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국정원만 믿었는데…웬 날벼락"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국정원만 믿었는데…웬 날벼락"

[다시 '국가폭력'을 말하다] 탈북자들은 왜 국가에 이용당하나

<프레시안>이 지난 19일부터 소개한 탈북자 김관섭 씨. 그는 탈북 직후 3년 6개월간 '대성공사'에 갇혀 있으면서 수도 없이 북한 정보를 대한민국에 넘겼다. 간첩 누명을 쓰고 고문까지 당했지만, 남북 대치 상태에서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대성공사만 나가면 고문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받고, 북한 정보를 넘긴 데 대한 공도 인정받을 거라 믿었다. 그러나 착각이었다. 그는 찬밥 신세였다. 여든을 넘기고서야 깨달았다. 자신은 대한민국에 이용당한 뒤 내팽개쳐졌다는 걸. (☞관련 기사 :"'자유 대한'이 나를 고문했다", '귀순용사' 때려잡던 '대성공사', 사라지지 않았다)

김 씨는 "정부나 정보기관은 탈북자들을 보듬고 보호할 국민이 아니라 언제 어떻게든 이용할 수 있는 도구쯤으로 본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김 씨뿐 아니라 <프레시안>이 만난 탈북자들은 대한민국 사회에서의 탈북자들의 처지에 대해 한탄했다. 쓰고 버려지는 '소모품'. 이들이 자신의 처지를 공통적으로 묘사하는 표현이었다.

▲대성공사를 바라보는 탈북자 김관섭 씨. ⓒ프레시안(최형락)

국정원, 증인 요청에 언론 인터뷰 종용…신변 보호는 '모르쇠'

탈북자들을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주체는 국가정보원 등 정보기관이다. 국정원은 간첩 사건마다 탈북자들을 핵심 증인으로 세웠다. 또 불리한 국면마다 언론에 탈북자들을 인터뷰하도록 주선했다. 국정원은 그러나 이런 과정에서 탈북자들과 탈북자 가족의 신변 보호에는 전혀 무감한 태도를 보였다.

'유우성 간첩 사건' 항소심에서 증인으로 나선 A 씨 사례가 대표적이다. A 씨는 지난해 북한에 있는 딸로부터, A 씨가 유 씨 사건 관련 비공개 법정에서 했던 증언이 유출돼 북한에 있는 가족들이 조사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에 A 씨는 증언이 유출된 과정을 조사해달라는 탄원서를 법원에 제출했다.

당시 증언 유출자로 유 씨 변호를 맡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소속 변호사들이 거론되고 있었다. 국정원은 A 씨에게 탄원서 제출 경위에 대해 <동아일보>와 인터뷰를 하라며 종용했고, A 씨는 북에 있는 가족이 다시 위험에 처할까 봐 거절했다.

그런데 탄원서 전문이 얼마 지나지 않아 <문화일보> 지면에 실렸다. 당시 <문화>는 탄원서 제공 출처가 국정원임을 밝혔다. 국정원은 자신의 불리한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A 씨의 법정 진술 내용이 담긴 탄원서를 공개했고, 결국 그에 대한 후환을 A 씨와 그의 가족이 고스란히 감당해야 하는 상황이 된 셈이었다. A 씨는 지난해 4월 8일 자 <동아일보> 인터뷰를 통해 국정원의 이같은 무책임한 태도에 대해 노여움을 드러냈다.

"그동안 국정원을 여러 번 도와줬지만 이제 내가 용도폐기 당한 것 같다. 국정원이 소송을 걸지 말라며 찾아오기도 했다. (중략) 나는 유우성 씨 관련 재판 외에도 간첩 사건 재판에 두 번 더 나갔다. 국정원이 도와 달라고 하니 위험을 무릅쓰고 법정 증언을 한 거다. 그런데 이제 자기들이 (증거조작 사건으로) 다급해지니 뒤통수를 친 것이다. (중략) 내가 소송 준비를 하자 국정원 직원들이 사무실로 찾아와 말리기도 했다."

▲유우성 사건 증인으로 나선 탈북자 A 씨는 비공개 법정 증언 내용이 담긴 탄원서가 유출돼 북한에 있는 가족들이 고초를 겪었다며 탄원서 내용을 보도한 <문화일보>를 고소했다. <문화> 2014년 4월 1일자 1면에서 해당 기사 내용은 온라인 지면, 홈페이지 등에서 모두 삭제된 상태다.

"국정원만 믿었다가 국보법상 날조죄로 고소"

유우성 사건 1심 증인이자, 언론을 통해 '유 씨 아버지로부터 유 씨가 보위부 사람이라는 얘기를 들었다'고 최초 증언한 탈북자 B 씨 역시 국정원에 협조했다가 낭패를 본 경우다. B 씨의 증언은 모두 거짓이었고, 그가 허위 증언을 하기 전엔 국정원으로부터 돈을 받았다는 사실은 그의 전 남편 C 씨에 의해 뒤늦게 밝혀진 바 있다. B 씨는 유 씨로부터 국가보안법상 무고·날조죄로 고소당한 상태다.(☞관련 기사 : "'유우성 사건' 검찰 측 증인, 국정원 돈 받고 거짓 증언")

C 씨는 최근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B는 국정원에 이용당한 거나 다름없다"고 했다. 그는 "B가 유우성이 간첩 의심을 받고 있다는 걸 2013년 1월 <동아> 첫 보도를 보고 알았다"며 "신문에 보도가 될 정도면 진짜이지 않겠냐 해서 믿은 것 같다. 그전까진 유우성이 간첩이라는 확신이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결국 그 보도도 국정원이 흘린 것 받아 쓴 것 아니겠느냐"며 "B가 포상금에 눈이 멀어 국정원에 놀아난 것"이라고 했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 피해자 유우성 씨. ⓒ 프레시안(서어리)

