 도입을 위해 서명운동을 전개하기도 했다. 이제 남은 것은 국회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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