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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의 동양평화론 정신 돌아볼 때!

[기고] 광복 70년과 동북아 평화 : 제2의 냉전동맹을 염려하며

올해 우리 민족은 분단 70년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우리 한민족에게는 긴 고통의 시간이었습니다. 그 고통이 부당하고 억울하기에 더욱 길게 여겨집니다. 따지고 보면 지난 70년은 그 이전의 일제 식민지 고통과 결코 무관한 것이 아닙니다. 일본의 태평양 전쟁에서 패배로 우리는 식민 지배로부터 벗어났으나 해방의 기쁨은 제대로 누릴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의지에 반하는 일제의 침략과 강점을 당했듯이, 또다시 우리의 뜻과 전혀 상반되는 강대국의 일방적 조치로 분단을 맞았고, 그 분단은 우리의 삶을 옥죄었습니다. 그래서 억울한 것이지요. 돌이켜 보면, 외세에 의한 일제 강점기와 분단의 지난 106년의 세월은 긴 고통의 시간이었습니다. 이 억울한 고통을 우리의 후손들에게 떠넘기지 않기 위해서도 민족고통과 민중고난의 역사적 의미를 냉철하게 성찰해야 합니다.

지난 70년을 회고해보면, 패전국이요 전범국인 일본의 일부 민족주의 세력은 오히려 패전과 종전의 의미를 다시 불길한 방식으로 새기고자 하는 것 같습니다. 특히 아베 정권은 120년 전 청일전쟁과 111년 전 러일전쟁의 승리의 벅찬 감격의 망상에 사로잡혀있는 것 같습니다. 20세기 중반까지 일본은 욱일승천하는 기세로 제국주의 확장에 매진했습니다. 청일전쟁의 승리로 대만을 식민지로 삼켰고, 러일전쟁의 승리로 한반도 강점을 획책했지요.

이때 미국도 제국주의 확장에 열을 올리면서 서태평양으로 진출하려 했습니다. 스페인 전쟁에서 승리한 미국은 필리핀을 식민지로 병탄(倂呑)하고자 했기에 일본의 한반도 강점을 묵인했습니다. 따지고 보면 이미 한 세기 전 일본과 미국은 동아시아 지역의 제국주의 확장에 공조했습니다. 테프트 – 가츠라 밀약(Taft-Katsura Secret Agreement)이 바로 그 증거이지요.

오늘 일본 정부는 20세기 초 미국과의 ‘공조의 영광’을 재현하고자 하는 듯합니다. 최근 아베 정부의 여러 우경화 조치들은 우리를 포함하여 이웃 국가들을 긴장시키며 분노케 합니다. 작년 7월부터 아베 총리가 발동을 걸기 시작한 이른바 일본의 ‘보통국가화’의 결정들입니다. 미국과 공조를 통해 날로 부강해지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일본은 다시 군사적으로 재무장 하려는 것이지요. 억울한 고통을 겪었던 우리는 이러한 일련의 움직임에 예민해 질 수밖에 없습니다. 한반도 분단을 주도적으로 단행했던 미국의 외교정책, 특히 소련을 전폭적으로 견제, 봉쇄하려했던 냉전 외교정책을 우리는 새삼 주목하게 되고 비판적으로 성찰하게 됩니다.

부당한 일제 식민지배가 끝나려는 시점에서 우리 민족은 참으로 허무하게 분단의 비극을 맞게 됩니다. 너무나 황당하게 한반도의 38선이 그어졌기에 그 맥락에 대하여 잠시 언급하겠습니다.

독일과 싸울 때에는 미국과 소련은 연합국이었지만, 일본이 패망할 즈음에는 미국은 소련을 잠재적 주적으로 간주하기 시작했습니다. 히틀러와의 전쟁으로 큰 피해를 입은 소련은 대일전쟁에서 참여해달라는 여러 차례에 걸친 미국의 요청을 단박에 수용하지 않았으며, 독일이 항복 후에도 소련은 태평양 전쟁에 참여 의사가 없었습니다. 다만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에 원자 폭탄이 투하되고, 10만여 명이 몰살당하는 처참한 폭격을 확인한 직후 참전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소련군은 파죽지세로 중소 국경을 넘어 남하를 강행하였습니다. 미국도 소련군의 진격 속도에 당황하였고 그들이 먼저 일본 본토에 상륙할 수 있다는 두려움을 갖게 되었습니다. 미국은 소련군을 저지시키기 위하여 남진 저지선을 성급하게 설정하였지요. 일본국왕의 항복 선언보다 5일정도 앞서 분단선이 확립되었습니다. 상해 임시정부도, 국내 항일세력도, 우리 민족 누구도 이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미국의 실무 영관급 장교 두서너 명이 한반도에 선을 그어 분단시키는데 채 30분도 걸리지 않았다는 사실이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적어도 천 년간 같은 민족으로서 살아온 우리의 강토가 외세에 의해 순식간에 절단된 것입니다. 미국의 우방이었던 소련이 바로 주적으로 떨어지고 맙니다. 소련군의 팽창을 저지하기 위하여 아무런 상관도 없는 우리 민족과 강토가 두 동강나고 만 것입니다.

냉전의 서막이 올라가면서 미국은 세계 패권국이 되었으며, 소련의 견제와 봉쇄가 미국 외교의 최우선 정책이 되었습니다. 한민족은 바로 그 미국의 냉전 정책의 희생양이 된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전범국이었다면 패전 후 영토 분할로 마땅한 징벌을 받았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우리는 전쟁 범죄와 아무런 상관이 없었기에 저는 우리의 고통이 억울하다는 것입니다. 전범국이 받아야할 징벌을 전범국의 피해자인 우리가 받은 것입니다. 참으로 불가사의한 역사적 불의(不義)요, 비정상적 착오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일본 천황(천왕)의 공식적인 항복 선언 전에 전범국의 식민지였던 우리가 해방과 광복의 기쁨은커녕, 분단이란 끔찍한 ‘징벌’을 받게 된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아직까지 미국은 공식적인 사과 한마디 하고 있지 않고 있습니다.

