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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重 하청 '먹튀 폐업'…"정몽준 해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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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重 하청 '먹튀 폐업'…"정몽준 해결하라"

조선업 구조조정 칼바람, 하청노동자가 '바람막이'?

장기 불황을 겪고 있는 조선업계가 구조조정 고삐를 바짝 죄는 가운데, 고용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사내하청업체들의 '먹튀 폐업'이 줄을 잇고 있다. 특히 원청 조선소가 하청업체에 대한 기성금(도급비)을 대폭 줄여 줄폐업이 이어지는 등 조선소 구조조정의 바람막이로 비정규직을 활용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울산에서 서울까지 올라와 2주 가까이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는 현대미포조선 하청노동자 현재창(58) 씨도 자신을 원청의 '도급비 후려치기'의 피해자라고 말한다. 스스로를 '배 만드는 장인'이라고 여기며 조선소 밥을 먹은지 벌써 15년. 그러나 이제 일자리도, 밀린 임금도 모두 사라졌다.

지난 4월의 어느 평범했던 주말, 한 통의 문자가 현대미포조선 하청업체인 KTK선박 직원들에게 날아왔다. 회사가 폐업을 했으니, 장비를 반납하라는 문자였다. 100여 명의 직원이 한 순간에 직장을 잃었다. 체불 임금도, 퇴직금도 사장이 들고 사라졌다. 일명 '먹튀 폐업'.

"노동조합은 노동자들의 명동성당 같은 곳"이란 생각에 원청 정규직 노조를 찾아갔더니, '위로금 60만 원'만 받고 정리하라는 '중재안'을 내놨다. 억울해서 원청인 현대미포조선 앞에서 농성을 시작했다. 말이 농성장이지, 비가 와도 천막 하나, 비닐 한 장 씌울 수 없다. '지붕 비슷한 것'을 만드는 순간 경비요원들이 득달같이 달려와 철거한다. "노조가 뭔지도 몰랐던" 직원 100여 명이 싸우다, 지금은 5명이 남았다.

조선업계 구조조정 칼바람… '가장 만만한' 호주머니, 하청부터?


"경기가 어렵다고 원청이 기성을 줄이니까, 감당 못하는 하청업체들이 폐업을 하고, 사장은 도망가고…결국 우리만 일자리를 잃은거죠."

지난달 29일 아침 출근길, 국회 앞에서 1인 시위를 이어가던 현재창 씨가 한숨을 내뱉었다. 이날로 1인 시위 일주일째. 금속노조의 '골방' 한 켠에서 쪽잠을 자며 매일같이 국회와 계동 현대사옥, 현대중공업그룹의 최대주주인 정몽준 전 의원의 집 앞에서 무더위 속 피켓을 들고 폐업 사태 해결을 요구하고 있다.

현 씨가 "원청이 책임지라"며 상경한 것은 단순히 원청으로서의 '도의적인 책임'을 묻기 위한 것이 아니다. 경기침체로 선박 수주가 어렵다고, 경영이 악화됐다고 도급비를 후려친 것은 애초 원청이었다.

▲ 지난달 29일 국회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는 현재창 씨. ⓒ프레시안(선명수)

금속노조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에 따르면, 대대적인 기성 삭감으로 지난해 말부터 현대중공업 계열 조선소에서만 10여 개 안팎의 업체가 줄폐업을 했다. 지난 4월에는 미포조선의 KTK선박 외에도 현대중공업 하청업체인 하남산업과 백운ENG 등이 월급날 200여 명의 직원에게 폐업을 통보했다. 폐업 방식도 비슷하다. 보통 하청업체 폐업 시에는 최소 한 달 전 공고문을 내 직원들에게 구직 시간을 주고 원청사는 이 기간에 새 하청업체를 물색하지만, 모두 당일 갑작스럽게 폐업 사실을 알리는 방식으로 '먹고 튀었다'. 이후 이 업체 직원들의 고용승계는 이뤄졌지만, 여전히 임금과 퇴직금 일부는 받지 못한 상태다.

