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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텔>에 왜 과학자는 없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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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마리텔>에 왜 과학자는 없나요?

<과학 콘서트>의 정재승, <과학 수다>를 만나다

바야흐로 '입말'의 시대입니다. 신문, 잡지, 책에 대한 관심은 줄어든 반면 다양한 채널을 통해서 접하는 강연, 인터뷰, 대담, 좌담 등이 사람의 교양을 채워주는 새로운 수단으로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이런 입말을 '글'로 옮겨서 매체에 싣거나 아예 책으로 펴내는 일도 다반사고요.

시사 문제나 문학, 역사, 철학 등에서 시작한 이런 움직임에 최근 과학이 동참했습니다. 아직은 소수긴 하지만, 이제 텔레비전에서 과학자의 강연이나 대화를 직접 듣는 일이 낯설지 않습니다. 자랑을 하자면, <프레시안>도 이런 움직임에 일찌감치 동참했습니다. 2011년 11월 4일부터 2014년 2월 6일까지 총 열다섯 번에 걸쳐서 진행된 '과학 수다'를 기억하시죠?

이 연재는 진행되는 내내 적지 않은 반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많은 독자는 친절함과 유쾌함을 내세우며 과학자들이 과학계의 가장 뜨거운 쟁점을 놓고서 수다 떠는 모습에 뜨거운 관심을 보였죠. 바로 이 과학 수다가 <과학 수다>(사이언스북스 펴냄) 2권으로 다시 정리되어 나왔습니다. (☞관련 기사 : "아뿔싸! 이런 경이로운 수다를 놓칠 뻔했다")

<과학 콘서트>(어크로스 펴냄), <뇌과학자는 영화에서 인간을 본다>(어크로스 펴냄) 등의 베스트셀러 저자 정재승 박사(KAIST 교수)가 과학 수다의 세 호스트 천문학자 이명현 박사, 물리학자 김상욱 박사(부산대학교 교수), 강양구 기자를 만났습니다. 이 자리에서 과학 수다를 중심으로 입말로 과학을 향유하는 과학 문화의 새로운 흐름을 점검해 보았습니다.

과학자들의 수다에는 어떤 특별한 게 있을까요? 양자 역학이나 상대성 이론으로 수다를 떠는 게 가능할까요? 강연이나 대화를 그대로 지면에 옮겨서 전달하는 방식이 최선일까요?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 과학자가 나와서 수다를 떠는 모습은 상상이 가나요? 과학자라면 누구나 자기 역량의 일부를 대중과의 소통에 할당해야 할까요?

과학 문화의 현주소를 진단하는 유쾌한 수다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이 수다는 7월 14일 오전 강남구 신사동의 한 카페에서 한 시간가량 진행되었습니다. 진행은 정재승 박사가, 정리는 강양구 기자가 맡았습니다.

ⓒ프레시안(손문상)

왜 과학 수다인가?

정재승 : 먼저 <과학 수다> 출간을 축하합니다. 이 책 덕분에 참 만나기 힘든 분들과 이렇게 '수다'를 떨 수 있어서 기쁩니다. 이 자리에서는 <과학 수다> 얘기를 하면서 입말 형태로 과학을 이야기하는 최근의 흐름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짚어보고자 합니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지금 과학 문화의 현주소도 점검할 수 있을 것 같고요.

먼저 <과학 수다> 얘기를 해보죠. 이게 책으로 묶이기 전에 <프레시안>과 아시아태평양이론물리센터(APCTP)가 펴내는 <크로스로드>에 연재가 됐었죠?

김상욱 : 사실 저는 기획 단계에서 '과학 수다'에 참여하지는 않았어요. 그래서 처음에는 걱정을 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수다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이 편안함이잖아요? 그런데 과연 이 수다에 참여하는 이들 사이에 오간 과학 이야기가 독자에게도 편안하게 다가갈까, 이런 걱정을 했었죠. 그러니까 수다에 참여하는 과학자 우리끼리만 재미있지 않을까, 이런 식으로요.