반면, 전범국 일본은 패전의 결과로 독일처럼 정당한 징벌(Retributive Justice)도 받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 시기 일본은 역설적으로 놀라운 ‘축복’을 받게 됩니다. 1950년 6월 한국전쟁이 발발, 일본은 전쟁 특수를 누리게 됩니다. 미국의 지원 하에 군수산업이 일어나고 경제적 강국으로 부상하게 됩니다. 아베 총리의 외조부인 기시 노부스케(岸信介)가 감탄했듯이 일본의 신(神)이 한국전쟁을 통해 일본에 축복의 단비를 내리게 한 셈입니다. 미국은 작심하고 일본을 제도적으로 지원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한국전 중에 미국이 서둘러 체결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입니다. 이 조약으로 일본은 반인륜적 전쟁범죄를 사면 받게 되고, 더 나아가 한국전에 필요한 군수물자 생산을 통해 경제 부국으로 눈부시게 성장하게 됩니다. 일본의 이러한 축복은 미국의 대 소련 견제, 냉전 외교 전략의 산물입니다. 이에 반하여 우리민족은 분단에 이어 동족상잔의 ‘저주’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 엄청난 역사적 고통과 희생에 대해 미국정부는 역지사지(易地思之)하거나 역지감지(易地感之)하지 않았습니다.

주적 소련을 극복하는데 미국은 일본의 힘을 키워 일본을 대 소련 견제의 제1보루로 삼고자 했습니다. 여기에 한국은 제2보루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이런 사실은 60여 년 전 역사적 사실이지요.

1990년대 이후 냉전 체제의 붕괴는 미국을 중심으로 또 다른 대립 체계가 구축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경제적 부흥에 힘입은 중국의 부상은 미국에게 껄끄러운 존재가 되고 있습니다. 새로운 힘에 대한 견제가 필요한 미국은 동아시아에서 일본을 이용하는 군사·외교 전략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것은 미국의 신 냉전전략 하에서 아베 정부가 평화헌법을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전쟁을 할 수 있는 ‘보통국가’로 변신을 도모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미국 정부의 지지 없이 과연 일본 정부가 자국민들이 그토록 반대하고 있는 평화헌법의 정신을 감히 훼손할 수 있겠습니까? 참으로 역설적인 것은 일본의 평화헌법은 바로 미국이 종전 후 맥아더 체제하에서 직접 심어놓은 소중한 평화장치요, 평화제도요, 평화규범입니다. 미국이 심어놓은 제도 장치를 훼손하고 제거하려는 일본 보수 정치 세력을 미국 스스로가 간접적으로나마 두둔한다는 사실이야말로 참으로 희극적 비극이 아닙니까? 또 얼마나 비극적 희극이 아니겠습니까?

여기에서 미국의 외교 정책이 실제로 얼마나 국익이라는 미명 하에 편법적 방식으로 원칙 없이 시행되어 왔는지를 저는 동북아시아 지역 맥락에서 간단히 언급해야 할 것 같습니다.

대체로 미국은 대내 정치에 있어서는 원칙적으로 민주주의 가치를 존중합니다. 그런데 대외정책의 실천 역사를 조명해보면 민주주의 원칙보다 실리추구의 원칙을 더 소중히 여깁니다. 국익이라는 명분 아래 편법주의적 융통성을 발휘합니다. 미국이 세계 패권국으로 부상하기 전에는 먼로주의(Monroe Doctrine)가 미국 대외정책의 기본 방향이었습니다.

그러나 1차 세계대전 이전에도 미국은 이미 유럽 열강과 마찬가지로 무력행사를 통한 식민지 확장에 열을 올렸습니다. 스페인 전쟁(1898년)에 승리하자, 필리핀을 식민지로 삼켰습니다. 이때 동아시아에서는 일본이 청나라와 러시아를 격파한 후 대만과 한반도를 삼켰습니다. 앞서 지적했듯이 1905년 미국과 일본은 공조를 통해 각기 필리핀과 한반도를 병탄했습니다. 민주주의 원칙은 어디에도 존중되지 않았습니다. 다만, 벌거벗은 힘의 논리, 즉 사회적 진화론(Social Darwinism)의 적자생존 원리만이 물리적 힘을 통해 작동되었습니다.

미국이 명실 공히 막강한 세계 패권국가로 등장한 것은 태평양 전쟁에 승리한 후입니다. 일본 제국주의자들은 패전으로 미국을 실질적 세계 패권국으로 올려놓았습니다. 그리고 소련이 이 시기에 미국의 주적이 되었다고 앞서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태평양 전쟁 시 주적이었던 일본을 최우선 우방국으로 예우했지요. 그들에게 죄과를 엄격하게 부과하지 않고 엉뚱하게도 우리 민족이 억울하게 징벌을 받은 셈이죠.

미소 간의 세계적 냉전은 한반도 분단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트르먼 독트린(1947년)은 바로 냉전의 공식적 선언이라 하겠습니다. 당시 유럽에서는 대 소련 견제 및 포위를 위하여 나토(NATO) 체제가 구축되었고, 동아시아지역에서는 흥미롭게도 미국의 중국 포섭이 시도되었습니다. 주지하다시피, 2차 세계대전 전에 중국은 일본의 침략을 받았고 전쟁 중에는 내전에 휩싸였기에 미국은 내전 상황에 따라 그 전략을 바꾸었습니다. 초기에는 국민당 군대를 지원하다가, 중공군의 승리가 확실시 되자 이념적으로는 마땅하지 않지만 공산당 세력에 접근 했습니다. 종전 후에도 미국은 대륙을 장악한 중공을 지속적으로 포섭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1950년 2월, 미국의 소망과는 달리, 중국과 소련이 동맹 관계를 맺게 되자 미국은 일본과의 연대를 본격적으로 키우는 정책에 집중하게 됩니다.

