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내 각 당의 합의 도출로 삼성특검법 통과가 초읽기에 들어감으로써 이제 공은 청와대로 넘어갔다. 이용철 전 비서관의 '삼성현찰박치기 로비' 폭로로 세간의 관심이 청와대로 쏠리는 동안 노무현 대통령은 공교롭게도 아세안+3 정상회담 참석 차 싱가폴을 방문 중이었다.
특검문제에 대한 청와대의 최종적인 공식 입장은 지난 16일 천호선 대변인이 정례브리핑에서 밝힌 '수사 범위를 축소하고 공수처 법안을 통과시키지 않으면 거부권 행사를 검토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수사 범위가 일부 축소되긴 했지만 각 당 합의안은 '2002년 대선자금 및 최고 권력층에 대한 로비자금 의혹'을 수사대상에 포함시켰고 공수처법은 연계 사안으로 일절 언급되지 않았다. 따라서 청와대의 공언대로라면 거부권 행사가 당연한 수순이지만 사태가 간단해 보이진 않는다.
거부 명분 빈약
이용철 전 비서관의 폭로 이후 현 정권 하에서 벌어진 청와대와 삼성의 밀월관계가 새삼 주목을 받고 있다.
이미 다 알려졌던 내용이었지만 삼성·중앙일보 출신 인사들의 중용, 삼성이 만든 아젠다의 차용은 물론, 노 대통령 내외와 이건희 회장 내외가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된 리움 미술관을 호젓하게 관람했던 사실 등이 다시 신문지상을 장식했던 것.
물론 청와대 대변인이 이같은 의혹 제기에 대해 '일면적이고 편협한 인식'이라면서 일축한 바 있지만 이 전 비서관이 '물증'을 내놓으면서 상황은 바뀌었다.
게다가 공수처 문제를 삼성특검에 연계시킨 것에 대해선 청와대 내에서도 반대 의견이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노 대통령의 의중이 담긴 이같은 방침에 대해 일부 관계자들은 "우리도 잘 이해가 안 가는데 밖에서 볼 땐 오죽하겠냐"고 입을 삐죽거리기도 했다.
대통합민주신당에서조차 전혀 호응이 없는 상황 속에서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최근 "공수처 문제는 좀 달라질지도 모르겠다"고 말해 묘한 뉘앙스를 남기기도 했다.
또한 '거부권을 행사해도 국회의 재의결로 인해 특검법이 통과되는 경우'는 청와대 입장에서는 욕은 욕대로 먹고 실익을 거두지 못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당장 23일 본회의에서 찬성표가 출석 의원의 3분의 2를 넘을 경우 청와대는 쉽사리 결단을 내리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특검법안은 과반 찬성으로 통과되지만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재의에 붙여질 경우의 통과선은 3분의 2다.
특히 이 대목은 청와대와 18대 총선을 대비하는 친노그룹 사이의 이해관계도 묘하게 갈라지는 지점이다. 일단 특검 반대 명분이 태부족이고 '선명성'을 기치로 18대 총선을 대비해야 할 이들이 '삼성지킴이' 꼬리표를 감당할 수 있겠냐는 이야기다.
그래도 거부권 행사?
물론 이같은 상황에도 불구하고 노 대통령이 특유의 '소신'을 발휘해 거부권 행사를 감행할 가능성도 적진 않다.
일단 특검 제도 자체에 대한 노 대통령의 거부감이 대단하다는 것이 청와대 관계자들의 일관된 설명이다.
게다가 새로운 정권의 출범과 맞물리면 '삼성 특검'의 불똥이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집중될 것은 명약관화하다.
청와대의 거부권 행사 검토 배경에 대한 의혹에 대해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은 "참여정부는 어떤 불법과 부패도 용납하지 않는다. 저희 스스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라고 자신했지만 세간의 시선은 이와 다르다.
물론 '당선축하금 500억 원 설'에 대해선 청와대는 강한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집권 초 분위기에서 그런 거액이 과연 오갈 수 있었겠냐는 이야기다.
하지만 '노 대통령 주위 인사들이 개별적으로 한 푼도 받지 않았겠느냐'는 또 다른 이야기다. 지금 청와대 시스템으론 이런 문제에 관해 개인의 고백에 의존할 수 있을 뿐, 조직적 스크린이 불가능하다. 당사자 입만 바라봤던 변양균, 정윤재 사례가 이를 보여준다.
또한 지난 대선자금 가운데 일부가 장수천 등으로 유입됐던 사안 등 지난 수사에서 덮고 갔던 문제들도 재점화 될 수 있다.
이처럼 최악의 경우 '청와대를 당당하게 걸어서 나가겠다'는 노 대통령의 호언장담이 무너질 수 있어 여론의 역풍을 무릅쓰고라도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이래저래 귀국하는 노 대통령의 발걸음이 무거울 수밖에 없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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