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이든 뭐든 결국 그 돈이 돌고 돌아서 국민들 호주머니로 들어가는 겁니다."
현재 방영되는 드라마 <어셈블리>의 한 장면이다. 드라마 속의 허구 이야기 같지만, 우리의 현실에서 똑같은 상황이 발생했다. 국채 발행을 통해 나랏빚을 약 9조6000억 원이나 늘리는 내용을 담은 추경 예산안 11조5639억 원이 지난 24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추경 예산이란 수입이 줄거나 예기치 못한 지출 요인이 생길 때 추가로 편성하는 예산이다. 이번 추경의 목적은 '메르스와 가뭄으로 인한 피해 극복'이다. 목적은 타당하다. 메르스로 의료, 관광, 공연 업계가 직접적인 타격을 받았고, 시민의 발이 묶이고 소비 활동이 줄면서 국가 전체적으로 수조 원에 이르는 손해가 발생했다. 또한 계속된 가뭄으로 서울·강원·경기 지방은 지역 경제에 큰 피해를 보았다. 그 결과, 많은 국민이 생계를 유지하는 데 곤란을 겪고 있기에 정부의 추가적인 지원이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다.
따라서 현재의 재정 상태가 좋지 않아 당장 빚을 끌어와야 하더라도 '그 돈이 돌고 돌아 생계가 곤란한 국민 호주머니로 들어간다면' 추가적인 예산을 편성해야 한다. 국민의 삶을 돌봐야 하는 정부의 당연한 의무로도 그러하지만, 국민 소득이 늘어나면 세금이 더 걷혀 빚도 차차 갚아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추경 예산안을 살펴보면 과연 '국민의 호주머니'로 들어가는 돈이 맞는지 의문이 든다.
추경 예산안의 문제점
① 세출 : 타당성이 부족한 사업에 지출
현 추경 예산안의 내용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경기 침체로 세금이 덜 걷힐 것을 대비한 '세입 경정'과 지출을 확대하는 '세출 확대'가 그것이다. 먼저 6조2000억 원의 세출 확대 부분을 살펴보면, 지출을 늘리겠다는 사업들 대다수가 타당성이 부족하다. 국회 예산정책처의 <2015년도 제1회 추가경정 예산안 분석> 보고서를 살펴보면, 14개 부처 36건의 사업에 대해 45건의 문제점이 있다고 분석되었다. 액수로 보면 세출 확대로 편성한 6조2000억 원의 67%에 달하는 4조1500억 원이다.
그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올해 안에 목표 달성이 어려울 것으로 보이는 사업이 16건, 구체적인 계획이나 절차 준비가 미흡한 사업이 16건, 실질적인 사업 효과가 불확실한 것이 3건, 추경의 편성으로 인해 수입 확대가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지출 계획이 변경된 내용을 제시하지 않은 사업이 10건이다. 이에 대해 정부가 반박 자료를 내긴 하였으나 여전히 타당성에 대해서 의구심이 든다. 예컨대, 1500억 원을 늘린 전력산업기반기금 지원, 1000억 원을 지원하겠다는 무역보험기금 출연 등은 메르스와 가뭄 피해의 극복이라는 추경 편성의 목적과도 거리가 멀 뿐더러 대기업 특혜 의혹까지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국회 심의 과정에서 2500억 원이 삭감되긴 했지만, 여전히 1조2500억 원에 이르는 예산이 토목 사업을 위해 편성되었다. 예산정책처에서도 문제 사업으로 지적한 당진-천안 고속도로 건설, 광주 순환고속도로 건설, 진주-광양 철도 복선화, 포항-삼척 복선전철, 서해안 복선전철, 대구 도시철도 연장, 행복도시-공주시 연결도로 사업 등은 추경 편성의 목적과 관련이 없는 토목 사업들이다. 그래서 내년 총선을 의식한 선거용 사업이라는 의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특히, 정부가 편성한 10개 고속도로 사업 중 4개가 영남권에 편중되면서 지역 차별 논란도 일었으며, 이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정부가 제출한 원안에는 없었던 보성~임성리 철도 예산이 일부 증액되었다. 이에 대해 정부는 SOC 사업이 다른 방식의 지출보다 경기 부양 효과가 크다고 반박하고 있으나 이러한 사업 중 7개는 추경 예산의 100%가 토지 보상비로 땅 주인에게만 혜택이 가기 때문에 경기 부양 효과도 불명확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이처럼 메르스와 가뭄으로 인한 피해를 극복하고 경기를 활성화하겠다는 목적으로 편성한 추경 예산안의 상당 부분이 지역구 국회의원들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의해 이루어지거나 타당성이 부족한 사업들에 대한 투자로 구성되어 있다. 이에 비해 보건복지위원회가 요구한 메르스 피해 병원에 대한 지원액은 5000억 원에서 2500억 원으로 절반이나 삭감되었고, 감염병 전문 공공 병원 설립을 위한 예산 101억 원은 전액 삭감되었다. 결국 이번 추경의 목적이 퇴색된 것이다.