이런 국제 정치적 관계 틀 속에서, 중국은 1951년 한국 전쟁에 개입하게 되었습니다. 미국은 바로 이런 상황에서 서둘러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을 체결하게 됩니다.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은 미국 중심의 세계 질서에서 대 소련 견제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전범국 일본에게는 면죄부를 부여 해주었습니다. 바로 이때 미국은 독도까지 일본 영토로 용인하면서 독도를 대소(對蘇) 레이더 기지로 활용하려고 했습니다. 이때 한국과 중국은 이 조약체결에 초청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1953년 3월, 스탈린 사망 후 중·소 갈등이 드러나고, 국경지대에서 무력충돌마저 발생됨에 따라, 미국은 신속하게 또 다시 중공의 손을 잡고자 하였던 것입니다. 그 일환으로 1971년 닉슨 정부는 키신저를 중국에 밀사로 파견했고, 심지어 중국의 유엔 가입을 지지했습니다. 다음해인 1972년에는 반공주의자였던 닉슨 대통령이 직접 중공을 방문, 세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이러한 행보를 통해 미국은 오로지 실리 외교에 치중했지요. 이것은 외교에 있어 경의중리(輕義重利)라는 미국의 민낯을 보여준 것입니다.

이후 미소간의 과도한 군비경쟁은 결국 1991년 소련의 해체를 불러왔고 미국은 피 한방울 흘리지 않고 냉전 경쟁에서 승자가 되었습니다. 단극체제가 등장했지요. 그런데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소련의 빈자리에 조용히 중국이 진입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기간 소련보다 더 무섭게 국력이 신장된 중국은 세계 제2의 경제대국(G2)으로 성장했습니다. 오바마 행정부의 이른바 아시아로 회귀(Pivot to Asia)나 아시아 재균형(Rebalance) 정책은 미국의 대중(對中)견제 정책임을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공식적으로 미국은 중국의 대한 봉쇄 정책을 부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미국은 군사적, 경제적 대국으로 성장하면서 엄연한 G2의 입장에 서 있는 중국을 어떤 방편으로라도 견제하려는 움직임들이 많은 곳에서 두드러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과 일본의 군사적 협력은 더욱 강화되기 시작했습니다.

1996년 4월, 미국은 일본과 안보공동선언을 발표했습니다. 1997년 6월에는 기존의 미일 방위협력지침을 수정·강화했습니다. 미국과 일본의 군사적 동맹 강화는 아베 정부의 군사대국화 정책과 맞아 떨어집니다. 평화헌법 수정을 위한 전방위적인 시도를 하였고, 2014년 7월 초에는 마침내 아베 총리가 각의에서 새로운 헌법해석의 길을 터놓았습니다. 올 여름에는 중의원에서 집단 자위권 행사를 가능하게 하는 여러 안보 법안들을 야당과 시민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통과시켰습니다. 곧 참의원에서도 이들 법안들을 무리하게 통과시킬 것입니다.

아베 정부는 전후 맥아더 체제하에서는 정상국가의 전쟁권리가 억울하게 박탈당했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정상국가의 전쟁 권리를 마땅히 되찾아야 한다고 확신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야 일본도 미국의 새로운 지원 하에 중국에 대한 군사적 견제에 더욱 박차를 가할 수 있다고 판단하는 것 같습니다. 아베 정부 요인들은 과거 패권적 제국주의 영광을 그리워하는 배타적 민족주의 세력과 함께 맥아더 체제 하에 일본정부의 ‘비정상성’을 이제 정상화시켜 놓았다고 희희낙락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희열은 과거 일제로부터 부당하게 고통을 받았던 아시아 여러 국가들의 국민들의 분노를 더욱 자극할 것입니다. 특히 한국과 중국은 일본의 재무장에 대해 예민하게 대응할 것 같습니다. 또 대응해야 합니다.

미소 냉전의 종식 이후 거대한 두 해양 세력인 미국과 일본은 대륙세력인 중국을 효과적으로 견제하기 위하여 공조하고 있습니다. 언뜻 보기에는 오바마 정부는 핵 없는 세계, 보다 공정한 자본시장 체제, 보다 다원적인 사회체제 등의 정책을 추진하기에 미국의 전통적 보수 세력과는 다르게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세계패권 국가로서의 지위 유지를 위하여 필요한 국익의 문제에 있어서는 미국의 보수와 진보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오바마 정부의 아시아 재균형 정책 또는 아시아 회귀정책을 꼼꼼히 따져보면 겉말과 속셈은 다른 것 같습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다윈 항에 미국 해병대 기지를 신설한다든지, 필리핀 수빅 만에 철수했던 미군기지가 다시 회귀한다든지, 남중국해에서 벌어지는 중국과 일본 간의 영토분쟁에 있어 일본을 지지한다든지, 미사일 방어체제를 일본에 구축함과 동시에 동 체제에 한국을 가입시키기 위해 은근한 압력을 행사하는 등 미국 정부의 물밑, 물위 움직임을 보면 오바마의 대중(對中)정책은 실제로 봉쇄 정책이요, 포위 전략인, 견제 조치임이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이런 미국정부의 구체적인 정책적 작동과 아베정부의 평화헌법개정 움직임에 중국은 예민해 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만일 한국과 일본이 미사일방어 체제 속으로 편입된다면 중국정부는 이것을 냉전시대의 삼각동맹의 부활로 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며 중국대륙에 대한 미국의 직․간접적으로 위협하는 행동으로 읽을 것입니다. 지금 미국은 지난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때 케네디 정부가 어떻게 대처했는지 깊이 성찰해본다면, 오늘의 중국의 불안과 불신을 보다 쉽게 역지사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한국정부의 반응은 어떠합니까?

