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작가 위화(余華)의 소설 <허삼관 매혈기>는 영화 <허삼관>(감독 하정우)을 통해 전 세계 최초 영화화됐다. 하정우는 중국의 역사적 사건 문화혁명을 중심으로 풀어지는 이야기인 원작을 그의 표현대로 '쳐내는 작업'을 통해 한국인의 정서에 맞게 각색했다. 하정우는 이번 영화 작업 시 가장 많이 공들인 작업으로 시나리오 작업을 꼽았다. 그는 함께하는 배우, 스태프들에게 많은 자문을 구하며 엉덩이 힘으로 끝까지 해냈다는 후문이다.
영화 <허삼관>은 돈도 없고 ‘빽’도 없고 가진 것이라고는 건강한 몸뿐인 허삼관(하정우 분)이 가정을 꾸리기 위해 매혈하는 것이 이야기의 기본 골자다. 허삼관은 한눈에 반해버린 허옥란(하지원 분)에게 장가가기위해 기를 쓴 끝에 결혼에 성공한다. 11년 후 허삼관과 허옥란은 세 아들 일락(남다름 분), 이락(노강민 분), 삼락(전현석 분)을 낳고 오순도순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허삼관은 자식들 중 가장 아끼던 장남 일락이 친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후 그는 180도 달라진 모습을 보인다. 둘이 있을 때는 아저씨라 부르라며 으름장을 놓기도 하고, 일락의 충격적인 소식 이후 자식 앞에서 훌쩍이는 모습을 보이는 등 유치하면서도 철이 덜 든 아버지 허삼관이 진짜 아버지로 거듭나게 되는 일련의 과정을 겪게 된다.
매혈은 영화 속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영화 속 매혈 한 번 못해본 남자에게는 딸을 시집보낼 수 없다는 김영애의 우스개 어린 대사처럼 매혈은 건강의 상징으로 비쳐지기도 하지만 허삼관에게 매혈은 그와 가족들이 먹고 사는 문제와 직결되는 생존 수단이다. 허삼관은 마을 내 최고 미녀 허옥란에게 장가가기 위해 매혈한 뒤 가정의 목돈이 필요할 때마다 매혈을 하며 가정을 꾸려나간다.
영화 초반과 후반에서 그려지는 매혈은 코미디와 드라마의 최극점을 찍으며 대조적인 형태를 보인다. 극 초반 허삼관이 장가가기 위해 매혈하던 장면은 배우 성동일과 김성균이 거들면서 코미디 요소를 가득 담아 냈다. 피를 맑게 하기 위해 물을 다섯 바가지는 먹는 것은 기본, 매혈 후 영양 보충을 위해 피순대, 간을 먹는 모습을 코믹하게 그려내 시종일관 관객들의 배꼽을 책임진다. 반면 극 후반 매혈은 친아들로 품은 양자 일락을 위해 전국을 누비며 매혈하는 아버지 허삼관의 모습이 비쳐져 가슴을 찡하게 한다.
영화 속 부성애가 빛날 수 있었던 것은 아들 일락 역을 맡은 남다름의 탁월한 연기력 덕분이었다. 영화 <군도>(감독 윤종빈)에 출연한 강동원의 아역이었던 남다름은 베테랑 배우 하정우와의 연기 속에서도 집중력을 잃지 않으며 제 몫 이상을 해내며 관객들에게 아역 스타의 탄생을 알렸다. 특히나 "아버지 가지 마세요. 저 좀 데려가 주세요"라는 대사를 전하는 남다름의 진심 어린 연기는 관객들의 눈시울을 적시기에 충분할 것으로 보인다.
<나의 독재자>(2014), <아빠를 빌려드립니다>(2014) 등을 시작으로 작년 하반기 스크린에 날아든 부성애 소재는 천만 고지를 눈앞에 둔 영화 <국제시장>(감독 윤제균)을 통해 최고점에 달했다. 오는 14일 개봉을 앞둔 영화 <허삼관>이 <국제시장>에 이어 아버지 이야기로 나선다.
첫 연출작 <롤러코스터>(2013) 이후 두 번째 연출 작품으로 하정우가 2년 만에 돌아왔다. 하정우는 영화 <허삼관>을 통해 상업영화 감독으로서 가능성을 내비쳤다. 그러나 가족 영화 장르가 갖고 있는 보편과 진부, 그 사이를 오가는 서사구조 탓에 그의 이전 작품에서 볼 수 있었던 재기발랄함을 찾아볼 수 없어 아쉬움을 남긴다.
뉴스컬처=프레시안 교류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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