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쿡방(Cook+방송, 요리 방송)'이 뜨면서 '셰프 전성시대'가 열렸다. <냉장고를 부탁해>, <집밥 백선생> 등에 출연하는 요리사들은 언젠가부터 방송 프로그램에서, 광고에서 톱스타급 활약을 펼치고 있다. 굳이 먹어보지 않아도 브라운관 너머로 느껴지는 그들의 야무진 손맛에, 그리고 입담에 시청자들은 혼을 뺏긴다.
브라운관에 등장하는 유명 셰프 못지않은 손맛과 입담을 자랑하는 조합원 한 분을 소개하겠다. 허이령. 2030 모임의 여자 조합원. 꽃 같은 미모 덕분인지(?) 메신저상에서, 그리고 2030 모임 안에서 '꽃님'으로도 불리는 허 조합원과 지난 18일 전화 통화했다.
쿡방 요정의 '망언', "손맛? 원래 타고나야 해요"
허 조합원을 만난 게 언젠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죄송합니다)…. 그렇지만, 그의 손맛만은 기억난다. 지난 겨울 임실 치즈마을 탐방에서 그가 상에 내 온 따뜻한 부침개, 된장찌개 맛을 어찌 잊으랴! 임실 탐방뿐 아니라 5월 대성리 MT에서도 북엇국을 선보이며 뛰어난 요리 실력을 자랑했다. 프레시안 조합원 가운데 기자가 '먹방 일인자'임을 자부한다면, '쿡방 일인자'는 단연 허이령, 인정!
과연 그 '손맛'이라는 것은 어떻게 탄생하는가. 자취 경력 9년 차임에도 요리에 관한 한 영 발전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기자에게 손맛이란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다.
"음…. 그냥 포기하세요. 똑같은 재료를 써도 저는 눈대중으로 대충 해도 간이 딱 맞더라고요. 좀 타고나는 게 있는 것 같아요."
야속하다. 마치 전교 1등 하는 친구에게 비법을 묻자 '공부 그까이꺼 대강 하면 되는 거 아냐'라는 대답을 들은 기분. 좌절하지 않고 다시 물었다. "자취생들이 쉽게 요리할 수 있는 비법은요?"
"저는 다 쉽게 되던데…(일순 침묵)…. 가장 만만한 김치볶음밥 만드는 팁을 알려드릴게요. 김치 볶을 때 고추장하고 설탕을 좀 넣어서 볶아보세요. 설탕이 김치 신맛을 잡아주거든요. 그렇다고 너무 많이 넣지는 말고요. 그리고 다 볶은 다음 마지막으로 참기름을 살짝 두르고 다시 볶으세요."
볶음밥에 설탕을 넣다니 상상이 잘 안 되지만, 조만간 그의 조리법을 따라 요리를 해보고자 한다.
그렇다면 허 조합원이 가장 잘하는 요리는 뭘까?
"저는 다 잘하는데…(다시 침묵)…. 한식 잘해요. 특히 잡채."
탄성을 질렀다. 당장 허 조합원을 만나고 싶은 마음을 꾹 누르고 또 궁금한 걸 물었다. 요리 잘하는 사람들의 딜레마. 요리 잘한다고 하면 어딜 가도 부엌 밖을 못 벗어나게 되지 않을까.
"그렇죠. 고생하긴 해요. MT 가서도 요리하고, 집에서도 하고. 그런데 이게 체질이라 재밌어요. 나는 평생 이렇게 하고 살 팔잔가 봐."
허 조합원의 한숨 섞인 웃음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렸다.
남미 여행 덕분에 <프레시안>을 알다
허 조합원이 요리 못잖게 좋아하는 게 있단다. 바로 여행이다. 따지고 보면, 프레시안 조합원이 된 것도 여행 덕분이었다. 김신아 조합원으로부터 남미 여행기 <뜨거운 여행>(텍스트 펴냄)을 쓴 박세열 기자 얘기를 들은 것. 그는 2011년 다녀온 남미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고 했다. 박 기자가 9월에 남미로 안식월 휴가를 떠난다고 하자, "부러워서 눈물 날 것 같다"고 했다. 유우니 사막, 이과수 폭포….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뻥 뚫리는 절경이 연상된다.
허 조합원이 고른 다음 여행지는 파키스탄이다.
"히말라야랑 K2 고봉이 만나는 동네에 트래킹 코스가 있는데 거길 돌아보고 싶어요. 다른 사람들은 위험하지 않으냐고 가지 말라고 하는데 저는 정말 가고 싶어요. '스탄'이라는 이름 들어간 동네에 대한 선입견이 있는 것 같아요. 남미 갈 때도 위험하다고 다들 말렸는데, 막상 가 보니 그곳 사람들 모두 다 순박하고 좋았어요. 아마 파키스탄에 가서도 남미 못지않은 추억이 생길 것 같아요."
한참 여행 이야기를 하다가 얘기를 뚝 멈춘 허 조합원이 말한다. "너무 놀고먹는 얘기만 했나?"
사실 허 조합원은 '잘 놀고먹어야' 하는 일을 한다. 노인들이 주로 이용하는 요양 병원에서 물리 치료를 한다. 매일 아픈 환자들을 돌보고, 그들에게 힘을 주려면 자신 또한 잘 돌봐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몸에 마비가 온 뇌졸중 환자들을 많이 봐요. 거동을 돕는 건 체력적으로도 힘들지만, 그보다도 마음이 정말 안 좋아요. 10년을 일했는데도 괜찮아지지 않더라고요."
"조합원분들, 우리 만나서 쿡방 찍어요!"
그는 "다들 잘 먹고 잘 놀아야 한다"며 "안 본 지 오래됐는데 빨리 만나서 놀자"고 했다.
"요리 얘기 실컷 한 김에, 우리 '쿡방'이나 찍을까요?"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할지 정해진 것은 없다. 허 조합원과 기자의 아이디어일 뿐. 조합원들의 많은 의견을 구한다. 허 조합원과 요리 대결을 펼치고 싶은 조합원, 기자와 함께 '먹방' 찍고 싶은 조합원, 모두 환영이다.
전화기가 뜨뜻해지고서야, 허 조합원과 인사를 나눴다. 서로 건넨 마지막 말은 "빨리 만나요"였다.
"요새 너무 조합원 모임이 뜸해지지 않았어요? 이제 볼 때가 된 것 같아요. 뭐가 됐든 정기적으로라도 만나서 얘기 나누고 그런 자리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조합원들끼리 정도 붙이고, 추억도 쌓고요. 우리 빨리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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