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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뚝 위 87일…저 사람들 마음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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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뚝 위 87일…저 사람들 마음이 어떨까요?

[기고] 밀양 송전탑 반대 주민이 쌍용차 해고자들에게

김정욱, 이창근. 두 명의 해고 노동자가 쌍용자동차 70미터 굴뚝 위로 오른 지 9일로 벌써 87일째입니다. "김정욱, 이창근이 만든 티볼리를 타고 싶다"는 시민들의 열망에 쌍용차의 신차 '티볼리'는 벌써 1만대 이상이 계약됐다지만, 이들이 굴뚝 아래로 내려올 날은 아직 기약이 없어 보입니다. 이렇게 굴뚝 위에서 100일을 넘길 수는 없기에, 쌍용차 해고자들과 그들을 지지하는 시민들이 오는 14일 쌍용차 평택공장 앞에서 '희망 행동'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밀양 송전탑 경과지 주민 김영자 씨가 <프레시안>에 해고 노동자들을 향한 편지글을 보내왔습니다. 지난해 11월 쌍용차 대법원 판결이 있던 날, 해고자들의 손을 잡고 함께 울던 '밀양 할매들'입니다. 김 씨는 "아픈 사람 마음은 아픈 사람이 제일 잘 안다"라고 말합니다. 해고자들의 '3.14 희망행동'에 앞서, 김 씨의 글을 전문 게재합니다. 편집자

안녕하세요. 저는 밀양 송전탑 경과지 주민 김영자입니다. 10년간 송전 철탑을 막기 위해 싸웠는데, 철탑은 제가 사는 집에서도, 일하는 비닐하우스에서도 어디에서도 우뚝 서서 저를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속에서 천불이 납니다. 그래도 우리는 하루하루를 삽니다. 지난 겨울부터 넉 달째 철탑 선하지에서 천막 농성을 하고 있습니다.

▲ 밀양 송전탑 경과지 주민 김영자 씨.
이 싸움을 하면서 정말 잊지 못할 사람들을 수없이 만났습니다. 그중에서도 우리 쌍용차 아저씨들은 특별한 분들입니다. 촌에서 농사만 짓던 사람이, 노동자들을 제대로 볼 일이나 있었습니까. 그래도 쌍용차 사람들 생각하면 코 끝이 찡합니다. 우리는 두 분 어르신이 세상을 버리셨는데, 거기는 스물여섯명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정말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버티며 싸우시는 그 정신력이 정말 놀랍습니다.

쌍용차! 라고 하면 많은 일들이 머릿속을 떠오르지만, 특히 가슴에 박힌 몇 가지 사건들이 있습니다. 저희가 서울에 데모하러 가면 대한문 앞에서 그 추운 곳을 밤낮으로 먼저 가신 동지들 영정을 지키며 투쟁하던 모습이 생각납니다. 우리도 힘든 싸움해왔다고 생각했는데, 아무것도 모르고 우리 일에만 빠져 살던 지난날이 정말 미안했습니다.

그리고, 지난해 11월13일 대법원 선고가 있던 날, 대법원 앞에 우리가 도착했을 때 반갑게 손을 잡아주셨지만 초조한 눈빛들을 보았습니다. 판결 시간이 다가오면서 우리는 법정 앞으로 갔었고 거기는 경찰들이 많은 사람들이 못 들어가게 막아서고 있었습니다. 그때도 우리는 나이 드신 어르신들이라고 로비에서 기다릴 수 있도록 해주더군요. 결국 선고는 그 모양으로 나고 말았고, 젊은 노동자들 축 처진 얼굴로 걸어 나오던 모습이 생각납니다.

공장으로 돌아가 내가 하고 싶은 일 하고 싶다잖아요. 내가 하는 일, 내가 하고 싶은 일 하겠다는데 못하게 하는 이런 개 같은 나라가 어디 있냐고, 밀양 어르신들이 참았던 눈물을 쏟으며 난리가 나고 말았지요. 쌍용차 해고자 고동민 선생님 손을 잡고 정문 앞까지 나오는데 어떤 말이 위로가 될지 머릿속이 텅 빈 것 같았습니다. 결국 힘냅시다, 라는 말밖에 해 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대법원 정문 앞에서 서로를 껴안고 눈물 흘리는 것도 잠시, 기자회견이 시작되었고 쌍용차 동지들은 가진 자들의 횡포에 이대로 물러서지는 않는다, 지금보다 더 힘들겠지만 끝까지 싸워서 돌아가자고 하셨습니다.

