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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드시 눈 있어야만 세상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3월 폐사지학교, 성주·합천에서 봄맞이 템플스테이

폐사지학교(교장 이지누. 폐사지 전문가·전 <불교신문> 논설위원)의 3월, 열네 번째 강의는 경북 성주와 경남 합천 일대의, 이미 아름다운 폐사지에 봄이 찾아와 더욱 빛날 폐사지를 거니는 답청(踏靑), 곧 봄맞이로 떠납니다.

황매산 기슭의 영암사터에는 나라 안 폐사지 중에서 빼어난 석조유물들이 순례자들을 맞이할 겁니다. 백암사터라고도 하는 대동사터에는 느티나무 아래에서 얼굴을 잃은 부처님이 묵묵히 세상을 관조하고 있습니다. 반드시 눈이 있어야만 세상을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듯이 말입니다. 그렇게 마음으로 사바세계를 바라보는 부처님이 해주는 법문 들으러 길 나서기 바랍니다. 성주의 한개마을 골목길 산책과 해인사 둘러보기, 그리고 심원사에서의 템플스테이는 전통문화와 함께 찬란하게 꽃피운 합천 일대의 불교문화를 이해하는데 충분한 보탬이 될 것입니다. 봄기운 가득한 3월 21(토)~22(일)일, 1박2일로 진행됩니다. ☞참가신청 바로가기

▲합천 대동사지 전경 Ⓒ이지누

폐사지(廢寺址)는 본디 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향화가 끊어지고 독경소리가 사라진 곳을 말합니다. 전각들은 허물어졌으며, 남아 있는 것이라곤 빈 터에 박힌 주춧돌과 석조유물이 대부분입니다. 나무로 만들어진 것들은 불탔거나 삭아버렸으며, 쇠로 만든 것들은 불에 녹았거나 박물관으로 옮겨갔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폐사지는 천 년 전의 주춧돌을 차지하고 앉아 선정에 드는 독특한 경험으로 스스로를 들여다 볼 수 있습니다. 주춧돌 하나하나가 독락(獨樂)의 선방(禪房)이 되는 곳, 그 작은 선방에서 스스로를 꿰뚫어보게 됩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 혜안을 얻는 길, 폐사지로 가는 길입니다. 아울러 폐사지 답사는 불교 인문학의 정수입니다. 미술사로 다다를 수 없고, 사상사로서 모두 헤아릴 수 없어 둘을 아울러야만 하는 곳입니다.

▲성주 법수사지 당간지주 Ⓒ이지누

이지누 교장선생님으로부터 1월 답사지에 대해 들어봅니다(아래는 교장선생님의 폐사지 답사기인 <절터, 그 아름다운 만행>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합천 영암사지
누구는 영암사터를 두고 쌍사자석등 하나만 봐도 좋을 곳이라고 하지만 나에게 석등의 미술사는 안중에도 없다. 다만 갈기와 뒤 발톱까지도 섬세하게 표현해 놓은 석등의 사자와 하대에 새겨진 서수(瑞獸)들의 포효, 그리고 금당자리의 기단부 면석에서 금방이라도 튀어 나올 듯 돋을 새김한 사자가 울부짖는 소리를 듣고 싶을 뿐이다. 사자가 사는 곳이 어디던가. 그곳은 전단나무[栴檀木] 울창한 숲이 아니던가. 맑고 밝아 다른 나무들이 더불어 살지 못한다는 숲. 사자들은 그 숲 가장 깊은 곳에 산다.


