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 휴진 공지를 인쇄해서 환자분들이 잘 볼 수 있는 곳에 붙이면서 스스로가 시간의 흐름에 참 무뎌졌다는 생각을 합니다. 크리스마스와 1월 1일이 언제부터인가 달력에 표시된 붉은 글씨 이상의 의미가 있었던가 싶습니다. 일어나라고 간지럽히면 눈 감은 채 씩 웃으며 매일 매일이 재미있다는 딸아이와는 달리 제 시간은 조금 나이가 들어버린 듯 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새해 결심을 양력 1월 1일과 음력설에 2번 한다고 하는데, 저도 새해를 맞이하거나 심란할 때면 일종의 의식처럼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책을 꺼내 다음의 구절을 몇 번이고 읽곤 합니다.
듣건대 옛날의 성현들은 그 덕을 향상함이 날마다 새롭지 아니함이 없고 해마다 진화하지 아니함이 없으며 다만 날로 부지런하여 그 몸이 죽은 뒤에라야 공부를 그친다 하였으니 대개 사람 되는 도리를 다하여 하늘이 부여한 바를 저버리지 않으려고 함이었다.
내가 세상에 난지도 이십칠 년이나 되었다. 행실은 규칙에 맞지 않고 말은 법도에 어긋남이 많으며 학문은 매우 힘써도 도는 이루지 못하고 나이는 장성하여도 덕은 나아가지 않으니 나는 성현의 지경에 이르지 못하고 마침내 범인으로 돌아갈 것이 명백하다.
아! 오늘은 설날이다. 해도 또한 바뀌었는데 나 홀로 옛 모양 그대로 덕을 새롭게 하지 않으리오. 오잠을 지어 종신지우(終身之憂)를 삼으려 한다.
이 글은 양재역벽서사건으로도 유명한 조선시대 성리학자인 이언적이 쓴 것으로 <회재전서> '철학편'에 실린 '원조오잠'의 서문입니다. 처음 어느 책에선가 이 글을 만난 이후 지인을 통해 번역본을 구해 읽을 때의 두근거림이 아직도 선명합니다. 조선시대 20대 후반이면 지금으로 치면 삼십대 중반이나 사십대 초반의 내공이라고 하지만, 스물일곱 한참 혈기 방장한 나이의 선비가 설날 아침에 정좌하고 앉아 고요히 먹을 갈고 형형하게 빛나는 눈빛으로 마음속 굳은 결심을 써내려가는 모습이 떠올리면, '아! 나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가!'하는 깊은 탄식을 내뱉게 됩니다.
해가 바뀌면 많은 분들이 새로운 계획들을 세웁니다. 그리고 많은 결심과 계획들이 일상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사그라지고 말지요. 건강에 대한 계획도 마찬가지여서 제 질문에 언제부터 할 것이라고 답했던 환자분들에게 몇 개월이 지나 다시 물으면 실천하고 계신 분들은 열에 한 명도 되지 않습니다. 아마 그래서 다시 진료실을 찾으셨겠지만요.
이런 일이 반복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건 아마도 자신의 역량에 맞고 필요한 것이 아니라 세상의 기준에 맞춘 계획이었거나, 변화가 일어날 때까지 지속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것도 내가 할 수 없거나 필요하지 않은 것이라면 의미가 없는 것인데, 많은 경우 자신의 상태에 대한 냉정한 판단은 하지 않은 채 남들이 좋다고 하거나 세상의 유행을 따라 결정합니다. 그러니 실패할 수 밖에 없지요. 또한 자신에게 맞는 것을 선택했다 해도 몸과 마음에 변화가 일어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흔히 어떤 일을 만 시간 혹은 10년은 해야 인생에 변화가 일어난다고 하는데, 적어도 천 시간 혹은 1년은 지속해야 내가 느낄만한 일들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며칠 혹은 몇 개월하고 나서 잘 되지도 않고 변화도 나타나지 않으니 포기하고 다른 것을 찾아 나서게 되는 것이지요. 세상이 아무리 빠르게 변해도 내 몸과 마음의 시계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제 다시 한 번 위에 인용한 글을 읽어 보세요. 겨울 아침 공기 같아 맑고 차가운 20대 젊은 선비의 눈빛과 굳은 결심이 느껴지시나요? 이번 새해 계획은 술자리에서 호기롭게 이야기 하는 대신, 홀로 고요히 앉아 스스로의 마음을 점검하는데서 시작해 보면 어떨까요? 그리고 그 결과를 깨끗한 종이에 정성껏 적어 보는 것입니다. 그 오롯한 시간이 올 한 해를 조금 다르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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