정재승 : 보통 과학자의 수다는 우리끼리만 재밌잖아요. (웃음)

김상욱 : 그러니까요. 그런데 일단 고정 멤버 가운데 기자가 한 명 있다 보니, 보통 사람의 시각에서 던질 법한 적절한 질문도 해줬고요. 여기에 저나 이명현 선생님 같은 과학자들이 함께 수다를 떨다 보니, (보통 사람이 아닌) 과학자가 할 수 있는 질문과 그에 대한 해당 과학자의 답변이 어우러져서 생각보다 결과가 잘 나온 것 같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과학 수다가 진행되는 내내 제가 굉장히 재미있었어요. 다음 과학 수다가 기다려질 정도로요. (웃음)

▲ 정재승 KAIST 교수. ⓒ프레시안(손문상)
정재승 : 저자들이 즐기면서 이 책을 쓸 수 있었네요.

김상욱 : 그럼요! 얼마나 재미있었는지 우리끼리 만날 때마다 틈만 나면 '시즌 2'는 언제 시작하느냐고 얘기합니다. 손님으로 초대받은 과학자도 즐겁고 편안한 자리였다고 입을 모아서 얘기하는 걸 보면 우리만 재미있었던 것도 아닌 것 같아요. 그러니 수다에 참여한 이들은 모두 편안하고,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낸 셈이죠. 이제 독자만 좋아하면 되는데…. (웃음)

정재승 : 애초 과학 수다를 기획한 이명현 선생님은 어땠나요?

이명현 : 과학 수다도 역시 수다니까, 결국은 사람들이 모여서 얘기를 나누는 거잖아요. 그런데 바로 그런 대화를 나누는 행위 자체가 상당히 좋았던 것 같아요. 물론 이전에도 과학자가 강연을 하는 일은 많이 있었죠. 하지만 그렇게 강연을 할 때는 연사나 청중이나 모두 부담을 갖잖아요.

그런데 일단 이 수다는 여러 가지 면에서 자유로우니까, 말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훨씬 더 편안한 분위기에서 대화를 나눌 수 있었어요. 특히 이런 형식 덕분에 대중 강연 같은 자리에서 좀처럼 만나기 힘든 과학자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던 게 굉장히 좋았습니다. 그러니까 과학 수다가 대중과 과학자가 소통하는 또 다른 채널이 된 셈이죠.

또 다른 하나는 친절함입니다. 가끔씩 과학 강연을 다니다 보면,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얘기해 달라는 부탁을 받곤 합니다. 그런데 이런 부탁은 굉장히 폭력적이죠. 예를 들어, 어떤 학자가 평생에 걸쳐서 고민하고 또 그 성과를 모은 책을 단 몇 자로 정리해서 요약해 달라는 건 얼마나 폭력적이에요?

그런 면에서도 수다라는 형식이 돋보였어요. 굉장히 편안한 분위기에서,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과학자가 자기 얘기를 '친절하게' 설명할 수 있도록 유도했거든요. 때로는 집요하다 싶을 정도로 끊임없이 이런저런 각도에서 질문도 던졌던 것 같아요. 이번 기회에 그런 질문에 싫은 기색 없이 답변해 준 과학자 여러분께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강양구 : 저도 슬쩍 끼어도 될까요? 제가 과학 수다를 진행하면서 가장 큰 소득이라고 여기는 건 국내 과학자에 대한 편견을 깬 것이에요. 우선 학문의 성취 면에서 우리나라 과학자들이 더 이상 세계 과학계의 변방이 아니라 스스로 의제를 만들고자 노력하는 수준에 올라섰다는 걸 확인했습니다.

더구나 그분들은 과학과 사회의 관계나 과학 문화에 대한 고민의 깊이에서도 내로라하는 외국 석학과 비교해도 절대 뒤지지 않더군요. 그런데 과학에 관심이 있는 시민, 학생, 독자 등은 여전히 외국 과학자가 쓴 책이나 강연 같은 데만 기웃대거든요. 저도 반성을 많이 했습니다. 앞으로 국내 과학자의 목소리를 시민에게 알리는 데 좀 더 신경을 써야겠다고.

개인적으로 좀 더 욕심을 부리자면, 국내 과학자의 목소리를 외국에 알릴 수 있는 방법도 좀 더 적극적으로 고민해보고 싶습니다. 이젠 문학 작품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과학자의 글이나 말도 외국으로 소개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제 책으로 나온 <과학 수다>가 그 첫걸음이라는 생각이 들고요. 이 책을 번역해서 외국에 소개하는 것까지…. (웃음)

정재승 : 듣고 보니, 전반적으로 저자들은 만족도가 높네요.

