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 오산 공군기지에 살아있는 탄저균이 배달되는 사고가 일어나면서 주한미군 내 탄저균 실험 시설의 존재가 세상에 드러났다. 이에 따라 미군이 어떤 이유로 오랫동안 비밀 실험을 진행했는지를 두고 의문이 커지고 있다.
오산기지의 이 실험은 미국 국방부 발표로 알려지게 됐다. 27일(현지시각) 스티브 워런 미국 국방부 대변인은 성명을 통해 군 연구소의 부주의로 살아있는 탄저균 표본이 옮겨졌으며 "표본 1개는 한국 오산에 있는 주한미군의 합동위협인식연구소(ITRP)로 보내졌다"고 밝혔다.
주한미군 측은 28일 배달된 탄저균 표본을 가지고 오산기지의 연구소에서 배양 실험을 진행했으며, 이 과정에서 실험요원 22명이 탄저균에 노출됐다고 밝혔다. 주한미군 측은 "모든 요원들에게 검사, 항생제, 백신을 포함한 적절한 의료 예방 조치가 취해졌다"며 "감염 증상은 나타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주한미군 측의 설명이 사실이라면 인명피해가 발생하지 않아 다행이지만, 자칫 실험 요원뿐만 아니라 기지 내의 대원들과 민간인의 목숨까지 위험할뻔 했던 아찔한 상황이었다. 탄저균은 전염성이 강하고 일단 감염되면 치사율이 높다. 실제 2001년 미국에서 탄저균이 묻은 편지가 발송돼 22명이 감염되고 이 중 5명이 사망한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러한 위험한 물질이 배달된 사고가 일어났음에도 주한미군은 실험 목적, 배달된 균의 수량 등 사건과 관련한 제대로 된 해명을 내놓지 않고 있다. 주한미군은 "훈련은 정상적인 관리 절차에 의한 정례적인 실험실 규정에 의해 시행됐다"는 발표 외에 추가적인 설명을 하지 않고 있다.
주한미군 측이 실험에 대한 명확한 사실관계를 밝히지 않으면서, 왜 미군이 지금까지 오산 기지에서 탄저균 실험을 해왔는지를 두고 갖가지 추측이 나오고 있다. 우선 북한의 생화학무기 공격에 대비해 주한미군의 탄저균 제독 기술 능력을 높이고 백신을 개발하기 위한 목적에서 실험이 진행됐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실제 주한미군은 북한의 생화학무기 공격에 대응해 다량의 백신을 보유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지난 2005년부터는 탄저균 예방접종을 하고 있으며 이번 사고 때도 백신으로 의료 조치를 취했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주한미군이 제대로 된 설명을 내놓지 않아 일각에서는 생물무기를 개발하려는 목적으로 실험이 이뤄진 것 아니냐는 의혹도 나오고 있다. 생화학 무기는 생물무기금지협약(BWC)에 가입한 국가에 한해 개발과 이전이 금지돼있지만, 유사시 상황에 대비해 비공개로 비축해 놓으려 했던 것 아니냐는 관측이다.
한편 정부는 탄저균 배달 사고와 관련해 질병관리본부 주관으로 사실관계 확인을 위한 현지 조사에 나설 예정이다. 질병관리본부는 주한미군이 오산기지의 연구소를 잠정 폐쇄했다는 것과 관련, 외부 차단은 제대로 된 것인지를 포함해 실험실 내부 멸균 상태 등을 점검할 계획이다.
탄저균 배송과 관련한 점검도 이뤄질 예정이다. 질병관리본부는 탄저균이 밀폐용기에 담겨 적법하게 배송됐는지 확인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탄저균에 노출된 22명의 건강 상태도 직접 확인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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