아직 공식적으로는 한국정부는 일본정부의 보통국가화 노력에 대해 공식적으로는 반응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역사 교과서 왜곡과 독도 문제, 위안부 문제 등에 대해서는 분명한 입장을 계속 견지하고 있습니다만, 미·일간 군사협력 강화를 통해 중국을 옥죄려는 움직임에 대해서는 명확한 입장을 취하고 있지 않습니다. 사드 배치문제에 대해서 불안한 마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공식적 요청이 없음을 내세워 분명한 정책적 입장을 내놓기를 꺼려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오늘 우리의 모습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 어정쩡하게 끼어있는 형국입니다. 두 강대국의 긴장과 모순이 증폭될 경우 한국 정부는 더욱 난처한 처지에 놓이게 됩니다. 주지하다시피 한·중 관계가 정상화된 지 23년이 지난 지금, 두 나라 간의 우호 관계는 매우 돈독해졌습니다. 특히 경제협력 관계는 양국 간 교역량의 급속한 성장에서 대번에 확인할 수 있습니다. 관계 정상화 11년 만인 2003년에 양국 교역량은 570억 달러에 이르렀고 한·일 간 교역량 536억 달러를 훌쩍 넘어섰습니다. 그 다음해에 한·중 교역량은 794억 달러에 이르러 놀랍게도 한·미간 교역량인 716억 달러보다 규모가 훨씬 커졌습니다. 2009년에 이르러서는 한․중 간 교역량이 미국과 일본과의 교역량을 합한 규모보다 더 커졌습니다. 한미 간의 교역량의 두 배 이상이 되었습니다. 때문에 대외 의존도가 아주 높은 한국은 이제 중국과의 경제협력 없이 살아가기 힘들게 되었습니다. 작년 대중국 무역흑자가 무려 553억 달러였는데 이 수치는 한국의 전체 무역흑자인 475억 달러보다 훨씬 많습니다. 중국에서 버는 돈으로 겨우 무역흑자를 내고 있는 처지가 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상전벽해 같은 변화지요. 그러니 이제 서울과 베이징 간의 거리가 서울과 워싱턴 간의 거리보다 결코 멀지 않게 되었습니다. 1993년 문민정부 당시 주중대사로 내정되었던 분이 부임하기 전에 사석에서 서울과 베이징간의 거리가 서울과 워싱턴 간의 거리와 같아야 한다고 했다가 보수언론으로부터 호된 질책을 받았던 사실이 새삼 떠오릅니다. 그런데 이제는 한중관계를 한미관계만큼 친밀하게 유지해야만 경제적 생존과 번영을 유지할 수 있게 된 것이 엄연한 오늘의 우리 현실입니다. 누가 이 엄연한 사실을 부인할 수 있겠습니까?

이런 변화된 상황에서 우리가 냉전시대의 남방 3각 동맹체제에 또다시 있을 수 없습니다. 특히 중국을 견제·봉쇄하려는 미국과 일본의 정책과 전략에 일방적으로 끌려 갈 수만 없습니다. 우리는 지혜롭고 용기 있게 우리 국가의 생존·번영과 민족평화를 위한 새로운 활로를 열어가야 합니다. 그리고 강대국의 종속변수나 졸(卒)의 수준에 머물러 있지 않다는 사실을 우리 스스로가 자긍심을 가지고 새롭게 깨닫고 보다 적극적으로 우리의 활로를 모색하고 찾아내야 합니다.

우리는 세계중심부로 떠오르고 있는 동북아시아에서 착실한 중견국가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혹독한 36년의 식민지 시기를 보내고 그 살벌했던 분단 70년을 보냈습니다. 긴 문민독재의 억압도, 그것보다 더 혹독하고 더 길었던 군사독재도 시민의 뭉친 힘으로 극복해냈습니다. 1987년 시민저항으로 새로운 시민사회가 부분적으로나마 성숙해졌습니다. 이른바 1987년 체제가 아직도 미완의 민주체제로 남아있긴 하지만 국내외적으로 한국은 경제발전과 정치발전을 동시에 성공적으로 추진한 중진국으로 평가받고 있는 것도 엄연한 현실입니다

바로 이렇게 불안한 상황에서 동아시아지역은 여러 심각한 모순과 긴장으로 중첩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만큼 잠재적 위험도 심각합니다. 중국과 미국 간의 긴장, 중국과 일본 간의 갈등, 한국과 일본 간의 묵은 긴장, 그리고 이 모든 긴장과 모순 가운데 한반도 남북 간의 긴장과 마찰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 중 우리민족에게 가장 아픈 것은 분단으로 인한 민족 갈등입니다. 그런데 이 모순 중에서 G1, G2 간의 모순이 주 모순입니다. 이런 주요 모순이 우선 해결되어야 여타 다른 모순들의 해결도 보다 쉬워질 것입니다. 그런데 최근 미국의 아시아 재균형 정책이 실제로 작동하는 양상을 보면, 이 주요 모순이 해소되기는 결코 쉽지 않을 듯합니다. 왜냐하면 미국이 정치, 경제, 군사 각 방면에서 무섭게 굴기하는 중국을 효과적으로 견제하는 것을 대외정책의 최우선 순위에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 정부의 공식적 입장은 부드럽고 외교적이지만 실제의 조치를 보면 앞서 지적했듯이 중국 봉쇄 쪽이 보다 확실한 듯합니다.