이명현 : 그렇습니다. 스스로 만족도가 높은 기획과 저서였어요.

▲ 김상욱 부산대학교 교수. ⓒ프레시안(손문상)

'말'과 '글'은 다르다

정재승 : 그럼, 여기서 딴죽을 좀 걸어보죠. (웃음) 이 책이 제목대로 수다의 정신에는 충실했습니까? '수다'의 사전적인 의미가 "쓸데없이 말수가 많음. 혹은 그런 말"(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이잖아요. 그러니까, 우리가 수다라고 이름 붙인 어떤 대화는 애초 의도했던 방향과는 다른 쪽으로 튀기도 하고, 그러다 정말 잡담이 되기도 하잖아요.

그러니 수다라고 하는 형식과 특정한 과학 분야의 지식을 대중에게 알려야겠다는 목적이 과연 어울릴 수 있을지 의문이 듭니다. 오히려 뚜렷한 목적의식 없이 여러 화제를 놓고서 대화가 오가며, 생각을 공유하는 게 진정한 의미의 수다죠. 때로는 이런 수다를 엿 듣는 사람이 즐거움과 깨달음을 얻을 수도 있고요. 과학 수다가 과연 그랬나요?

이명현 : 일단 여러 차례 과학 수다를 진행하면서 비공개를 원칙으로 했어요. 청중을 모시고 수다를 떨기 시작하면, 시간 같은 정해진 형식이 있어야 하고, 할 수 있는 말에 제약도 있고. 결정적으로 청중의 반응을 의식하다 보면 대화의 밀도가 떨어질 거라는 걱정이 들더군요. <과학 수다>에 실리지는 않았습니다만, 카오스 이론을 가지고 한 수다가 실제로 그랬고요.

그런데 오히려 이렇게 비공개로 했기 때문에 방금 지적한 그런 수다의 정신은 살릴 수 있었습니다. 함께 나눌 주제 정도는 공유하고, 각자가 나름대로 자료 조사도 하긴 했습니다만, 결과적으로 현장에서는 말 그대로 수다를 떨었거든요. 다만 그 수다를 독자에게 전할 때는 약간의 타협이 필요했습니다. 여기서부터는 강 기자가. (웃음)

강양구 : 정말로 수다였죠. 이 과학 수다가 되게 특별했던 게 뭐냐면 짧게는 3시간, 길게는 5시간 정도씩 어떤 한 주제를 가지고 얘기를 하면서 과학자의 여러 고민을 들을 수 있었던 거예요. 거기에는 해당 주제와 관련된 자신이 진행하는 연구에 대한 소개는 물론이고, 현장에서 느끼는 우리나라 과학기술 정책에 대한 불만 같은 것도 있었죠.

과학자가 강의실에서 학생과 소통할 때의 어려움, 대중과 소통해야 할 때 느끼는 당혹감, 더 나아가 자기가 생각하는 과학 문화의 모습 같은 내용도 포함돼 있었고요. 물론 때로는 다른 선배, 후배, 동료 과학자에 대한 뒷담화도 있었고요. 심지어 최근에 읽은 책 얘기까지요. 이런 수다를 통해서 그 과학자를 깊이 이해하는 소중한 기회를 가졌던 셈이죠.

수다라는 형식이 아니었으면 이런 경험을 어떻게 할 수 있었겠어요? 그런데 막상 이 수다를 정리해서 독자한테 소개할 때는 그걸 그대로 실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눈물을 머금고 '편집'이라는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었는데요. 이 편집 과정에서도 최대한 그날 수다를 꿰뚫는 핵심을 전달하고자 노력했습니다. 어느 정도는 성공했다고 자부합니다. (웃음)

정재승 : 계속 딴죽을 걸어보면, 수다라는 게 같이 참여하는 사람들은 재미있는데 정작 한 발짝 떨어져서 엿보는 사람 입장에서도 재미있으리라는 보장은 없거든요. 더구나 편집의 과정까지 한 번 거친 다음에 '기사' 형식으로 나가는 것이면 더욱더 그렇죠. 일단 <프레시안>과 <크로스로드>에 연재될 때의 반응은 어땠나요?

