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에 신호 대기를 하고 있는데 앞으로 지나가는 버스에 적힌 광고 문구가 눈에 들어옵니다.
"수술 없이 치료하세요."
예전 같으면 관절 전문 병원 광고구나, 우리 환자들은 왜 저 병원에서 수술하고 오셨을까, 하는 정도에서 생각이 멈췄을 테지만, 최근에 읽은 책 덕분에 뇌가 한 번 더 회전합니다.
'사람들이 저 광고를 봤을 때 맨 처음 떠오르는 단어가 뭘까? 그건 바로 수술이라는 말이겠지. 그럼 저 문장은 그 뜻과는 관계없이 사람들에게 수술이란 의미를 강하게 전달할 것이고, 저런 식의 광고에 자주 노출된 사람들은 관절이 나빠졌을 때 수술이란 단어를 맨 처음 떠올리게 되겠구나. 이거 재밌기도 한데 좀 무서운걸.'
"우리는 사실을 접할 수 있지만, 우리에게 그 사실이 의미를 지니려면 우리 뇌의 시냅스에 이미 들어있는 것과 맞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실은 우리 머릿속으로 들어왔다가 그대로 밖으로 나갑니다. 그것은 우리 귀에 아예 들어오지 않고 사실로 받아들여지지도 않습니다. 아니면 우리는 상대방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어리둥절해집니다. 그러고는 그것이 비합리적이거나 미쳤거나 어리석은 것이라고 딱지를 붙여버립니다."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조지 레이코프 지음, 유나영 옮김, 와이즈베리 펴냄))
본래 이 책은 진보와 보수에 관한 이야기이지만, 인지 언어학자인 저자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우리가 어떻게 언어라는 도구가 만들어 낸 뇌 속의 프레임을 통해서 세상을 인식하는가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프레임의 문제는 의료의 영역에도 그대로 적용되고요.
예전에도 건강에 관한 이야기들은 참 많았습니다만, 방송사가 늘어나 이제 건강에 관한 프로그램이 가히 폭발적으로 증가했습니다. 게다가 인터넷을 통해 접할 수 있는 정보량 또한 엄청나지요. 우리는 텔레비전을 보고, 책을 읽고, 자극적인 제목에 이끌려 인터넷 기사를 클릭합니다.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정보들에 노출됩니다.
이 과정에서 오랜 시간 동안 반복적으로 특정한 패턴의 정보들에 노출되면, 본인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뇌 안에 일정한 프레임이 형성됩니다. 현재 많은 사람이 가지고 있는 본인의 몸과 마음, 그리고 건강과 질병에 관한 지식과 기준이 이러한 과정을 통해 만들어졌지요. 그런데 문제는 매체의 속성상 많은 정보가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 건강에 대한 불안감과 질병에 대한 공포를 키우는 것으로 가득하다는 점이지요. ‘뭐에는 뭐’하는 식의 단편적인 내용을 주로 다루다 보니, 우리 안에 형성된 건강에 관한 프레임이 불안정하고 편향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계속 불안할 수밖에 없고요. 어쩌면 이러한 불안이 의료라는 거대한 시장을 유지하는 힘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부지불식간에 노출되는 수많은 정보는 그대로 우리 뇌 속에 집을 짓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집에 맞춰 다시 정보들을 받아들여 집을 더 튼튼하게 만들어 갑니다. 편식과 과식이 영양부족과 비만을 만들어 내는 것처럼, 우리가 바르다고 받아들이는 것들이 잘못되거나 편향되었다면, 그리고 그것이 내 뇌 속에 있는 잘못된 프레임에 의한 것이라면 우리는 이를 수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야 건강과 질병을 조금 더 제대로 판단하고, 이를 통해 좋은 건강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몸과 마음, 그리고 사회와 환경을 두루 아우르는 전체적인 시선을 갖고, 다양한 관점으로 제공되는 정보를 살펴봐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정보의 수신자와 발신자 모두가 조금씩 달라질 때 가능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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