그러기에 미중 간 잠재적 갈등이 근본적으로 해소되어야만 비로소 중일갈등과 한일갈등도 보다 쉽게 해소될 수 있습니다. 미국이 과감하게 주 모순 해소에 적극 나선다면 이 지역상황은 근본적으로 달라질 것입니다. 일본은 비록 중국을 경계하고 두려워하지만, 미국 정부의 대중국 봉쇄정책이 전환된다면 그 전환에 일본이 역행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이런 주요 전환이 이루어진다면 남북관계도 개선될 가능성이 높아질 것입니다. 그리고 한국 정부도 이것을 환영할 것입니다. 그리고 한국, 중국, 미국이 공조하여 한반도 평화를 정착시키는 가능성도 그만큼 커질 것입니다. 그러기에 동아시아 안전과 평화 그리고 번영을 이룩하기 위해서 무엇보다 이 지역에서 미중 관계가 우선적으로 개선되어야 합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그 넓은 태평양을 미국은 이제 홀로 관리할 패권적 욕심을 내려놓고 서태평양지역 여러 국가들과 함께, 특히 중국과 함께 공동관리할 아량을 보여줘야 합니다. 태평양은 이름 그대로 큰 평화의 바다입니다.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의 평화는 미국이 서태평양을 중국을 위시한 아시아 여러 나라들과 함께 평화적으로 관리해 나갈 때 비로소 태평양지대가 평화번영 지대가 될 수 있습니다. 이런 위대한 평화세계 건설을 위해 이제 미국과 중국은 전략적 관점에서만 뿐만 아니라 나아가 문명사적 관점에서 서로 협력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G1 과 G2간의 바람직한 새로운 세계질서가 될 것입니다. 오바마 대통령의 ‘핵 없는 세계’ 라는 비전도, 시진핑 주석의 ‘신대국 관계’도 비로소 평화적으로 이루어질 길이 열리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엇보다 G1인 미국과 G3인 일본이 군사·경제적 공조를 강화하여 G2를 옥죄려는 정책부터 과감하게 정리해야 합니다. 미국의 새로운 대외정책과 외교비전이 절박하게 요청됩니다. 이미 노벨평화상을 받은 오바마 대통령이 평화 만들기를 위한 새로운 용기 있는 결정(Audacity)을 내려야 합니다. 미국이 중국의 다방면의 발전을 진실로 환영한다면, 대결에서 협조로, 포위에서 포용으로, 견제에서 상생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아시아로의 평화로운 회귀가 될 것입니다. 또, 이같은 회귀를 해낼 수 있는 힘을 미국이 갖고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최근 이란의 핵협상에서 미국의 평화동력을 저는 새삼 확인하는 듯합니다. 그리고 아시아 여러 나라들과 미국이 계속 함께 평화의 균형을 만들어 갈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아시아재균형정책이라 하겠습니다.

그리고 일본은 지난날 아시아 여러 국가들, 특히 한민족과 중국에 대해서 끊임없이 침략과 식민지 지배를 도모했던 과거사를 솔직히 시인하고 진솔하게 사과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그 시인과 사과에 값하는 구체적인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아베 정부의 신군국주의적 정책을 포기해야 합니다. 이 정책은 오늘의 깨어있는 일본 국민들에게도 맞지 않을 뿐 아니라 일본의 미래에도 맞지 않습니다. 그리고 과거 일본 군국주의적 행위로 부당한 고통을 겪었던 모든 아시아인들이 앞으로 끈질기게 끊임없이 일본의 재무장을 비판할 것입니다.

세계역사를 성찰해보면, 대체로 해양 국가들이 대륙국가들보다 제국주의적 확장에 더 열중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기에 21세기에서 미국과 일본 같은 최강 해양국가에서 이웃 국가들과 평화롭게 서로 번영하는 일에 모범적으로 앞장서야 합니다. 특히 동북아지역에서 그러합니다. 110년 전 두 해양 국가 간의 밀약으로 식민지 고통을 겪기 시작했던 한민족은 두 해양국가 가 이제는 중국대륙과 과감한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나아가기를 더욱 갈망합니다. 그래야 동북아지역 전체가 안정되고 평화번영을 누릴 수 있는 가능성이 증대될 것이며 무엇보다 한반도 평화의 길도 열릴 수 있을 것입니다. 한국전에 참전했던 4자(남, 북, 미, 중)가 한반도 휴전체제를 마침내 평화체제로 변혁시킬 수 있는 길도 보다 쉽게 열릴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에서도 미중 간의 공조가 참으로 중요합니다. 이렇게 말하고 나니 2000년 10월 중순 북미공동선언에서 클린턴 대통령과 조명록 차수가 밝혔던 4자 협상에 의한 평화체제 구축문제가 그 이후에 계속해서 논의되지 못했던 일이 새삼 가슴 아리게 떠오릅니다. 그리고 2000년 10월 4일 남북의 두 정상이 공동선언 4항에서 이 문제를 다시 거론했으나, 후속 조치가 따르지 못했음을 새삼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만일 미중 관계가 지금의 잠재적 모순과 긴장관계에서 최우선적 우방 관계로 전환된다면, 앞에서 지적했듯이 두 나라가 공조하여 북한의 핵문제를 일괄타결하는 것도 지금처럼 불가능한 것처럼 인식되지 않을 것입니다. 북핵 문제해결을 위한 미중 간 공조에 만일 한국과 일본이 힘을 보탠다면 북한 핵문제도 대화와 외교로 더욱 원활하게 풀리게 될 것입니다. 6자 회담 틀 안에서나 밖에서 말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북한 핵문제 못지않게 한, 미, 중, 일 4자 간의 우호적 공조도 어려운 듯합니다. 무엇보다 미중 간의 주요 모순 해소가 가장 절박하게 필요합니다. 이것을 위해 최강국 미국의 선제적 우호조치가 가장 절박하게 요청됩니다. 이것은 바로 미국정책 패러다임의 전환을 뜻합니다.