② 세입 경정 : 세입 확대에 대한 대안 없이 결손 메우기
추경 예산의 절반가량을 차지하는 세입 경정에도 문제가 있다. 국회 처리 과정에서 2000억 원이 삭감되어 5조4000억 원으로 확정된 세입 경정은 경기 침체의 여파로 이미 정해진 본예산보다 부족한 국세 수입을 충당하기 위한 것이다. 갑작스러운 위기 상황으로 대규모 세수 결손이 발생할 경우, 이미 본예산에 포함된 사업을 제대로 집행하기 위해 세입 경정이 불가피한 선택일 수 있다. 그러나 현 정부의 세입 경정은 만성적인 세수 결손에 대한 보전 측면이 크다.
현 정부 들어서 세수 결손은 2013년부터 연이어 나타나고 있다. 2013년에는 8조5000억 원, 2014년에는 10조9000억 원의 세수 결손이 발생했다. 올해 5조 원까지 포함하면 3년간 24조 원에 이르는 금액이 현 정부 들어 발생한 국세 부족분이다. 그런데도 정부와 여당은 세입 확충의 의지가 없다. 이번 추경안의 부대 의견에 '정부는 연례적인 세수 결손 방지를 위해 세출 구조조정과 함께 세입 확충을 위한 모든 방안(소득세, 법인세 등의 정비)을 마련한다'는 문구를 담고 있다.
이에 대해 국회 차원에서 증세 논의의 물꼬가 트인 것이 아니냐는 긍정적 의견도 있으나 여야 간에 해석이 분분하다. 새누리당은 '정비'가 '세율 인상'은 아니라는 입장으로 불합리한 비과세·감면을 재정비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것도 진정성이 의심된다. 지난 5월 18일부터 현재까지 두 달간 발의된 조세특례제한법 일부 개정안 12건 중 11건이 비과세·감면 기간 연장 및 신설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법안을 통해 감면되는 세금은 총 3조 원을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이번 세입 경정(5조4000억 원)의 절반을 넘는 금액이다.
정부 역시 마찬가지다. 정부는 '증세 불가' 입장을 내세우면서 비과세·감면 축소 등으로 5년간 18조 원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작년만 보더라도 기한이 만료되어 폐지 대상이던 법안 53개 중 7개만 폐지되었고, 오히려 6개가 신설되었다. 결과적으로 정치권에서는 세입 확충에 대한 의지 없이 세수 결손이 발생하면 추경 편성을 통해 빚으로 충당하려 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는 결국 국가 부채 증대로 이어져 우리나라의 잠재적 성장 동력을 훼손할 가능성을 높인다.