강양구 : 인터넷 공간에서 유통되는 콘텐츠에 대한 독자 반응을 체크하는 지표가 있어요. 하나는 얼마나 많이 봤나? 과학 콘텐츠였는데도 상당히 많이 봤어요. 다른 하나는 얼마나 사회 연결망 서비스(SNS)를 통해서 확산되었느냐? SNS에서도 화제가 된 콘텐츠가 많이 있죠. 예를 들어, 1권에 실린 근지구 천체 편('슈퍼 영웅보다 힘센 과학 이야기')이 그랬죠.

기왕 얘기가 나왔으니 여기서 꼭 강조하고 싶은 얘기가 있어요. '말'과 '글'은 굉장히 다르다는 사실을 어쩔 수 없이 인정해야 한다는 겁니다. 요즘 많은 출판사들이 강연이나 대화를 그대로 녹취해서 최소한의 검토만 거친 다음에 책으로 묶어서 내곤 합니다. 개인적으로 이런 모습이 걱정스럽습니다.

왜냐하면, 말로 이뤄지는 강연이나 대화는 그 현장의 맥락에 기반을 둔 고유한 소통입니다. 이걸 그대로 녹취만 해서 책으로 묶는 방식은 저자 입장에서 보면 맥락이 거세된 불만족스러운 콘텐츠일 가능성이 큽니다. 당연히 독자 입장에서도 최상의 콘텐츠가 아닐 가능성이 크죠. 그러니 이런 게으른 방식은 정말로 출판사에서 자제해줬으면 좋겠어요.

여기 책으로 나온 <과학 수다>도 겉보기는 그렇게 만든 것 같죠? 그런데 그런 식과는 100% 달랐습니다. 애초 현장의 수다는 글을 위한 재료였을 뿐이에요. 전문 속기사가 만든 완벽한 녹취록을 수차례 검토하면서, 마치 감독이 수많은 촬영 장면을 가지고 영화를 만들 듯이 대화를 재구성했어요. 그 과정에서 추가 자료 검토, 추가 인터뷰도 진행했죠.

결정적으로 현장의 분위기를 살리려고 노력하면서 모든 대화를 다시 제가 '글'로 썼습니다. 그렇게 나온 초고를 여기 있는 두 분 선생님과 손님으로 모신 과학자들과 같이 검토하면서 다시 한 번 오류를 잡고, 필요하면 가감도 했죠. 그러니까 아예 처음부터 해당 과학자에게 원고를 의뢰하는 것보다 시간도 자원도 훨씬 많이 드는 힘든 작업이었습니다.

아무튼 이런 노력이 통했는지 다행히 연재할 때도 반응이 좋았어요. 그래서 이걸 그냥 두지 말고 좀 더 지속성이 있는 책으로 만들어서 많은 독자를 만나도록 하자는 기획으로 이어질 수 있었죠. 반응이 신통치 않았으면 사이언스북스 같은 출판사에서 관심이나 뒀겠습니까? 그런데 이건 너무 '기-승-전-<과학 수다> 예찬'으로 가는 것 아닌가요? (웃음)

▲ 이명현 박사. ⓒ프레시안(손문상)

양자 역학으로 수다 떠는 게 가능한가?

정재승 : 굉장히 훈훈한 자화자찬 분위기가 계속 이어지고 있는데요. 분위기 좀 바꿔 보죠. (웃음) 김상욱 교수님께 묻겠습니다. 물리학자가 양자역학을 수식 없이 말로만 상대방에게 설명해서 이해를 시키고, 심지어 그걸 즐기는 수준의 수다를 할 수 있나요? 그게 가능하긴 합니까?

김상욱 : 힘듭니다. 아주 힘든 일이죠.

정재승 : 그럼, 이제 이런 질문을 해볼 수 있겠네요. 수다로 과학을 이야기하는데 어떤 한계는 없었나요?

김상욱 : 당연히 한계가 있지요. 그런데 어떤 형태로 전달하든 과학자가 알고 있는 그 상태를 상대방에게 그대로 전달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그런 점에서 그건 수다의 한계라기보다는 과학을 소재로 소통할 때의 근원적인 문제라고 할 수 있죠. 과학자들이 수식을 선호하는 것도 바로 그런 문제 때문이라는 생각도 들고요.

그런 한계를 염두에 두고서 이번 과학 수다의 또 다른 의미를 한 번 짚어보고 싶습니다. 이번에 참여한 과학자와 수다를 떨면서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어요. 그러니까 초대를 받은 과학자가 기자나 대중이 아니라 다른 과학자와 대화를 나눈다는 게 상당히 다른 분위기를 낳았던 것 같아요.