설산에 흰 소가 사는 곳은 또 어디던가. 그곳은 비니초(肥膩草) 우거진 들판이 아니던가. 곱고 부드러운 비니초가 자라는 들판에는 다른 여느 풀들이 함께 자라지 못하는 법. 그토록 아름다운 그 곳은 번뇌와 망상이 사라진 진여자성(眞如自性)의 숲이며 들판을 일컫는 것이다. 그러니 전단나무 숲의 사자와 비니초를 먹고 자란 흰 소는 이미 깨달음을 이루었음을 상징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사자들의 우렁찬 나일할(那一喝) 한번이면 나에게 끈덕지게 달라붙은 번뇌와 망상을 털어 낼 수 있으련만 그는 넌지시 바라보기만 할 뿐 포효하지 않는다. 그는 기어코 나를 그냥 내버려둘 참이었던 것이다. 오늘도 다르지 않다. 그는 이른 아침 햇살에 한 올 한 올의 갈기와 튼실한 허벅지의 근육까지도 남김없이 드러내 놓고는 딴전이다.

나 또한 금당자리의 북쪽, 높은 언덕의 바위에 기대앉아 모른 체 하며 명상에 젖었다. 눈을 감고 대여섯 종류의 새소리를 구분해 낼 수 있을 만한 시간이 흘렀을 무렵 퍼뜩 생각이 스쳤다. 영암사터의 사자가 거기 있는 까닭은 깨달음이란 스스로 이루어야 한다는 것을 되새겨 깨우쳐 주려는 것이라고 말이다. 깨달음이란 그 누구에게도 기댈 수 없이 저 홀로 힘겹게 구해야 하는 것 아니던가. 모든 존재로부터의 외면을 견디고 이윽고 그들을 포함해내는 것이 그것이리라.

사자의 포효를 들으려는 것은 아직 나에게 버거운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에게로 가는 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영가현각(永嘉玄覺)이 <증도가>의 마지막에서 말하지 않던가. “가질 수도 없고 버릴 수도 없나니(取不得捨不得) 얻을 수 없는 가운데(不可得中) 이렇게 얻을 뿐이다(只嚰得)”라고 말이다. 욕심 버린 두 눈 부릅뜨고 멈추지 않고 꿋꿋이 가면 그를 만날 수 있으리라. 그곳은 먼 곳이 아니리니 내 발길 머문 곳이면 족하리라. 내가 머문 그곳이 이미 담연(湛然)한 곳이라는 것을 알아차리는 순간 사자는 나에게 미소 지어 보이지 않겠는가.

▲합천 영암사지 금당 기단부의 사자 Ⓒ이지누

노자는 말한다. “얻으려고 하면 오히려 실패하고(爲之者敗之) 지키려고 하면 오히려 잃는다(執之者失之)”고 말이다. 그저 덤덤해야 하리라. 그는 다시 말한다. “깨달은 사람은 만물이 스스로 본성에 순응하려 함을 도와 줄 뿐(是以能輔萬物之自然), 의도적으로 행하지 않는다(而不敢爲)”고 말이다. 영암사터의 사자 또한 이와 다르지 않으리라. 비록 그가 할을 베풀지 않더라도 그저 존재의 위대함이리니 그가 그곳에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금당으로 오르는데 그곳에도 새가 있다. 하지만 그는 날지 못하며 울지 못한다. 더러 날개도 꺾이고 머리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는 몸은 새며 머리는 사람인 가릉빈가(迦陵頻伽)이다. 그의 노래 소리는 사자의 할과 더불어 영암사터에서 내 진정 그리운 것이련만 그 또한 묵묵할 뿐이다. 계단에 걸터앉아 지그시 눈을 감고 그의 소리를 기다렸다.