지난달 미국과 중국은 이미 이란 핵문제 해결을 위해 공조한 것을 우리 모두 기쁜 마음으로 기억하고 축하합니다. 이 과정이 중동에서 가능하다면 왜 이것이 동북아에서는 불가능합니까? 물론 이란과 북한은 여러모로 다릅니다. 그러나 다르기 때문에 불가능하다는 단견을 이겨내는 것이 진정한 지도력이 아니겠습니까! 진정한 지도력은 차이를 외교력으로 극복해 내는 능력이 아닙니까? 군사력에 의존하는 것은 단지 최하의 지도력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이란 핵문제 해결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진솔하고 용기 있는 지도력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란을 국제적으로 고립시키는 일에 실패했음을 진솔하게 공개적으로 시인했습니다. 고립된 것은 이란이 아니라 오히려 미국이었음을 용기 있게 시인했습니다. 국민과 의회에게 호소하는 연설에서 오바마는 미국의 힘을 단지 군사력에만 제한시키는 것은 미국의 힘을 스스로 얕잡아보는 것이라고 일갈했습니다. 이 같은 용기 있고 진솔한 지도력을 동북아에서도 발휘한다면, 동북아지역의 평화와 번영과 함께 한반도 평화와 통일의 문도 대화와 외교로 열리게 될 것입니다. 문제는 세계 최강 국가의 최고 지도력이 제대로 발휘되느냐 아니냐하는 것이 관건입니다. 이미 이란과의 협상에서 공조한 미국과 중국이 동아시아 평화를 위해 특히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해 더욱 그 공조를 강화해나가야 합니다.

일부 냉전 근본주의자들은 이란과 달리 북한은 끝까지 대결의 자세로 일관할 것으로 확신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특히 북한을 끈질기게 악마화해 온 그들은 그렇게 비관할 것입니다. 거기에 일말의 현실성이 있긴 합니다. 그러나 그런 비관을 의도적으로 강조하는데 문제가 있지요. 왜냐하면 북한 핵문제가 대화와 외교로 풀 수 없다고 확신해야만, 무력(또는 제도적 폭력)으로만 풀 수 있다는 그들의 주장을 지속적으로 합리화하고 견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강경한 접근은 항상 제가 남북관계 현실에서 안타까워하는 이른바 적대적 공생관계라는 비극을 낳고 지속시킵니다. 냉전근본주의자들은 어느 상황에서나 상대방을 악마화하기에 상대방과의 협상을 아예 어리석은 짓으로 못박습니다. 상대방이 악한 주적이므로 상대방은 반드시 주저 없이 초전박살내야 한다고 역설합니다.

남북한의 지배 세력 간에 이 같은 관계가 지속되어 왔기에 남북관계가 아직도 개선되지 않고 있음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남쪽의 냉전근본주의 세력은 북쪽의 그러한 지배세력을 공식적으로 증오하고 궤멸시키려하면서도 결과적으로는 서로 도와주고 있습니다. 남북지배세력간의 명시적 배척과 증오는 결과적으로 각 체제 안에서 각기 그들의 정치적 기득권을 강화시켜줍니다. 그러니 서로 미워하고 박멸할 악의 축이 역설적으로 서로에게 필요한 적이 되고 맙니다.

이런 역설적 공생관계를 미국의 경우 부시 대통령과 체니 부통령 같은 네오콘(Neo-Con) 세력과 알카에다 간에 어김없이 나타났습니다. 그것은 또한 남북한 양쪽의 강경호전 세력 간에도 나타났으며 지금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 같은 선택은 폭력으로 상대방을 제압하려하기에 자멸의 길로 가게 됩니다. 이러한 적대적 공생관계가 자칫 미중 간에도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결과는 가공할 모순 극대화, 곧 군사적 충돌같은 위험한 공멸의 대결로 나갈 수도 있습니다. 또한 이런 불길한 공생관계는 중·일간에도 작동할 수 있습니다. 이미 아베 정부는 이런 관계를 부추기는 듯합니다.

어떠한 경우라도 적대적 공생관계는 극복되어야 합니다. 극복이 그렇게 쉽지 않은 것은 이 관계로 정치적 이득을 보는 주체가 이 메커니즘의 미묘한 작동을 대체로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를테면 남한의 극우 반공세력은 북한 공산주의자들을 증오하기에 자기들이 북한 강경세력(강경군부)을 결과적으로 도와준다는 이 역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듯합니다. 그들이 그토록 혐오하는 종북 행위를 자기들도 모르게 스스로 자행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의식적 의도와는 달리 적대적 공생관계는 역설적으로 그리고 결과적으로 항상 그 효과를 내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북한의 강경군부도 그들이 그토록 증오하는 ‘미 제국주의자들의 앞잡이들’의 권력기반을 그들의 호전적 행동으로 오히려 튼튼히 해준다는 결과적 사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란 핵 협상이 그나마 일단 타결된 것은 이란의 루하니 대통령과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이런 적대적 공생관계의 작동을 극복하려는 의지를 갖고 있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두 대통령은 각기 자기 체제 안에서 극보수 강경세력들로부터 신랄한 비판을 받아 왔습니다만 이번에는 그들의 용기있는 선의의 결단으로 극단 세력의 반대를 잘 관리해내고 있습니다. 물론 두 지도자는 앞으로도 적대적 공생관계에서 이득을 보는 극단세력을 효과적으로 계속 제어해야할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아베 총리의 행태를 보면 중·일간에도 적대적 공생이라는 관계악화 메커니즘이 작동되는 것을 그가 제대로 모르고 있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평화헌법을 무력화시켜 일본정부가 동북아지역에서 또 전쟁을 할 수 있게 된다면 중·일간 그리고 한·일간 적대적 공생 비극은 반드시 작동될 것입니다. 저는 이것을 심히 염려합니다.

이런 시점에서 미국도 역사반성을 해야 할 것입니다. 20세기 후반, 유일 패권 국가가 되었지만, 미국은 그 패권 행사로 실패의 아픔을 여러 번 겪었습니다. 미국인들에게 한국전쟁은 기억하고 싶지 않은 ‘잊혀진 전쟁(Forgotten War)’이 되고 말았습니다. 미국의 국력이 최고지점에 도달했던 1950년 초에 막강 미국은 작은 신생국 북한과 전쟁을 벌였으나 이기지 못하고 무승부로 끝난 셈이지요. 이것은 미국에게 일종의 트라우마로 남아있습니다.

