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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겐지다', 그 무거운 의미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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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겐지다', 그 무거운 의미에 대해

[기자의 눈] 독립 언론인 고토 겐지 씨를 추모하며

일본의 분쟁지역 전문기자 고토 겐지(後藤健二·47) 씨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합니다. 다만, 1996년 도쿄에서 '인디펜던트 프레스'를 설립한 후 평생 분쟁지역 취재에 천착해온 언론인의 죽음에 대해 고개 숙여 추모의 마음을 전하고 싶어 이 글을 씁니다. 분쟁지역 전문기자인 그가 현 세계의 가장 큰 갈등인 미국을 위시한 서구와 중동간의 '사실상의 전쟁' 현장에서 죽임을 당했다는 것이 의미하는 바에 대해 곱씹어봅니다. 또 고토 씨와 그의 가족이 남긴 말의 '숭고함'에 대해 널리 알리는 것이 언론인으로서 최소한의 책무이자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고토 씨의 모친 이시도 준코(石堂順子·78) 씨는 아들의 참수 소식이 전해진 1일 오전 기자들과 만나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합니다.

"나는 슬픔의 눈물을 흘리고 있으며, 어떤 말도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같은 슬픔이 증오의 사슬을 만드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 내 아들은 전쟁 없는 세상을 꿈꿨으며 분쟁과 가난으로부터 어린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일했다. 아들의 이같은 신념이 전세계 사람들에게 전달 되기를 바란다."

고토 씨 부인은 이날 영국의 언론인 지원단체를 통해 이런 입장을 밝혔습니다.

"분쟁 지역에서 사람들의 고통을 전해온 남편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남편은 특히 아이들의 눈을 통해 보통사람들에 미치는 영향을 조명함으로써 전쟁의 비극을 우리에게 전하는데 열정을 기울여 왔다. 내 사랑하는 남편이며, 2명의 귀여운 딸의 아버지일 뿐 아니라 부모와 형제도 있고, 전 세계에 많은 친구들이 있었다. 매우 큰 상실감을 느낀다."

고토 씨는 자신에 앞서 이슬람 수니파 원리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에 의해 참수된 일본인 인질 유카와 하루나(湯川遙菜·42) 씨의 납치 소식을 듣고 그를 돕기 위해 지난 해 10월말 시리아의 IS 거점 지역에 들어갔다가 IS에 붙잡혔습니다. 그는 연락이 끊기기 전 마지막 영상에서 이런 당부를 남겼다고 합니다.

"매우 위험하기 때문에, 무슨 일이 있더라도 나는 시리아 사람을 원망하지 않으며 책임은 나 자신에게 있다. 일본의 여러분도 시리아 사람에게 어떤 책임도 지우지 말아 달라."

평생을 전쟁의 참상을 알려온 그가 IS에 의해 살해된 것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엄청난 모순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인과 그 가족들은 한 목소리로 그의 죽음이 전쟁의 씨앗인 '증오'를 만드는데 일조하지 않기를 당부했습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고토 씨가 시리아로 간 것은 문제가 있다는 비판이 있습니다. 매우 민감한 문제이나, 그의 시리아 행이 선교를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핵심적인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일본 정부는 고인의 뜻을 따를 생각이 없는 듯합니다. 아베 신조 총리는 "테러리스트들의 죄를 속죄시키기 위해 국제 사회와 연대해 나가겠다"며 해외에서 위험에 처한 자국민 구출을 위해 자위대가 무력을 행사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극우 정권인 아베 정권은 고토 씨의 죽음과 무관하게 정치적 이해관계 때문에 '전쟁 포기, 전력보유와 교전권 불인정을 규정'하고 있는 이른바 '평화 헌법' 9조를 없애려는 야욕을 숨기지 않아왔습니다.

과학 기술의 발달로 '로봇'이 기사를 쓰는 세상입니다. 검색어 기사가 하루 수십, 아니 수백만 건이 쏟아지는 시대입니다. 이런 정보의 홍수 속에서 '과연 기자, 언론인은 무얼 하는 사람인가'라는 고민이 하루도 머리 속을 떠나지 않는 나날들입니다. 모든 언론인들이 고토 씨처럼 분쟁지역에서 목숨을 걸고 취재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그가 자신의 목숨을 바쳐 기록하고자 했던 역사의 참상과 그런 참상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던 근본 원인에 대해 누구보다 먼저, 더 치열하게 사고해야만 하는 게 언론인의 소명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평화를 염원하는 '나는 겐지다'라는 추모 움직임에 많은 분들이 동참해주시길 바랍니다. 저 역시 '나는 겐지다'라고 되뇌어 봅니다. 언론인이기 때문에 '나는 겐지다'라는 다짐이 갖는 의미에 대해 더 무겁게 사고하겠습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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