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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이건 기부가 아니다"

[공공미술관을 시민의 품으로 연속 기고·④] 설립자 갤러리로 충분, 명칭 욕심은 과욕

최근 수원시에서 공공미술관 명칭에 관한 논란이 일고 있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인 수원화성, 그 중심인 화성행궁 앞에서 한창 공사가 진행 중인 이 미술관은 수원시가 부지를 제공하고 현대산업개발(대표이사 정몽규)이 건축해 수원시에 '기부채납'하는 미술관이다. 올해 6월 완공해 10월에 개관할 예정이다.

이 공공미술관의 명칭이 현재 '수원시립 아이파크 미술관'으로 잠정 결론이 난 상태다. 이에 수원지역의 문화예술인과 시민사회단체들이 문화와 공공성을 헤치는 명칭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이에 네 차례에 걸쳐 관련 기고를 싣는다. 마지막 기고는 조각가이자 수원에서 열성적으로 문화 운동을 하고 있는 이윤숙 대안공간 '눈' 대표가 보내왔다. 편집자.

공공미술관을 시민의 품으로 연속 기고

수원시에 시립미술관이 드디어 생긴다! 그것도 수원의 노른자위, 세계문화유산 화성 행궁 앞에.

얼마나 고대하던 일이었던가? 수원에서 태어나 수원에서 활동하며 수원지역 문화예술의 활성화를 위해 열과 성을 다해왔던 예술인의 한 사람으로서. 열악한 환경에서 활동해야 했던 전철을 후배, 제자들에게 물려줄 수 없어 젊고 실험적인 예술가들의 비빌 언덕을 만들고, 슬럼화되어가는 행궁동을 예술로 변화시키고자 성 안에 살던 집을 비영리 전시공간으로 바꾸어 공간 활용 대안을 제시하며 힘겹게 10년간 동분서주해 온 대안 공간 운영자로서. 행궁동에 수원미술관 건립은 정말 기쁜 소식이었다.

수원은 미술 인구에 비해 공간인프라가 턱없이 부족했고, 1999년 수원미술전시관 개관 이후에도 제대로 된 미술관의 필요성이 계속 요구되던 터였다. 공공미술관과 사립미술관, 대안공간과 상업갤러리는 각각 그 고유의 역할이 있으므로 각자 다양한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미술인들의 목소리를 모두 담아내지 못해왔다.

많은 사람들이 만석공원에 있는 수원미술전시관을 미술관으로 잘못 알고 있다. 미술관이 소장품 수집과 연구, 기획 위주의 전시는 하는 것과는 달리, 미술전시관은 주로 대관 위주의 성격이 짙다. 그나마 고(故) 심재덕 시장이 "문화도시를 표방하는 수원에 미술관 한 곳도 없어 미술인들에게 미안하다"며 재활용전시관으로 짓던 건물을 중간에 미술전시관으로 용도변경해준 덕에 그간 미술인들과 시민들이 적극 활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기능적인 측면에서 미술관과 미술전시관은 많은 차이가 있기에 늘 아쉬움이 많았다.

그러던 중 그동안 고대했던 시립 미술관이 건립된다니! 120만 수원시 인구에 걸맞게 이제라도 문화 인프라 틀을 제대로 갖추어 가는 수원이 다행스러웠다. 더군다나 미술관이 자리한 화성행궁 광장은 정조의 개혁정신과 효심, 그리고 애민사상이 깃든 의미 있는 곳으로 수원의 문화적 정체성을 담은 허파 같은 곳이다. 장소가 갖는 좋은 입지조건은 마치 프랑스의 루브르박물관(미술관)을 떠올리게 했다.

ⓒ대안미디어 너머

화성행궁 광장은 시립 미술관이 들어서기에 최적의 장소라고 생각했다. 이곳이라면 시립 미술관이 꾸준한 작품 소장과 양질의 기획 전시로 수원 예술인들을 발굴하여 알리고, 아시아, 더 나아가 세계적인 예술가들과 교류할 장을 열 수 있다. 또 관광객은 화성행궁과 시립미술관을 통해 수원의 과거와 현재의 아름다운 가치를 동시에 보고 느낄 수 있다.
행궁동 주민들은 관광시간을 늘려 지역 경제 활성화에도 큰 도움이 되어주기를 소망했고, 행궁동을 역사문화예술이 넘쳐나는 마을로 만드는 데 공공미술관이 큰 역할을 하기를 기대했다.
그래서 수원의 미술인들과 시민, 특히 행궁동 주민들은 2013년 12월 21일 미술관 건립 기공식 현장에 대거 참여해 문화예술과 행궁동을 사랑하시는 염태영 수원시장을 비롯한 관련 공무원들의 노력과 300억 원을 기부채납하는 현대산업개발에 감사의 큰 박수를 보냈고 함께 기뻐했다.

"시립미술관 이름에 기업 브랜드? 저건 아닌데?"

그런데 시립미술관 이름이 가칭 '수원아이파크미술관'이라는 소식이 들렸다. 다들 "저건 아닌데?"라며 한마디씩 했다. 담당 공무원에게 "명칭이 왜 저래요?"라고 묻자, 담당 공무원은 "가칭"이라며 "명칭이 정해지면 바꿀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수원시에서 기부자에 대한 배려를 일정기간, 명칭이 정해지기 전까지라도 해 주려는가 보네. 그래. 좋은 생각이네"라며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당연히 어느 누구도 기업의 브랜드명, 그것도 아파트명을 미술관 명칭에 사용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으니까.

