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기업이 자발적으로 내놓은 상품이라면 모르겠다. 정부의 정책 산물인 대출상품이 무슨 선착순이고, 그것도 사실상 특정 계층만 이용할 수 있는 '로또' 식의 상품이라는 게 말이 되나? 금융당국의 야심작이라는 '안심전환대출' 이야기다.
당장 형평성 논란이 벌어지고, 4.29 재보궐 선거를 의식한 여권에서는 원내대표가 "검토가 필요하다"고 보완대책을 내놓을 듯 제스처를 취하고 나섰다.
"모처럼 정부가 호응도 높은 정책다운 정책을 내놓았다"는 평가도 나온다. 하지만 새누리당 원내대표조차 '선착순 로또' 식의 상품이라고 말할 정도의 극약처방에 대해 어울리지 않은 찬사가 아닐까?
효과라도 있으면 모르겠다. 정부가 '이중모션'을 쓰고 있기 때문에 역효과마저 우려되고 있다. 폭증하는 가계부채 부담을 줄이기 위해, 5년 뒤부터 한꺼번에 닥친다는 원금 상환 부담을 줄이는 '채무 구조조정'이 이 정책을 목표라고 하는데, '채무 구조조정' 효과보다 가계부채 급증세가 제어가 되지 않고 있다.
또한 안심전환대출이 고정금리로 원리금을 상환하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빚갚느라 소비할 여력이 없는' 가구들을 양산하는 정책이라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이런 비판이 왜 나오는지 하나씩 따져보자. 우선 금융당국이 특단의 가계부채 대책으로 내놓은 안심전환대출이 특정 계층만을 위한 혜택이라는 것이 드러나면서 정치적인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기존 대출금리보다 1% 포인트 정도 낮은 금리의 대출로 바꿔준다는 안심전환대출은, 당초 주택담보대출이 부실화하는 것을 막기 위해 주택담보대출 이자도 내기 어려운 서민들을 위한 정책인 것처럼 알려졌었다.
알고보니 안심전환대출은 '원리금 상환' 부담을 감당할 수준은 되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붙어있는 상품이다. 그 결과 제2금융권 등에서 대출을 받은 서민의 경우는 원리금 상환이라는 조건을 감당하기 어려운 계층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대상이 아니었다.
실제 대상은 연소득이 평균 4000만 원이 넘고, 집값이 평균 3억 원 이상인 특정 계층이었다. 이들의 대출을 이자에 원금까지 갚아나가는 방식으로 바꿔 장기적으로 나중에 한꺼번에 갚아야 할 때 원금 부담을 줄이는 데 초점을 맞춘 것이다.
하지만 한정된 재원으로 선착순 식으로 운영함으로써 지난 24일 출시 나흘만에 20조 원의 재원이 소진되었다. 그러자 다시 20조 원의 추가 재원으로 지난 30일부터 4월3일까지 연장 신청을 받는다고 하지만, 형평성 논란은 더욱 불거지고 잇다.
"왜 우리에게는 훨씬 싼 이자로 대출을 바꿀 기회를 주지 않느냐"는 불만을 달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급기야 여권에서는 안심 전환대출이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면서 손질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30일 "안심전환대출이 형평성에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고 있는 만큼 당정 논의가 필요하다"면서 특히 "선착순으로 배정돼 일종의 로또에 해당하는 문제도 생겼다"고 지적했다.
정작 더 큰 문제는 정부 정책의 엇박자다.한 편으로는 빚을 져서 집을 사라고 정부가 나서서 권하면서 또다른 한쪽에서는 당장 원리금을 갚으라는 식의 정책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들어 3월까지 시중 7대 은행 주택담보대출을 집계해보니,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무려 3.5배나 폭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1분기는 2조 원 정도 증가했는데, 올해 1분기에는 7조 700여억 원이나 증가한 것이다. 7대 시중은행 주택담보대출 잔액만 316조 4000여억 원이다.
'선착순 로또'라고 해서 서둘러 안심전환대출을 신청한 뒤 "과연 잘한 것일까"라고 회의에 빠지는 사람들도 속출하고 있다. 예를 들어 20년 만기 1억원 대출의 경우 원금 분할상환으로 바꿨더니, 매월 108만원가량의 원금과 이자를 상환해야 한다는 계산이 나왔다. 원래 매달 59만원가량의 이자를 갚았는데 상환 부담은 원금과 이자를 합쳐 2배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정부가 가구의 가처분 소득을 늘려서 소비지출을 늘리겠다는 정책은 이렇게 원리금 상환방식의 대출을 장려하면서 앞으로 원리금 갚느라 다른 소비는 엄두도 못낼 가구들을 양산하게 되는 정책과 충돌할 것으로 보인다.
결국 '안심전환대출'은 '원리금 상환능력'이 있는 중산층에 이자 비용을 지원하는 정책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기존의 대출채권이 부실화되면, 그 비용은 모두 국민 부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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