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23일 내각 개편이 새누리당 차기 원내대표 경쟁구도를 뒤흔들었다. 이완구 현 원내대표가 신임 국무총리로 지명되며 원내대표직을 갑작스럽게 사퇴하게 됐기 때문. 이에 따라 당초 5월 께 열릴 것으로 보고 원내대표 선거를 준비해 온 주자들의 발걸음이 빨라지게 됐다. 특히 이번 원내대표 선거는 새누리당과 청와대 사이의 권력 지형이 어떻게 재편될지 가늠하게 한다는 면에서 초미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현재까지 차기 원내대표 주자로 꼽히는 인물은 비주류 측의 유승민 의원과 친박 주류에 속하는 이주영 의원이다. 유 의원은 한때 '원조 친박'이었으나 2012년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의 당 운영에 가감 없이 쓴소리를 하면서 박 대통령과 멀어지게 됐다. 그는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청와대 얼라들"('어린아이'의 경상도 사투리)이라고 한차례 쓴소리를 하기도 했었다.
이주영 의원은 이와 반대로, 4선의원이지만 2010년경까지는 계파색이 엷은 편이었다. 때로는 친박, 가끔은 친이, 때로는 중립으로 분류됐다. 그러던 그는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캠프 대선기획단장과 특보단장을 맡으며 친박 핵심으로 부상했다. 박 대통령 취임 후엔 윤진숙 전 장관 후임으로 지난해 3월 해수부 장관에 발탁돼 주목받기도 했다.
현재 새누리당 의원들의 계파 분포를 보면, 박 대통령이 공천권을 행사한 19대 총선 이후 줄곧 친박계가 다수를 점하고 있다. 하지만 2014년 7.14 전당대회에서 '비주류 좌장' 김무성 대표가 '친박 맏형' 서청원 최고위원을 누르고 승리한 이후 친박 주류와 비박·탈(脫)박·구 친이계 등 비주류 간 묘한 신경전이 벌어져 왔다.
특히 대선 승리 2주년 당일인 지난해 12월 19일 박 대통령이 서 최고위원 등 친박 중진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만찬 간담회를 함께했고, 이후 친박계 모임인 '국가경쟁력강화포럼'에서 김 대표를 겨냥해 "사당화"라는 비난이 나왔다. 연초에 정국을 떠들썩하게 한 김무성 대표의 '수첩 속 K, Y' 파동은 청와대·친박과 비주류 간 갈등의 정점을 보여줬다는 평이다.
이에 따라, 만약 유승민 의원이 차기 원내대표가 된다면 집권 3년차 당청관계 역전의 신호탄이 될 수 있다. 특히 유 의원은 청와대 음종환 전 행정관이 문건 유출 배후로 지목했다고 알려진 '김무성 수첩 속 Y' 당사자이기도 하다.
비슷한 기간 이주영 의원은 해양수산부 장관을 하면서 4월부터 9월까지 진도 팽목항에서 줄곧 머물렀다. 그는 박근혜 정부를 향한 세월호 유가족들의 분노를 대신 맞는 방패 노릇을 했다. 이 의원이 원내대표가 된다면, 이는 7.14 전당대회 이후 느슨해졌던 청와대의 당 장악력이 회복되는 징조로 읽을 수 있다.
홍문종 의원 등 다른 도전자들의 거취 결정도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홍 의원은 라디오 및 신문 인터뷰 등을 통해 출마 의사를 비치고 있다. 그는 황우여 대표 시절 당 사무총장을 지낸 친박 핵심이다. 다만 사무총장 시절 6.4 지방선거 준비 및 당협위원장 인선 등을 하는 과정에서 당 내에 적이 많이 생긴 것은 홍 의원의 약점으로 꼽힌다.
이밖에 친이계 중진인 심재철, 원유철, 정병국 의원도 출마를 고심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을 포함해 유·이 의원 등 잠재적 주자들 전원은 '강 건너 불'로 봤던 차기 원내대표 경선이 '발등의 불'이 되자 움직임을 서두르는 양상이다.
새누리당은 경선 일정을 숙의 중이다. 이 원내대표는 이날 총리 지명 발표 직후 기자들과 만나 "(원내대표직을) 오늘로 사퇴했다"고 했다. 새누리당 당규에 따르면, 원내대표가 사퇴 또는 사고로 궐위된 때에는 7일 이내에 선거를 실시하도록 돼 있다. 단, 국회 일정 등을 고려해 이 원내대표의 사퇴 일자를 23일이 아닌 25일부로 하는 등의 조정이 이뤄질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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