그런데 건물이 어느 정도 형태를 드러내고 미술관 개관이 다가오면서 스리슬쩍 '가칭'이라는 말이 사라졌다. 그리고 수원시는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이라고 쓰기 시작했다.

수원시 소유의 땅, 그것도 최고 좋은 입지에 미술관 운영비를 일정 부분 책임지는 것도 아니고 건물만 지어 준다는데, 미술관 명칭을 기업이 결정하는 것이 왠지 씁쓸했다. 자본에 의해 수원의 정체성이 흔들리는 것 같이 느낀 것은 나를 비롯한 미술인들 뿐 아니라 수원을 사랑하는 시민 모두가 그러했으리라.
시민과 함께 명칭 공모도 하고 시민들이 바라는 미술관은 무엇인지 설문조사도 해 가며 기업의 기부로 지어지는 의미 있는 미술관을 많은 사람에게 홍보도 하고 참여도 유도하며 재미있게 완공을 준비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공사장 외곽에 둘러쳐진 높은 울타리에 시민, 작가, 관광객의 바람과 소망을 그림이나 글로 적어보면서 함께 마음을 보태고 공사기간 무사고를 기원하며 지역 미술인으로서 작은 힘이라도 보태고 싶었다.

작가, 주민, 기업, 행정이 한 마음으로 완성한 의미 있는 미술관, 최소한 전국 마을 만들기 1번지 행궁동에 지어지고 운영될 미술관답게 소통과 참여로 멋진 개관을 함께 준비함으로서, 겉모양만 그럴싸한 미술관이 아니라 시민들이 아끼고 사랑하는 미술관이 되기를 바랐다.

미술관 1층 설립자 갤러리로 충분, 명칭은 과욕

현대산업개발은 권선동 택지 개발이익과 기부채납했다는 명분, 행궁광장에서의 엄청난 홍보 효과까지 세 마리 토끼를 다 잡으려고 하는 것처럼 보인다. 더군다나 어떤 내용이 전시될지는 모르겠으나, 미술관 1층 로비에 설립자 갤러리도 만든다고 한다. 사실 이것만으로도 기부자에 대한 배려와 홍보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공공미술관 명칭에 기업의 브랜드명을 쓰려는 것은 지나친 욕심으로 비쳐져 오히려 기업 이미지를 실추시킬 수도 있다.

ⓒ대안미디어 너머

물론 300억 원은 적지 않은 돈이다. 이 거액의 기부를 끌어낸 염태영 수원시장과 현대산업개발의 기부 자체는 두고두고 감사할 일이다. 그러나 기부란? "자선 사업이나 공공사업을 돕기 위해 재물을 무상으로 내줌"이라는 사전적 의미와 같이 무조건성, 무목적성 때문에 사람을 따뜻하게 하고 기분 좋게 하며 그 자체로 아름다운 것이다. 조건이 붙여지면 이미 기부가 아니다.

또한 공공미술관의 명칭은 매우 중요하다. 사람들은 명칭만 들어도 그 안의 내용을 짐작하고 안으로 들어갈지 말지를 결정하기도 하고, 명칭이 지역이미지를 대표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행궁광장은 수원의 과거, 현재, 미래가 공존하고 지역의 문화적 정체성을 품고 있는 특별한 장소이다. 거기에 아름다운 기부로 지어지는 공공 미술관에 기업 브랜드명이 말이 되겠는가? 기업의 이미지는 돈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진정성을 갖고 지속적인 정성을 기울일 때 따라가는 것이다.

현대산업개발은 기업 홍보관이 아니라 수원시민들의 미술관이 되기를 고민하며 모인 시민단체와 미술인들 숫자가 현재 많지 않다는 이유로, 우리의 반대를 몇몇의 소수 의견으로 치부하는 오류를 범하지 않기를 바란다. 대다수의 시민들이 아직 확정된 명칭이 아니라고 믿고 있다. 그리고 수원의 문화 인프라 확충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염태영 시장과 담당공무원들이 기업과 잘 협상하시리라고 믿기에 함구하고 있을 뿐이다.

공공성을 담보한 명칭으로

며칠 전부터 미술인들이 행궁광장 미술관 건설 현장 입구에서 1인 피켓시위와 퍼포먼스를 릴레이로 진행하고 있다. 미술인들은 때로 너무나 자기중심적이라 잘 나서지 않는 속성이 있다. 그런 작가들이 현장으로 나와 자신들의 목소리를 또렷하게 내기 시작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수원의 정체성과 공공성을 담보한 명칭으로 변경될 때까지 지속, 확산될 조짐이다. 더 이상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도록 현대산업개발은 욕심을 버리고 기부가 기부답도록 아름다운 결단을 내려 주기를 간곡히 부탁드린다.

계속 욕심을 버리지 않는다면 수원 화성행궁 앞 미술관은 분명한 기업홍보관으로 쓰겠다는 것임으로 그에 합당한 대가를 톡톡하게 치러야만 할 것이다.

* '수원시민미술관을 고민하는 사람들'은 '화성행궁 앞 공공미술관 명칭, 아파트 브랜드 사용반대' 온라인 서명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 온라인 서명운동 바로가기 http://goo.gl/KpKX4d)

* 이 글은 수원 지역 신문인 <대안미디어 너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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