용수(龍樹)가 지었다고 전하는 <십주비바사론(十住毘婆沙論)> 권8 ‘공행품’에서는 “여래의 음성은 대범천왕(大梵天王)의 것과 같은데, 가릉빈가의 울음소리와 같이 아름답고 곱기 때문에 범음상(梵音相)이라 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또 <아미타경>에서는 아미타불이 법음을 널리 펴기 위해 화현한 새라고 했다. 하물며 그의 맑고 깨끗한 미묘한 소리는 하팔부신중(八部神衆) 중 음악을 관장하는 신인 긴나라(緊那羅)조차도 감히 흉내 낼 수 없다고 하니 어찌 그것이 그립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그는 특이하게 생긴 모습보다 그가 지닌 아름다운 소리로 상서로운 곳을 장엄한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의 소리를 듣지는 못했으니 그저 그리울 밖에. 주섬주섬 주머니에서 전단향을 꺼냈다. 내 그리움이 가득한 곳에 계신 부처님에게 올리려는 것이다. 그러나 사자의 할을 듣지 못하고 가릉빈가의 그 아름다운 소리조차 듣지 못했듯이 부처님 또한 이곳에 그 모습으로 계시지 않는다. 하지만 어떠랴. 꽃들이 피어난 부처님 계셨던 자리에 향을 놓았다. 그가 다 타도록 주춧돌에 올라 앉아 귀를 기울였지만 그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어쩌면 소리가 없기 때문이 아니라 너무 크기 때문에 미처 내가 알아차리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합천 영암사지 금당 가릉빈가 소맷돌 Ⓒ이지누

성주 법수사터
법수사터는 경북 성주군 수륜면 백운리 가야산 기슭의 중기마을에 있다. 성주라고는 하지만 해인사가 있는 경남 합천의 가야면에 더 가까운 곳이다. 신라 애장왕 3년인 802년에 세워진 화엄 사찰이었다. 창건 당시에는 금당사(金塘寺)라 했다지만 언제부터 법수사가 되었는지는 알지 못한다.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1,000여 칸이 넘는 건물이 빼곡하게 들어섰고 주변 암자만도 100곳이 넘었다지만 그 흔적을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의 막내아들인 범공(梵空)이 머물렀는가 하면 고려 광종 대에는 의상대사로부터 이어지는 화엄의 큰 인물이자 성상융회(性相融會)의 화엄종풍을 드날리던 균여(均如)도 귀법사와 개태사 그리고 법수사에 머물며 화엄종을 진작시켰다. 그 후, 고려 예종 대에 왕사를 지낸 원경(元景) 스님이 주지를 지냈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성주 법수사지 3층석탑 Ⓒ이지누

2015년 3월 폐사지학교 제14강 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3월 21일(토요일)>
07:00 서울 출발(정시에 출발합니다. 6시 50분까지 서울 강남 압구정동 현대백화점 옆 공영주차장에서 <폐사지학교> 버스에 탑승바랍니다. 아침식사로 김밥과 식수가 준비돼 있습니다. 답사 일정은 현지 사정에 따라 일부 조정될 수 있습니다.)→성주 한개마을→점심식사 (성주군청 앞)→성주 법수사지→합천 해인사→합천 월광사지→성주 심원사 도착. 저녁식사 후 템플스테이(다인실)

<3월 22일(일요일)>
07:00 심원사에서 아침식사→합천 대동사지→합천 영암사지→산청에서 늦은 점심식사→서울 향발

▲폐사지학교 제14강 답사로 ⓒ폐사지학교

준비물은 다음과 같습니다.
걷기 편한 차림(가벼운 등산복/배낭/등산화), 모자, 장갑, 얼굴가리개(버프), 스틱, 무릎보호대, 식수, 윈드재킷, 우비, 따뜻한 여벌옷, 간식(초콜릿, 과일류 등), 자외선차단제, 세면도구, 세수수건, 필기도구 등(기본상비약은 준비됨)

폐사지학교 제14강 참가비는 23만원입니다(왕복 교통비, 템플스테이 1박과 5회 식사비, 강의비, 관람료, 운영비 등 포함). 버스 좌석은 참가 접수순으로 지정해드립니다. 참가신청과 문의는 홈페이지 www.huschool.com 이메일 master@huschool.com 으로 해주십시오. 전화 문의(050-5609-5609)는 월~금요일 09:00~18:00시를 이용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회원 아니신 분은 회원 가입을 먼저 해주십시오(▶회원가입 바로가기). 아울러 폐사지학교 카페(http://cafe.naver.com/pyesajischool)에도 많이 놀러 오시고 회원 가입도 해주세요. 폐사지학교는 생활 속의 인문학 체험공동체인 인문학습원(대표 이근성)이 지원합니다. ☞참가신청 바로가기

