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 잘들 해봐"
2주 전쯤, 역사 교과서 국정화 찬성 선언에 참여한 어느 대학 교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왜 찬성하는지, 선언은 누가 주도했는지, 반대 의견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고 싶은 게 많았다. 그러나 들려온 대답은 비아냥 뿐이었다. "잘들 해보라"는 말 뒤에는 '아무리 노력해봐야 결론은 국정화로 나와 있다'라는 말이 숨어있는 것 같만 같았다.
그 교수가 맞았다. 이미 답은 정해져 있었다. 행정예고 기간 동안 다양한 의견을 수렴한 뒤 최종 결론을 내리겠다던 정부의 약속은 기만에 불과했다.
교육부는 국정화 확정 고시 발표를 하기도 전, 홈페이지에 '교과서에 유관순은 없고 북한의 주체사상은 있다'는 광고와 웹툰 등을 걸어놓는가 하면, 비밀 TF팀을 만들어 청와대에 여론 동향 등을 수시로 보고하고 있었다. 확정 고시 하루 전인 2일엔 의견 수렴 통로 중 하나인 교육부 팩스가 꺼져있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3일 국정화 확정 고시 기자회견에 참석한 황교안 국무총리는 '올바르지 못한 교과서'의 사례를 들었다. 현장에서는 황 총리가 새 국정 교과서에 담길 내용을 암시하는 일종의 지침을 내린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왔다.
교육부가 국정화 확정 고시 직후 공개한 행정예고 의견 검토 결과는 막무가내에 가까웠다.
행정예고 기간, 교육부는 역사 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찬반 의견을 받았다. 집계 결과, 반대 의견을 제출한 사람은 32만1075명, 찬성 측은 15만2805여명이었다. 이 가운데 교육부는 반대 의견을 10가지 항목으로 나누어 분류하고, 그에 대한 반박성 해명을 내놓았다.
'역사교과서 국정화로 친일과 독재를 미화할 우려가 있다'는 지적에 대해 교육부가 내놓은 답변은 "역사 왜곡이나 미화는 절대 있을 수 없음", "헌법정신과 객관적 사실에 입각한 질 높은 교과서를 만들 것"이다.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내용이 전면 수정될 것이란 우려에 대해선 "국민이 보고 있기 때문에 교과서 내용이 정권 교체 시마다 전면 수정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한다. 이런 쉬운 말로 반대 의견들이 단숨에 내쳐지면서, 의견 수렴이라는 절차는 단순 요식 행위로 전락하고 말았다.
사실, 국정 교과서 이름을 '올바른 역사교과서'라고 명명한 데서부터 이미 정부의 단호한 태도를 엿볼 수 있었다.
역사 교육은 다른 교과와는 달리 해석과 평가와 같은 주관적 요소가 섞여 있다. 그래서 역사학자들은 전문가인 자신들도 역사 교육의 정답이 무엇인지 모르니,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주기 위해 다종 교과서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전문가들조차 '정답이 없다'고 하는데도, 정부는 '정답이 따로 있다'며 이에 수긍할 것을 강요하는 셈이다. 한마디로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고 넌 대답만 하면 돼' 라는 뜻의 신조어)'다.
정부가 아는지 모르겠다. '답정너 스타일'이 친구들 사이에서 따돌림 대상 1위라는 것. 이미 국민은 정부를 따돌릴 준비를 하고 있다. 각종 여론 조사에서 나타나듯, 국정화 반대 여론은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는 사실을 정부는 알아둘 필요가 있다.
그리고 하나 더. 국민은 그리고 역사는 오늘을 기억할 것이다. "역사 왜곡이나 미화는 절대 있을 수 없음", "헌법정신과 객관적 사실에 입각한 질 높은 교과서를 만들 것", "내용상의 오류나 편향성이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적시에 수정과 보완이 이루어질 것"이라던 그 약속, 부디 지키길 바란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