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숙 조합원은 서울 동대문 시장에서 옷 장사를 한다. 여성용 옷을 주로 판다. 의류 업에 몸담은 지 올해로 25년째다. '내 사업'을 한 지는 18년째다. 열아홉 살 때 옷 장사를 시작했다. 대학 진학 대신 택한 일이었다. 그러다 서른세 살 때 공부 욕심이 생겨서 대학에 갔다. 경제학을 전공했다. 공부하다보니, 정치경제학(마르크스 경제학)에 대한 호기심이 더 깊어졌다. 그래서 대학원까지 마쳤다. 고(故) 김수행 선생의 지도를 받았다.
그 인연으로, 고(故) 김수행 선생 추모위원회(준) 실무자가 됐다. 그러나 여전히 본업은 옷 장사다. 기자와의 대화 주제도 주로 옷 이야기였다.
언론에 계속 보도된 것처럼, 내수 경기는 계속 가라앉는 중이다. 그래서 힘들단다. 그나마 이 조합원은 워낙 경력이 탄탄하고, 고객과 쌓아둔 신뢰도 두터워서 사정이 낫다. 하지만 중국 변수는 어쩔 수 없다. 주변 상인 중에는 중국 손님이 매출 전부를 채우는 경우도 많다. 이 조합원은 국내 단골손님이 많은 편이지만, 그래도 중국 고객 의존도가 높다.
"전에는 중국과 국내가 (차지하는 매출 비중이) 반반이었죠. 그런데 어느새 '8대2'가 됐더라고요. 중국이 8이죠. 주변 상인들끼리 이야기해요. 한국은 중국의 한 개 성(省)이라고. 문제는 중국 경기도 가라앉는다는 거예요. 당연히 우리도 그 영향을 받죠. 그래서 걱정이에요."
<프레시안>은 창간 초기부터 독자였다. 신영복 선생이 연재하던 고전 강독 시리즈를 즐겨 읽었다. 다른 온라인 매체와 달리, <프레시안>에는 진지하고 분석적인 글이 많았다. 그게 좋았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프레시안>을 덜 보게 됐다. 온라인 매체 보는 습관이 바뀐 탓도 있다. 일에 바쁘다보니, 지인의 페이스북 등에 소개된 기사를 주로 본다.
"다른 진보 매체 기사는 페이스북 유통이 활발한데, <프레시안>은 좀 뜸한 것 같아요. 그걸 개선할 방법을 찾아야겠죠."
주식회사 프레시안이 협동조합으로 전환한 건, 진작 알았다. 조합원 가입은 차일피일 미뤘는데, 최근 가입했다. 역시 페이스북이 계기였다. 언론협동조합 프레시안이 조합원 배가 운동을 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가입 결심을 했다.
"조합원 1만 명 모으는 게 목표라고 들었어요. 지금은 조합원과 후원회원 합쳐서 4000여 명 규모인데, 여기서 멈춰 있는 것 같아요. 다른 진보 매체 후원자가 더 늘어난 것도 아니죠. 진보 매체를 경제적으로 돕는 사람의 최대치가 이 정도인가 싶은 생각도 들어요. 조합원 모집 광고도 하고 있는데, 대체 왜 안 늘어날까요?"
기자도 답답하다. 조합원 1만 명 모으는 게 왜 이리 힘든 걸까. 이 조합원과 대화를 마치고 나서, 질문을 뒤집어 봤다. 조합원 늘리기가 어렵다는 건, 이미 모인 조합원들이 얼마나 소중한 결심을 했던 것인지를 보여준다. 이 조합원 역시 시장 한복판에서 매일 불경기를 체감하면서도, 지갑을 새로 열었다. 그 마음들이 꺼지지 않는 한, 한겨울 추위도, 혹독한 불경기도 무서울 게 없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