사실 물리학자끼리 얘기를 하면서 자신의 연구 성과를 과장해서 말하긴 어렵잖아요? 이번 과학 수다에서도 그랬습니다. 비록 같은 분야는 아니지만, 대화를 나누는 상대가 과학자라는 이유만으로도 과학자들이 가공하지 않은 좀 더 솔직한 이야기들을 털어놓았던 것 같아요. 그리고 이런 이야기가 그 과학자의 연구나 고민을 좀 더 깊이 이해하는데 도움이 됐고요.

정재승 : 예를 들자면?

김상욱 : 그러니까 언론을 통해서 '장밋빛 미래'만 조명될 가능성이 큰 연구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 수다를 통해서 과학자가 그 실상을 얘기한 적도 있었습니다. 해당 과학자의 처지를 염두에 두고 기사나 책으로 다 공개 못한 부분도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이렇게 수다에 과학자가 참여한다는 것만으로도 이야기의 질이 굉장히 높았다고 생각합니다.

정재승 : 이명현 선생님은 어떻습니까? 수다라는 형식 때문에 얘기가 더 진지하게 흘러가는 데 제동이 걸리거나, 혹은 벽 같은 걸 느낀 적은 없나요?

이명현 : 검열은 어차피 강양구 기자가 하니까. (웃음) 앞에서도 잠깐 얘기가 나왔지만, 사실 이 부분이 굉장히 중요한 장치였던 것 같습니다. 현장에서 손님으로 초대받은 과학자나 우리나 정말 아무런 제약 없이 얘기를 했거든요. 때로는 현장에 일반인이 있었으면 도저히 이해하지 못할 얘기도 오갔던 것도 같고요. 어떤 때는 거의 강의를 듣는 시간이 되기도 했어요.

김상욱 : <과학 수다> 2권에 실린 투명 망토 편('해리 포터도 몰랐던 투명 망토의 비밀')이 그랬죠. 박규환 교수님이 거의 강의를 하셨죠.

강양구 : 그런데 강의를 들으면서도 너무나 즐거웠었죠. (웃음)

이명현 : 그랬죠. 그러니까 강 기자가 일종의 안전판이 되었던 것 같아요. 어차피 강 기자가 다시 정리를 할 거니까, 막상 현장에서는 정말로 자유롭게 여러 가지 얘기를 할 수 있었던 겁니다. 김상욱 교수도 방금 언급했습니다만, 과학자만이 던질 수 있는 질문과 그에 대한 답변이 오간 것도 그런 자유로운 분위기 덕분이기도 했고요.

예를 들어, 저는 생명과학자는 아니지만 우주를 연구하는 과학자로서 생명 현상에 대해서 질문이나 의견을 가질 수 있지요. 아무래도 그런 질문이나 의견은 과학을 전공하지 않은 일반인에게는 나오기가 어려운 것이겠죠. 그런 질문과 답변이 어우러지면서 과학 수다가 내용 면에서 좀 더 달라질 수 있었던 것이죠.

물론 개인적으로 고민이 되는 부분이 없진 않았어요. 예를 들어, 과학 이론을 설명하다 보면 수학을 빌려서 논리 전개를 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 있습니다. 그런데 수식을 가능한 한 피하려다 보니, 이런 대목은 비유를 하는 식으로 넘어가거든요. 이번 과학 수다도 최소한 독자를 만나는 단계로 정리를 할 때는 그런 장치를 넣을 수밖에 없었고요.

그건 어떤 과학자에게는 굉장히 답답한 일일 것 같아요. 그래서 <이종필의 아주 특별한 상대성 이론 강의>(동아시아 펴냄) 같은 책도 나왔겠죠. 이 책은 사실 상대성 이론을 강의하기 위한 교과서거든요. 그러니 <과학 수다>는 그것만으로 충분한 과학 책이라기보다는, 좀 더 전문적인 과학 지식을 쌓고자 하는 독자에게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 책일 수도 있겠습니다.

▲ 강양구 기자. ⓒ프레시안(손문상)
강양구 :
이 대목에서는 저도 얘기를 좀 덧붙일게요. 이종필 박사는 과학 수다의 여러 편에 단골손님으로 등장하셨던 과학자인데요. 이 박사 같은 과학자로서는 일반인에게 상대성 이론을 수학을 동원해서라도 좀 더 정확하게 전달하고 싶은 욕심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종필의 아주 특별한 상대성 이론 강의>는 그 결과물이고요.