탈북자들은 어떻게 국가 권력의 노예가 되었나

이들 탈북자들은 국정원에 적극적으로 협조했다. 때로 위험을 무릅써야 하고, 무엇이 사실인지 확신할 수 없는 상태서도 이들은 국정원을 따랐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탈북자 허위 진술의 피해자였던 유우성 씨는 탈북자들의 선택을 '두려움'으로 설명한다. "탈북자들은 자신을 부정하지 않으면 다음 간첩이 될 수도 있다는 공포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유 씨를 둘러싼 진실 공방이 한창일 당시, 매주 화요일 민변 사무실 앞에서는 탈북자들이 주최한 집회가 열렸다. 유 씨와 일면식 없는 탈북자들이 "유우성은 간첩이 맞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일부 탈북자들은 밤 늦게 유 씨 집 주변을 어슬렁거리기도 했다.

유 씨는 "내 사건을 통해 탈북자들은 자신이 간첩이 아닌 증거를 내지 못하면 그대로 간첩이 된다는 걸 알게 된 것"이라며 "탈북자들이 '유우성 추방'을 외치는 것은 '자신은 간첩으로 만들지 말라'는 신호를 수사기관에 보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탈북자들이 통합진보당 해산을 주장하며 '종북 몰이'에 가담한 이유도 이런 틀에서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유 씨는 "결국 남한 체제에서 살아남기 위한 탈북자들의 생존 본능"이라고 했다.(☞관련 기사 :"간첩 누명까지 썼지만, 한국서 살고 싶다")

김관섭 씨는 탈북자들이 사정기관에 협조하고 정부 입장을 대변하려는 생존 본능은 탈북자 조사기관에서의 장기 수용 생활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한다. 대한변호사협회가 발간한 2013 인권보고서도 김 씨 주장을 뒷받침한다. 인권보고서는 "합동신문 담당자들은 북한이탈주민을 잠재적 용의자로 간주한다"며 "무엇보다도 이러한 과정을 거쳐 한국에 정착하게 되는 탈북자의 경우 항상 당국에 대한 두려움에 떨게 되고 잘 길들여진 지극히 순종적인 '이등 국민'으로 전락한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12월 19일 헌법재판소 앞에서 통합진보당 해산 시위를 벌인 탈북단체연합. ⓒ프레시안(서어리)

"외롭고, 돈 없고, 나도 간첩 될까봐…"

그런가 하면, <프레시안>이 만난 40대 탈북자 D 씨는 탈북자들이 국가 선전 부대에 편입되는 주요 유인책으로 '돈'을 꼽았다. D 씨는 "탈북자 열이면 여덟아홉은 선거 때마다 새누리당 찍으라고 전화하지만, 정치적으로 똘똘 뭉쳐서 그러는 건 아니"라고 했다. 그는 탈북자 단체에서 정치적 활동을 할 경우 얼마간의 돈을 쥐여준다고 귀띔했다. "시위 같은 데 나가면 장갑이라도 하나 주고, 교통비로 쓰라며 용돈도 준다"는 것이다.

실제 한 탈북자 단체는 이명박 정부 시절, '누군가'로부터 돈을 받고 조직적으로 인터넷에 정권 홍보성 글을 올린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다.

<뉴스타파> 2013년 8월 29일 자 "탈북자 조직 돈 받고 여론전 펼쳐" 보도에 따르면, 탈북자 단체 'NK지식인연대' 회원들은 지난 2009년부터 1년여 동안 포털 사이트 '다음'의 토론사이트인 아고라에 글을 올리고 그 대가로 누군가로부터 돈을 받았다. 한 사람당 5만 원에서 40만 원을 지원받은 꼴로 한 달에 총 2000만 원 가량의 적잖은 돈이 지급됐다. 국정원, 군 사이버사령부의 조직적 댓글 사건에서 드러난 것과 유사한 방식이었다. 그러나 이 돈의 출처는 철저히 비밀에 부쳐졌다. 단체 회원 중 한 명인 한 탈북자는 "배후에 국정원이 없으면 돈의 출처를 설명 못 한다"라고 말했다.

D 씨 또한 돈의 출처에 대해선 정확히 알 수 없고 국정원 돈이 탈북자 단체로 흘러들어가는 것 아닌지 추측할 따름이라고 했다. 그는 시위에 참가하거나 인터넷에 글을 올리고, 혹은 언론 인터뷰에 응하는 것이 탈북자들이 노동하지 않고도 용돈을 벌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남한 정착 초반에 경제적으로 안정적이지 않다 보니 그런 식으로 쉽게 돈을 벌려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소속감' 문제도 들었다. "남한에서 의지할 곳 없는 탈북자들이 탈북자 무리에 섞여 지내다 무리 내 탈북자들이 시위에 나가면 덩달아 따라간다"는 것. 그는 "뭐가 맞고 틀린지 분별이 없는 상황에서 휩쓸려 다니는 탈북자들이 많다"며 "외롭고, 돈 없는 탈북자들은 정부나 국정원에 기대기 마련이고, 정부나 국정원은 이런 탈북자들의 처지를 잘 이용하는 것 같다"고 했다.

민변 장경욱 변호사는 "탈북자들이 자의 반 타의 반 체제 유지에 이용되면서 김관섭 씨나 유우성 사건 증인으로 나선 탈북자들처럼 국가로부터 희생당하는 경우가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