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에 계단 내려오다가 발목을 삐끗했어요."
"일단 부종과 통증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침치료를 하고, 어혈을 풀고 통증을 줄이는 약재가루를 드릴테니 저녁에 습포를 하고 주무세요. 내일 아침에 경과 봐서 통증이나 부종이 너무 심하고 딛기가 힘들면 경과 봐서 엑스레이를 찍어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치료를 하다 보면 겉으로 드러난 증상이나 이학적인 검사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느끼는 경우가 있습니다. 때론 병증은 중한데, 환자분 스스로가 본인 몸 상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할 경우도 있고요. 이럴 때는 내과나 방사선과의원에 가서 필요한 검사를 받을 것을 권합니다. 최근에는 이미 병원에서 여러 검사와 치료를 받고 나서, 차도가 없거나 부족한 부분이 있어서 내원하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실제 진료를 하다 보면 검사가 필요 없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제가 진단한 결과를 바탕으로 환자분들이 받은 검사결과를 참고하면 좀 더 효율적인 경우도 있고, 환자들은 자신의 몸 상태를 이전 보다 잘 알게 되어 치료와 건강관리에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과하지 않고 꼭 필요한 정도에서 이루어진다면 말이죠.
또한 문제가 되고 있는 의료기기들은 엄격하게 따지면 서양의학의 산물이라기보다는 공학의 산물이라고 봅니다. 기술이 진보하면서 만들어진 기기들이라는 것이지요. 가치중립적인 이러한 도구를 특정한 사람들만이 써야 한다고 한정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한의사가 그러한 의료기기를 쓰면 마치 학문적인 정체성을 잃는 것처럼 이야기 하는 것은 좀 이상합니다. 몸을 들여다보는 현대적인 도구를 이용하는 것 뿐이지요. 모든 의학은 시대가 바뀌면서 새로운 발견들이 이루어지고 이러한 것들을 흡수하면서 발전합니다. 현대의 한의사 중에 황제내경과 동의보감의 내용을 신봉하고 그것만이 진리인양 믿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사람과 질병 그리고 생물학의 새로운 발견들을 한의학의 기본적인 관점을 바탕으로 수용하면서 한의학 또한 변화하고 있습니다. 만약 허준이 타임슬립해서 현대로 온다면 어떨까요? 스승의 시신을 해부했다는 이야기가 만들어질 정도로 당시 의사들이 인체구조에 대한 열망이 높았던 것을 감안한다면, 허준은 지금의 의료기기들을 이용하는데 주저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동서양 의학은 지금은 아주 많이 달라 보이지만 양자 모두 인도의학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고 합니다. 서양의학의 초기 모습을 보면 지금과 같은 기계론적 인체관이 아닌 동양의학에 가까운 관점들이 공존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던 것이 사람과 자연 그리고 우주를 바라보는 인식론의 차이에 따라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하게 된 것이지요. 하지만 길게 보면 앞으로는 결국 통합의료의 시대가 올 것입니다. 그 전까지는 서로의 좋은 점은 인정하면서 공존하는게 좋다고 봅니다. 그 중심에는 무엇이 환자에게 최선인가에 대한 고민이 있어야 겠지요. 나만이 최선이고 나 아니면 안된다는 식의 독선은 치료자와 환자 모두에게 독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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