이명현 : 굉장히 계몽적인 욕심이죠. (웃음)

강양구 : 그런데 저는 이런 의문이 들어요. 정말로 보통 사람에게 상대성 이론의 장방정식을 풀 정도의 과학 지식이 필요할까요? 저는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지금 대중에게 필요한 것은 현대 과학 트렌드가 어떤 방향으로 진행 중에 있는지 조망하고, 또 그런 과학이 사회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세심하게 따질 수 있는 능력이죠.

이 정도로 과학-기술-사회 간의 주의를 환기하는 정도만 되어도 저는 과학 교양으로서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단순히 과학 지식만 많이 아는 사람보다는 이렇게 과학과 그것과 관계를 맺는 여러 가지 것들을 종합적으로 볼 수 있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합리적인 사고에 바탕을 둔 과학 문화도 확산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요.

그러니까 <과학 수다>처럼 넓고 얕게 보는 (사실 내용만 보면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만) 책이야말로 과학 문화가 넓고 깊어지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 참, 또 기-승-전-과학 수다 예찬이 되었네요. (웃음) 하지만 <과학 수다>를 진짜로 읽어보면, 이게 무슨 얘기인지 독자들이 알 거라고 확신합니다.

정재승 : 상대성 이론과 같은 과학 이론을 수식으로 제대로 한 번 공부하고 싶어 하는 독자도 분명히 있을 테니까, 그런 독자를 위해서는 이종필 박사의 책도 그 자체로 소중한 작업이죠. 다양성의 측면에서는 <과학 수다> 같은 책도 또 <이종필의 아주 특별한 상대성 이론 강의> 같은 책도 많이 나올수록 좋겠죠.

강양구 : 당연하죠. <이종필의 아주 특별한 상대성 이론 강의>는 이종필 박사가 오래전부터 절치부심 준비하던 책인데, 다행히 독자의 반응도 좋은 것 같아서 기쁩니다.

정재승 : 다음 얘기로 넘어가기 전에 이 얘기만 좀 더해 보죠. 처음에 제가 막연히 과학 수다와 같은 콘셉트를 생각할 때, 전제 조건 가운데 하나는 참여하는 이들 사이의 동등성이었거든요. 수다는 아무래도 눈높이가 같은 사람들끼리 해야 즐겁잖아요. 그래야 그런 수다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시각도 나오고, 과학자만의 유머 같은 독특한 문화 코드도 드러나고.

그런데 이번의 과학 수다는 지금 주목받는 주제를 하나 정하고, 그 분야의 전문가를 초대해서 진행하는 식이었습니다. 아무래도 주로 말하는 사람이 따로 있고, 듣는 사람이 있는 식이어서 수다의 힘이 100% 발휘되기는 어려웠을 것도 같습니다. 만약에 시즌 2를 하게 되면 이런 점도 좀 보완되면 좋겠어요.

강양구 : 똑같은 과학자라고 하더라도 특정 분야를 놓고서는 전문성에 차이가 날 수밖에 없으니, 그런 점을 어떻게 보완할지도 고민해야 할 부분이죠. <과학 수다> 1권에 실린 핵에너지 편('핵발전소 없는 여름을 꿈꾼다')이 대안적인 모습이었죠. 그 때 수다를 떨었던 윤태웅 교수, 이종필 박사, 이명현 선생님 모두 좁은 의미의 핵 발전 전문가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니까 그 수다는 핵에너지나 핵발전소를 놓고서 과학자 셋이 모여서 수다를 떨 수 있는 한 본보기를 독자에게 보여줬던 것 같습니다. 과학자는 아니지만 그 분야를 오랫동안 취재했던 기자로서 저도 몇 마디 보탰고요. 앞으로 시즌 2에서는 그런 종류의 기획을 많이 해보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이명현 : 그런데 사실 수다라는 것도 다양한 형식이 있을 수 있잖아요. 아까도 잠시 언급했지만, 투명 망토 편의 경우에는 박규환 교수가 거의 강의를 했어요. 얼핏 보면 오랜만에 광학 수업을 듣는 분위기였습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현장의 분위기가 수다스럽지 않았느냐, 전혀 그렇지 않았거든요.