▲합천 영암사지 전경 Ⓒ이지누

이지누 교장선생님은 1980년대 후반, 구산선문 답사를 시작으로 불교를 익혔으며 폐사지와 처음 만났습니다. 90년대 초반에는 분단 상황과 사회 현실에 대하여, 중반부터는 민속과 휴전선 그리고 한강에 대하여 작업했습니다. 90년대 후반부터 2002년 초반까지는 계간지인 <디새집>을 창간하여 편집인으로 있었으며, 2005년부터 2006년까지는 <불교신문> 논설위원으로 나라 안의 폐사지와 마애불에 대한 작업을, 2007년부터 2008년까지는 한강에 대한 인문학적인 탐사 작업을 했습니다. 2009년부터는 동아시아의 불교문화와 일본의 마애불을 기록하는 작업을 하고 있고, 2012년부터 폐사지 답사기를 출간하기 시작하여 지금까지 전라남도와 전라북도, 충청도의 폐사지 답사기인 <마음과 짝하지 마라, 자칫 그에게 속으리니> <돌들이 끄덕였는가, 꽃들이 흔들렸다네>, 그리고 <나와 같다고 옳고, 다르면 그른 것인가>를 출간했으며, 다른 지역들도 바로 출간될 예정입니다.

이지누 교장선생님은 <폐사지학교를 열며> 이렇게 말합니다.

전각은 무너지고 법등조차 꺼진 폐사지(廢寺址)는 쓸쓸하다. 그러나 쓸쓸함이 적요(寂寥)의 아름다움을 덮을 수 없다. 더러 푸른 기운 가시지 않은 새벽, 폐사지를 향해 걷곤 했다. 아직 바람조차 깨어나지 않은 시간, 고요한 골짜기의 계곡물은 미동도 없이 흘렀다. 홀로 말을 그친 채 걷다가 숨이라도 고르려 잠시 멈추면 적요의 무게가 엄습하듯 들이닥치곤 했다. 그때마다 아름다움에 몸을 떨었다. 엉겁결에 맞닥뜨린 그 순간마다 오히려 마음이 환하게 열려 황홀한 법열(法悅)을 느꼈기 때문이다.

비록 폐허일지언정 이른 새벽이면 뭇 새들의 지저귐이 독경소리를 대신하고, 철따라 피어나는 온갖 방초(芳草)와 들꽃들이 자연스레 헌화공양을 올리는 곳. 더러 거친 비바람이 부처가 앉았던 대좌에서 쉬었다 가기도 하고, 곤두박질치던 눈보라는 석탑 추녀 끝에 고드름으로 매달려 있기도 했다. 그곳에는 오직 자연의 섭리와 전설처럼 전해지는 선사(禪師)의 이야기, 그리고 말하지 못하는 석조유물 몇 밖에 남아 있지 않다. 그래서 또 아름답다. 텅 비어 있어 다른 무엇에 물들지 않은 깨끗한 화선지 같으니까 말이다.

꽃잎 한 장 떨어져 내리는 깊이가 끝이 없는 봄날, 주춧돌 위에 앉아 눈을 감으면 그곳이 곧 선방이다. 반드시 가부좌를 하지 않아도 좋다. 모든 것이 자유롭되 말을 그치고 눈을 감으면 그곳이 바로 열락(悅樂)의 선방(禪房)이다. 폐허로부터 받는 뜻밖의 힐링,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 혜안을 얻는 길, 폐사지로 가는 길은 파수공행(把手共行)으로 더욱 즐거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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