또한 세수 결손의 일부는 잘못된 경제 정책에서 기인한 면도 있다. 앞서 살펴본 예산정책처의 분석 보고서를 보면, 본예산과 추경 예산 편성 시 경제 성장률 전망에 대한 차이에 비해 현 정부의 추경 예산 규모가 다른 해에 비해 월등히 크다. 예컨대, 본예산을 편성할 때 예상하는 경제성장률과 추경 예산을 편성할 때 예상하는 경제성장률 간의 차이가 1%포인트 날 경우, 다른 해에는 0.9~1.9조 원 정도 세수 결손이 발생하는데 현 정부는 4.6조 원, 2.7조 원으로 월등히 크다(그림 1 참조).
이는 현 정부의 세입 경정이 예상치 못한 경기 하락에 따른 세수 부족을 충당하는 기능을 넘어서 애초 낙관적인 전망으로 과다하게 편성된 예산을 보완하는 측면이 크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은 예상치 못한 글로벌 경제위기라는 변수로 인해 세수 부족을 겪었던 2009년보다 불확실성이 적었던 2013년 세입경정이 12조 원으로 역대 최고였다는 사실로도 뒷받침할 수 있다.
국가 재정이 나아가야 할 방향
추경 예산은 정부가 사전에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추가적인 예산 편성을 통해 국민의 삶을 돌볼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11조5000억 원에 이르는 추경 예산은 그 목적을 상실했다. 절반은 만성적인 결손과 정부의 잘못된 경기 전망으로부터 더 심각해진 세수 부족을 충당하는 데 편성되었다. 지출 부분은 어떠한가? 국회의원들의 선심성 사업과 효과성이 제대로 입증되지 않은 사업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그래서 "경기 회복의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도록 빨리 통과시켜 달라"는 기재부 장관의 발언에 민망해진다. 소위 '민생 추경'이라는 별명이 무색해지는 것이다.
게다가 현 정부 들어 이런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출범 직후인 2013년도에도 17조3000억 원이라는 슈퍼 추경을 시행했지만, 경기 회복 효과는 미미했다. 오히려 나라 빚만 계속 늘어났다. 따라서 재정 운용의 방향을 다시 설계해야 한다. 예기치 못한 상황으로 추경이 필요한 경우 사업에 대한 체계적인 계획과 철저한 분석을 통해 효과성이 담보되는 경우에 한해 편성해야 한다. 본예산 편성 시에도 지나치게 낙관적인 전망으로 재정 적자를 초래해서는 안 된다. 소득세, 법인세를 비롯한 세수 추계에 활용할 수 있는 국세 정보의 공개를 확대하여 다양한 기관들이 전문적으로 분석하고, 이를 의사 결정 과정에 반영하여 추경 편성 시 빚을 최소화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만성적인 세입 결손을 해결할 수 있는 다양한 증세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명목상으로만 비과세·감면 제도의 폐지만 주장할 것이 아니라 세율 인상도 고려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는 국민 부담률(GDP 대비 세금과 4대 사회보험의 비중)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보다 약 10%포인트가량 낮다. 즉, 경제력과 비교해 '세금을 적게 내는' 국가이다. 특히 법인세의 경우, OECD 평균보다 약간 높긴 하지만 이는 GDP에서 차지하는 법인들의 생산량과 이윤의 상대적 크기가 크기 때문이다. 실제 법인들이 부담하는 세율은 10%대에 불과하며, 이마저도 계속 하락하고 있다. 소득세도 마찬가지이다. 소득세 실효세율은 4%대에 그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비과세·감면 제도의 폐지가 불확실하다면, 세율 인상을 통해 비과세·감면 제도로 줄어드는 세금 일부를 상쇄시켜야 한다. 급증하는 노령 인구와 취약한 사회 안전망으로 인해 복지 요구가 높아지고 있으므로 세입 확충을 통해 탄탄한 재정 구조를 구축해야 한다. 경제력에 상응하는 적절한 세입 확충 방안을 구축하여 만성적인 세수 부족이 나타나지 않는 재정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하고 나서, 설사 예기치 못한 상황으로 인해 경제에 충격이 발생하더라도 추경 예산과 같은 제도들이 잘 작동할 수 있도록 체계적인 예측과 분석을 통해 재정을 운영해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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