질문과 답변 그리고 주제와 어찌 보면 동 떨어진 얘기까지 겹치면서 정말로 수다스럽고 즐거운 분위기였어요. 그러니까, 해보기 전에 수다의 꼴을 미리 정해 놓는 것도 큰 의미는 없어 보여요. 셋 이상이 일단 모이면, 또 마음을 조금만 열면 다양한 형식의 즐거운 수다가 가능하다는 것도 과학 수다를 진행하면서 새삼 깨달은 점입니다.

ⓒ프레시안(손문상)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 과학자가 나온다면…

정재승 : 세 분이 굉장히 즐기면서 과학 수다를 진행해 왔고, 또 수다에 초대 받은 동료 과학자에게도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었던 것 같습니다. 일단 <과학 수다>로 묶여진 내용도 굉장히 알차고요. 앞으로 이런 과학 수다라는 형태가 여기저기서 벌어지면서 과학을 소통하는 중요한 방식으로, 하나의 장르로 자리 잡을 수 있을까요?

김상욱 : 지금은 일단 실험 단계인 것 같습니다.

정재승 : 미디어 환경이 바뀌고 또 사람들이 과학을 받아들이는 문화가 변하면서 일단은 입말로 일반인이 과학을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시도가 앞으로도 계속될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사람들이 국내 과학자가 아닌 외국 과학자의 번역서를 통해서 과학을 받아들였다가, 국내 과학자가 쓴 우리 말 맛이 나는 책을 읽기 시작했죠. 이제는 과학자의 강연을 직접 찾아 듣고요.

과학 수다도 이런 변화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 봐야하지 않을까요?

이명현 : 개인적인 욕심 같아선 조금 더 나갔으면 좋겠어요. 오프라인 강연도 그렇고, 온라인의 팟캐스트도 그렇고 어느 정도는 일방적이잖아요? 사실 과학 수다가 그걸 보완하고자 마련된 시도이긴 하지만. 더 욕심을 부리자면, SNS 등을 통해서 실시간으로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과학 문화를 같이 향유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정재승 : 조금 있으면 <마이 리틀 텔레비전> 같은 프로그램에 이명현 선생님이 나오셔서 우리는 말풍선을 달고 그러겠군요. (웃음)

이명현 : 그것도 재밌겠고요. (웃음) 사실 제가 원하는 모습은 과학 문화를 향유하는 작은 공간이 좀 더 많아졌으면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과학자와 보통 시민이 일상적으로 만나서 서로 궁금한 것도 물어보고, 때로는 과학 외의 주제를 놓고도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는 그런 자리 말이죠.

아, 영국에는 이런 행사가 있어요. 술집 테이블 이곳저곳에 과학자가 한 명씩 앉아 있습니다. 저쪽에는 양자역학을 전공한 과학자, 이쪽에는 뇌과학자…. 그럼 시민들이 들어와서 맥주 한 잔씩 들고 자기가 대화를 나누고 싶은 과학자를 찾아다니는 거예요. 그렇게 얘기하다 자리를 옮기기도 하고요. 근처 학교에서도 학생, 시민을 위한 이런 만남의 자리가 따로 마련되고요.

정재승 : 그러니까, 과학을 문화로 즐기는 형식 자체가 다양해지고, 또 일상 안으로 들어오면 좋겠다는 얘기죠? 꼭 지식 공유만 목적으로 하는 자리가 아니라요.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그런데 과학 수다를 비롯해서 이런 시도가 좀 더 활성화되려면 과학자 여럿이 이런 시도에 동참하는 분위기가 과학계에 확산되어야 합니다.

ⓒ프레시안(손문상)
김상욱 :
글쎄요. 저로서는 이런 과학 수다 같은 경험이 아주 즐겁습니다. 그런데 과학자 가운데는 이런 경험이 새롭고 때로는 즐겁기도 하지만,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경우가 많을 것 같아요. 몇 가지 이유가 있겠죠. 모두가 그런 건 아니지만, 상당수 과학자는 기본적으로 하고 싶은 것만 하는 성향이 있습니다.

