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의 '한반도 브리핑' 필자이자 대표적인 남북관계 전문가인 김근식 경남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의 새로운 연재 '남북관계 중년부부론'을 시작합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포용정책 10년과 이명박 정부의 강경정책 5년, 그리고 박근혜 정부 집권 3년차가 된 현 시점에서 남북관계는 어디서부터 무엇을 풀어야 할지 방향조차 가늠하기 힘든 상황에 놓였습니다.
김 교수는 남북 간 한창 가까웠던 김대중·노무현 시기가 서로 죽고못사는 '신혼과 연애의 남북관계'였다면, 이명박 정부 때는 서로를 원수처럼 여기는 '증오와 권태의 남북관계'였다고 규정합니다. 그는 앞으로의 남북관계는 일희일비하지 않고 끈기와 인내로 서로에게 익숙해지는 '덤덤한 중년의 부부사이'로 진행돼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중년부부는 다소 무덤덤하더라도 관계 자체를 파탄내지 않고 서로 대화하면서 가능한 합의 지점을 찾아간다는 측면에서 신혼부부와는 다소 다른 부분이 있습니다. 김 교수는 이러한 지점에 착안하여 남북 역시 앞으로는 끈질기게 마주 앉아 결국은 합의를 도출해내는 '고진감래'의 관계에 익숙해져야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김 교수의 말대로 남북은 대화를 통해 합의점을 만들어 내고, 그 합의사항을 하나씩 이행하면서 서로 신뢰를 쌓아갈 수 있을까요? 김 교수의 '중년부부론'이 남북관계 개선의 새로운 방안을 제시할 수 있을지 관심있게 지켜봐주시기 바랍니다. 편집자.
남북관계가 어렵다. 대화도 안 열리고 관계도 경색되고 상황도 좋지 않다.
그런데 남북관계는 본래 어렵다. 남북관계가 잘 풀리지 않아서 어려운 것만이 아니라 어떻게 풀어야 할지 잘 몰라서 더 어렵다.
사실 상황이 어려운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어려운 남북관계를 제대로 풀기 위한 정답을 몰라서더 어려운 것이다. 그렇다고 문제를 풀기 위해 과거의 답을 대입하는 것은 당장은 쉬운 길이 될 수도 있으나 '해답'은 아니다.
남북관계 해법 찾기가 어려운 지금의 사례를 간단히 들어보자.
1. 이명박 전 대통령이 <대통령의 시간> 이라는 회고록을 내놨다. 평소 얼굴이 두꺼운지는 알았지만 이처럼 자기 정당화가 심한 줄은 몰랐다. 회고록에는 임기 동안 북이 정상회담을 하자고 애걸을 했지만 옳지 않은 길이라 여겨 당당하게 거절했다는 자기변명이 절절하다. 천안함과 연평도로 두들겨 맞으면서 한반도 평화관리와 북한관리에 실패한 이 전 대통령은 정상회담 거부가 매우 잘한 것이라는 자기 확신에 차있는 것이다.
이 전 대통령은 어떤 경우에도 북과는 마주앉지 않겠다는 단호한 적개심으로 똘똘 뭉쳐있었다. 그런데 북측 역시 마찬가지였다. 북은 이 전 대통령을 사람 취급도 하지 않았다. 이번 회고록을 두고 북측은 '2MB(메가바이트)의 저능아'와 '인간 오작품'이라는 막말을 서슴지 않았다. 이처럼 이미 남북관계는 최악의 감정싸움에 돌입해있다. 이 마당에 무슨 남북관계 개선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2. 2014년 12월 19일 헌법재판소는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을 8:1의 압도적 차이로 가결시켰다. '종북'이라는 정치적 주장을 헌법재판소가 수용하면서 통합진보당의 정당 활동을 법으로 중단시킨 것이다. 이석기 사건과 통합진보당 해산으로 새정치민주연합 등 야권은 이제 이른바 '종북' 세력과의 선거연대나 정책연합은 하지도 않을 것이고 현실적으로 할 수도 없게 되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기 활발했던 남북관계 개선과 각종 민족공동행사 등이 사실상 당시 민주노동당 인사들과 스스럼없이 진행되었던 것을 돌이켜보면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남북의 화해협력과 다방면의 교류접촉은 이제 우리 사회에서 과거처럼 쉽게 주장하기도, 실현하기도 어렵게 됐다. 두 차례의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되던 시기는 북한과의 교류협력과 화해증진이 대세였고 남북관계는 상호 이해와 존중의 시대였다. 그러나 지금은 관계 개선과 화해 협력이 쉽지 않은 시대가 되었다. 인도적 차원의 대북지원마저도 싸늘한 분위기로 바뀌어 있다. 이 상황에 과거와 같은 남북관계로의 복원은 좀처럼 쉽지 않아 보인다.
탈냉전 이후 십 수 년을 지나면서 남북관계는 이러저러한 우여곡절을 겪었고 관계 개선을 위해 이것도 저것도 하기 어려운, 마땅한 답을 찾기 힘든 시절이 돼버렸다. 우선 이명박 정부가 채택했던 대북 강경 기조와 압박 정책은 북을 변화시키지도, 굴복시키지도, 혼내주지도 못한 채 상대를 도저히 용서 못할 불구대천의 원수로 만들어버렸다.