브루스 커밍스 교수에 따르면 한국전쟁의 여파로 미국은 보수적인 안보국가로 전락했다고 합니다. 한국전쟁 후 미국은 매카시즘이라는 후진적 정치 퇴행을 겪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1960년대에는 월남전에 뛰어들면서 초강대국 미국은 정치·경제적 후진국이었던 베트남과의 전 쟁에서 초라하게 패배하고 말았습니다. 아마 미국 역사상 미국이 전쟁에서 패배한 첫 사례가 바로 월남전이 아니겠습니까? 그 후에도 미국은 여러 전쟁에 개입했지요. 한때 미국이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특수 지원하여 훈련시켰던 무슬림 극단세력과도 힘겹게 싸우기도 했습니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도 미국은 그 막강한 경제력과 군사력으로도 승리하지 했습니다. 극단세력과 극단적으로 싸웠던 부시 대통령도 승리를 경솔하게 선포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전쟁에서 이기지 못했습니다. 흥미롭게도 미국의 네오콘과 탈레반이나 알카에다 같은 종교적 극단 세력 간에도 일종의 적대적 공생관계가 작동되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도 IS(Islamic State)같은 세력과 미국 정부 간에는 이 같은 적대적 공생관계가 형성되어 있지요. IS는 미국의 무력대응을 두려워하지 않고 역설적으로 오히려 환영하는 듯합니다. 그들이 서방으로부터 폭격을 심하게 받을수록 세계 각처에서 IS를 도우려는 신병들이 몰려오는 듯합니다.
이런 악순환을 깨는 힘은 극단적 폭력대응에서는 결코 나오지 않습니다. 그것은 바로 대화와 협력의 힘에서 나옵니다. 악에 사무친 발악적(發惡) 보복에서가 아닌 상대방과 역지사지하고 역지감지하는 발선(發善)의 선제적 조치에서부터 평화는 진정 싹트기 시작합니다.

오늘의 동북아 위기상황에서 만일 미국과 일본이 이 같은 역사적 교훈을 무시하고 계속해서 이 지역의 모순을 심화시키는 방향으로 고집스럽게 호전적인 정책을 계속 선택한다면 그리고 적대적 공생관계를 계속 악화시킨다면 한국과 일본의 시민들은 어떤 대응을 할 수 있을까요. 특별히 남북관계 뿐만 아니라 한일관계도 이렇게 악화되어버린 상황에서 한국정부와 한국 시민사회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요?

우리 정부는 국익차원에서 뿐만 아니라, 보편적 가치실현의 차원에서 주변 강대국에 대해 이제는 단호하게 ‘예’와 ‘아니오’를 분명히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평화, 인권, 정의의 차원에서 주변 강대국들에게 특히 미국정부에게 ‘아니오’라고 말해야 합니다. 지난 70년간 한국정치 지도자들은 도무지 미국에게 ‘아니오’라고 주장한 적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것도 평화와 인권과 정의와 같은 감동적인 보편가치 실현의 시각에서 용기 있게 ‘No’라고 말해본 적이 없지요. 이제는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우리정부는 워싱턴 정부를 설득해야 합니다. 미국과 중국 간의 갈등에서 우리가 어느 한편을 무조건 지지할 수 없음을 당당히 밝혀야 합니다. 오히려 미․중 간 갈등과 모순을 해소하는 일에 우리 정부는 국가능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합니다. 정부의 공식적인 외교역량을 동원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고, 민간의 외교능력을 지혜롭게 활용하여 미국과 중국 간의 주요 모순을 해소하는 일에 선제적으로 앞서야 합니다. 그래서 미국의 MD 체제에 들어갈 수 없는 우리의 처지를 설득력 있게 미국정부에 설명해야 합니다. 하기야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당시에는 그렇게 하려 했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우리 정부는 아베 정부의 역사건망증에 대해서도 명백한 입장을 밝혀야 합니다. 적어도 무라야마 선언과 고노 담화의 정직한 용기를 소중한 외교적 자원으로 활용하도록 아베 정부에게 촉구해야 합니다. 닫힌 민족주의나 가해자적 민족이익의 차원에서 벗어나 동아시아 전체의 안정과 평화, 번영과 상생을 위해 아베 정부는 평화헌법을 존중하도록 단호하게 촉구해야 합니다. 평화헌법은 개별국가 일본의 헌법이지만 그 9조는 일본뿐만 아니라 일본에 의해 부당하게 침략당해 갖은 억울한 고통을 겪었던 모든 아시아 국가들에게는 특별히 소중한 평화규범입니다. 뿐만 아니라 세계의 모든 평화 애호가들을 뭉치게 하는 평화규범입니다.

