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대법원은 2015년 6월 26일(현지 시간) 동성 결혼이 합헌이라는 역사적인 판결을 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판결 직후 트위터를 통해 "이번 대법원 판결은 미국인들의 승리이다. 오늘 우리는 평등을 향한 여정에 큰 발걸음을 내디뎠다"는 소감을 밝혔다.
이 소식은 발 빠르게 퍼져나갔고 미국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지지와 환호를 받았다. 세계의 시민들은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 SNS(사회 관계망 서비스)에 성별이나 성적 지향에 따른 차별을 넘어 사랑이 이긴다는 의미로 해시태그 '#LoveWins'를 게시하거나 프로필 사진에 성소수자를 상징하는 여섯 색깔 무지개 필터를 입히는 것으로 미국 인권 운동사에 큰 획을 그은 역사적 사건을 함께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역사적 판결을 보며 떠올린 가슴 아픈 사건
미국 전역에서 동성 결혼이 합법화된 그날, 나는 2013년 가을에 있었던 한 사건을 떠올렸다. 그 사건은 이런 기사로 내게 알려졌다.
"2013년 10월 30일 오전 6시 40분쯤 ○○시 ○○구의 한 아파트 화단에 62살 ㄱ씨가 숨져 있는 것을 주민이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ㄱ씨는 같은 날 새벽 자신이 살던 아파트 옆 동으로 올라가 복도에서 투신했다. ㄱ씨의 바지주머니에서는 '시신을 기증해 주세요'라는 내용이 적힌 유서가 발견되었다. 경찰 조사 결과 ㄱ씨는 ○○ 지역의 한 여상을 졸업한 뒤 동창인 ㄴ씨와 40년 넘게 함께 살았다고 한다. 그러던 중 2013년 9월 ㄴ씨가 암 말기 진단을 받았고 10월초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중 숨졌으며, ㄴ씨를 간병하는 과정에서 ㄱ씨는 ㄴ씨 가족과 경제적인 문제로 마찰을 빚었다고 한다." (<서울신문> 2013년 10월 31일)
40년 넘게 동거해온 여고 동창생.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암으로, 다른 한 사람은 함께 살던 아파트단지에서 투신하여 세상을 떠났다는 뉴스는 충격적이었다. 다른 기사들을 두루 검색해보았다. 두 분의 인생이 이렇게 저렇게 조각 기사들에 실려 있었다. 두 분이 만난 건 여고 시절이었다고 한다. 그때 만나서 함께 동거한 것이 40여 년. 한분은 직장을 나가 돈을 벌었고 다른 한분은 전업주부로 살았다고 한다. 40년 넘게 함께했지만 두 분은 법적인 가족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두 분의 재산은 직장생활을 하던 ㄴ씨 명의로 되어 있었다. 집도 예금도.
그러다가 ㄴ씨가 암에 걸리면서 불행이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수술 동의서에 가족이 서명을 해야 했는데 ㄱ씨는 가족이 아니어서 왕래가 없던 ㄴ씨의 가족들을 찾아야 했다. 그렇게 찾은 ㄴ씨의 조카는 ㄱ씨에게 ㄴ씨의 명의로 된 예금과 집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했다. 급기야 중환자실에서 병마와 싸우던 ㄴ씨의 곁을 지키지도 못하게 했고 그렇게 40여 년을 함께한 사람을 떠나보내야 했다. ㄴ씨가 세상을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ㄱ씨는 ㄴ씨와 함께 살던 아파트단지를 찾았고 복도에서 몸을 던지고 말았다. 시신을 기증해달라는 유서를 남겼다는 대목에서 왈칵 눈물을 쏟았다.
그분의 마음이 어땠을지 짐작도 못하겠다. 나라면 어땠을까? 고등학교 동창과 40년을 넘게 살다가 그의 가족들에게 그런 대접을 받았으면, 아픈 그를 돌봐주지도 못하고 결국 임종도 지키지 못했다면. 내가 그분이었더라면 나는 어땠을까.
ㄱ씨와 ㄴ씨, 두 분이 어떤 관계였는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40년이 넘도록 한집에서 함께 생활했다면 곧 가족이 아닌가. 가족이라는 공동체에 그보다 더 중요한 조건이라는 게 있는가. 그럼에도 두 분은 가족으로서 어떤 법적 보호도 받지 못했다. 법적인 보호를 받지 못했음은 물론이고 사회적, 문화적인 보호도 받지 못했다. 오히려 '정상 가족'이 아니라는 이유로 병마와 싸울 때 함께하지 못하게 격리되어야 했고 남은 사람은 자기 재산이 아닌 다른 사람의 재산에 불법적으로 손을 대는 나쁜 사람으로 몰려야 했다.
이제는 다양한 공동체를 포용해야 할 때
우리나라에서 법적으로 가족이 되는 방법은 그리 많지 않다. 먼저 혈연. 핏줄이 같으면 그냥 가족이 된다. 부모와 자식 그리고 형제라는 이름들이 주어진다. 핏줄이 같지 않은 사람이 가족이 되는 경우는 두 가지다. 하나가 결혼, 그리고 다른 하나가 입양이다. 결혼은 남이 만나서 가족이 되는 아주 흔한 경우다. 혼인 신고라는 간단한 제도를 통해 만 20세 이상의 성인이면 중혼이나 근친혼 등의 관계만 아니라면 쉽게 가족이 될 수 있다(만 18세 이하의 미성년일 경우에는 혼인할 수 없고 만 18세 이상 미성년의 경우 부모나 후견인의 동의를 얻으면 혼인할 수 있다).
결혼으로 가족을 이룬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법적·제도적 혜택이 수천가지에 이른다고 한다. 결혼한 이들에게는 부부라는 이름이 주어지고 새로운 가족으로 인정받는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결혼은 이성애자들에게만 열려 있다. 한편 입양은 결혼보다는 까다로운 절차를 거친다. 입양은 아름답게 인식되며 핏줄에 준하는 이름들을 가질 수 있다. 이렇게 성립된 가족은 사회의 중요한 구성 단위로 인정받으며 법적·제도적 보호를 받게 된다.
이처럼 핏줄, 결혼 또는 입양이 아닌 관계는 가족이 될 수 없다. 특히 핏줄은 한번 관계가 성립되면 1년에 한두 번 명절에만 만나도, 아니 몇 십 년을 보지 않고 살아도 가족이다. 그에 반해 핏줄이 아닌 사람은 앞서 두 분처럼 40년을 함께 살아도 가족이 될 수 없다. 우리나라의 가족 제도는 과연 합리적인가 고민해야 한다. 핏줄이거나 결혼이거나 입양이 아닌 관계의 공동체도 가족으로 받아들여야 하는지, 그래야 한다면 어떻게 관계를 규정하고 보호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이미 여러 나라에서는 그런 공동체를 '시민 결합'이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가족으로 인정하고 있다. 미국처럼 동성애자들의 결혼을 인정한 나라도 많고 결혼을 하지 않은 여러 커플(동성 커플을 포함한다)을 결혼한 부부와 같은 관계로 인정하는 나라가 있으며 커플이 아닌 공동체를 가족 또는 가족에 준하는 것으로 인정하는 나라도 많다. 늦어도 한참이나 늦었지만 우리도 이제 가족의 범위를 넓히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대한민국 헌법 제11조 1항은 더 이상 법조문으로만 남아 있어서는 안 된다.
(김조광수 감독은 사단법인 신나는센터 이사장입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