이명박 정부는 북의 조기붕괴를 기정사실화하면서 관계 개선이나 대화 재개가 오히려 북의 수명을 연장시켜준다고 생각했다. 이른바 '기다림의 전략'이었다. 특히 2008년 8월 김정일이 뇌졸중으로 쓰러진 이후 이명박 정부는 남북관계 중단과 대북 압박이야말로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는 지름길이자 해법이라고 간주했다. 그런데 북한은 오히려 이명박 정부 시기를 지나면서 남북관계를 통한 남쪽의 도움 없이도 스스로 살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됐다. 맹목적인 대북 강경이 돌이키기 힘든 감정의 상처만 남긴 채 아무런 성과도 없이 남북관계를 최악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그렇다고 과거 진보 정부의 대북 화해협력으로 돌아가기도 어렵게 되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지속적인 화해협력을 통해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내고 한반도 평화를 증진시킬 수 있다는 선의의 낙관론에 기반했다. 두 차례의 정상회담과 수십 차례의 장관급 회담이 개최되고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그리고 경의선·동해선 연결 등 굵직한 경협사업이 진전됐으며, 각종 교류협력이 지속되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남북관계는 취약했다.
핵실험이 계속되면서 핵 문제는 악화됐고 남북의 정치군사적 대결은 쉽사리 해소되지 않았다. 화해협력의 끈질긴 인내에도 불구하고 남북관계는 쉽게 강경 대결 분위기로 돌아섰고 국제 정세 변화와 남쪽의 정권교체로 남북의 화해협력은 모래성처럼 무력화되었다. 이후 강경 대 강경의 맞대결이 심화되고 서로의 감정싸움이 악화되면서 이젠 남이나 북이나 과거 진보 정부의 순수한 화해협력 시대로 되돌아가기 힘들게 돼버렸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대북정책은 북의 근본적 변화를 견인하지 못한 채 보수 진영의 무차별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면서 지금은 그 정당성마저 주장하기 힘든 상황이다.
대북 강경과 대북 포용이 모두 한계에 봉착했던 핵심적인 원인은 둘 다 자기만의 '주관적 희망'(wishful thinking)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이다. 대북 정책은 지구상에서 가장 다루기 어렵고 예측하기 힘들며 유별난 특성을 지닌 북한이라는 상대를 대상으로 하는 '상호 게임'이다. 혼자 결정하고 결과를 예측하고 마무리하는 독자 플레이어 게임이 아닌 것이다. 상대의 변화무쌍하고 다양한 경우의 수를 겪어야 하고 예기치 못한 수많은 변수와 변화들에도 충분히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준비하며 대응해야 하는 매우 역동적인 게임이다. 과거 회귀적 대북 강경과 과거 지향적 대북 포용은 또 다시 '주관적 희망'만을 앞세운 단독 게임으로 승부를 보자는 주장에 다름 아니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 강경이 무식하고 비현실적인 이유는 압박하고 봉쇄하고 관계를 중단하면 북이 우리가 원하는 대로 굴복하고 변화하고 기어 나올 것이라는 '주관적 기대'에 쉽게 들떠 있었기 때문이었다. 북은 믿을 수 없고 믿어서도 안 되는 상대이기에 오로지 압박과 봉쇄만이 '악당' 북한을 굴복시킬 수 있다는 자기 확신의 연장이었다. 이번 이 전 대통령의 회고록은 그 관점에서 조금도 교정되지 않았다.
진보 정부의 대북 포용이 적잖은 성과에도 불구하고 지금 당시로의 복귀 주장이 쉽지 않음도 교류하고 협력하고 관계를 개선하면 북이 우리가 원하는 대로 변화하고 나아질 수 있다는 '주관적 기대'에 쉽게 의존했기 때문이었다. 진보 정부 시절의 남북관계로 무조건 돌아가자는 일부 주장은 여전이 이러한 관점에 머물러 있다.
결국 2015년 지금 남북관계는 진보 정부의 화해협력 시대로 돌아가기도, 그렇다고 보수 정부의 대북 강경 시대로 돌아가기도 힘든 상황이 되었다. 강경과 대결, 포용과 화해를 겪었던 우리 국민들도 이제 일도양단의 단순한 취사선택이 쉽지 않음을 조금씩 인식하게 되었다. 변화된 정세와 환경 그리고 조건에 걸맞는, 그야말로 '변화된 대북 접근'이 필요하고 '새로운 남북관계'가 필요한 때가 되었다.
맹목적인 대북 강경으로의 '과거 회귀'는 성공할 수도, 효과를 볼 수도 없음이 이미 입증됐다. 마찬가지로 무조건적인 대북 포용으로의 '과거 지향' 역시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지난날의 화려했던 추억으로 무작정 돌아가자고 주장하기가 어려운 현실이 됐다. 대북 강경과 대북 포용의 한계를 담담하게 수용하고 변화된 현실에 맞는 새로운 남북관계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아무도 가지 않았던 전혀 새로운 남북관계의 여정을 시작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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