또 어떤 과학자는 동료나 대중과 소통하는 것이 싫어서라기보다는, 자기 연구보다 덜 재밌기 때문에 선뜻 나서지 않기도 할 거예요. 그러니까 많은 과학자는 이렇게 생각한단 말이에요. '이렇게 재미있는 연구를 놔두고 왜 저런 데 시간을 허비하나!' 과학자의 이런 특성을 염두에 두면 모든 과학자가 소통에 적극적으로 나서길 바라는 건 너무 비현실적인 바람 같아요.

더구나 과학자 가운데는 말하기나 글쓰기 같은 소통에 필요한 능력이 부족한 사람도 있거든요. 모든 과학자가 다 말도 잘하고, 글도 잘 쓸 수는 없으니까요. 그러니까 소통 능력이 있어도 굳이 그런 데 마음이 동하지 않는 과학자도 있고, 또 그런 소통 능력 자체가 부족한 과학자도 있다는 현실을 인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 현실을 고려하면, 그런 과학자를 한두 번쯤 다른 과학자나 대중과 연결시킬 수 있는 커뮤니케이터가 훨씬 더 중요할지 몰라요.

정재승 : 미국 같은 경우에는 과학자들이 시민의 세금으로 연구를 하니까 자신의 역량 가운데 한 5% 정도는 시민과 소통하는 데에 할애해야 한다는 원칙이 있습니다. 김상욱 교수님은 그런 원칙은 우리나라의 사정과는 맞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 같군요. 차라리 능력 있는 커뮤니케이터를 육성하는 게 현실적이라는 거죠?

김상욱 : 네, 너무 이상적인 접근이라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아까 얘기했던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그런 소통의 의미조차 찾지 못하는 과학자가 현실에는 많으니까요.

이명현 : 두 분 말씀을 듣고 보니, 과학 수다가 그런 가교 역할을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강양구 : 맞습니다. 김상욱 교수님도 언급했지만, 과학자 가운데는 글쓰기에만 능한 사람도 있고 말하기에만 능한 사람도 있고 심지어 둘 다 미숙한 이들도 있잖아요. 또 자신의 성과나 고민을 소통하는 데 특별한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이들도 많고요. 그러니까 그런 분에게 맞춤한 다양한 소통 채널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하고, 과학 수다가 그 하나가 될 수 있겠죠.

정재승 : 지금까지 얘기를 듣고 보니 과학 수다 시즌 2가 너무나 기대되는데요. 혹시 지금 기획 중인 시즌 2의 내용을 살짝 공개할 수 있을까요?

강양구 : 이건 영업 비밀인데요. (웃음) 하나는 요즘 빅 히스토리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 많잖아요? 그래서 빅 히스토리의 중요한 장면을 여섯 장면 혹은 열 장면 정도를 뽑아낸 다음에 그 장면에 대해서 정확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줄 수 있는 국내의 과학자 한두 분을 모신 다음에 빅히스토리 과학 수다를 해보는 기획을 추진 중입니다.

정재승 : 와, 재밌겠네요.

강양구 : 여기까지만 할게요. 또 다른 준비 중인 과학 수다가 하나 더 있는데, 그건 나중에 공개하겠습니다. (웃음)

정재승 : 이거 궁금하게 만드는군요. 그나저나 형식에 변화를 살짝 주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맥주를 마시면서 한다든가, 이런 식으로요. 알코올이 살짝 곁들여지는 것만으로도 수다의 분위기가 훨씬 더 편해질 것 같거든요.

강양구 : 시즌 2에서는 알코올과 함께 정재승 교수님도 꼭 한 번 모시고 싶습니다. 커뮤니케이터 정재승이 아니라 사이언티스트 정재승을…. (웃음)

정재승 : 일단 시즌 1에서 안 불러줬기 때문에 이미 삐친 상태인데요. (웃음)

이명현 : 아니에요. 일부러 두 명을 아껴둔 겁니다. 정재승과 장대익(서울대학교 교수). 비장의 카드로!

정재승 : 그렇게까지 말씀을 하시니 제 매니저와 상의해 보겠습니다. (웃음) 이렇게 말씀을 듣다 보니 지금 책으로 묶인 <과학 수다>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 하는 독자가 많이 늘었을 것 같습니다. 이참에 <과학 수다>를 함께 읽고 또 더 멋진 시즌 2를 기대해 보죠. 여기 계신 세 분도 과학 수다를 통해서 더 많은 사람이 과학을 즐길 수 있도록 더 애써주시면 좋겠습니다.

ⓒ프레시안(손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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