한국 시민사회와 지식인들은 평화헌법을 수호하려는 일본 시민사회와 연대하여 동아시아의 평화를 이룩해 나가야 합니다. 이런 민간의 연대를 통해 그동안 한일 간에 불협화음을 제거해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역사 교과서 문제, 영토문제 등을 위시한 양국 간 불신과 반목을 심화시켰던 문제도 해결될 수 있도록 양국의 민주평화세력이 협력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 협력해야 합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 한일 양국의 시민세력은 중국에 대해서도 할 말이 있으면 해야 합니다. 특히 한국 역사학자들은 중국정부의 이른바 동북공정에 대해 공동연구를 제안해야 합니다. 또 한․중․일 지식인들은 일본이 만주에서 자행했던 반인륜적 인간 생체실험을 공동으로 조사하여 세계에 알릴 필요가 있습니다. 아직도 다수의 일본 국민들은 이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실 일본의 극우세력은 전후 독일정부가 취했던 용기 있는 도덕적 자기성찰과 철저한 사죄를 공식적으로 한 바가 없습니다. 특히 피해자들에게 용서를 공식적으로 구하고 피해에 수긍하는 조치를 취한 적이 없습니다. 특히 아베 정부가 그러합니다. 오히려 일본 보수 정치인들, 특히 지난날 영광스러운 제국주의 위업을 사무치게 그리워하는 국수주의자들은 태평양 전쟁의 가해자는 일본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싶을 것입니다. 원폭을 두 번이나 투하하여 엄청난 인명을 살상한 미국이야말로 가해자로 은근히 부각시키고 싶을 것입니다. 일본은 부당한 피해자로 자신을 부각시키고 싶을 것입니다. 따라서 더욱 ‘가해자’ 미국이 일방적으로 일본에게 강요한 평화헌법을 폐기하고 싶겠지요. 그러나 이것은 21세기에서는 이룩할 수 없는 헛꿈이요 또 성취되어서도 안 될 히틀러식의 망상일 뿐입니다. 공멸로 가는 끔찍한 길일뿐 입니다. 이 길을 이제 우리 모두는 막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70년 전 보았던 그 끔찍한 버섯구름을 또다시 보게 되는 비극을 겪게 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만일 미국의 아시아 재균형 정책이 오바마 대통령 재임기간에 수정되거나 폐기되지 않고 더 강화되어 미중 갈등이 더욱 첨예화된다면 그리고 이 같은 불길한 선택으로 일본도 미국과 함께 거칠게 중국을 견제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할 것입니까? 특히 오바마 정부 이후 들어설 미국 정부가 대중(對中) 봉쇄정책을 더욱 거칠게 추진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요? 그리고 한국을 더욱 옥죄어 이른바 한미일 신냉전 동맹을 새롭게 강화시키려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요? 이렇게 된다면 제2의 냉전체제가 한반도 주변에 무섭게 다시 등장하게 되어 중·러·북 체제와 거세게 맞부딪히게 되어 한반도뿐 아니라 동북아 전체를 불안하게 하고 마침내 세계의 평화에도 위협이 될 것인데,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선택할 길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지금 정부와 시민사회 모두가 심각하게 고민해야할 시대적 과제 앞에 서있습니다. 바로 이런 위기상황에서 저는 한국의 뜻있는 시민, 생각 하는 시민들이 영세 중립국으로 나아가는 문제를 놓고 이제는 진지하게 고민해야할 때라고 봅니다. 지금은 새로운 평화 패러다임을 모색해야할 카이로스(Kairos)의 때가 왔습니다. 하기야 이 문제는 조국이 평화적으로 통일된 후 논의하고 성취할 문제입니다만, 평화 없는 거친 통일론이 난무하는 현 상황에서는 평화와 통일의 전망이 너무 어둡기에 이 문제를 감히 제기합니다. 힘에 의한 흡수통일론이 여기저기에서 터져 나와 남북관계를 더욱 교착시키는 작금의 현실과 미․일의 대중국 봉쇄정책이 더 거칠게 펼쳐질 것 같은 오늘의 불길한 현실에서 저는 이때야말로 한국국민과 정부가 함께 선제적으로 영세 중립국으로, 평화 강소국으로 나아가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비록 식민지 36년을 거쳤고, 분단 70년을 쓰라리게 경험하면서도 우리는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특히 열전 3년과 62년의 긴 냉전을 치루면서도 우리는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문민 권위주의 시대와 군사 권위주의 시대를 모두 거치면서도 우리는 민주주의와 경제성장을 동시에 성취해 내었습니다. 이제는 한국이 정보화에 앞서가고, 문화 창조력에 있어서도 세계를 놀라게 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2015년의 한국은 비록 아직까지 분단 상황에 묶여 있지만, 20세기 초 일본에 의해 일방적으로 병탄되었던 때의 한국이 결코 아닙니다. 강대국 앞에서 힘없는 객체나, 졸(卒)이나, 종속변수로 시달렸던 지난날의 한국이 절대 아닙니다. 무력하게 우리도 모르는 사이 국토가 두 동강이 났음을 숙명적으로 수용할 수밖에 없던 1945년의 한국은 더더욱 아닙니다.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나라가 아니라 새우를 먹어치우는 평화의 돌핀으로 까지 성장했습니다.
이제야 한국은 스위스 못지않은 평화 강소국인 영세중립국으로 나아갈 수 있는 시민저력과 민족저력을 갖추고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 길로 또 나아가려고 국가와 시민사회가 힘을 모은다면 우리는 국제사회에서 당당히 강대국들을 향해 ‘아니오’ 할 것은 ‘아니오’ 라고 말하면서 새로운 평화 강소국으로 나아가는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특히 대륙세력과 해양 세력이 거칠게 맞부딪히는 상황에서 반도 민족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당당한 평화강소국인 영세중립국으로 나아가는 길임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106년 전 한국청년 안중근 의사가 유언으로 남긴 동양평화론의 정신을 새삼 돌이켜보고 싶습니다.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이유를 그는 두 가지로 들었습니다. 첫째로 일본천황의 대러시아 선전포고에는 분명히 동양의 평화는 한국의 독립이 천명되었는데, 이토 히로부미는 천황을 속였고, 평화애호국들의 기대를 짓밟은 역적이기에 저격으로 처벌했다고 했습니다. 둘째로 그는 당시 서구 열강들이 문명국이라는 이데올로기의 기치를 들고 동양을 야만국으로 업신여기며 침략에 열중했음에 의분을 느꼈지요. 그래서 서구침략에 동양인은 공조하며 대응해야 평화가 올 수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그러기에 일본이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것은 당시 한국과 중국의 민중들은 환영했다고 보았지요. 그러나 일본이 동양의 이웃나라를 강점하여 식민지로 삼으려는 짓을 용인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토를 살해했다고 했습니다. 아시아의 평화, 한민족의 독립을 위해 침략군과 싸워 의병투쟁의 연장선상에서 그는 이토를 저격했다고 고백했습니다. 안중근 의사의 외침에 새삼 귀기우려야 하겠습니다. 지금 일본정부는 불행하게도 이토의 길을 걷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그러기에 아시아의 평화·번영을 위해 한국, 중국과 일본의 시민들은 굳세게 공조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 이 협력이 절박하게 요청됩니다.

(이 글은 지난 달 22일 한림성심대학교 평화연구소에서 개최한 '동북아 평화공존을 위한 한중일 포럼' 기조 강연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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