법은 만인에게 공평해야 한다고 하잖아요. 우리 송전탑도 그렇고 쌍용차도 그렇고, 우리나라의 법은 자본과 절대 권력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고무줄 법입니다. 사실이 그렇네요.

그리고 또 하나의 기억은 지난해 11월11일 나눔문화 14주년 행사 때, 내 옆자리에 쌍용차 김정욱 선생님이 앉으셨습니다. 그때 우리 테이블에는 삼성 대기업과 싸우시는 황상기 선생님, 가로림만 조력발전소를 막아내시는 선생님 등 열 분 정도가 앉아계셨는데 제가 와인을 한 잔씩 드리며 '이길 때까지 싸우자'는 건배를 청했는데, 왠지 김정욱 선생님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와서도 그 눈빛은 지워지지 않고 있는데, 12월13일 아침 여덟 시 경 한 통의 문자에 "이창근 김정욱 쌍용차 공장 내 진입, 70미터 굴뚝 위에 올라가다"는 내용을 보았습니다.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르는데 감당이 되질 않았습니다. 그날, 그 눈빛이 이것이었구나, 이럴 수가 있는가. 이 나라의 주인은 국민일 텐데, 젊은 노동자들을 이 추운 날에 거리로 굴뚝으로 내모는 이 나라는 도대체 누구의 나라란 말인가. 우리도 송전탑이 들어서서 억울해서 죽을 것만 같은데, 저 사람들 마음이 어떻겠는가, 이런 생각에 눈물이 그치질 않았습니다.

12월27일 쌍용차 집중집회가 있던 날, 저희 밀양 주민들은 버스 1대를 빌려서 쌍용차 앞으로 갔습니다. 거기서 굴뚝 위에 계신 두 분이 지도부 전원 단식을 막기 위해 올라가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두 분의 진한 동지애에 감동받았습니다. 이창근 김정욱 두 분, 정말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그 혹독한 추위도 시간이 흐르면서 봄을 만날 수 있듯이, 두 분의 목숨 건 투쟁이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라 믿습니다.

▲ 지난해 11월13일 대법원 선고 후, 기자회견을 진행 중인 이창근 노조 정책기획실장(왼쪽)의 뒷짐 진 손을 꼭 잡고 있는 밀양 송전탑 경과지 주민의 모습. ⓒ프레시안(선명수)

옛날 일제시대 때 우리나라 독립 운동가들이 해방되는 날 받아놓고 싸운 게 아니듯이, 우리의 요구가 정당한 것이라는 걸 많은 사람들이 알아줄 때가 올 것입니다. 그때가, 우리가 이기는 순간입니다. 시간이 많이 걸릴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런 생각이 듭니다. 지금은 독립 운동하는 사람들이 겪었던 그런 힘든 과정이라 생각하고 이룰 때까지 함께 싸워 나갈 것입니다.

김정욱, 이창근, 문기주, 고동민, 김득중…제가 성함을 기억하는 분들은 이 분들이지만, 얼굴은 다들 낯이 익습니다.

오는 3월14일에 다시 굴뚝으로 가려고 합니다. 밀양 어르신들은 쌍용차 아저씨들을 참 좋아합니다. 쌍용차 아저씨들도 밀양 어르신들한테 참 잘 해 주십니다. 이런 좋은 마음들이 있어서 우리 밀양도 저 굴뚝의 두 분도 버티고 계시겠죠. 아픈 사람 마음은 아픈 사람이 제일 잘 압니다. 지금 온 나라가 아파하고 있잖아요. 3월14일 평택 쌍용차 굴뚝 앞에 많이 모여서 힘을 한번 모아 봅시다. 쌍용차 동지 여러분 모두 모두 사랑합니다, 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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