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의 미래와 박근혜정부의 성공을 위한 원내대표 사퇴 권고 결의안'이라는 이름의 긴 안건이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의 입에서 뱉어졌다.
자신도 화들짝 놀란 걸까? 대변인실에서 출입기자들에게 문자메시지가 갔다. 김 대표는 "내일 9시 소집된 안건명이 '유승민 원내대표 거취에 관한 논의의 건'으로 변경되었습니다"라고 공지했다.
처음 안건의 긴 이름은 '유승민 사태'의 본질을 보여준다. 박근혜 정부의 성공을 위해 원내대표를 쫒아내야 한다는 의미다. 뒤집어 말하면 유승민 원내대표가 박근혜 정부의 성공을 방해하고 있다는 말이 된다. 방해 세력은 배제돼야 마땅하다. 박 대통령의 6.25 국무회의 발언에는 사감이 진하게 배어있다.
뭉툭한 칼날은 날카로운 칼날보다 더 고통스럽다. 단칼에 유승민 원내대표를 쳐내지는 못했다. 초반 의원총회에서 재신임을 받은 유승민 원내대표에게 가한 새로운 방법은, 느리게, 그리고 천천히 그의 자리를 도려내는 것이었다. 어느 누구도 버틸 재간이 없었을 것이다.
결국, 박 대통령은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유 원내대표는 어떤 방식으로든 사퇴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박근혜 대통령 지지율은 '유승민 파동' 이후 오히려 올랐다. 7일 리얼미터가 발표한 박근혜 대통령의 주간 단위 국정수행 지지도는 1주일 전보다 3.7% 상승, 37.3%를 기록했다. 우유부단한 모습을 보였던 김무성 대표도 대선주자 지지율 1위를 탈환했다. 이 기관 조사에서 6월 2주 연속 폭락해 10% 이상 지지율이 빠졌던 것에 비교해보면, 놀랄만큼 빠른 회복률이다.
국회법 개정안 거부권 행사 이후 보수층 결집 효과 등에 힘입은 것으로 분석됐다. 세월호 정국을 '갈라치기'로 돌파해낸 그 힘이다. 메르스 정국에서 보인 무능함으로 하락한 지지율을 "박근혜 정부의 성공"을 방해하는 내부 세력을 축출하는 것으로 만회한 셈이다.
청와대 참모진은 대중을 향해 내뱉는 박 대통령의 발언이 '먹혔다'고 판단할 것이다. 여론조사를 통한 여론 흐름을 읽기에 있어서만은 동물적 감각이 있는 친박계다. 실제 청와대 정무수석실 핵심 인사가 여론조사 전문가다. '대전은요'라는 짧은 외마디 발언부터, '세종시 플러스 알파', '배신의 정치' 발언까지, 박 대통령이 정국을 돌파하는 방법에는 안전한 공식이 존재한다.
요컨대 사감의 정치, 배제의 정치가 박 대통령 지지율을 지탱하는 힘이다. 그러나 이것은 한 정파의 수장이나 하는 일이다. 대통령이 해서는 안될 일이다. 메르스 정국에서 보여준 무능을 반전시키기 위해 박 대통령은 모르핀을 맞은 셈이다. 모르핀은 과용하면 '독'이 된다. 지금 당장은 힘이 되겠지만.
유승민 파동은 '서곡'…행정관 쫒아내고, 국무위원 '협박'
정권이 외부든, 내부든 '적(敵)' 없이 굴러가지 못한다는 것은, 이 정부가 레임덕에 진입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되돌아 보면 박 대통령은 '유능한' 지도자가 아니었다. 적을 요리하고 제압하는 데 능숙한 지도자였을 뿐이다. 박근혜 정부, 벌써 반환점에 도달했지만, '업적'은 또렷한 게 없다. '브랜드'도 없다.
'유승민 파동'은 임기 반환점을 맞아 '메르스 직격탄'에 허우적댄 결과, 초조함과 상실감이 복합적으로 발현된 박 대통령 특유의 정치 행위였다. 메르스 정국을 거치며 드러난 무능, 그로 인해 국정 동력을 잃어버릴 것 같은 초조함, 더이상 자신을 '제왕적 총재'에 버금가는 '박 전 대표'로 모시지 않는 '과거 측근'들에 대한 상실감이다.
박 대통령은 '사감'을 대중에 여과없이 노출시키는 방식으로, 대중에게 충격파를 줬다. 익숙한 방식이다. 이로 인해 확장의 정치가 아니라 배제의 정치를 추동해냈다. 충성 지지층을 끌어안고, 나머지를 버린다. 대선 때의 51%의 정치가 아니라, 40%의 정치로 돌아갔다.
최근 박 대통령 주변에서는 이같은 징후들이 신경질적으로 나타난다. 청와대 행정관 3명이 쫒겨난 것도 상징적인 사건이다. 새누리당 출신으로 박근혜 정부 출범부터 3년간 고생했던 행정관 3명을, 카톡방에서 대통령의 총리 인사를 비판했다는 등의 이유로 쫒아냈다.
박 대통령이 7일 국무회의에서 "국무위원들께서도 국민을 대신해서 각 부처를 잘 이끌어주셔야 한다"며 "여기에는 개인적인 행로가 있을 수 없다"고 한 것도 의미심장하다. 최경환, 황우여 부총리를 비롯해, 국무위원의 3분의 1이 현직 의원이다. '배신의 정치'를 택하지 말라는 경고와도 같다. 현직 원내대표가 대통령 말 한마디에 날아가는 것을 본 국무위원들은 박 대통령의 이런 발언을 어떻게 해석했을까? "개인적인 행로"를 하는 순간 배제될 수 있다는 공포심을 느끼지 않았을까?
'사정 정국'의 핵심 고리인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에 이어 황교안 총리가 국정 2인자에 등극한 것도 '공포 정치'의 일환이다.
새누리당은 쑥대밭이 됐다. 박 대통령에게 찍히는 순간 끝장나는 원내대표 자리를 누가 선뜻 맡으려 하겠는가. 그런 사람이 나타난다고 해도 소신껏 일을 할 수 있겠는가.
국가 위기 상황에서 무능한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지지율이 폭락하면, '공포 정치'를 통해 지지율을 회복시키는 작업들이 반복되고 있다. 30~40% 남짓한 지지율을 회복해내느라 국정 동력을 모조리 소진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를 안겨준다.
대통령이 공약을 지키지 않는다고 비판하고, 대통령의 일처리 방식이 잘못됐다며 교정하려 든 원내대표를 내쫒는 게, "당의 미래와 박근혜정부의 성공"이 된다는 논리. 박근혜 정부는 길을 잘못 접어든 것 같다. 무능은 그렇게 해서 가려지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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