이런 식으로 올해 상반기에만 사내하청 노동자 2000여 명이 잘려 나갔다. 현대중공업 노조가 공개한 이 회사 자료를 보면, 지난해 12월 4만1059명에 달했던 사내하청 노동자는 4월 말 기준 3만8986명으로 2000명 가까이 줄었다.

사내하청지회는 이런 '줄폐업'이 원청이 경영악화를 이유로 기성을 대폭 삭감해 비용을 줄였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울산 조선업계에 불어닥친 구조조정의 연장선이란 것이다. 폐업한 KTK선박의 안모 대표 역시 이 회사 직원과의 통화에서 "2달 전부터 (원청이) 기성을 계속 깎았다. 늦게 깨달았는데 내가 타깃이 되어 있었다"며 "임금이 4억1000만 원이 나왔는데 기성을 2억7000만 원 주는 것은 나가라는 소리 밖에 더 되겠느냐"고 하소연하기도 했다.

결국 경영은 '원청 회장님'이 했는데, 뒷감당은 실업 벼랑에 내몰린 하청업체 노동자들이 하고 있다는 것이 노조의 주장이다. 조선업계 장기 불황이란 이유로 '가장 만만한 호주머니'부터 건드렸다는 것이다. 앞서 권오갑 현대중공업 사장은 올해 사무직 1300여 명을 퇴직시킨 뒤 지난달 1일이 되어서야 '구조조정 중단'을 선언했지만, 고용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사내하청 노동자들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다.

반면 원청인 현대미포조선 측은 업체 사장에게 기성금을 정상적으로 지급했고, 남은 직원들에게도 다른 하청업체로 고용을 알선하고 정부에 체당금 신청도 하는 등 원청으로서 해야 할 역할을 모두 했다는 입장이다. 사실상 업무를 하청 줬으니, 노사 관계를 뒷감당할 이유는 없다는 입장인 셈이다.

▲ 경남지역의 한 조선소 모습. ⓒ프레시안 자료사진

하청 노동자들의 호주머니가 점점 더 얇아지는 이유는 또 있다. 폐업 이후 운 좋게 조선소 내 다른 하청업체에 재취업을 하더라도, 근속과 경력을 전혀 인정받지 못하는 신규 채용 방식이다. KTK선박 대다수의 노동자도 이런 방식으로 재취업을 했다. 두 달치 월급과 퇴직금 대신 위로금 60만 원만 받고 이뤄진 고용승계였다.

하창민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장은 "조선소가 적자를 만회할 방법을 찾기 힘드니 생산의 주축이 되는 하청업체 솎아내기를 통해 이를 만회하는 것"이라며 "고용승계가 되더라도 근속이 모두 날아가니 원청에서 지급해야 할 하청노동자의 임금이 상당히 절약된다"고 했다.

사내하청지회는 현대중공업그룹 내 500여 개의 하청업체 중 120개 이상의 업체에서 노동자들의 임금을 삭감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우리는 하청이 아닌, 현대의 배를 만들었다"

"처음엔 너무 억울해서 두 달치 월급을 돌려달라고 싸웠는데, 이제 솔직한 심정은 돈은 안 줘도 좋으니 일자리라도 구했으면 좋겠어요."

현 씨는 KTK선박 '최후의 5명'에게 돌아온 것은 결국 원청의 '블랙리스트'라고 주장했다. 하청노조에 가입하고 원청을 상대로 싸우는 이상, "아무리 경력이 많고 능력이 있어도 울산 조선소 바닥 어디에도 취직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원청은 '블랙리스트'의 존재를 부인한다.

'배 만드는 장인' 현재창 씨는 "울산에 있는 여섯 살 늦둥이 딸이 눈에 밟힌다"면서도 당분간 서울에서 원청의 사태 해결을 촉구하는 1인 시위를 이어나갈 예정이다.

"FIFA 회장 출마한다는 정몽준 씨가, 자기 집안에서 이렇게 노동자들이 잘려나가는 걸 방치해도 되나요? 우리는 현대미포조선의 배를 만들었지, KTK의 배를 만든 게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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